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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00화 (100/221)

<혈통이 깡패임 100화>

100. 명명전 (1)

-권한울을 당장 처벌하셔야 합니다!

어두운 방안.

벽면에 펼쳐진 대형 스크린에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그중에 한 명, 중앙에 있던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권한울은 이번 임무에서 월권행위를 저질렀습니다! 던전을 확보해 오라고 보내놨더니 전쟁이 말이 됩니까!

모니터에 떠오른 다른 얼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로 얼마나 많은 항의를 받아야 했습니까!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자제를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

남미 지역을 대놓고 침공한 흑천 그룹의 행동은 많은 집단을 자극했다.

그들을 달래느라 적잖게 고생을 했을 정도였다.

-이게 다 권한울 때문입니다! 이 일을 절대로 묵과해서는…… 회장님?

남자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에도 권선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화상회의가 진행 중인 모니터 대신 태블릿피씨를 들여다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회장님!

남자가 재차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회장은 고개를 들었다.

“아, 불렀나?”

-대체 지금 뭘 보시는 겁니까!

“이걸 보고 있었다네.”

회장, 권선우가 카메라 앞에 태블릿피씨를 비췄다.

액정에는 동영상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먼 곳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탓에 영상은 대단히 조잡했다. 하지만 내용을 알아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영상 속에서는 두 남자가 싸우고 있었다.

한 남자는 날이 울퉁불퉁한 돌기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다른 남자는 이마에 뿔이 돋고, 전신에 비늘이 뒤덮여 있는 등 아무리 봐도 인간이라 할 수 없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을 봐도 놀랍군.”

-회장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네들도 이미 다 보고 왔겠지. 어디, 소감들을 한번 말해보게.”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권선우의 말대로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저 영상을 봤다. 봤기에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충격적인 영상이었다.

“호세 딜 파블로에 대해서 다들 알고 있을 테지. 이번 일 때문에 모두 조사를 해봤을 게 아닌가.”

호세 딜 파블로는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확실하다.

남미가 아니라 세상에 나왔더라면 ‘진짜’ 세계랭커라 불리는 트리플넘버링을 얻었을 남자였다.

“그만한 실력자를 이렇게 쉽게 압도하다니. 정말 대단하군. 과연 진혈의 권능이야.”

권한울이 올린 보고서에는 이것을 진혈만의 특수한 권능이라고 말했다.

그게 진짜냐 가짜냐는 둘째 치고 실로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회장님.

화를 냈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굳은 결심을 마친 얼굴이었다.

-지금은 권한울을 칭찬할 때가 아닙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다들 솔직히 말해보게. 괜한 트집을 잡으려는 목적이 아닌가.”

권선우의 말에 두 번째 침묵이 흘렀다. 권선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다들 진혈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게야. 대단하기야 하겠지만 얼마나 대단하겠나. 그렇게 생각했겠지.”

모니터에 얼굴을 비춘 이들은 흑천 그룹 내에서도 높은 지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원로들이다.

이미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다져놓았기에 권한울에 대해서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근래 들어서 그 아이의 활약상을 들으며 조금씩 깨닫지 않았나? 진혈이란 상상이상의 존재이며 가만히 놔뒀다가는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당할 것이라고.”

원로들은 권한울이 어디까지나 가문의 우수한 전사로 활약해 주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권한울은 ‘단순히 우수한 전사’ 정도로 남을 인물이 아니었다.

권한울이 흑천 일가에 들어온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 동안 권한울이 어떤 적을 쓰러트렸는가. 그리고 어떤 업적을 쌓아올렸는가.

“본래 가문의 법도상 순혈은 모두 진혈에게 복종해야 하는 법. 하지만 자네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지.”

지금까지는 순혈들이 흑천 일가의 지배자들이었다.

자신들만이 고귀하며, 지배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잡혈과 열혈의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순혈들은 순순히 진혈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길들이려는 게 아닌가?”

월권을 빌미로 권한울을 제재한다. 이를 시작으로 순종적으로 만든다.

원로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시시하군.”

권선우는 딱 잘라 말했다.

“기껏 생각해낸 것이 이딴 방법이라니. 흑천의 혈족도 나이를 먹으면 초라한 독사에 불과한 것인가.”

그 순간, 원로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화면으로도 느껴질 정도로 거센 분노를 일으키고 있었다.

감히 가주의 말 한 마디에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하극상도 이런 하극상이 없었다.

그러나 권선우는 불쾌해하기는커녕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래, 이제야 흑천의 혈족답구나.”

흑천 일가는 자존심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원로들이 진혈에 반발하는 이유는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탐욕 때문이 아니다.

진혈에게 쉽게 굴복할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이다.

“진혈을 꺾고 싶은가? 그렇다면 머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나서도록 해라.”

권선우의 말에 모든 장로들이 의문을 떠올렸다.

“조만간 명명전을 열도록 하겠다.”

원로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명명전이란 무명 부대들끼리 서로 대결을 시킨 뒤, 승리한 한 팀을 유명 부대로 승격시키는 자리였다.

이름을 부여 받은 부대는 권한이 대폭 확대된다. 그때부터 진짜 흑천의 부대로 인정받게 된다.

“각자 데리고 있는 무명부대를 보내라. 그 자리에서 진혈을 꺾어라. 그럼 다들 불만 없겠지?”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러다 진혈이 망가지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그럴 일이 있을까 싶…… 아아, 그렇군.”

권선우의 시선이 모니터 속 남자에게 향했다.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금발 머리에 푸른색 눈.

흑천의 혈족과 백인의 혼혈.

유럽지부를 담당하고 있는 다그마 권이었다.

“자네의 자식이 찬성이의 팀을 탈퇴해서 팀을 꾸린지 얼마 안 됐었지.”

권찬성의 팀은 흑천의 정예팀 중 하나였다.

다그마 권의 자식은 그 팀에서 권찬성의 오른팔로 활동했다.

아니, 활동했었다.

-실적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이름을 달 수 없다. 그 조항 때문에 제 자식 역시 무명부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 아이를 참가시켜도 되겠습니까?

다그마 권의 말에 권선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회의가 종료되었다. 모니터 속 얼굴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이윽고 모니터가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었을 때, 권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의 자식을 생각 못했군.”

권선우는 입맛을 다셨다.

언제나 완벽해 보이는 권선우였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이렇게 깜빡할 때가 있었다.

“권한울, 그 놈이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도 그 녀석은 힘들 텐데…….”

호세 딜 파블로가 반딧불이라면 다그마 권의 자식은 보름달과 같았다.

엄청난 격차였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호세 딜 파블로는 기껏해야 남미라는 좁은 동굴에서 활동하던 인물이다.

반면에 다그마 권의 자식은 흑천 그룹의 수많은 팀 중에서도 정상에 속해 있는 권찬성 팀의 소속이었다.

“흐음.”

권한울은 언제나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실제로 해내곤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힘들 것 같았다.

“……이럴 때일수록 가치를 알아볼 수 있거늘.”

과거의 권선우였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실수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었으나 진짜 보석은 언제 어디서나 빛나는 법. 이런 상황조차 극복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권선우가 수화기를 손에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두어 번 더 전화를 건 뒤에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왜 이제야 받는 게냐. 당분간 휴가라고 할일도 없다는 놈이.”

권선우의 타박에 볼멘소리가 돌아왔다. 권선우는 혀를 찼다.

“네가 맡아줘야 할 일이 있다.”

하필 휴가 도중에 일을 시키냐는 격한 항의가 돌아왔다. 권선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권한울.”

항의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놈이랑 그 팀을 당분간 네가 맡아 줘야겠다.”

* * *

멕시코에서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권한울은 메이홍, 권후돈과 함께 훈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헉, 허억! 더, 더 이상은 못해…….”

“저, 저도요…….”

대련장에 권후돈과 메이홍이 대자로 누워 있었다.

전신에 흥건한 땀이 두 사람이 얼마나 무리를 했는지 말해줬다.

“둘이서 부탁했으면서 먼저 뻗으면 어떻게 해.”

반면 권한울은 조금도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대련장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았다. 옷에 주름조차 지지 않았다.

“하, 한울아. 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우, 움직임이…… 옛날이랑 완전히 달라졌는데…….”

“맞아요! 그래도 며칠 전에는 따라잡을 수는 있었는데. 오늘은 그것도 안 되잖아요!”

“둘이 오늘따라 컨디션이 안 좋았나 보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반(半) 화신체로 변한 이후, 흑룡혈의 힘이 더욱 강해진 것이 느껴졌다.

흑룡혈은 사용자에게 용의 본능을 부여해준다. 흑룡혈의 힘이 강해짐으로서 용의 본능이 더욱 강해졌으며 이는 고스란히 권한울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다.

“하, 한 번만 더 하자.”

“저도 이제 다 회복됐어요.”

두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권한울도 자세를 잡으려던 찰나였다.

본능이 위험을 경고했다.

권한울은 재빨리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물러나!”

두 사람은 권한울처럼 위험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권한울의 소리를 듣자마자 재빨리 좌우로 뛰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늘 위에서 거구의 남성이 떨어졌다.

거구의 남성이 발로 땅을 밟았다. 그 순간,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으악!”

“꺄악!”

충격파가 권후돈과 메이홍의 몸을 뒤흔들었다.

괴한이 손바닥으로 두 사람을 후려쳤다. 둘이 멀리 날아갔다.

“권후돈! 메이홍!”

하지만 권한울도 두 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괴한이 권한울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빠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이 코앞까지 도달했다.

공기가 확 밀려났다.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막일 수 있는 권격이 아니었다. 권한울은 허리를 옆으로 틀며 주먹을 피했다.

동시에 괴한의 턱을 걷어찼다. 완벽한 각도에서 공격이 들어갔으나 되레 충격을 받은 건 권한울이었다.

‘무슨 몸이 이렇게…….’

얼마나 단단하던지 권한울의 다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충격을 먹고 있을 수는 없었다.

괴한이 재차 주먹을 내질렀다. 방금 전보다 훨씬 빨랐다.

“큭!”

피할 수는 없다.

권한울은 혀를 차며 양팔을 교차했다. 동시에 용마기를 일으켜서 팔을 감쌌다.

그 광경을 보고도 괴한은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미친 건가?’

마력이 담긴 주먹과 평범한 주먹이 부딪히면 당연히 후자가 박살난다.

하물며 오러는 마력을 정제하여 만들어 낸 힘이다. 그런데 오러를 향해서 맨주먹을 뻗는다고?

그러나 결과는 권한울의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괴한의 주먹이 권한울의 용마기를 박살 낸 것이다.

“뭐?”

용마기가 박살이 났다. 괴한의 주먹이 권한울의 팔뚝을 강타했다.

엄청난 충격이 내부를 진탕 뒤흔들었다. 권한울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퉷.”

권한울은 입에서 피를 뱉어내며 괴한을 노려봤다.

“하, 한울이를 건드리지 마!”

그때,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충격파에 당했던 권후돈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정신을 차린 권후돈은 즉시 용린갑으로 자신의 몸을 뒤덮었다. 검은 거인이 괴한을 노려봤다.

“뒤를 내주면 안 되죠.”

괴한의 목밑에 장검이 들어왔다. 어느새 다가온 메이홍이 괴한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호오.”

괴한이 짧게 감탄했다.

그때였다.

“두 사람 다 물러나.”

권한울이 믿기 힘든 소리를 했다.

권후돈과 메이홍 둘 다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권한울을 쳐다봤다.

그러자 권한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작은 할아버님, 장난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그 말에 괴한이 얼굴에 쓰고 있던 두건을 벗었다.

그러자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권명우의 얼굴이 보였다.

“티 많이 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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