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108화 (108/221)

<혈통이 깡패임 108화>

108. 보류 (1)

머리 위로 거대한 망치가 떨어졌다.

근육질의 남자가 두 손으로 휘두른 일격이다. 그 탓에 망치가 공기를 찢는 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공포감에 오금이 저려왔으나 권후돈은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어깨로 망치를 들이박았다.

불패갑 불패굴곡(不敗鉀 不敗窟曲)

권후돈의 어깨와 망치가 부딪혔다. 망치가 얼음덩어리처럼 쪼개졌다.

“이놈이!”

무기가 박살이 났음에도 덩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망치가 으깨지고 남은 손잡이로 권후돈을 찌르려고 했다

권후돈 역시 물러서지 않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두 주먹을 동시에 내질렀다.

불패갑 만파권(不敗鉀 萬破拳)

두 주먹이 덩치의 몸통을 강타했다. 덩치의 입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컥!”

덩치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권후돈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끄, 끝났다.”

덩치를 상대로 승리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권후돈의 주변에는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절한 채로 널부러져 있었다.

모두 권후돈이 쓰러트린 상대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권후돈 혼자서 쓰러트린 것은 아니었다.

“끄아악!”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권후돈이 뒤를 돌아보자 한 남자가 부러진 다리를 붙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내가 졌어! 내가 졌으니까…….”

사내가 애원하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여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손날을 내리쳤다.

조막만한 손날이 남자의 목뼈를 부수고 머리를 땅으로 처박았다.

살아 있기는 할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지막지한 일격이었다. 권후돈은 질렸다는 얼굴로 그 광경을 쳐다봤다.

“아, 후 씨!”

사내를 쓰러트린 여인이 권후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권후돈은 어색하게 웃으며 똑같이 손을 흔들었다.

“라, 라리사 씨…….”

“많이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요! 저한테 달려드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도 벅차서…….”

라리사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권후돈의 눈치를 살폈다.

이렇게 보면 영락없이 부끄러움이 많은 소녀였다. 하지만 같이 싸우는 동안 권후돈은 이 여자의 진짜 모습을 몇 번이고 목격했다.

방금 전에 애원하던 사내를 무자비하게 때려눕힌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의 팔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분지르는 모습은 실로 공포스러웠다.

“그, 그보다 이제 다 끝났네요.”

“다 끝난 건 아니죠. 저랑 후 씨가 남아 있잖아요.”

라리사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권후돈을 쳐다봤다. 그 모습이 어쩐지 섬뜩해서 권후돈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말대로 이 경기장에서는 단 한 명만이 우승자가 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둘이서 협력하기는 했으나 결국 한 명만 남아 있어야 했다.

“꼬, 꼭 싸워야 하나요?”

그걸 알면서도 권후돈은 라리사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싸웠던 사람을 곧바로 적으로 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명이 기권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후 씨가 그러지 않기를 바라요.”

“왜, 왜죠?”

“싸워 보고 싶어서요.”

무감정했던 라리사의 눈동자에 흥미가 떠올랐다.

“다 봤어요. 후 씨가 어떻게 싸우는지.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굉장히 강하시더라고요.”

권후돈이 라리사를 지켜본 것처럼 라리사 역시 권후돈을 지켜봤다.

“게다가 아직 실력을 다 드러내신 것도 아니죠? 보여줄 수 있는 게 더 남아 있으시잖아요.”

설마 거기까지 파악했을 줄이야.

권후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 실력을 숨기고 있는 건 라리사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권후돈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라리사의 기세가 급변했다.

“거기까지 알아보시다니.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았네요.”

라리사에게 강렬한 살의가 밀려왔다.

흥분으로 달아오른 그녀와 달리 권후돈의 몸은 두려움에 딱딱하게 굳었다.

그때였다.

<경기 중단! 각 선수들은 멈춰 주십시오!> 권후돈도 라리사도 의아한 얼굴로 허공을 쳐다봤다.

<‘백합’ 선수 측에서 기권 선언! 따라서 승자는 ‘검정거북이’로 결정되었습니다!> 검정거북이는 권명우가 대충 등록한 권후돈의 선수명이었다.

백합은 아마도 라리사를 뜻하는 말일 터.

권후돈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라리사를 쳐다봤다.

“……제 쪽에서 뭔가 일이 생겼나보네요.”

라리사는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후 씨,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또 봐요.”

라리사는 몸을 돌려서 경기장을 나갔다.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권후돈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십년감수했네…….”

* * *

-우와아아아아아!

서관의 콜로세움.

몬스터와 인간의 대결을 즐기기 위해 지어진 경기장.

이곳은 경기가 최초로 시작된 이후로 역대 최고의 흥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 발키리! 단칼에 베어버려!

-귀검은 뭐 하냐! 점점 느려지고 있잖아!

경기장 위에는 두 여자가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발키리라 불린 여자는 엄청난 크기의 대검을 들고 있었다.

버스 크기 정도 되는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이 고기토막으로 변해 버렸다.

반대쪽에 있는 여성은 발키리에 비해서는 평범한 칼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쪽 역시 만만치 않았다.

발키리가 힘이라면 이쪽은 기술과 속도로 승부를 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몬스터의 급소를 노리는 솜씨는 귀신같았다.

-또 둘 다 같은 시간에 끝났어!

-와아아아! 진짜 최고다!

본래는 한 경기당 한 사람만 경기장에 오르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두 사람과 다른 참가자들의 격차가 너무 압도적인 탓에 관리인 쪽에서 경기방식이 바꾸었다.

어차피 콜로세움은 즐거움을 위해서 지어진 곳.

그것을 위해서라면 규칙 한두 개쯤은 바꿀 수 있다는 게 미스트리의 입장이었다.

“하하핫!”

발키리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대검을 어깨에 짊어진 채 웃었다. 덩치가 큰 만큼 웃음소리의 울림도 컸다.

“너 진짜 제법이구나? 나랑 이렇게까지 맞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메이홍은 발키리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숨을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제 검을 따라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에요.”

“으하하핫! 너한테도 내가 처음이야? 그건 좀 기쁜 걸!”

발키리의 웃음이 미 더욱 짙어졌다.

“너 같은 검사를 만나서 기쁘기는 한데…… 슬슬 너도 느끼고 있지?”

“뭘요.”

“모르는 척 하지 마.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이 승부에서 누가 이길지.”

검 자루를 잡고 있는 메이홍의 손에 슬며시 힘이 들어갔다.

인정하기 싫지만 발키리가 말한 대로였다.

열 마리째부터 발키리 쪽이 몬스터를 마무리 짓는 속도가 미묘하게 더 빨랐다.

속도만 앞서는 것이 아니었다.

메이홍은 발키리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했다.

반면 발키리는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그쪽한테 유리한 게임에서 이겼으면서 되게 잘난 척하네요.”

그렇다고 메이홍 쪽이 발키리보다 약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기교로 승부하는 메이홍과 달리 발키리는 무식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검사였다.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있어서 발키리 쪽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쩌겠어. 세상이란 게 원래 불공평한 법인데.”

발키리는 그 사실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때, 경기장의 문이 열리며 두 마리의 몬스터가 걸어 나왔다.

동시에 전광판에 문자가 떠올랐다.

<마지막 경기!>

<이 경기로 우승자가 결정됩니다!>

메이홍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상대로 경기가 시작됐다가는 분명 저 여자한테 질 게 뻔했다.

“하하핫, 그럼 마무리를 지어 볼까?”

발키리가 대검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때, 스피커에서 음성이 들려 왔다.

<경기 중단! ‘발키리’ 선수 측에서 기권 선언!> <따라서 승자는 ‘귀검’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뭐야?”

합의가 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었는지. 발카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누구 마음대로 기권이야! 난 아직 싸울 수 있어!”

발키리가 고함을 내질렀다. 금방이라도 난리를 피울 것 같았다.

그때, 발키리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관중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젠장.”

이윽고 몸을 돌려서 경기장을 떠나려 했다.

“설마 이대로 끝낼 생각이에요?”

그런 발키리를 메이홍이 붙잡았다.

“너 바보지? 방금 못 들었어? 나는 기권. 너는 우승. 알겠어?”

메이홍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발키리가 한 발 먼저 말했다.

“운 좋은 것도 실력이야. 그러니까 괜히 구질구질하게 굴지 마.”

그리 말한 뒤, 발키리는 망설임 없이 경기장을 떠났다.

메이홍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짧게 중얼거렸다.

“……마음에 안 들어.”

* * *

<방금 한 명의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 <승자는 ‘GG’입니다!>

남쪽의 콜로세움.

함정을 뚫고 누가 먼저 결승선에 도달하느냐를 지켜보는 경기장.

그곳에서 막 우승자가 결정되었다.

감히 박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기였다. 1등과 2등의 시간 차이는 1초가 채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칫, 졌군.”

GG는 옆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막 2등으로 들어온 남자가 혀를 차고 있었다.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괴상한 스킬들만 사용하더만. 그것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겼어.”

배불뚝이 남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패자의 허세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가엘 가르시안과 달리 남자는 함정을 정면에서 뚫고 지나왔다.

실로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속도만큼은 대단히 빨랐다. 가엘 가르시안조차 아슬아슬하게 이겼을 정도였다.

“패자가 말이 많군.”

하지만 그 사실과는 별개로 가엘 가르시안은 남자의 말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었다.

“뭐, 뭐야?”

“졌으면 조용히 내려가라. 그게 패자의 도리가 아닌가?”

본래 가엘 가르시안은 이렇게까지 험하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남자의 건방진 태도가 가엘 가르시안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 기껏해야 던전에서 길을 찾을 때 외에는 쓸모도 없을 놈이 뭐가 어째?”

남자가 쿵쿵 발로 땅을 내려찍으며 다가왔다.

가엘 가르시안을 코앞에서 내려다보며 으르렁거렸다.

“오래 살고 싶으면 말조심해라. 내가 받은 명령만 아니었어도 넌 이 자리에서 죽었어.”

남자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평범한 헌터가 가질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살인에 익숙한, 그리고 살인을 즐기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었다.

딱, 가엘 가르시안이 혐오하는 눈빛이었다.

“입으로는 무슨 말이든 못할까.”

“너 지금 뭐라고 했냐?”

“겁이 많은 개는 잘 짓지. 그쪽이 딱 그런 것 같아서.”

남자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이 개자식이!”

고함소리와 함께 남자가 주먹을 쳐들었다.

그때였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경기장에 있는 ‘버팔로’ 선수는 빨리 대기실로 와주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버팔로’ 선수의 관계자의 요청사항입니다. 버팔로 선수는 지금 당장…….> 남자의 손이 우뚝 멈췄다.

“너…… 나중에 보자. 그때 보면 반드시 죽여 주마.”

살기어린 경고와 함께 남자는 경기장을 내려왔다.

가엘 가르시안은 차분한 눈빛으로 남자를 살폈다.

환수혈은 생물의 기운에 민감하다. 이를 이용하면 생물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가 판단했을 저 저 남자는…….

“어지간해서는 싸우고 싶지 않군.”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이 가엘 가르시안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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