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94화 (94/221)

<혈통이 깡패임 94화>

94화 전쟁 (2)

“말도 안 돼…….”

넬슨 곤칼베스는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곤칼베스 패밀리는 카르텔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최근에는 갓파더의 지원으로 더욱 규모가 커졌다.

단순히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다. 질도 월등하게 상승했다.

전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무기상들을 통해서 각국의 병기를 밀수했다.

통째로 들여오기 곤란한 물건들은 부품 형태로 밀매해서 따로 조립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곤칼베스 패밀리의 군대는 어지간한 국가의 군사력과 맞먹을 정도로 막강했다.

“다…… 다 부서졌어…… 다 부서졌다고!”

그 군대가 지금 모두 파괴되고 있었다.

미국에서 어렵사리 공수해온 최신식 전차는 모두 흉물로 변해버렸다.

하늘을 뒤덮었던 무장 헬기는 모두 추락했다.

각종 장비로 무장을 시킨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뭐가 있을 수 없다는 건데?”

젊은 청년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는 뒤집힌 전차 위에 서서 넬슨 곤칼베스를 내려다봤다.

“현대 병기 따위로 헌터를 어쩔 수 없다는 건 상식이잖아?”

그랬다.

헌터의 등장 이후, 현대 병기의 위치는 저 밑으로 추락했다.

초월적인 신체능력, 각종 이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스킬, 상식을 초월한 유물까지.

일류 헌터만 되어도 혼자서 전차를 파괴하거나 수백 명의 병사를 죽이는 것이 가능했다.

“상식이라고? 진짜 상식을 모르는 건 네 놈이야! 어떻게 단 한 명이…… 단 한 명이 이런……!”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헌터도 사람인 이상 지치기 마련이다. 빈틈을 보일 수밖에 없다.

청년이 상대한 것은 카르텔의 모든 역량이 집중된 군대다.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수백 대가 넘는 전차와 수천 명의 병사. 그리고 하늘에서 치고 들어오는 각종 공중병기들.

그러나 청년은 그 모든 병력을 모두 박살을 내버렸다.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그쪽은 좀 억울할 수도 있겠네.”

젊은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을 자초한 건 파블로 패밀리거든. 댁들은 그냥…… 본보기로 죽는 거지.”

본보기?

남미 카르텔 최강의 군대가.

이 곤칼베스 패밀리가 본보기란 말인가?

“이 건방진……!”

젊은 청년이 칼을 휘둘렀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넬슨 곤칼베스의 목이 절단되었다.

그때였다.

순식간에 날아온 포탄이 젊은 청년을 덮쳤다. 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한 발이 아니었다. 연달아 폭격이 가해졌다. 거친 폭음이 계속 땅을 두드렸다.

“뭐야 아직 남아 있었어?”

하지만 젊은 청년은 옷자락 하나 그을리지 않았다.

“마저 정리하러 가볼까?”

청년이 포탄이 날아온 쪽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폭발이 일어났다.

* * *

“하찮군.”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가 손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의 발밑에는 한 중년의 남성이 벌벌 떨고 있었다.

“힉, 히익! 히이이익!”

중년의 남성은 연신 비명을 질러댔다. 조금만 더 자극하면 입에서 개 거품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만약 남자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두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이 남자의 이름은 로널드 모라.

남미 카르텔 연합의 주축 중 한 곳인 모라 패밀리의 보스였으니까.

“너, 넌! 넌 대체 누구냐!”

그런 대단한 위치에 있는 남자가 지금 어린애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몇 분 전 나타난 이 남자에 의해서 모라 패밀리의 헌터들이 모조리 학살 당했기 때문이다.

“흑천에서 왔다.”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도 남자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흐, 흑천에서 왜? 대체 왜!”

“묻지 마라.”

남자는 귀찮다는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호기심을 갖지 말고, 이유를 궁금해 하지도 마라. 너희들은 그저 잡초처럼 짓밟히면 된다.”

로널드 모라의 얼굴에 절망감이 떠올랐다.

잡초? 잡초라고?

이 남자의 눈에는 모라 패밀리의 헌터들은 그딴 미물에 불과했다.

“마, 말도 안 된다…… 아무리 흑천이 강하다 해도…… 이런…… 이 정도로 격차가 심할 리가 없어!”

모라 패밀리는 가장 먼저 갓파더에게 충성을 바친 카르텔이다.

그 보상으로 갓파더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모라 패밀리에 맡겼다.

헌터 육성.

카르텔 연합의 모든 재화와 남미에 출현하는 던전을 모두 이용해서 강력한 헌터를 육성할 것.

그게 로널드 모라에게 내려진 사명이었다.

로널드 모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남미 전역에서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했다.

전 세계 각국의 길드를 참고하여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유물과 스킬을 적절하게 분배했다.

“내가…… 내가 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이럴 리가 없다!”

로널드 모라는 확신했다.

자신이 키운 헌터들이라면 세계적인 길드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라 패밀리의 헌터들은 한순간에 모조리 죽어버렸다.

다름 아닌, 단 한 명에 의해서.

“착각하지 마라.”

처음으로 남자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다.

“너 같이 헛된 망상을 품고 있는 얼간이를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역겨운 것은 어쩔 수 없군.”

“헛된…… 망상이라고?”

“권력이 있다고 해서, 대량의 던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해서, 사람을 부릴 수 있다고 해서 흑천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그게 헛된 망상이 아니면 뭐겠나.”

남자는 경멸을 담아서 말했다.

“너 같은 놈들과 흑천의 차이점이 뭔지 아나?”

로날드 모라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자신이 어찌 알겠는가.

“역사다.”

남자의 입에서 고리타분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흑천 일가가 단순히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흑룡혈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맞다.

하지만 흑룡혈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현재의 흑천은 너무나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흑천은 강해지기 위해서 발악을 했다.”

일국을 멸망시킨 강력한 몬스터와 싸웠다.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던전에 도전했다.

그 이유는 보상을 얻기 위해. 그 보상으로 그룹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백여 년을 보냈다.

“자신들의 전력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피를 흘렸는지.”

재능을 알아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다.

재능을 최대한 개화시키는 방법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재능에 걸맞은 스킬과 유물을 주기 위해서 연구를 거듭했다.

그렇게 백여 년을 보냈다.

“그 시간을 너희 양아치 놈들이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남자가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 끝에 오러가 모여들었다.

죽음을 직감한 로날드 모라의 몸이 돌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때였다.

“보스!”

저 멀리서 새로운 인원들이 나타났다. 먼 곳에 있던 모라 패밀리의 헌터들이 돌아온 것이다.

“이 새끼! 감히 우리 모라 패밀리를 공격해?”

“살가죽을 벗겨서 매달아주마!”

헌터들은 분노를 토해내며 달려들었다.

온갖 종류의 오러와 스킬이 남자를 덮쳤다. 용암이 땅을 뒤덮고, 냉기가 빙산을 만들었다. 검풍이 모든 것을 찢어발겼다.

“하찮다.”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남자가 두르고 있는 마력 장벽을 뚫지는 못했다.

“이만 죽어라.”

남자의 주변에 광탄이 떠올랐다. 손가락을 튕기자 광탄이 헌터들의 몸을 꿰뚫었다.

* * *

“그래도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요.”

패드로 블랫은 건물의 잔해 속에 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블랫 패밀리의 보스답지 않은 추한 모습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여인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리 흑예대(黑銳隊)는 흑천에서 최고거든요. 어중이떠중이들한테 당하는 것보다 그래도 최고한테 지는 게 자존심이 덜 상하지 않아요?”

여인은 자신의 몸보다 더 커다란 대형 도끼를 들고 있었다.

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도시의 건물들이 하나씩 무너져 내렸다.

블랫 패밀리가 보호하고 있는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될 때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니다. 우리가 최고는 아니구나. 권명우 어르신의 흑천대가 공식 최강이고, 권혁 부회장님의 팀도 있고, 권찬성 님도 있고…….”

여인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말했다.

“어쨌든 우리 흑예대도 흑천 그룹 내에서 최상위에 속해 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자존심 상할 필요 없어요.”

여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반대로 패드로 블랫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라? 아직도 몰려오네?”

여인이 지평선을 바라봤다. 군대와 헌터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여인이 대형도끼를 양손으로 쥐었다. 강대한 마력이 순식간에 도끼에 흡수되었다.

“흐랏!”

여인이 도끼를 힘껏 던졌다. 도끼가 적들에게 날아갔다.

그 직후, 지평선에서 연달아 폭발이 일어났다.

달려오던 군대와 헌터들은 거기에 휩쓸려 모조리 사라졌다.

도끼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여인이 하늘 높이 손을 뻗어서 도끼를 받아냈다.

“다음은 어느 도시더라.”

여인이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 * *

-현재까지 괴멸된 패밀리는 곤칼베스, 모라, 블랫, 패밀리…… 방금 안두스 패밀리도 보고가 됐습니다!

보고를 듣는 내내 호세 딜 파블로는 현실과 괴리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토스 패밀리와 산토루 패밀리도 당했다고 합니다! 핵심 지부가 모두 괴멸을 당해서…….

그렇게 굳건하게 보였던 연합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다.

도무지 현실감을 되찾을 수 없었다.

“갓파더께서는……?”

-보고가 들어오자마자 해상으로 피신하셨습니다!

호세 딜 파블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 우선시 해야 할 것이 갓파더의 안전이었다.

갓파더는 카르텔의 왕이다. 그만 무사하면 연합은 져도 진 게 아니다.

호세 딜 파블로는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다. 이렇게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조금만 버텨라. 내가 간다.”

호세 딜 파블로의 목소리에는 강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삽시간에 군대를 몰살하든 헌터들을 모조리 죽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정도는 호세 딜 파블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가서 모두 정리해 주마!”

호세 딜 파블로가 호기롭게 외치며 움직이려 할 때였다.

누군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시선을 내리자 GG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으, 으으…….”

상처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말을 하질 못했다.

그런 상황임에도 GG는 호세 딜 파블로의 발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증오심을 담아서 그를 노려봤다.

“하.”

호세 딜 파블로는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쓸모가 있어서 살려놓으려고 했더니. 네가 미쳤지?”

호세 딜 파블로가 GG의 머리를 걷어찼다. 그래도 GG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래도 손을 놓지 않았다.

“이 자식이 자꾸 귀찮게 하네. 이거 놓지 못해!”

호세 딜 파블로가 몇 번 더 GG의 머리를 걷어찼다.

입술이 터지고, 이가 부러지면서도 GG는 손을 놓지 않았다.

“하, 이 징그러운 새끼. 내가 그렇게 원망스러운 모양인데. 그 일은 어디까지나 네가 멍청해서 생긴 일이었어!”

호세 딜 파블로는 발길질을 멈추지 않으며 소리쳤다.

“섬에 숨어서 살고 있던 가르시안 가문의 혈족들이 누구 때문에 위치가 들통 났지? 너다! 섬 바깥이 궁금하다며 몰래 도망쳐 나온 네놈 때문이라고!”

가르시안 가문의 시조는 대단한 전사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투쟁을 싫어했다. 조용한 삶을 원했다.

하지만 환수혈이라는 혈통까지 얻게 된 그를 세상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시조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섬으로 숨어 사는 것을 선택했다.

그게 가르시안 가문의 시작이다.

“그래도 나한테 붙잡혔을 때, 입 다물고 있었으면 됐을 거야. 근데 넌 어떻게 했지? 살고 싶다면서 나한테 섬의 위치를 모두 불어버렸지.”

처음 섬에 정착한 사람들은 모두 투쟁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후손은 달랐다. 섬 밖을 궁금해 했으며 나가고 싶어 했다.

GG.

가엘 가르시안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결국 그는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환수혈을 써서 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호세 딜 파블로를 만났다.

“그런데 나한테만 책임을 물으면 되나! 모든 일의 원흉은 네놈인데!”

결국 가엘 가르시안은 호세 딜 파블로의 손을 놓고 말았다.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질긴 놈.”

호세 딜 파블로는 돌기검을 쥔 채 가엘 가르시안에게 다가갔다.

가엘 가스리안은 퉁퉁 부어오른 눈동자로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기분 잡쳤다. 넌 그냥 여기서 죽어라.”

호세 딜 파블로가 돌기검을 쳐들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호세 딜 파블로는 인상을 팍 쓰며 스마트폰을 받았다.

“야, 이 새끼야! 곧 간다고! 그리니까 잠자코 기다리고…….”

-아, 이거 진짜 통화가 되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세 딜 파블로는 인상을 썼다.

“넌 또 누구야. 내 부하들 어떻게 했어.”

-지나가는 길에 있기에 손 좀 봐줬습니다. 그보다 지금 해안가 마을에 있다면서요?

호세 딜 파블로는 비로소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너 설마……!”

-곧 갈 테니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라.

곧?

호세 딜 파블로가 되물을 틈도 없이 전화가 끊어졌다.

그 직후, 하늘에서 강렬한 마력이 터져 나왔다.

“……뭐?”

마력은 한 번이 아니라 연달아 터졌다. 마력이 터질 때마다 무언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저 멀리서 검은 형상이 보였다.

마치 어둠을 두르고 있는 듯한…….

“저건 또 뭐야!”

처음에는 점에 불과했던 게 순식간에 커졌다. 그리고 호세 딜 파블로가 있는 장소에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건물의 파편이 모조리 날아갔다.

말끔해진 바닥 위로 누군가 몸을 일으켰다.

“호세 딜 파블로.”

권한울이 옷을 다듬으며 말했다.

“목숨을 거두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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