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124화 (124/221)

<혈통이 깡패임 124화>

124. 블라가 가문 (4)

“아~.”

유리관이 가득한 대형 홀.

안타까움에 가득한 탄성이 길게 터져 나왔다.

“거절당했네.”

카탈리나 블라가는 도통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카탈리나 블라가 외에 한 명이 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였다.

“이곳에 데려오면 바로 넘어올 줄 알았는데.”

카탈리나 블라가는 아쉽다는 얼굴로 옆에 있던 유리관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이곳에 있는 유물들은 카탈리나 블라가가 평생 동안 수집해온 것들이다. 그중에는 세상에 딱 한 번 얼굴을 비추고 사라진 환상의 유물도 존재했다.

아크리치의 라이프베슬, 만뢰선(萬籟搧), 암리타, 스톰링커 등등.

과장 좀 보태자면 이 유물들 중 하나라도 외부에 유출되면 전 세계의 절반이 피로 물들지도 몰랐다.

“설마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건 아닐 테고.”

권한울은 뛰어난 헌터다. 그런 인물이 이 유물들이 담고 있는 힘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쉽지 않네.”

카탈리나 블라가는 심통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함락시켜온 권속들 중에서 이토록 어려운 경우는 처음이었다.

“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까.”

진짜 한밤중에 덮치기라도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그녀는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다른 애들한테는 이런 기분이 안 들었던 것 같은데.”

이 기분을 어디서 느껴봤더라.

최근에 느껴본 적은 없다. 몇 년 내에 느껴본 적도 없다. 수십 년 전에도 느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분명히 느껴본 적은 있다.

“아…….”

별안간 카탈리나 블라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 벽면을 가리고 있는 자주색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비밀문이 하나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카탈리나 블라가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옷을 다듬었다. 그러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다.

하지만 놓여 있는 물건이 딱 하나밖에 없어서 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검붉은 망토가 벽면에 걸려 있었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떨리는 손으로 망토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시조님, 저 놀러왔어요.”

* * *

카탈리나 블라가의 제안을 거절한 뒤, 권한울은 트로이를 따라서 앞으로 사용할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향하는 내내 권한울과 트로이 사이에는 어떤 대화도 오고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트로이는 어느 저택 앞에 멈춰섰다.

“앞으로 이곳에서 머무르게 될 거다.”

흑천 일가에서 사용하던 저택보다 크기가 훨씬 컸다.

“카탈리나 블라가 님의 권속이라 해도 처음부터 이런 장소를 내주는 경우는 없다. 감사하게 여기도록.”

“퍽이나 감사하네요.”

권한울이 조롱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납치범한테 감사하라니 이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말조심해라. 블라가 가문에서 카탈리나 블라가 님을 함부로 욕했다가는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될 거다.”

권한울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트로이가 권한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걱정되면 이것부터 풀어 주시죠.”

권한울이 손목에 묶여 있는 족쇄를 내밀며 말했다. 트로이는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헛소리하지 마라.”

“째째하게 굴지 마시죠. 족쇄가 없다고 해도 제가 이곳에 어떻게 도망치겠습니까.”

“카탈리나 님께서 널 상식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랬다가는 꼭 큰일이 생긴다더군.”

“그래서 안 풀어 주실 겁니까?”

“당연한 소리.”

트로이가 냉담한 얼굴로 말했을 때였다.

저택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걸어 나왔다.

“트로이 아저씨! 안 들어오고 뭐 하세요!”

젊은 여성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반면 여성을 본 트로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레빗? 네가 여기 왜 있는 거지?”

“아저씨도 참, 카탈리나 님께서 저택을 감시할 권속이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랑 친한 권속들을 모아서 지원했죠.”

권한울은 레빗이라 부린 여성의 뒤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하나 같이 표정이 험악한 게 권한울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카탈리나 님께서 그런 명령을 내리기는 하셨지만…… 하필 네가…… 벌써…….”

레빗이 트로이를 향해 묘한 시선을 보냈다. 트로이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마음대로 해라.”

“감사해요. 그럼 이제부터는 제가 리틀드래곤의 안내를 맡을 게요.”

레빗이 옆으로 살짝 비켜서며 저택의 입구를 가리켰다.

“그럼 리틀드래곤. 안으로 들어갈까요?”

* * *

레빗은 권한울을 데리고 저택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솔직히 말해서 레빗이 말하는 설명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레빗과 그녀와 함께 온 권속들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다들 강하군.’

족쇄로 마력이 제한당한 상태지만 감각까지 죽은 것은 아니다.

‘최소 세 개 이상의 능력치가 S급에 도달했다.’

세계랭커의 최소조건에 도달한 이들이 세 명.

‘그리고 저 여자는…… 모든 능력치가 S급에 도달한 것 같은데.’

레빗이라 불린 여성은 이 중에서 가장 강했다. 권한울조차 레빗의 끝이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를 가늠해서 뭘 어쩌려구요?”

대뜸, 레빗이 입을 열었다. 권한울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대꾸했다.

“신기해서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권속에 대해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는 어떨지 궁금했거든요.”

“그래요? 직접 보시니 어떠세요?”

“다들 대단하네요.”

권한울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그러자 레빗이 크게 웃었다.

“알았으면 얌전히 계세요. 혹시라도 쓸데없는 짓을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고요.”

문득 레빗의 걸음이 멈췄다. 저택의 최상층이었다.

“여기가 그쪽이 쓸 방이에요. 그럼 오늘은 푹 쉬세요.”

그리 말한 뒤, 레빗과 권속들은 사라졌다.

권한울은 침대에 앉은 채로 생각을 정리했다.

“역시 상위 권속에게는 권속혈이 통하질 않는군.”

권속혈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현재 권한울의 권속혈로는 저들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저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이대로는 곤란하단 말이지.”

현재 강대한 기운들이 저택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상태였다.

레빗과 함께 있던 권속들이 저택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카탈리나 블라가. 정말 진심으로 날 가둬놓으려는 건가.”

탈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저택을 장악할 필요가 있있었다.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야 탈출을 준비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아, 아, 안으로 드,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더니 대여섯 명이 시종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시종들은 대뜸 바닥에 엎드렸다.

“모, 모, 목욕물과 시, 시, 식사가 주, 준비 되었습니다.”

시종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권한울이 우선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시종들을 바닥에 더욱 납작하게 엎드릴 뿐이었다.

권한울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흑천 일가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곳의 시종들은 주종관계가 아니라 고용관계였다. 반면 이들은 마치 노예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일어나세요.”

권한울이 말했음에도 어느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일어나세요.”

“죄, 죄, 죄송합니다!”

그때, 시종 중 한 명이 덜덜 떨면서 말했다.

“브, 블라가 가문에서는 주, 주인님의 어, 얼굴을 정면에서 봐서는 아, 안 됩니다. 그, 그랬다가는 크, 큰 형벌을 바, 받습니다.”

권한울은 시종의 살폈다. 목덜미 사이로 채찍이 훑고 지나간 상처 자국이 얼핏 보였다.

이 시종 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옷으로 숨기고 있었으나 몸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이런 곳이었나.”

권한울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블라가 가문은 권속혈을 보유하고 있다. 권속혈은 사람을 지배하는 혈통.

그 때문인지 신분에 따른 격차가 무척 심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곤란했다. 권한울이 탈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저택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부터 이 저택의 주인은 접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제 명령에 따르시면 됩니다.”

권한울은 진혈의 지배력을 사용했다. 밖에 있는 카탈리나 블라가의 권속들이 눈치챌까 봐 범위를 최대한 좁혔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시종들은 곧바로 권한울에게 복종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일반인들을 지배했습니다.> <권속혈의 지배력이 강화됩니다.> <구현화 조건을 일부 만족합니다.> <순혈 지배 : 2/10>

<상위 권속 지배 : 3/20> <일반인 지배 : 7/30>

허공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권속혈의 근원을 구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집단을 만드는 것이다.

평범한 집단으로는 안 된다. 권속혈이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지배해야 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혈족과 달리 일반인은 지배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아를 잃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진혈의 지배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내일까지 블라가 가문의 조직도와 구조에 대해서 정보를 모아서 가져오세요.”

권한울은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 * *

그날 밤, 권한울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이 깊어지고 보름달이 뜰 무렵이었다.

권한울이 자고 있던 방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열린 문으로 몇몇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권한울이 누워 있던 침대를 둘러쌌다.

기이하게도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는 동안 어떤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소리 자체가 소멸한 것 같았다.

이들 중 한 명이 머리카락처럼 얇은 침을 꺼냈다. 그리고 단숨에 침대에 누워 있는 권한울의 이마에 내리꽂았다.

이마에 내리꽂자마자 침은 독이 되어 스며들었다.

괴한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이내 침대에서 물러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어딜 가시려고?”

그때, 권한울의 목소리가 저들을 붙잡았다.

어느새 권한울이 침대에서 일어나 있었다.

“잠자는 사람을 깨웠으면 사과를 하고 가셔야지.”

권한울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괴한 중 한 명이 믿기 힘들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아, 그 독침?”

권한울은 자신의 미간을 손으로 쓸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독 때문에 검게 변색되어 있던 피부가 정상으로 어느새 정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내가 몸이 좀 튼튼해서.”

괴한들이 사방으로 전개했다. 권한울을 둘러쌌다.

“멍청하군.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내일까지는 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자신감에 넘치는군. 내 실력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그 말에 괴한들은 비웃음을 터트렸다.

“족쇄에 묶여 있는 놈이 우리를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철컥.

매마른 소리와 함께 권한울의 손목을 묶고 있던 족쇄가 땅에 떨어졌다.

다들 멍한 얼굴로 족쇄와 권한울을 번갈아 쳐다봤다.

“……어떻게 한 거지?”

“내가 머리가 좀 좋아서.”

권한울은 힐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메시지를 읽엇다.

<천재혈이 유물의 구조를 파악합니다.> <유물의 잠금을 해제합니다.>

줄곧 족쇄에 묶여 있어서 답답했던 손목을 풀고 있을 때였다.

“……그래봤자 소용없다.”

권속들이 권한울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 실력으로는 우리들 중 한 명을 어쩌지도 힘들 테니까.”

“그러니 얌전히 죽어라.”

“최소한 고통 없이 죽여 주마.”

권속들이 한 마디씩 꺼냈다. 이번에는 권한울이 웃을 차례였다.

“한 명도 어쩌지 못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들어보지 못한 건가?”

“들어봤다.”

가장 가까이 있던 권속이 말했다.

“호세 딜 파블로를 죽이고, 마리아 산체스를 상대로 버텼다지. 대단한 업적이기는 하지만 전부 다 믿기에는 너무 과장이 심하더군.”

“과장?”

권한울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네놈은 천공투기장에 참가할 예정이었지. 그렇다면 세 개의 능력치가 S급일 터. 그런 수준으로 호세 딜 파블로와 마리아 산체스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진실이라고 해서 모두가 믿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이라 해도 너무 허무맹랑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법.

이들은 권한울에 대한 소문이 과장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조용히 죽어라.”

권속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었다. 권한울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이거 억울해서라도 능력치를 올려야겠네.”

그런 뒤,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권한울의 뒤에 서 있던 권속이 달려들었다. 품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적색 오러가 허공을 갈랐다. 권한울의 목을 단숨에 베었다.

목이 베이기 직전, 권한울의 손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권속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유격식 궐차(柳擊式 蹶跐)

권속의 팔을 붙잡은 채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권속은 등부터 땅에 부딪혔다.

“컥!”

권한울은 곧바로 권속의 목을 짓밟았다. 권속의 눈동자가 빠질 듯이 커졌다가 뒤집혔다.

“댁들이 이렇게 나서 주면 나야 편하지.”

안 그래도 저택을 감시하고 있는 권속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우리 약속 하나 할까?”

권속혈에 의한 지배는 당사자에게 그럴 마음에 들게 하는 게 핵심이다.

말로 설득해도 좋고, 재물로 회유해도 좋다. 혹은 폭력을 행사해도 상관없다.

“지금부터 지는 사람은 나한테 복종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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