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10화>
110. 보류 (3)
다음 날, 권한울은 흑천 일가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에잉, 메이샤오인지 뭔지 때문에 이게 뭔 난리란 말이냐.”
이렇게 급하게 일정을 잡은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권명우는 불평을 했다.
그 앞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주하연이 물었다.
“그렇게 불만스러우십니까?”
“당연하지. 모처럼 한울이 이놈이랑 놀아 주려고 했거늘 무용지물이 되지 않았더냐.”
옆에 있던 권한울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제가 어린앱니까. 놀아 주다뇨.”
“내가 봤을 때, 네놈은 한참 어린애야.”
“작은 할아버님과 제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그렇겠죠.”
“이놈아, 누가 그런 뜻으로 말한 줄 아느냐?”
권명우가 쯧쯧 혀를 찼다.
“이번 기회에 네놈한테 돈 쓰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했거늘.”
권명우는 연신 가면을 만지작거렸다.
미스트리 도시에서 줄곧 쓰고 있던 그 가면이었다. 정말 어지간히 미련이 남은 모양이었다.
“권한울 님, 드시죠.”
“아, 고마워요.”
권한울도 주하연이 내민 차를 들었다. 한 모금 마시며 비행기 안을 둘러봤다.
‘분위기가 어째 영 칙칙하네.’
권후돈, 메이홍, 가엘 가르시안 할 거 없이 각자 따로 따로 흩어져 있었다.
서로 다툰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생각할 게 많아 보였다.
‘첫날에 싸웠던 상대들이 보통이 아니었다지.’
권한울이 산체스 가문의 혈족과 싸우고 있던 그때, 다른 세 명들도 상당한 실력자들과 만났다고 들었다.
세 명 모두 완전하게 결판을 내지 못한 걸 아쉬워 하고 있었다.
일행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권한울이 권명우에게 물었다.
“작은 할아버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권명우가 가면을 벗으려고 할 때였다.
“어째서 회장님께서 절 도와주라는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권명우의 움직임이 멈췄다.
* * *
“저 비행기에 흑천의 지렁이들이 타고 있는 겁니까?”
오렌지색 두건을 쓰고 있는 남성이 말했다.
그의 주변에는 열 명의 사람들이 똑같은 색의 두건을 쓰고 있었다.
“네, 확실해요. 미스트리 도시의 높은 분을 협박해서 알아낸 정보거든요.”
“마크 골드픽시 말이군요. 이번 일로 골드픽시 가문을 적으로 돌리게 됐다는 걸 어르신들께서 아시면 무척 화를 내실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시조님의 물건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먼저 말한 쪽은 어르신들인 걸요.”
남성은 여전히 못마땅해 보였지만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비행기가 더 날아가기 전에 격추해야 하지 않나요?”
마리아 산체스의 물음에 남성은 다시금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가씨의 명령이니 따르겠습니다만…… 이 지역은 민간 지역입니다. 여기서 난동을 피웠다가는 일이 커질 겁니다.”
남자의 지적대로 주변에는 민가가 쭉 늘어서 있었다.
여기서 싸움이 벌어지면 아무래도 일반인들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 갑자기 어린애처럼 구시네요. 제가 아는 칸 산체스가 맞나요?”
칸 산체스.
산체스 가문의 혈족들을 실력대로 나열하자면 당당히 맨 앞자리를 차지할 남자.
전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절대자 중 한 명.
그와 똑같이 두건을 쓰고 있는 이들은 덴트 데 리오(dentes de leao)라고 불리는 산체스 가문 최고의 부대였다.
“그럴 리가요. 혹시 몰라서 물어봤습니다.”
칸 산체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혹시 몰라서 물어봤을 뿐, 칸 산체스 역시 일반인들의 생사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럼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칸 산체스가 권능을 일으켰다.
* * *
쿨럭.
권명우가 기침을 했다. 어찌나 놀랐던지 가면을 벗을 생각도 못하고 권한울을 쳐다봤다.
“그, 그걸 어떻게 안 게냐?”
“한 번 찔러 본 건데. 진짜 회장님이 시키셨나보네요.”
그 말에 권명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놈이 감히 날 속여?”
“속이다뇨. 유도심문이라고 불러 주세요. 심증은 있었는데. 물증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요.”
끄응, 권명우는 신음을 흘렸다.
“이 나이를 먹어서 이딴 말장난에 넘어가다니. 대체 언제부터 의심한 게냐?”
“처음부터요. 싸워야 할 상대가 너무 강해서 도와주려고 왔다니. 작은 할아버님께서 그렇게 참견이 심한 분은 아니잖습니까.”
권한울도 권명우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권명우는 결코 남의 전투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은 할아버님께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을 만큼 권위가 높은 사람은 한 명밖에 없잖습니까.”
흑천제일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흑천 그룹의 회장이자 흑천 일가의 가주인 권선우밖에 없었다.
“사실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회장님은 그럴 분이 아니니까요.”
권선우는 결코 남을 도와줄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가치를 판단한다는 명목 하에 더더욱 위기에 몰아넣을 인간이었다.
게다가 다른 이유도 있었다.
“회장님께서는 절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 어째서 작은 할아버님께 그런 부탁을 한 겁니까?”
권명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굉장히 곤란하다는 얼굴이었다.
“그건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구나. 다만,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있다. 형님께서는 널 싫어하지 않아.”
“그럴 리가요. 제 아버지는…….”
“그래, 네 아버지 권천과 형님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지. 하지만 그건…….”
권명우는 잠시 말을 멈췃다.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구나. 형님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게 좋을 거 같다.”
권한울은 이대로 대화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때, 별안간 권명우의 표정이 변했다.
“……산체스. 이 살덩어리 새끼들이 기어코 미쳤구나.”
권한울도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 밖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마력을.
권한울은 재빨리 창문에 붙었다. 비행기가 출발한 항구 쪽에서 무언가 보였다.
놀랍게도 그건 거인이었다.
구름 같은 희뿌연 기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거인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
거인이 천천히 주먹을 뻗기 시작했다. 주먹은 점점 더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비행기에 도달했다.
“모두들 대비해라!”
권명우의 외침과 동시에 거인의 주먹이 비행기를 터트렸다.
* * *
“역시 죽은 놈은 한 명도 없군요.”
칸 산체스가 권능을 거두자 기체로 이루어진 거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 명도 없다고요? 승무원들은요?”
“저들 중에 제법 괜찮은 실력자가 있나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승무원들까지 모두 보호했습니다.”
칸 산체스의 고개가 무언가를 쫓아서 조금씩 움직였다.
방금 전 말한 그 실력자가 허공을 밟으며 이동하고 있었다.
양손 가득 승무원들을 끌어안은 채로.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저 남자는 제가 맡도록 하죠. 아가씨께서는 물건을 회수하십시오.”
“그렇게 하죠. 아, 덴트 데 리오 부대원들은 어떻게 할 건가요?”
“이곳에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혹시라도 위험해지면 부르십시오.”
그 말에 마리아 산체스가 씩 웃었다.
“농담하시는 거죠?”
“농담입니다.”
그리 말한 뒤, 칸 산체스는 가면을 쓴 남자를 쫓아서 사라졌다.
칸 산체스가 사라지자 마리아 산체스가 다른 혈족들을 돌아봤다.
그녀와 함께 미스트리에 들어갔던 혈족들이었다.
“우리도 움직이자. 각자 한 명씩 쫓아가. 그리고…….”
마리아 산체스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며 말했다.
“확실하게 죽여 버려.”
* * *
“빌어먹을 놈들.”
기절한 승무원들을 잔디밭 위에 내려놓으며 권명우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감히 흑천을 건드리다니.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방금 전, 권명우가 타고 있던 비행기에는 흑천 일가의 문양이 박혀 있었다.
그걸 알아보고도 공격을 하다니. 흑천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놈들은 무사할지 모르겠군.”
비행기가 박살이 난 그 순간, 안에 타고 있던 일행은 뿔뿔이 흩어졌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지금 그의 옆에는 승무원들이 있었다.
“일단 이 사람들을 안전한 곳에 맡기고……,”
누군가 착지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머리에 주홍색 두건을 쓴 남자가 보였다.
“네놈이냐.”
남자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이 자가 바로 비행기를 터트린 장본인이라는 것을.
“그래, 나다.”
“젊은 놈이 말이 좀 짧구나.”
남성도 그렇게 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권명우의 입장에서 보면 한참 어렸다.
“지금부터 서로 죽이고 죽일 텐데. 예의를 차리는 것도 꼴이 우습지.”
“예의는 밥 말아 처먹은 모습이 산체스 가문답구나.”
권명우가 몸을 완전히 돌리며 물었다.
“이름이 뭐냐.”
“칸 산체스.”
호.
권명우는 짧게 감탄했다.
“레오나르도 산체스의 뒤를 이어서 일인자의 자리에 오른 애송이가 바로 네놈이로구나.”
전대 일인자의 이름이 거론되자 칸 산체스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어째 태도가 너무 여유롭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쪽은 이름이 뭐지?”
“날 몰라? 아, 이걸 쓰고 있어서 몰라본 모양이구나.”
권명우는 손을 올려서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칸 산체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흐, 흐, 흑천, 흑천제일권?”
권명우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네놈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알겠느냐?”
칸 산체스의 얼굴에 생기가 사라졌다.
“기회를 주지. 지금 당장 네놈이 데려온 혈족들을 데리고 꺼져라.”
칸 산체스의 얼굴에 깊은 갈등이 떠올랐다.
“모두 내게 와라!”
불현듯 칸 산체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고함소리는 사방으로 퍼졌다.
잠시 후, 칸 산체스와 마찬가지로 주홍색 두건을 쓴 사람들이 이 장소로 모여들었다.
권명우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그들을 살펴봤다.
“덴트 데 리오? 산체스 최강의 부대까지 끌고 오다니. 대체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군.”
부대의 정체를 알아보고도 권명우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칸 산체스를 비롯한 부대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들을 불렀다는 것은…… 나와 한번 해 보겠다는 뜻이렸다?”
권명우가 기운을 일으켰다. 줄곧 갈무리해뒀던 기세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 * *
땅에 착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권한울은 재빨리 감각을 일깨웠다. 다른 일행들이 떨어진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늘에서 한 남성이 떨어졌다. 남성은 섬뜩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최근에 저런 덩치를 가진 사람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으니까.
“지하경기장에서 봤던 산체스의 혈족인가?”
“알아봐줘서 고맙군.”
남자는 입가를 비틀었다. 권한울도 똑같이 웃었다.
“정식으로 소개하마. 마르코스 산체스라고 한다.”
마르코스 산체스.
산체스 가문과의 격돌 이후, 주하연에게 들었던 요주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현재 활동 중인 산체스 가문의 혈족 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가진 남자.
하지만 권한울은 남자의 이름 따위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그래, 마르코스 산체스. 어째서 내 앞에 나타난 거지?”
“당연한 걸 묻는군. 당연히 복수를 하기 위해서지.”
“한 번 진 걸로는 부족한 모양이지?”
그 말에 마르코스 산체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건방진 놈. 그때는 정체를 숨겨야 해서 내 진짜 능력을 반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마르코스 산체스의 몸에 붙어 있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마치 살덩어리로 된 갑옷을 입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강증력(强增力)
흑룡혈에게 요투기가 있다면 초인혈에게는 강증력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초인혈을 대표하는 권능이었다.
“이게 뭔지 아는 눈치로군. 초인혈에 대해서 많이 조사한 모양이지?”
“어느 정도는.”
“그럼 이 권능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겠구나.”
물론 알고 있다.
신체능력의 폭발적인 증가. 그리고 외부의 공격을 버틸 수 있는 방호력까지.
말 그대로 근육으로 만들어진 갑옷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부터 내 진짜 실력을 보여 주지.”
마르코스 산체스가 무릎을 굽혔다. 비대해진 근육이 수축되었다.
무릎을 펴는 순간, 근육이 팽창했다. 마르코스 산체스의 몸이 탄환이 되어 날아들었다.
무식하리 만큼 단순한 돌격.
그 추진력을 그대로 담아서 권한울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 순간, 권한울의 손이 움직였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호격식 조각(護擊式 爪角)
권한울이 팔뚝을 휘둘러 마르코스 산체스의 주먹을 막아냈다.
거친 소리와 함께 마르코스 산체스의 주먹이 튕겨져 나갔다.
마르코스 산체스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자신의 모든 힘을 담은 공격이 이렇게 허무하게 막힐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힘을 억제했다고?”
지척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마르코스 산체스는 고개를 들었다.
“나도 그래.”
권한울이 자세를 잡았다. 주먹을 쥐고, 마르코스 산체스의 명치를 겨냥했다. 허리를 비틀며 내질렀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붕격식 나선파(韻擊式 頓線波)
권한울이 내지른 주먹이 마르코스 산체스의 명치에 꽂혔다.
방출된 용마기가 지면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