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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34화 (134/221)

<혈통이 깡패임 134화>

134. 창과 창 (1)

“카탈리나 블라가……?”

권한울은 놀라서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게 저택에 남아 계시지. 괜히 돌아다니셔서 늦게 찾아냈잖아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권한울을 질책했다. 권한울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왜 자신이 저 여자에게 혼나야 한단 말인가.

“귀하신 분께서 나타나셨군요.”

그때, 권찬성이 입을 열었다. 블라가 가문의 실세를 눈앞에 두고도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였다.

“그런데 좀 늦으신 것 같습니다. 가문이 다 파괴된 다음에야 얼굴을 비추시면 어쩝니까.”

“맨얼굴로 손님을 맞이할 수 없잖아요? 준비하느라 좀 늦었어요.”

“뭐 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에 시간을 허비하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권찬성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어차피 이제 곧 죽을 사람이 말입니다.”

“어머, 무서워라. 이제 거리낄 게 없으니까. 막말 하시는 거 봐.”

카탈리나 블라가도 똑같이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깜짝 놀랐어요. 그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거든요.”

“제 아버지께서는 일을 뒤로 미루는 분이 아니시거든요.”

권찬성이 턱을 쳐들며 말했다. 은연중에 자부심이 묻어나왔다.

“근데 방법이 너무 거치네요. 권선우 회장님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이미 생각해 놨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권찬성이 고개를 돌려 권한울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시나리오의 주연 배우는 여기 있는 우리 권한울 동생이죠.”

“그거 참 영광이네요.”

권한울이 툴툴거리며 받아쳤다. 권찬성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동생은 블라가 가문에 납치가 되었어. 카탈리나 블라가는 동생을 유혹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신적인 고문을 가했어. 하지만 동생은 끝끝내 버텨 냈지. 내가 도착할 때까지 말이야.”

아주 잘했어. 흑천의 혈족다운 기개와 절개야.

권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내가 동생을 구출해 냈을 때는 이미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이 파괴되어 버린 뒤야. 나는 어쩔 수 없이 바보가 된 동생을 데리고 가문으로 귀환한다는 이야기지.”

“목숨은 살려 주신다니 퍽이나 감사합니다.”

권한울이 조롱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권찬성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아주 불쾌한 미소였다.

“동생,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군. 이 시나리오에서 동생은 바보가 되어야만 해.”

권찬성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어떻게 바보가 될지는 걱정하지 마. 내가 겉의 피부는 내버려두고 내장만 터트리는데 일가견이 있거든. 똑같은 요령으로 뇌만 터트리면 동생은 죽지 않아도 돼.”

죽이지 않고 살려서 데려간다.

단, 권한울의 뇌를 파괴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산송장으로 만들어서.

“마음에 안 드는 시나리오네요.”

“주연배우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니 섭섭하군. 그래도 동생에게 수정권한은 없다는 걸.”

“회장님이라면 이딴 개수작은 금방 알아차릴 텐데요.”

“합당한 지적이군. 하지만 동생, 어차피 회장님을 완벽하게 속여 넘기는 것은 불가능해. 내가 하려는 건…….”

“알아도 꼬투리를 잡을 수 없게 상황을 조작하는 거죠.”

갑자기 카탈리나 블라가가 말했다. 권찬성이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나도 최근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요. 우리 둘 다 통하는 면이 있었네요.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가디건을 벗었다. 그리고 소매부터 하나씩 개기 시작했다.

“카탈리나 블라가. 설마 나랑 해볼 생각입니까.”

“당연한 걸 물어보고 있네요. 모처럼 정말 마음에 든 남자인데. 백치로 만들 수는 없잖아요?”

어이가 없다는 듯 권찬성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멍청한 년. 상황 파악이 그렇게 안 돼? 주변을 둘러봐. 지금 네 년의 가문이 어떻게 되었지?”

건물들은 무너져 내리고, 수많은 혈족과 권속들이 살해당했다.

이렇게 말하는 지금도 파괴와 학살은 계속 진행이 되고 있었다.

“가문이 망했으면 남아 있는 식솔들을 데리고 도망칠 것이지. 뭐라고? 권한울을 내버려 둘 수 없어?”

헛웃음은 결국 폭소로 바뀌었다.

“수백 년 동안 이 남자 저 남자 가리지 않고 덮친 창녀 주제에 이러면 쓰나. 걸레답게 행동하란 말이야.”

“귀하게 자라신 분치고는 말이 험하네요.”

차마 듣기 힘든 폭언이 이어졌음에도 카탈리나 블라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뭘 잘못 알고 계신 거 같네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이 망하다뇨. 건물이야 다시 일으켜 세우면 될 일인데. 말이 너무 험하시네요.”

“부서진 건물은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죽은 네 년의 가솔들은…….”

그때, 카탈리나 블라가가 곱게 접은 가디건을 뒤로 내밀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한 남성이 나타나서 그 가디건을 받았다.

“아끼는 물건이니까. 잘 가지고 있어야 해요. 알았죠, K?”

“명을 받들겠습니다.”

권찬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심장을 터트려서 죽였던 크리스 벤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권찬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K의 가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무언가에 찔린 상처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K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잊으셨나보네요. 우리 블라가 가문은 환상뿐만 아니라 재생력으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을요.”

“난 분명 저놈의 심장을 터트렸다. 아무리 권속혈이라지만 그런 중상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할 텐데?”

“다들 그렇게 알고 있죠.”

카탈리나 블라가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일부러 권속혈의 재생력을 낮춰서 세간에 퍼트렸거든요. 그래야 다들 방심할 테니까요.”

그 말대로 권찬성은 권속혈의 재생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K를 확실하게 죽이지 못했다.

덕분에 K는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도 불과하고 살아서 귀환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쯤 쓰러져 있던 혈족과 권속들이 모두 부활했을 거예요.”

파괴된 것은 건물뿐.

블라가 가문의 혈족은, 권속의 대다수는 아직 살아 있다.

“하…….”

권찬성이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소용없다. 그래 봤자 내 부대원들과 블라가 가문 사이의 격차는 어쩔 수 없어.”

토끼가 백 번 되살아난다 해도 사자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똑같이 블라가 가문의 권속들이 아무리 경악스러운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흑기대와 맞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장을 터트려도 안 죽는다면 머리를 뜯어 주지. 그래도 안 죽으면 전신을 불태워 주지.”

협박이 아니었다.

권찬성은 흑기대의 대장이다. 그렇기에 흑기대원들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심장을 뜯어내도 재생하는 능력?

놀랍기는 하지만 흑기대원들은 그보다 더한 존재들과 무수히 많이 싸워 왔다. 곧바로 대처법을 생각해 내고 실행하리라.

“누가 싸워 준다고 했나요.”

그때, 카탈리나 블라가가 말꼬리를 잘라 냈다.

“기껏 간수한 목숨을 당신들 같은 괴물이랑 싸우는데 쓸 수는 없는 노릇이죠. 벌써 다 도망쳤을 거예요.”

권찬성은 인상을 썼다. 도망이라고?

현명한 판단이었으나 어딘가 수상쩍었다. 저 속이 새까만 여자가 이렇게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블라가 가문의 진짜 전력은 권속들도, 몬스터들도 아니에요.”

“알고 있다. 블라가 가문의 가장 강력한 능력은 환상이지.”

블라가 가문의 권속혈은 다른 생명체의 정신을 조종하는 혈통이다.

“이미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왔다.”

권찬성은 물론이고 흑기대 전원이 정신을 강화하고, 환상을 지우는 유물로 무장한 상태였다.

괜히 블라가 가문의 혈족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게 아니었다.

사실 유물은 어디까지나 만일을 대비해서 준비해 놓은 것들일 뿐이다.

사람의 정신을 지배, 간섭, 현혹시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어중간한 헌터라면 모를까. 흑기대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헌터들의 정신에 간섭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머.”

그렇게 생각했다.

“권찬성 님, 언제 허벅지에 그런 상처를 입으셨나요?”

권찬성은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허벅지에 칼로 베인 듯한 자상이 나 있었다.

찌릿한 통증과 함께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권찬성은 멍하니 상처를 바라봤다. 상처가 커서?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상처라서 그랬다.

“아니다. 내가 잘못 봤구나.”

카탈리나 블라가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엇? 그런데 무겁지 않으세요? 뭔가가 권찬성 님을 꽉 붙잡고 있잖아요.”

권찬성의 눈을 깜빡인 순간, 나무뿌리들이 권찬성의 온몸을 옮아 매고 있었다.

환상이다.

권찬성은 일부로 혀를 깨물었다. 입안에 번지는 통증에 의지하며 환상에서 깨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무뿌리가 몸을 조이는 감촉만 강해질 뿐이었다.

“힘들어 보이니 치워 드릴 게요.”

별안간 나무뿌리가 사라졌다. 권찬성은 카탈리나 블라가를 노려봤다.

그때였다.

땅이 뒤흔들린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그녀의 발밑에 어둠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무수히 많은 괴물이 나타나서 아가리를 벌렸다. 마치 지옥을 구현한 듯한 모습이었다.

환상이다. 거짓이다. 가짜다.

알고 있음에도 권찬성은 저 풍경을 시야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깟 유물들로 권속혈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다른 혈족들은 몰라도 우리한테는 통하지 않아요.”

우리.

그게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권찬성은 곧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블라가 가문을 대표하는 12인의 원로들.

어느 가문이나 원로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블라가 가문의 원로들은 더욱 특별하다.

그들은 블라가 가문이 설립된 초창기부터 존재했으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괴들이다.

“지금쯤 다들 전장에 나섰겠네요.”

그때, 저 멀리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권찬성은 곧바로 깨달았다. 이건 블라가 혈족의 비명소리가 아니다.

흑기대원들의 비명이었다.

* * *

“……인정하지. 블라가 가문을 너무 우습게 본 것 같군.”

“이상하게 다들 뒤늦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러니 지금부터는 진지하게 상대해 주지.”

“어머, 그래요? 어떻게 상대해 주실 건데요?”

그 순간, 권찬성이 움직였다. 한 걸음만 움직였을 뿐인데. 어느새 카탈리나 블라가의 코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권찬성의 손날에 용투기가 휘감긴다. 얼핏 보면 권강으로 착각할 만큼 선명한 오러였다.

권속혈의 권능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다면 환상을 펼치기 전에 죽이면 된다.

카탈리나 블라가의 가슴 정중앙을 향해서 손날을 내질렀다. 흠잡을 곳 없이 예리한 공격이었다.

“어머.”

그 공격을.

“여자의 가슴을 함부로 만지려들면 안 되죠.”

카탈리나 블라가는 너무나 쉽게 붙잡았다. 다섯 손가락이 용투기를 으스러트렸다. 권찬성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이건 우리 가문을 건드린 벌이에요.”

권찬성의 몸이 쑥 딸려 왔다. 몸이 허공에 뜨는가 싶더니 땅바닥에 처박혔다.

아픔은 크지 않았다. 다만 온몸이 뒤흔들리는 탓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권찬성은 팔로 땅을 때리며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치켜든 순간, 권찬성은 보았다. 공을 차듯이 한쪽 발을 뒤로 빼고 있는 카탈리나 블라가의 모습을.

“얍!”

장난스러운 기합소리와 함께 카탈리나 블라가는 권찬성의 머리를 걷어찼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장난스럽지 않았다.

충격이 권찬성의 머리를 강타했다. 눈과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몸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떨어졌다.

“어때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걷어찼던 다리를 천천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만만치 않죠?”

권찬성은 피투성이가 된 머리를 들어올렸다. 방금 그건 환상 따위가 아니었다.

카탈리나 블라가.

블라가 가문의 실질적인 지배자라고 불리는 여인.

그녀는 환상뿐만이 아니라 육신의 능력까지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괴물 같은 년.”

권찬성은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그리고 카탈리나 블라가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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