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05화>
105. 지하경기장 (2)
권한울은 들것에 실려 나가는 산체스 가문의 혈족을 가만히 쳐다봤다.
남자는 명치가 움푹 파인 채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산체스 가문은 판데모니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범죄자 집단이다.
그렇기에 원래라면 미스트리 도시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미스트리 도시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서 중심부에 있는 지하경기장에서 참가하기까지 했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능한 빨리 권명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문제는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 하는 수 없이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얻은 건 많네.”
혈통의 힘을 최대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동화율을 상승시켜야 한다.
보통 주인이 성장하면 동화율도 높아진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각 혈통 별로 동화율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특수한 상황이 존재했다.
흑룡혈은 강적과 싸울 때, 권속혈은 누군가를 지배할 때.
그리고 초인혈은…… 아무래도 하극상을 당할 때, 동화율이 폭증하는 듯했다.
방금 전, 산체스 가문의 혈족에게 얻어맞은 순간, 초인혈은 광분했고 동화율이 단숨에 30%에 도달했다.
초인혈의 성장으로 근력과 민첩이 S급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권능도 개방되었다.
권한울로서는 굉장히 얻은 게 많은 셈이었다.
“드디어 천공투기장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군.”
천공투기장에 입장하기 위한 조건은 S급 능력치 세 개 이상이다.
황금사과로 체력을 S급으로 만들었으며 이번에 초인혈 덕분에 근력과 민첩을 S급까지 상승시켰다.
이로서 천공투기장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권한울은 몸을 가볍게 움직여봤다.
근력, 민첩, 체력은 신체를 움직이는 토대가 되는 능력치다.
그 때문인지 몸의 움직임이 예전과 확연하게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좋군.”
권한울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최대한 빨리 이 능력치들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곧 다음 상대가 경기장에 올라올 테니까.
권한울은 경기장에 서서 느긋하게 다음 상대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0분.
반대쪽 입구에서 다음 참가자가 나타났다.
참가자를 본 순간, 권한울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
* * *
권한울이 상대방을 날려 버린 그 순간.
“어허?”
권명우는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그래도 눈앞의 광경이 달라지지 않았다.
“저 놈이 저렇게 힘이 좋았나?”
“진혈이라 그런지 능력치에 비해서 신체능력이 뛰어나기는 하셨습니다만…….”
주하연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 높은 천장까지 상대방을 날려버리다니?
고민 끝에 주하연은 한 가지 가설을 내놓았다.
“상대방이 약했던 게 아닐까요?”
“내 눈에는 제법 강해 보였는데.”
권명우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진짜 생각보다 약한 놈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쪽이 더 정확해보였다.
“그래, 보기보다 약골이었던 모양이구나.”
권명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이래서야 저 녀석이 호격식을 연습할 수가 없는데.”
권명우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릴 때였다.
두 번째 선수가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오호, 제법 용감한 놈이로군.”
상대방을 일격에 천장까지 날려버리는 광경을 보고도 입회를 하다니.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지 않고서는 낼 수 없는 용기였다.
그러나 선수를 본 순간, 권명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저 괴물은 또 누가 데려온 거야?”
* * *
같은 시간.
마리아 산체스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마르코스 산체스가 패배했다.
격정 끝에 패배했으면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단 일격.
그것도 주먹질 한 번에 졌다.
육체에 한해서는 세계최고이자 최강이라는 산체스 가문의 혈족이 말이다.
“……마리아 양, 지금 내가 뭘 봤는지 설명해 주겠나?”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마크 골드픽시가 물었다. 어조가 심상치 않았다.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다면 자네가 데려온 혈족이…… 진 것으로 보이네만?”
거래 내용은 지하경기장에서 우승함으로서 마크 골드픽시의 이름을 명예의 전당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런데 첫 단추부터 어긋나고 말았다.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내 미리 경고했을 텐데. 지하경기장을 얕보지 말라고.”
“얕본 적 없어요. 마르코스는 저와 함께 온 혈족들 중에서 세 번째로 강한 걸요.”
“그럼 내가 본 건 대체 뭔가?”
마크 골드픽시의 목소리에 불쾌함이 서렸다.
마리아 산체스는 침음을 삼켰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안목을 못 믿느냐고 윽박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잘못한 쪽은 마리아 산체스였다. 강하게 나설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진정하세요. 어차피 또 선수를 내보내실 수 있잖아요.”
후원자가 지하경기장에 들여보낼 수 있는 선수의 숫자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한 명이고 열 명이고 들여보낼 수 있다.
이런 규칙이 성립될 수 있는 이유는 지하경기장이 토너먼트가 아니라 연승제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열 번 이기면 승리하기 때문에 몇 명이고 참가시켜도 상관없었다.
“내 꼴이 우습게 됐잖나.”
“이 일은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할게요. 그럼 만족하시겠어요?”
“뭘 어떻게 해결하겠단 말인가.”
“그 전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저 자가 누구인지. 누구의 후원을 받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순(純) 초인혈의 소유자를 일격에 박살을 내 버렸다. 그만한 실력자가 흔할 리가 없다.
이번 행사는 시조의 보물이 달려 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네.”
그러나 마크 골드픽시는 고개를 저었다.
“미스트리 도시에서 고객을 관리하는 일은 리버크로스 가문이 맡고 있네. 그 가문은 절대로 고객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그게 미스트리 도시가 유지될 수 있는 근간이라면서.”
미스트리 도시는 욕망을 위해 설립되었다.
수많은 부호와 권력자들이 자신의 은밀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미스트리 도시를 찾아왔다.
본래 욕망이란 부끄러운 것.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리버크로스 가문은 고객의 정보를 꽁꽁 감추고 절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대뜸, 마리아 산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투를 벗고 가면을 썼다.
그 모습에 마크 골드픽시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자네가 직접 나설 생각인가?”
“마르코스는 저와 함께 온 산체스 가문의 혈족들 중에서 세 번째로 강해요. 마르코스가 졌으니 제가 나서는 게 맞죠.”
“하지만 자네가 참가했다가 정체가 들키면 다 끝이야!”
세상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범죄자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마리아 산체스의 악명은 독보적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에서 그녀의 이름을 듣기만 하면 치를 떨 정도로.
“걱정하지 마세요.”
마리아 산체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 정도 연기도 못해서야 어떻게 범죄자라고 할 수 있겠어요?”
* * *
권한울은 경기장에 올라온 선수를 살펴봤다.
체형이 작고 가녀리다. 도무지 이런 험악한 경기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본능이 경고했다.
눈앞에 있는 여인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말라고 말이다.
“하아…….”
대뜸 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너 때문에 일이 다 꼬여 버렸어. 이거 어떻게 할 거야?”
권한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무슨 개소리냐는 듯이.
“근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없어? 이상하게 눈에 익는데.”
“가면을 쓰고 있는데. 그런 걸 어떻게 압니까.”
“알 수 있지. 체형이라던가 마력이라던가. 사람의 특징은 여러 개니까.”
여인이 권한울의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었다.
“익숙하기는 한데. 잘 모르겠네.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안 좋았나?”
됐어.
여인이 고개를 저이며 말했다.
“먼저 사과할게. 미안하게 됐어.”
“뭐가 미안하다는 겁니까?”
“일이 이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내가 참가할 일도 없었을 테고, 네가 우승자가 됐을 텐데.”
“벌써 이긴 것처럼 말하네요.”
권한울의 말에 여인이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내가 누군지 알면 너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걸.”
권한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여인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겠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명확하게 가늠이 안 되는 걸로 봐서는 권한울 자신보다 더 강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무시당하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어머, 화났나 보네.”
여인은 권한울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나중에 내가 누군지 알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여인이 앙증맞은 두 주먹을 들어올렸다.
권한울 역시 자세를 잡았다. 언제든지 여인의 공격을 받아칠 수 있도록.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노려봤다. 정체모를 긴장감이 지하경기장을 짓눌렀다. 관중들도 말없이 두 사람을 지켜봤다.
“아, 맞다.”
그때, 여인이 침묵을 깼다.
“그 녀석의 복수를 해 줘야지.”
별안간 여인이 권한울을 향해 다가왔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곳곳에 빈틈이 가득했다.
권한울은 눈동자를 게슴츠레하게 뜬 채 여인을 노려봤다.
그런 권한울을 보고는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겁을 먹었어?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
그 순간, 권한울이 땅을 박찼다. 허리를 앞으로 크게 젖혔다. 동시에 팔을 크게 휘둘렀다.
권한울의 모든 힘과 무게가 담긴 주먹이 여인의 얼굴을 강타했다.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와.”
하지만 여인은 멀쩡했다. 아니, 뒤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너 진짜 여자한테도 가차 없구나.”
그 순간, 여인이 움직였다.
여인이 발을 내딛어 땅을 밟았다. 그 힘을 그대로 담아서 주먹을 쳐올렸다.
아래에서 위로.
여인의 주먹이 권한울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 순간, 지하경기장 전체가 흔들렸다.
* * *
으드득.
근육과 뼈가 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인, 마리아 산체스는 놀란 얼굴로 권한울을 쳐다봤다.
천장까지 날려버릴 각오로 주먹을 휘둘렀는데. 권한울의 두 발은 여전히 땅에 닿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복부를 꿰뚫어야 했을 주먹이 권한울의 팔뚝에 막혀 있었다.
정체를 들키면 안 되기에 전력을 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충 공격한 것도 아니었다.
분명히 피하지 못할 속도로, 막을 수 없는 힘을 담아 공격했는데?
“……하마터면 팔이 부러지는 줄 알았네.”
권한울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막았어?”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된 질문이었다. 그 말에 권한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잘.”
진실은 단순했다. 권한울의 몸을 두르고 있는 금강기와 패왕성에 의한 신체능력 강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호격식 강철괴(護格式 鋼鐵塊)
호격식을 사용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권한울은 마리아 산체스의 몸을 밀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주먹을 막아낸 팔뚝을 매만지며 말했다.
“당신, 마리아 산체스였군.”
그 말에 마리아 산체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떻게 알았어?”
“초인혈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여자는 당신밖에 없지.”
권한울은 마리아 산체스와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 타카미네 가문의 호위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주하연에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철성(鐵城) 마리아 산체스.
최연소 나이에 판데모니엄의 의원자리에 오른 천재.
산체스 가문 내에서도 그녀에 비견될 실력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다.
“처음에 싸운 그놈도 산체스 가문이더니. 이번에는 마리아 산체스라…….”
권한울이 팔뚝을 매만지며 말했다.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그 순간, 마리아 산체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안해서 목숨만은 살려 주려고 했는데.”
마리아 산체스가 기세를 일으켰다.
단순히 기세를 발산한 것만으로 전신이 짓눌리는 것 같은 중압감이 닥쳐왔다.
“그냥 이 자리에서 죽여야겠네.”
마리아 산체스의 두 눈동자에 살의가 떠올렸다.
분명히 가녀린 체형의 여자인데. 마치 거인을 눈앞에 둔 것 같았다.
“……이건 진짜 위험한데.”
일전에 싸웠던 호세 딜 파블로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기세였다.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그때였다.
<진(眞) 초인혈이 순(純) 초인혈의 기세를 감지합니다.> <예의를 갖추지 않는 하위 혈통의 행태에 격하게 분노합니다!>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