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11화>
111, 산체스 가문 (1)
항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어느 주택단지.
그곳에 한 여인이 떨어졌다.
땅에 착지한 주하연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내가 막아 냈어야 했는데…….”
거인의 주먹이 날아들기 직전, 주하연은 황급히 마법을 펼쳤다.
장벽으로 비행기를 보호했으나 거인의 주먹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비행기가 폭발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권한울 님을 먼저 찾아야 해.”
권선우는 주하연에게 권한울을 보호할 것을 명령했다. 설사 자신이 죽더라도 권한울만큼은 보호해야 했다.
주하연이 권한울을 찾기 위해서 마법을 사용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늘에서 뭐가 펑하고 터졌는데.”
갑작스러운 소동에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을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좀만 더 지켜보자고.”
“근데 저 동양인은 누구지?”
몇몇 마을 주민들이 주하연을 발견하고는 의아해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땅이 박살이 나며 주변이 진동했다.
“꺄악!”
“뭐, 뭐야!”
다행히 휩쓸린 주민은 없었다. 사람등른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언가 떨어진 지점을 살펴봤다.
깊이 파인 구덩이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그 순간, 마을이 정적에 휩싸였다.
“……철성 마리아 산체스다.”
“산체스 가문의 학살자가 여기에는 왜!”
“내, 내가 알아? 모두 도망쳐!”
마을 주민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유명인은 이래서 불편하다니까.”
마리아 산체스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주하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주하연은 지긋이 그녀를 노려봤다.
“역시 당신이었군요.”
“일본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왔어. 오늘이야 말로 결판을 내자.”
“어째서 흑천을 공격한 겁니까.”
그딴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주하연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살기 귀찮아진 겁니까? 죽고 싶으면 흑천의 손을 빌릴 생각하지 말고 조용한 곳에서 독이라도 마시지 그랬습니까.”
“아, 이거? 어쩔 수 없었어. 그쪽이 모시고 있는 도련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있거든.”
“지하경기장의 우승 상품 말인가요?”
마리아 산체스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권한울이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차렸으니 그 정도는 유추낼 것이라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 찻잔이 대체 뭔데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비밀이야. 말해 줄 생각 없으니까 괜히 캐묻지 마.”
마리아 산체스의 입 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길어졌다. 섬뜩한 미소였다.
“하지만 다른 건 대답해 줄 수 있어. 가령, 지금 흩어진 흑천의 혈족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같은 거.”
그 말에 주하연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산체스 가문의 혈족을 보내놨어. 아마 지금쯤 모두 죽었을 걸.”
“가소롭군요. 그분들이 산체스 가문 따위한테 당할 것 같습니까.”
그 말에 마리아 산체스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누구를 데려왔는지 알고 나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많이 데려왔는데. 그 중에 몇 명만 말해주자면…….”
마리아 산체스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이름을 말했다.
이름이 들려올수록 주하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어때, 제법 유명한 사람들이지 않아?”
“……산체스 가문의 중요 전력을 모두 끌고 오다니. 미친 겁니까.”
“댁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권한울이라는 남자를 살리고 싶거든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할 거거든.”
아, 그렇지.
마리아 산체스가 과장된 표정과 함께 손뼉을 쳤다.
“어쩌면 지금쯤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는 걸.”
그 순간, 주하연의 내부에서 분노가 격발됐다.
마력이 폭주하며 외부로 방출되었다. 마력에 닿은 사물은 모조리 비틀리고 으깨졌다. 주변에 있던 건물들이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다시 봐도 놀랍네.”
그 압도적인 모습에 마리아 산체스조차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흑천의 마녀다워.”
세상에는 마법사 혹은 마녀라 불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던전을 통해 지구로 전수된 ‘마법’이라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다루는 이들.
헌터와 마찬가지로 마력을 다루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법은 스킬이 아니다. 상태창으로 습득할 수 없으며 오로지 지식으로만 익힐 수 있다.
게다가 지식을 익힌다고 해서 모두가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법사와 마녀가 되기 위해서는 기프트(Gift)라 불리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했다.
주하연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어쩌면 그들 중에서도 더더욱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녀가 사용하는 마법은 차원계 마법.
전 세계에서 오로지 그녀만 알고 있는 마법이었으니까.
“그거 알아? 아직도 이온이 너한테 집착하고 있다는 거.”
이온(Aeon)
마법사와 마녀들이 모여 만든 단체.
이 세상의 모든 마법을 보유하고 있다는 그곳에서 차원계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때 이온은 주하연을 데려오기 위해서 온갖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나도 준비를 해야겠네.”
마리아 산체스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뼈가 길어지고 근육이 팽창했다. 여리고 가냘프던 여인의 몸에서 3미터에 달하는 근육덩어리의 괴물로 바뀌었다.
“후우.”
마리아 산체스가 마력을 일으켰다. 희뿌연 안개가 그녀의 몸을 둘러쌌다.
“그럼 저번에 못 다한 승부를 내볼까?”
마리아 산체스의 몸이 살짝 숙여진다 싶더니 어느새 주하연의 앞에 도달했다.
마리아 산체스가 두 주먹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안개가 형체를 이루었다.
안개로 이루어진 거인이 그녀의 뒤에 나타났다. 그녀와 똑같이 주먹을 쥐고,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흐앗!”
마리아 산체스의 외침과 동시에 거인이 주먹을 내리쳤다.
* * *
권한울은 뻗었던 주먹을 거둬들였다.
그의 앞에는 마르코스 산체스가 망신창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마르코스 산체스를 살피던 중 권한울은 알아차렸다.
“살아 있잖아?”
실낱같은 숨이 느껴졌다.
마르코스 산체스는 죽은 게 아니라 기절한 상태였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붕격식 나선파는 소용돌이치는 용마기를 방출해서 내부를 망가트리는 기술이다.
그것을 맞고도 살아 있다니. 과연 초인혈다운 내구도였다.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지.”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손날을 세웠다. 이대로 가슴과 심장을 통째로 꿰뚫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권한울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손끝을 내지르려던 찰나, 몸이 굳어 버린 것이다.
“……뭐지?”
몸에 힘을 풀자 다시 몸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권한울은 의아해하며 다시 손날을 세웠다.
그러나 마르코스 산체스를 죽이려들자 다시 몸이 멈춰버렸다.
“이게 대체 뭔…….”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초인혈(超人血)’이 당신의 결정을 반대합니다.> 원인은 초인혈이었다. 마르코스 산체스를 죽이려고 마음을 먹자 초인혈이 권한울의 행동을 방해한 것이다.
<‘초인혈(超人血)’의 금제가 발현됩니다!> <상위 초인혈은 하위 초인혈을 죽일 수 없습니다.> 권한울은 다소 어이없다는 얼굴로 메시지를 쳐다봤다.
“지하경기장에서 싸울 때는 하극상이라면서 화를 내더니…….”
그러니까 초인혈은 하위 혈통이 상위 혈통에게 반기를 드는 것도 안 되지만 그 반대도 안 되는 것이다.
“맙소사.”
혈통 중에는 금제라고 불리는 금기사항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듣기는 했지만 설마 그게 초인혈일 줄은 몰랐다.
주하연이 초인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런 내용이 없었던 걸로 보아서 산체스 가문 내에서도 비밀로 다뤄지던 내용인 듯했다.
“이건 좀 아니지.”
그렇다고 마르코스 산체스를 이대로 살려둘 수는 없었다.
마르코스 산체스는 흑천에 이빨을 드러낸 적이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처단해야 했다.
“너 진짜 이럴 거냐.”
권한울이 따지듯이 말했다. 초인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득,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권한울은 아공간을 열었다. 그곳에서 반지를 하나 꺼내서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색욕의 반지를 착용합니다.>
<‘권속혈(眷屬血)’의 권능이 크게 강화가 됩니다.> 색욕의 반지는 착용하는 손가락에 따라서 능력이 달라진다.
그리고 네 번째 손가락의 효과는 상대방의 정신력을 약화시킴으로서 지배하기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다.
권한울은 마르코스 산체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으, 으윽.”
마르코스 산체스가 깨어났다.
그 짧은 시간에 정신을 차리다니 실로 놀라운 정신력이었다.
“어, 어떻게 된…… 우웨에엑!”
하지만 내상이 워낙 심한 까닭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피를 토해냈다.
한 움큼 피를 쏟아내고 나서야 마르코스 산체스는 권한울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궈, 권한…… 우웁!”
권한울은 다짜고짜 마르코스 산체스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권속혈의 권능을 발휘했다.
<‘권속혈(眷屬血)’의 권능을 발현합니다.> <‘색욕의 반지’가 대상의 정신을 뒤흔듭니다.> 권속혈의 지배 권능이 마르코스 산체스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마르코스 산체스는 쉽게 지배당하지 않았다.
<대상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대상의 정신력이 너무 강합니다!>
권속혈의 권능은 강력하지만 쉽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르코스 산체스 정도 되는 강자를 지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권한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마르코스 산체스에게 권속혈을 사용했다.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眞) 초인혈이 순 초인혈을 억압합니다!> <순(純) 초인혈의 권능이 크게 약화됩니다!>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진(眞) 초인혈이 마르코스 산체스와 순(純) 초인혈을 압도했다.
마르코스 산체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권속혈(眷屬血)’이 대상을 지배합니다.> <놀랍도록 강력한 대상을 지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권속혈(眷屬血)’의 동화율이 크게 상승합니다!> <21% -> 27%>
권한울은 마르코스 산체스의 얼굴을 놓았다.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르코스 산체스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고개를 쳐들고 있을 거지?”
그 말에 마르코스 산체스는 즉시 땅에 머리를 박았다.
완전히 복종한 마르코스 산체스를 보며 권한울은 한쪽 입 꼬리를 쓱 올렸다.
“이게 되네.”
권한울이 흡족하게 말했다.
마르코스 산체스는 대단한 실력자임과 동시에 산체스 가문의 요직에 앉아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지배했다는 사실이 퍽 만족스러웠다.
“마르코스!”
그때, 외침과 함께 두 명의 남성이 달려왔다.
다른 산체스 가문의 혈족들이 도와주러 오는 듯 했다.
“쓸 수 있는 장기말은 많을수록 좋겠지?”
권한울은 반지를 착용하고 있는 손을 쥐락펴락하며 중얼거렸다.
“겸사겸사 권속혈의 동화율도 높여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