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98화>
98. 종결 (1)
어느 호화스러운 침실.
그곳에서 한 중년의 남성이 초조한 얼굴로 무전기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때, 무전기에 지직 소리가 들려왔다.
-갓파더! 방금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남성, 갓파더는 황급히 무전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남미의 모든 카르텔 패밀리가 괴멸당하고 말았습니다!
실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갓파더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원군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그래도 갓파더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물었다.
“호세 딜 파블로는? 어떻게 됐느냐? 왜 여태 나타나질 않아?”
-흑천의 혈족 권한울과의 전투 끝에 생포 당했다고 합니다!
돌덩어리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갓파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심 호세 딜 파블로가 이 끔찍한 상황을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흑천이 이 정도 수준이었다니…….”
갓파더라고 해서 카르텔 연합이 흑천 그룹을 이길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 흑천 그룹에서 전쟁을 고민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흑천 일가는 겨우 한 개의 대대…… 아니,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인원으로 남미 전역을 휩쓸었다.
“미친놈들…… 광견병에 걸린 개새끼도 이 정도로 호전적이지는 않을 거다.”
애초에 갓파더는 흑천 일가와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가 필요했던 것은 던전을 고정화하는 방법뿐이었다.
그 방법을 어떻게 얻을 수 없을까 싶어서 에슐리와 호세 딜 파블로를 시켜서 흑천을 조금 건드린 것뿐이다.
흑천이 과민하게 반응하면 언제든지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흑천은 과민하게 반응하는 수준을 넘어서 곧바로 전쟁을 일으켰다.
해명, 혹은 변명, 그것도 아니면 사죄를 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카르텔 연합을 박살을 내 버렸다.
“젠장.”
갓파더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침실에 놓여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위스키를 술잔에 따른 다음에 들이켰다.
뜨끈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위에 도달했다.
“크으.”
갓파더는 입가를 닦았다. 두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카르텔은 모두 괴멸 당했지만 아직 자신은, 이 갓파더는 살아 있었다.
남미의 카르텔을 모두 복종시키는 과정에서 갓파더는 카르텔의 중요한 재산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막대한 재화가 어디에 감춰져 있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다.
그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연합을 재건할 수 있었다.
“지금만 버티면 된다.”
지금 갓파더가 있는 곳은 해저 5km 지점에 세워진 방공호였다.
옛날이라면 이렇게 깊은 곳에 방공호를 짓는 것은 무척 힘들었지만 헌터와 유물이 존재하는 지금은 달랐다.
“아무리 흑천이라 해도 이곳까지 날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현대에 이르러서 방공호는 얼마나 견고하냐보다는 얼마나 까다로운 장소에 있느냐로 바뀌었다.
아무리 강력한 헌터라도 바다 속에 있는 방공호를 어쩌기는 힘들었다.
“흑천이 물러나면 그때 다시 움직이면 된다.”
갓파더는 다시 위스키를 들이켰다. 입가를 닦을 때였다.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이건 또 무슨 일이야?”
갓파더는 당황하며 침실을 뛰쳐나갔다.
방공호 안에는 갓파더 혼자 있기에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직접 움직여야 했다.
“중앙관리실이…….”
그때였다.
방공호 전체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호세 딜 파블로는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지, 지진?”
흔들림은 점점 더 커졌다. 벽과 천장에 균열이 생기며 돌조각들이 떨어졌다.
별안간 천장이 통째로 들렸다.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악!”
갓파더는 체면도 잊고 비명을 질렀다.
이제 곧 들이닥칠 바닷물을 생각하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갓파더의 걱정과는 달리 바닷물은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환한 빛이 들어왔다.
갓파더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 어어?”
바닷물이 뻥 뚫려 있었다. 그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어, 어떻게?”
5km가 넘는 바닷물이 일직선으로 뚫려 있다니.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이내, 갓파더는 발견했다.
검은 오러가 원기둥처럼 소용돌이치며 바닷물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갓파더.”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늘 위에 한 여자가 떠 있었다.
“……당신은?”
여인은 갓파더 앞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내가 누군지는 알겠지?”
어째 모르겠는가.
흑천 그룹의 회장이자 가주인 권선우의 차녀.
남미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
그나마 말이 통하는 흑천.
권미였다.
“…….”
갓파더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했다.
권미의 별명은 그나마 말이 통하는 흑천이다.
다른 흑천의 혈족과 달리 타협을 먼저 시도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반갑소. 나는 갓파더라 하오.”
갓파더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했다.
여기서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정말로 기세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나는, 아니 카르텔의 연합은 흑천과 적대할 생각이 전혀 없…… 커, 커억!”
대뜸 권미가 갓파더의 목을 움켜잡았다.
“어디서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자, 잠깐!”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이 순간, 갓파더는 어째서 권미의 별명에 ‘그나마’라는 사족이 붙어 있는지 깨달았다.
말이 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흑천은 흑천이라는 뜻이었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머릿속을 박박 긁어내서라도 대답하도록 해.”
갓파더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권혁과 무슨 계획을 꾸몄지?”
순간, 갓파더의 얼굴이 멍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게 무슨 말인지…… 컥!”
“한 번만 더 시치미를 떼면 그때는 정말 죽여 버리겠어. 권혁과 뭘 계획했냐는 말이야.”
“저, 정말로 몰라서…… 커억!”
권미가 갓파더를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살기어린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 같으니 사전작업을 좀 해 둬야겠네.”
권미의 손톱에 검은 오러가 일어났다.
갓파더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 * *
권한울은 호텔로 돌아왔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전쟁이라 거점 같은 것은 만들지도 못했다.
그래서 원래 묶고 있던 호텔을 합류 지점으로 삼았다.
도착하자마자 주하연과 권후돈, 메이홍 세 사람이 보였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권한울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별안간 권후돈과 메이홍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한울아!”
“대장님!”
그 맹렬한 모습에 권한울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순식간에 근접한 두 사람은 권한울을 붙잡고 마구 질문을 던졌다.
“그거! 그거 뭐였어?”
“맞아요! 막 이상한 게 하늘로 날아가던데요! 대체 그게 뭐예요!”
“우리가 멀리 있었거든? 되게 멀리 있었는데. 그래도 막 몸이 떨려오고 무섭고…….”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 이야기뿐이에요! 아까 오는 길에 흑예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만.”
그때, 주하연이 끼어들었다.
“두 분 다 진정하세요. 권한울 님께서 말을 못하고 계시잖습니까.”
그 말대로 권한울은 두 사람의 질문 공세에 압도당하는 바람에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있었다.
“아, 하연 씨. 고마워요.”
“…….”
감사 인사를 했으나 주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짧게 목례를 했을 뿐이었다.
평소와는 좀 다른 행동에 권한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체 뭐였어?”
“빨리 말씀해 주세요!”
그 사이를 못 참고 두사람이 물었다. 권한울은 미리 준비해둔 대답을 꺼냈다.
“진혈의 권능이에요.”
따지고 보면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환수혈은 힘을 이끌어 냈을 뿐. 힘 자체는 흑룡혈의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권한울을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게…… 진혈의 권능이라고?”
“진혈만으로 그런 게 된단 말이에요?”
두 사람조차 의심하는 모습을 보자 권한울은 속이 뜨끔했다.
진혈이라는 다른 흑룡혈과는 다르다는 핑계거리 하나만 믿고 날뛰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먹히지 않을 시기가 온 듯 했다.
“한울아, 진짜야?”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두 사람이 집요하게 캐묻기 시작했다.
“권한울 님, 저분은 누구신가요?”
이번에도 주하연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권한울의 뒷편에서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정확히 말하면 한 명은 자유로웠으나 다른 한 명은 팔다리가 묶여 있는 채였다.
“아, 소개드릴게요. 호세 딜 파블로예요.”
권한울은 묶여 있는 사람을 먼저 가리켰다.
“그리고 다른 분은…… 직접 소개하는 게 낫겠네요.”
권한울의 말에 남은 한 사람이 후드를 벗었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권후돈과 메이홍의 눈동자가 커졌다.
“GG?”
“또 뵙습니다.”
GG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놀라서 물었다.
“어, 어떻게 둘이 같이 있는 거야?”
“그러게요. GG가 어디로 갔는지 전혀 모른다면서요.”
GG는 대답을 하기 전에 슬쩍 권한울에게 시선을 보냈다.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을 드리자면 조금 깁니다.”
GG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자신의 출신부터 과거의 일. 그 때문에 파블로 패밀리의 간부를 습격했다는 것까지.
마지막으로 던전에서 악마의 힘을 얻은 이후, 호세 딜 파블로를 습격한 일. 하지만 패배해서 죽을 뻔한 것을 권한울이 구해 준 이야기까지
물론 권한울의 혈통에 대한 이야기는 쏙 뺐다. 사전에 미리 주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 가르시안 가문?”
“환수혈이라고요?”
권후돈과 메이홍은 크게 놀랐다.
“어쩐지 느낌이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다 싶었는데.”
“혈통의 보유자일 줄은 몰랐어요.”
권한울이 헛기침을 했다.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이만하면 소개는 끝난 거 같고……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권한울의 말에 모두가 의문을 떠올렸다. 권한울은 GG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부터 GG가 우리 팀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경악에 가까운 반응이 돌아왔다.
GG의 가입을 우려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실력이나 인성은 이미 입증이 됐으니까.
놀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자, 잠깐 GG는 환수혈이잖아.”
“그것도 순혈이라면서요? 그럼 우리 팀에 순혈이 네 명이네요?”
혈통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그리고 그 중에서 순혈은 더더욱 보기 힘들다.
원래 순혈이라 하면 팀원보다는 팀장이 되어서 어느 집단을 이끌기 마련이다.
그만큼 순혈은 강력하고, 대단한 존재였다.
그런데 권한울의 팀에는 순혈이 벌써 네 명이나 존재했다.
게다가 다들 평범한 순혈이 아니다. 모두가 인정할 만큼 재능이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이, 이거 엄청 대단한 거 아니야?”
“대단한 거 맞죠. 역사를 통틀어도 우리 팀 같이 순혈이 많은 팀은 단 하나도 없을 걸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일이 흘러갔다.
권한울은 GG의 등을 톡 때렸다.
“진짜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권한울의 말에 GG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실수로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잡혀간 그날, GG는 자신의 이름을 버렸다.
자신 같은 죄인이 가르시안의 성을 쓰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자신의 본명을 사용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가엘 가르시안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팀원이 한 명 더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