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101화 (101/221)

<혈통이 깡패임 101화>

101. 명명전 (2)

“으하핫! 오랜만에 보니 반갑구나! 그동안 잘 지냈느냐?”

권명우가 큰소리로 웃으며 권한울의 등을 팡팡 때렸다.

반가움의 표시였으나 등을 얻어맞을 때마다 권한울은 온몸이 아려왔다.

“작은 할아버님께서도 무탈하셨습니까.”

“딱딱한 인사는 집어치워라! 그나저나 못 본 사이에 실력이 많이 좋아졌구나! 설마 내 주먹에 모두 반응할 줄은 몰랐다!”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봤자 권명우의 권격을 제대로 받아 내지 못했다. 심지어 맨주먹에 용마기가 박살 나기까지 했다.

아직도 둘 사이에는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큰 격차가 존재했다.

“후돈이도 간만에 보는구나.”

“네, 넵! 아, 아, 안녕하세요!”

권후돈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권명우는 흑천제일권이자 권선우 다음가는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아무리 혈연상 가깝다 해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쪽이 메이홍인가? 메이 가문과의 전쟁 때, 흑천의 편을 들었던 그 아이 맞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메이홍이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메이홍이라 해도 권명우를 상대로는 예의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이 더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 있는 게냐?”

“아직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출신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심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으으으으음, 곤란하구나. 심문관들한테 따로 연락해서 심문을 끝내고 당장 보내라고 말해야겠는 걸.”

“곤란하다뇨?”

“그게 말이다.”

“권명우 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권명우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하연아! 오랜만에 보니 반갑구나!”

“어째서 여기 계신 겁니까?”

“볼일이 있어서 왔다. 그건 네가 만든 음식인 게냐?”

권명우가 주하연이 들고 있는 바구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하연은 항상 권한울의 훈련이 끝날 때쯤에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오고는 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배고픈데.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자꾸나.”

권명우가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 * *

“조만간 명명전이 열릴 예정이란다.”

주하연이 구워 온 스콘을 덥석 베어 물며 권명우가 말했다.

생소한 단어에 권한울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명명전이라고요?”

“아참, 너는 처음 듣겠구나. 무명부대들끼리 대결해서 유명부대로 승격되는 자리를 말한다.”

흑천의 부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부대명을 가지고 있는 유명부대와 그렇지 않고 숫자로 지칭되는 무명부대.

당연히 전자 쪽이 더 높은 지위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어르신, 질문이 있습니다.”

주하연이 차를 따르며 물었다.

“갑자기 왜 명명전이 열리게 된 거죠? 제가 알기로 명명전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개최되지 않는데요.”

“저놈 때문이다.”

권명우가 권한울을 가리켰다. 권한울은 눈만 깜박였다

“저요?”

“그래, 네가 남미 지역에서 벌인 일 때문에 원로들이 난리를 피우고 있거든. 월권행위라나 뭐라나.”

“월권행위라고요? 그게 뭔…….”

“아, 아니에요!”

그때,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권후돈이 냅다 소리를 쳤다.

“하, 한울이는 그,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어요! 저, 저희 어머니께서…….”

“알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원로들도 다 알고 있지. 이 일은 저 녀석이 단독으로 저지른 게 아니라 권미의 결정이라는 걸.”

“그, 그럼 어째서…….”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권명우를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평소의 거칠고 털털한 행동과 달리 차를 음미하는 모습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원로들은 이번 일을 빌미로 한울이 너의 행동을 제한할 생각이다.”

“제가 진혈이기 때문이군요.”

권한울의 말에 권명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도 꼴에 흑천의 혈족이라고 너를 쉽게 인정할 생각은 없는 것 같더구나.”

본래 흑천 일가는 혈통의 순도에 따라서 계급이 나뉜다.

법도만 따지면 진혈인 권한울에게 모두가 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순혈들은 순순히 고개를 숙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형님께서 제안하셨지. 그렇게 진혈을 인정하기 싫다면 머리를 쓸 게 아니라 힘으로 굴복시켜보라고 말이야. 그래서 명명전을 열기로 하셨다.”

명명전이라면 휘하의 부대를 보내서 적합한 절차에 따라서 권한울과 대결을 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서열을 정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거참…….”

권한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을 자신과 상의도 없이 저지른단 말인가?

“이건 기회네요!”

그때 메이홍이 냅다 소리쳤다.

“누가 오든 권한울 님의 상대가 될 리가 없잖아요! 이렇게 빨리 승격되다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어요?”

“마, 맞아! 유명부대로 승격하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잖아!”

무명부대는 흑천 일가나 다른 유명부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유명부대는 다르다.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길 뿐만 아니라 흑천 일가에 받는 지원도 많아진다.

“명명전에서 승리하는 건 힘들 거다.”

그때, 권명우가 딱 잘라서 말했다.

“이번 명명전에 만만치 않은 놈이 참가하거든.”

“누,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권후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권명우가 고개를 홱 돌렸다. 눈동자에 힘을 빡 주며 말했다.

“베인 호프(Vain hope).”

권한울의 입장에서는 처음 듣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주하연과 권후돈의 반응은 달랐다.

“그분께서 참가한다고요?”

“마, 말도 안 돼! 아무리 한울이라도 그, 그 사람만큼은…….”

주하연과 권후돈은 놀라다 못해 경악했다.

결국 참다못해 권한울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대체 누군데 다들 그렇게 놀라는 겁니까?”

“유럽 지부의 후계자로 한때 권찬성 님의 오른팔로 있었던 흑천의 혈족이십니다.”

“말이 오른팔이지 거의 동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 ……옛날에는.”

“권찬성 님과 함께 쌓은 전공만 해도 어마어마하시죠. 단독으로 한 국가에 발생한 모든 던전을 해결하신 적도 있죠.”

설명만 들어도 어떤 인물인지 감이 잡혔다.

흑천의 혈족 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자.

괴물 중의 괴물에 속하는 인물이 틀림없었다.

“하, 한울아 아무리 너라도 그, 그 사람은 위험해. 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

“나도 굳이 그 사람이랑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아.”

“으, 응?”

“명명전에 참가하지 않으면 비웃음거리가 될 테니까.”

권명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명명전 자체가 권한울이 너를 굴복시키기 위한 자리인데. 도망쳤다가는 모든 흑천의 혈족들이 널 우습게 볼 거다.”

“그건 곤란하죠.”

권한울은 흑천의 정점에 오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혈족에게 비웃음을 사서야 쓰겠는가.

“잘 됐네요.”

권한울의 말에 권명우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잘됐다니?”

“어차피 한 번쯤은 혈족들한테 제가 어떤 놈인지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마침 개인이 아니라 순혈이라는 집단과 충돌할 기회가 왔다.

“이번 기회에 순혈들 기를 확 꺾어놔야겠네요.”

당돌한 말에 권명우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권한울의 말을 듣고도 권후돈이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 하지만 베인호프는…….”

“이 녀석, 소심하고 배짱도 없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권명우의 말에 권후돈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걱정이 많아도 너무 많구나! 그래서야 어찌 흑천의 혈족이라 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사나이라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부딪혀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라!”

“작은 할아버님.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권한울이 혀를 차며 말했다. 권명우는 껄껄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마라. 나도 널 그냥 명명전에 내보낼 생각은 없다!”

“그럼요?”

“내가 책임지고 너희 세 명을 수련시켜 주도록 하마!”

생각지도 못한 말에 권한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권명우가 누구던가. 흑천제일권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절대강자다.

그런 인물이 수련을 시켜준다고?

“아, 이번에 새로 왔다는 놈까지 합치면 네 명이겠구나.”

“방금 하신 말이 정말이십니까?”

“그럼 거짓말이겠느냐? 나만 믿거라.”

권명우가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때리며 말했다.

“내가 너희를 공격한 이유도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단다. 그래야 수련시킬 게 아니냐.”

“그 짧은 시간에 저희 세 명을 다 파악하셨다고요?”

“그럼! 솔직히 말해서 한울이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더구나. 그냥 내버려 둬도 경지에 오를 게 뻔해.”

극찬도 이런 극찬이 없었다.

“다만 위험한 순간에도 호격식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아직 흑룡십이승무 기본형을 완전히 습득하지 못한 것 같더구나.”

하지만 이어지는 비판에 가슴이 뜨끔해졌다.

권명우의 말대로 권한울이 사용하는 기본형은 한정되어 있었다.

총 여섯 개의 기본형 중에서 사용하는 것은 네 개뿐. 나머지 두 개의 식은 거의 사용하지를 않았다.

“그러니 아직도 상승형을 습득하지 못한 게지. 상승형을 쓰기 위해서는 입문형의 토대를 마련하고 기본형을 통해서 기틀을 닦아야 하거든.”

“제가 상승형을 못 쓰는 건 어찌 아셨습니까?”

“네가 호세 딜 파블로와 싸우는 영상을 봤다. 용성후 말고는 사용하지를 않더구나. 그마저도 불완전한 용성후였어.”

그 말이 맞았다.

권한울은 상승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상승형을 시도할 때마다 마력이 꼬이거나 신체가 버티질 못했기 때문이다.

용성후도 반 화신체 덕분에 어찌어찌 쓸 수 있었을 뿐이다.

“네 수준을 생각하면 기본형만 보완해 주면 상승형은 금방 터득할 게다.”

“그럼 베인호프를 이길 수 있습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권명우는 딱 잘라 말했다.

“상승형을 익힌다 해도 베인호프를…… 그 아이를 이기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리 말한 뒤, 권명우는 씩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네 놈은 언제나 불가능한 일을 실현시키지 않았더냐?”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문제는 너희 둘이다.”

권명우의 시선이 메이홍과 권후돈에게 향했다.

기분 탓일까. 권명우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한 것 같았다.

“재능의 씨앗은 보인다만 그것뿐이다. 전체적인 수준이 너무 낮아.”

권명우가 딱 잘라 말했다.

“한울이가 내 공격을 받아칠 동안 너희들은 뭘 했지? 겨우 일격에 날아간 것도 모자라서 얼마간 정신을 잃지 않았더냐.”

그 말에 권후돈이 고개를 푹 숙였다. 메이홍은 입술을 깨물었다.

“한심하구나. 대장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수하들이라니. 이래서야 한울이 저놈이 누구를 믿고 어떻게 대업을 이루겠느냐.”

말의 수위가 너무 심했다. 권한울은 권명우를 말리려했다.

그때, 주하연이 권한울을 말렸다.

지금은 참견할 때가 아니라면서.

“평범한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네놈들은 강한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배기들의 입장에서는 한참 부족하다. 너희 둘은 좀 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특히 너는 더 그렇지.”

권명우가 메이홍을 가리켰다. 메이홍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 말씀이세요?”

“그래, 너는 메이 가문의 혈족이면서 메이 가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그깟 실력으로는 현재 남아 있는 메이 가문의 잔당 한 명을 죽이는 것도 힘들 거다.”

그 말에 메이홍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만나 보신 건가요?”

“그래, 얼마 전 임무를 수행하다가 몇 놈을 만났지. 악에 바친 모습이 나조차도 간담이 서늘할 정도…….”

“어디 있죠?”

갑자기 말이 잘리자 권명우의 미간이 좁아졌다.

하지만 메이홍은 더욱 권명우를 다그쳤다.

“말하세요. 어디로 가면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죠?”

“아서라. 가 봤자 네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문제예요! 어디 있는지 위치나 말하…….”

메이홍이 입을 다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권명우의 검지가 메이홍의 이마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움직임을 느낄 수도 없었다.

메이홍은 권명우의 손가락을 응시했다. 손가락이 아니라 새하얗게 달아오른 송곳을 보는 것 같았다.

닿기만 해도 살갗이 증발할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졌다.

“건방지게 굴지 마라.”

권명우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이 메이홍을 강하게 짓눌렀다.

“난 네 년의 어리광을 받아 주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게 아니다. 혈족도 아닌 네 년에게 내가 계속 호의를 베풀 거라 기대하지 마라.”

메이홍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권명우는 손가락을 접었다.

“그럼 어서 출발하자.”

그런 뒤, 권한울을 향해 말했다. 권한울은 미간을 좁혔다.

“출발이라뇨?”

“요 녀석 봐라. 내 말을 뭘로 들은 게냐. 수련하러 가야지!”

“지금 당장요?”

“그래!”

권명우의 말에 권한울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준비할 시간은…….”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 열심히 살아도 시간이 모자라거늘!”

권명우가 양팔을 좌우로 활짝 펼쳤다.

“나만 믿어라! 내가 너희 세 명을 반드시 명명전에서 이기도록 만들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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