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97화>
97. 화신체 (2)
파블로 패밀리의 조직원들이 주하연을 보고 공통적으로 떠올린 생각은 딱 세 가지였다.
더럽게 예쁘다.
더럽게 강하다.
그리고 더럽게 기분 나빠 보인다.
“사, 사람 살려!”
“미, 미친년이 우리를 다 죽일 거야!”
주하연이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혔다.
파블로 패밀리의 조직원들은 살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졌다.
굉장히 비참하고 처절한 광경이었으나 주하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와.”
그 모습에 권후돈은 공포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따라 되게 과격하네.”
“기분 나빠서 그래요.”
“깜짝이야!”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권후돈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메이홍이 서 있었다.
“하연 씨의 기분이 나쁘다고?”
“예, 평소랑 달리 쓸데없는 마력 소모도 많고, 마법도 거칠지 않아요?”
권후돈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봤을 때, 주하연은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솜씨로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말 기분 나쁜 거 맞아?”
“후돈 오빠. 예상은 했지만 정말 눈치 없으시네요.”
“뭐, 뭐?”
“모르겠으면 그냥 기억해두세요. 저게 하연 언니가 화났을 때 모습이에요.”
권후돈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얼굴이었다.
“그럼 왜 그러는 건데? 하연 씨가 기분 나쁠 만한 일이 있었나?”
“오빠도 참, 잊었어요? 권한울 님이 하연 언니한테 뭐라고 했는지?”
원래 주하연은 두 사람이 아니라 권한울을 따라가려고 했다. 호세 딜 파블로가 그만큼 위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한울은 주하연의 도움을 거부하고 혼자 호세 딜 파블로와 싸우러 갔다.
“겨우 그런 일로 기분 나빠한다고?”
“오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이냐면…….”
“메이홍 님.”
별안간 주하연이 고개를 홱 돌렸다.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눈동자에서는 안광이 번쩍였다.
“쓸데없는 말은 그쯤 해 주시겠어요?”
“네, 넵!”
언제나 능글맞던 메이홍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두 분께서 제게 배정된 이유는 안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쟁 경험을 쌓으라는 권미 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주하연이 손짓을 했다. 검은 마력이 일어나더니 근처에 있던 담벼락이 터져나갔다.
“드, 들켰다!”
“으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사람이었던 살점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정말로 무서운 모습에 메이홍과 권후돈의 몸이 바짝 굳었다.
“제 말을 잘 알아들으셨나요?”
두 사람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주하연은 고개를 돌렸다.
“거 봐요. 맞죠?”
그 즉시 메이홍이 권후돈에게 속삭였다. 권후돈은 어지간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때였다.
멀리서 엄청난 마력이 느껴졌다.
권후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메이홍, 주하연.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파블로 패밀리의 헌터들 모두가 똑같은 행동을 했다.
“……저, 저게 뭐, 뭐야.”
권후돈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 마리의 검은 용이 하늘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 * *
전쟁의 막바지.
카르텔의 병력이 모두 괴멸된 지금, 김 비서는 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방금 봤어? 뭐가 하늘로 올라가던데!
-봤습니다! 저거 용 아니에요? 용 맞는 거 같은데요!
-진짜 용일리가 있냐! 근데 진짜 정체가 뭐야.
원인은 카라마의 전령에 연결되어 있는 팀원들이 동시에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든 대화 소리는 김 비서를 한 번 거쳐서 다른 이들에게 전달된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대화량이 많아지면 중계역인 김 비서가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저 방향은 권한울이랑 호세 딜 파블로가 있는 곳이잖아요!
-뭐? 그게 정말이야? 호세 딜 파블로한테 저런 스킬이 있었나?
-멍청하군. 저 기운은 흑룡혈의 것이다.
-그럼 권한울의 스킬이란 말이야? 말도 안 돼…….
대화는 잠잠해질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김 비서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조용. 너무 떠들고 있다.”
김 비서는 불쾌감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이해를 했겠지 싶었으나…….
-맞아! 김 비서님은 천리안으로 봤죠? 진짜 권한울의 스킬이에요?
-빨리 말해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궁금해 죽을 거 같으니 빨리 말해요!
하지만 김 비서의 기대와는 달리 팀원들은 오히려 더 크게 소리쳤다.
결국 김 비서는 카라마의 전령 스킬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시끄럽게 울리던 목소리가 싹 사라졌다.
“전쟁이 거의 다 끝났다고 이렇게 풀어지다니.”
김 비서는 혀를 찼다. 아무리 약한 적이라 해도 숨통을 끊을 때까지는 방심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돌아가면 다시 정신교육을 시켜야겠다. 김 비서는 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군.”
누구든지 방금 전에 검은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봤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검은 용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겉보기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권한울이 있는 장소에는 거대한 골짜기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검은 용이 승천하기 전에 남긴 흔적이었다.
“…….”
장담하건데 흑예대 구성원 중에서 저 기술을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아니, 기술뿐만이 아니다.
김 비서는 천리안을 이용해서 권한울의 전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봤다.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걱정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대체 뭐였지?”
전투가 시작된 직후, 권한울은 무언가로 변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압도적.
그래, 압도적이라는 표현 외에 다른 표현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권한울에게 숨겨둔 한 수가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호세 딜 파블로를 압도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진혈이라지만…….”
김 비서가 판단했을 때, 호세 딜 파블로는 권한울보다 다섯 배 이상 강했다.
권한울은 그 절대적인 격차를 단숨에 좁혔다. 아니, 추월해버렸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김 비서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 * *
권한울은 뻗었던 두 손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광경을 바라봤다.
평지였던 땅이 골짜기로 변해 있었다.
담천조룡이 방출되면서 지면을 완전히 갈아버리면서 만들어졌다.
<‘환수혈(幻獸血)’의 권능을 해제됩니다.> <반(半) 화신체가 해제됩니다.> 이윽고 권한울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끝없이 샘솟던 거대한 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으아.”
곡소리를 내며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와, 진짜 엄청나네.”
권한울이 감탄할 정도로 화신체의 능력은 대단했다.
근골은 물론이고 내부의 장기까지 변하며 서로 정교하게 맞물린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이게 아직도 완성된 게 아니라니.”
권한울이 변한 것은 완전한 화신체가 아니다.
환수혈과 흑룡혈의 결합된 덕분에 화신체에 근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호세 딜 파블로를 어린애처럼 가지고 놀았다.
과거 메이 가주가 권선우의 화신체를 보고 경악을 한 이유가 있었다.
“강하긴 하지만…… 단점도 만만찮군.”
우선 반 화신체로 변했을 때는 다른 혈통을 사용할 수 없었다. 오로지 흑룡혈의 권능만 쓸 수 있었다.
물론 반 화신체의 전투력이 워낙 우월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단점은 조금 치명적이었다.
“……모든 혈통이 잠들었다.”
흑룡혈은 물론이고 다른 혈통들도 모조리 잠들어 버렸다.
권한울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혈통도 응답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깨어나겠지만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정말 비장의 한수로 써야겠군.”
반 화신체는 강력하지만 한 번 사용하면 뒤를 기대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 사용해야 했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멀리 있던 GG가 돌아온 것이다.
“……이기셨군요.”
GG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권한울은 씩 미소를 지었다.
“아직 살아 있는데. 복수할 래요?
권한울이 골짜기 아래를 가리켰다.
그 밑에는 호세 딜 파블로가 망신창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호세 딜 파블로가 살아 있단 말입니까?”
“죽일까 했는데. 고모님이 살려 놓으면 쓸데가 많다고 말한 게 생각이 나서요.”
담천조룡을 사용한 순간, 권한울은 권미의 말을 떠올리고 각도를 틀었다.
그 덕분에 호세 딜 파블로는 절기를 정통으로 맞지 않아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아뇨.”
GG가 고개를 저었다.
“호세 딜 파블로를 쓰러트린 건 당신입니다. 제가 감히 관여할 수 없죠.”
“몇 대 때리는 건 봐드리겠습니다.”
권한울의 말에 GG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보다 방금 그 모습은…….”
말하다 말고 GG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물어볼 내용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GG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땅바닥에 이마를 대며 말했다.
“덕분에 가문의…… 아니, 사람들의 복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제 목숨도 빚졌습니다.”
권한울은 볼을 긁적였다. 이런 상황은 영 어색했던 것이다.
“고개를 드세요.”
“은인의 얼굴을 어떻게 똑바로 쳐다보겠습니까.”
역시나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주하연과 성격이 잘 맞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마우면 부탁 몇 개만 들어주세요.”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권한울이 아공간을 열어서 족쇄 하나를 꺼냈다.
“이걸로 호세 딜 파블로 좀 묶어 주세요. 보다시피 제 상태가 정상이 아닌지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안하는 건데…… 내 팀에 들어올 생각 없어요?”
호세 딜 파블로의 눈동자가 커졌다. 권한울은 어깨를 으쓱했다.
“팀원이 부족하거든요. 당신처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합니다.”
GG의 능력은 이미 입증이 끝났다.
던전 길잡이로서의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순(順) 환수혈을 보유하고 있기에 전투력도 대단하다.
“곤란하면 거절해도 돼요.”
권한울이 손을 내밀었다. GG는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GG는 권한울의 손을 붙잡았다.
* * *
GG가 호세 딜 파블로를 족쇄로 묶은 직후였다.
“으아아악!”
호세 딜 파블로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절규했다. 절망과 분노로 가득한 목소리였다.
“내, 내 팔이!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양쪽 팔이 어깨부터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권한울이 담천조룡의 각도를 비튼 덕분에 호세 딜 파블로는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목숨만 건졌을 뿐, 다른 부분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거 더럽게 시끄럽네.”
권한울이 듣기 싫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호세 딜 파블로가 살기어린 눈빛으로 권한울을 노려봤다.
각종 유물과 스킬이 존재하는 현대에서도 소실된 신체를 재생시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호세 딜 파블로가 분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불만이 많아 보이는데. 그러다 진짜 뒤지는 수가 있어요.”
하지만 권한울이 쳐다보자 바로 고개를 내렸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덜덜 떨었다.
“……소, 소용없다.”
그럼에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갓파더께서 남아 계신다! 그분이 계시는 한 연합은 지지 않아!”
“아, 그 사람이요?”
“그 사람? 갓파더를 함부로 말하지 마라!”
“지금쯤 잡혔을 걸요.”
권한울의 말에 호세 딜 파블로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권미 고모님이 직접 찾아갔거든요.”
권한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대로 밟아버리겠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