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43화>
143. 새로운 혈통 (1)
사인을 받아든 헨리코 빅핸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계획과 다르잖아.”
금발의 사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블루로즈 길드의 참가자인 알렝 드 버였다.
“권한울의 명성이 진짜가 맞는지 확인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안경을 쓴 동양인, 코토 히사시가 알렝 드 버의 말에 동의했다.
“네가 권한울. 우리가 뒷처리를 하기로 했을 텐데.”
대머리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리카의 수호자 바바 보아텡이었다.
세 명 모두 이번 천공투기장에 참가하는 유망주들 중에서도 실력자라고 평가받는 이들이었다.
원래 헨리코 빅핸드는 사인 따위를 받기 위해서 권한울에게 접근한 게 아니었다.
세간에 퍼져 있는 활약상이 진짜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헨리코 빅핸드가 권한울을 맡고 나머지 세 명이 권하울의 팀원들을 맡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이봐, 왜 말을 안…….”
알랭 드 버가 허리를 숙여 헨리코 빅핸드를 쳐다봤다. 그 순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헨리코 빅핸드.
그 강직하던 남자의 얼굴이 잔뜩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왜, 왜 이래?”
헨리코 빅핸드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와인병을 집어들었다. 통째로 입에 넣고 들이켰다.
그걸로 부족했는지. 이번에는 위스키 병을 집어든 뒤에 입에 퍼부었다.
“……뭔가 이상하다.”
“무슨 소리야?”
“저 남자…… 뭔가 이상해…….”
천공투기장의 참가자들은 전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공투기장의 참가조건은 S급 능력치 세 개다. 능력치가 고정되어 있는 상태기 때문에 개개인의 격차가 크지 않았다.
물론 재능의 차이, 스킬의 숙련도, 장비 등등.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서 실력이 갈리기는 한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서로의 수준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헨리코 빅핸드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뭔가…… 뭔가가…….”
권한울에게 다가가는 도중에는 몰랐다.
권한울을 마주 보고 말할 때도 느끼지 못했다.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려고 했을 때.
권한울에게 시비를 걸려던 찰나.
“뭔가가…….”
나타났다.
괴물 같은 무언가가, 뭐라고 형용하기 힘들 만큼 섬뜩한 무언가가.
온몸이 굳어 버렸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가문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뒤돌아서 도망쳤을 것이다.
때마침 동생이 부탁했던 사인이 생각났던 덕분에 그 자리를 무마시킬 핑계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난 이번 천공투기장에서 참가하지 않겠어.”
헨리코 빅핸드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세 명은 서로를 쳐다봤다. 모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 *
바벨 가문의 참가자 사샤 바벨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부터 파티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자리의 주인이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게다가 바벨 가문은 세계적인 위세를 갖추고 있는 가문이다. 이곳에 모인 어떤 참가자들의 세력도 바벨 가문에 비할 수 없다.
있다면 권한울뿐이리라. 그의 뒤에는 흑천 그룹이 있으니 말이다.
“하여간 남자들은.”
메이홍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처럼 보였지만.
“다들 넋이 나가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거 좀 보세요. 멍청이들도 아니고.”
사샤 바벨에게 몰려든 사람들 중에는 남성의 비율이 높았다. 그 중에는 사샤 바벨에게 푹 빠져 있는 사람도 더러 존재했다.
“그래도 우리 팀의 남자들은 안 그래서 기쁘네요.”
그 말에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으며 후돈이를 가리켰다.
“한울아 저기 봐봐! 안젤라 후크야! 활을 1km밖에 있는 풍선도 터트릴 수 있는 활의 명수야!”
남성 참가자들을 다 훑어본 권후돈은 이제 여성 참가자들을 보며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후돈 오빠야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요.”
메이홍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근데 가엘이 안 보이네요.”
“아 저쪽에 있어요.”
권한울은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음식을 가지러 갔던 가엘 가르시안이 여자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환수혈을 가지고 계신다는 그분 맞죠?”
“가르시안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라던데 진짜인가요?”
여자들은 가엘 가르시안에게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어라, 가엘이 의외로 인기가 많네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가엘 가르시안은 선이 굵고 눈빛이 날카로운 미남이었다.
여자들에게 잘 먹힐 만한 외모였으나 저 과도한 관심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 길드로 오는 게 어때요? 가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해 줄게요.”
“그 정도는 우리 가문도 할 수 있어요. 우리 가문으로 와요.”
저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가엘 가르시안이 보유하고 있는 혈통이었다.
이미 세력이 확실한 다른 혈통과 달리 환수혈은 그 기반이 무척 약하다. 그러니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메이홍한테도 저런 제안이 오지 않았나요?”
메이 가문은 현재 멸문했다. 잔당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 판국이니 수라혈을 가지고 있는 메이홍을 탐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없더라구요.”
그러나 메이홍은 고개를 저었다. 권한울이 그 대답을 의아하게 생각할 때였다.
“메이홍?”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턱수염이 부슬부슬한 남자가 메이홍의 앞에 앉았다.
“괜찮다면 시간을 좀 내줬으면 좋겠군. 내가 그쪽에 관심이 좀 많거든.”
남자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
메이홍은 그런 남자를 말없이 쳐다봤다. 무척 싸늘한 눈빛이었다.
“거절해도 좋으니 대답을 해 줬으면 좋겠군.”
“…….”
“아, 혹시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나는…….”
“…….”
메이홍은 관심 없다는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미, 미안하게 됐어.”
결국 남자는 메이홍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다.
“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죠?”
메이홍의 물음에 권한울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그러고 보니 메이홍이 아직 권한울의 팀원이 되기 전에는 어느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않았다던가.
“메이홍.”
“왜 그러세요?”
“그냥 불러 봤습니다.”
“뭐예요.”
메이홍이 항의하듯이 말했다. 권한울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 * *
“하아…….”
사샤 바벨은 지쳤다는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까지 귀찮게 달라붙는 남자들을 상대하느라 피곤해 죽을 맛이었다.
“사샤 님, 마, 많이 피곤해보이시네요.”
샤힌 라사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사샤 바벨은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아직은 괜찮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샤힌 라사드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샤힌 님께서는 계속 여기 앉아 계셨던 건가요?”
“예, 옙! 사, 사샤 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괜찮으니 가서 즐기고 오세요.”
“아, 아니에요. 저는 이대로도 조, 좋은 걸요.”
샤힌 라사드는 슬쩍 사샤 바벨을 쳐다봤다. 사샤 바벨은 주변을 둘러보느라 샤힌 라사드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가주…… 아니, 알리아는 어디로 갔죠?”
“알리아 님이라면 저기 계세요.”
사샤 바벨은 샤힌 라사드가 가리킨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얼굴을 확 구길 수밖에 없었다.
“어머, 그렇게 멋진 성을 가지고 계시다니 부럽네요.”
“하하핫, 별 거 아닙니다. 기회가 되면 초대해 드리겠습니다.”
“저야 언제든지 좋죠. 기다리고 있을 게요.”
바벨 가문의 가주 달리아 바벨…… 아니, 알리아 다비는 젊은 남자 헌터를 붙잡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오크로드를 한 번에 베어 내셨다고요? 그게 가능한 가요?”
“저한테는 쉬운 일이죠. 자, 보십시오.”
“어머, 어머!”
남자 헌터는 팔뚝을 내보였다. 알리아 바벨은 손으로 입가를 감싸고 수줍어했다.
“……샤힌 님.”
“네.”
“……지금 보신 광경은 꼭 잊어 주세요.”
“네.”
사샤 바벨은 머리를 움켜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괴로워하는 사이 알리아 다비는 남자 헌터를 떠나보내고 자리로 되돌아왔다.
“요즘 어린애들은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구나. 겨우 오크 로드를 잡은 걸로 저렇게 호들갑을 떨다니.”
알리아 다비는 꺄르륵 웃었다. 사샤 바벨은 그런 가주를 흘겨봤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니?”
“……아무 것도 아니에요.”
“너도 여기 이렇게 앉아 있지 말고 가서 어울리렴. 잘생긴 남자 한 명 낚아채도 좋고.”
그 말에 사샤 바벨의 몸이 들썩거렸다. 샤힌 라사드도 깜짝 놀라서 알리아 다비를 쳐다봤다.
“알리아! 샤힌 님이 듣고 있잖아요!”
“내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니? 너도 남자는 만나봐야 할 거 아니야. 근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람.”
알리아 다비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사샤 바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가주님. 직접 보시니 어떠세요?”
“다 쓰레기들뿐이구나.”
알리아 다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천공투기장의 참가자 중에서도 상위권만 골라서 초대했는데. 왜 이렇게 수준이 뒤떨어지는지 모르겠어.”
어느새 알리아 다비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싸늘한 눈빛으로 참가자들을 품평했다.
“이대로 가면 네가 우승하겠구나.”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가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내 판단을 너무 믿지 마렴. 초대에 응하지 않은 참가자들도 많잖니? 게다가 이번 천공투기장에는 드래곤슬레이어의 제자가 참가한다는 소문이 있어.”
드래곤슬레이어라는 말에 사샤 바벨의 얼굴이 굳었다.
바벨 가문은 강대하다. 어떤 세력도 감히 맞설 생각을 못할 정도로.
하지만 최강은 아니다. 흑천 일가처럼 바벨 가문과 비견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력이 아니라 개인으로 바벨 가문과 맞먹는 자도 존재한다.
그가 바로 드래곤슬레이어다.
칭호에서 알 수 있든 드래곤슬레이어는 용종 몬스터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헌터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드래곤슬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프트에 있다.
용종 몬스터의 모든 능력치를 제한해 버리는 이 기프트는 드래곤의 혈통을 잇고 있는 바벨의 혈족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게다가 저 아이도 만만치 않던 걸.”
알리아 다비의 시선이 저 멀리 있는 남자에게 꽂혔다.
권한울.
흑천 일가에서 온 참가자였다.
사샤 바벨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사실 그녀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참가자가 바로 권한울이었다.
세간에 들려오는 여러 가지 소문들.
그 중에서 반만 진실이어도 사샤 바벨은 권한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저 남자가…… 그렇게 강한가요?”
“모르겠구나.”
“예?”
알리아 다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수가 없구나. 자신의 기운을 놀라울 만큼 깔끔하게 숨기고 있어.”
알리아 다비가 아무리 불치병 때문에 모든 힘을 잃었다지만 그래도 한때는 최강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던 이물이다.
그런 알리아 다비의 감각으로도 측정할 수 없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저 남자에 대한 소문들이 모두 진짜일 수도 있겠어.”
알리아 다비는 한동안 권한울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러다 사샤 바벨을 돌아보며 물었다.
“사샤, 저 남자는 신랑감으로 어떠니?”
쿨럭.
샤힌 라사드가 기침을 터트렸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두 여자를 쳐다봤다.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세요.”
“마음에 안 드니?”
“그 이전에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사샤 바벨이 벌컥 화를 냈다. 그제야 샤힌 라사드는 안심했다.
“하지만 그게 가문을 위한 일이라면 따를게요.”
안심했다가 다음에 이어지는 사샤 바벨의 말에 또 다시 기겁했다.
“가주님이 안 계실 때를 대비해서 우수한 종자를 원하시는 거잖아요.”
“사샤. 너는 다 좋은데. 내 말을 너무 과대해석하는 게 문제야. 나는 그냥 괜찮은 남자라서 물어본 거뿐이란다.”
알리아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갔다올게.”
“어디를 가시려고요?”
“가까이 가서 자세히 확인해 보려고.”
“뭐, 뭘 확인하신다고…… 자, 잠깐만요!”
사샤 바벨이 말리기도 전에 알리아 다비는 권한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어느 순간부터 권한울의 시선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메이홍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딜 그렇게 쳐다보세요.”
“아, 저 여자를 보고 있었습니다.”
권한울은 알리아 다비를 가리켰다. 메이홍은 알리아 다비를 살피다가 물었다.
“저런 얼굴이 취향이세요?”
“예?”
“하연 언니랑 스타일이 약간 다른 거 같은데…… 하연 언니가 아시면 삐지실 걸요.”
“그런 게 아니라…….”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말문이 막혔다.
권한울이 알리아 다비를 쳐다본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뭔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알리아 다비에게서 느껴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함 때문이었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불을 붙이기라도 하면 모든 걸 날려버릴 폭탄을 보는 듯 했다.
“글쎄요?”
그러나 메이홍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권한울은 혼란스러웠다. 혹시 자신이 뭘 잘못 느낀 건가.
“어?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데요?”
그때, 메이홍이 놀라서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알리아 다비가 권한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알리아 다비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권한울 님이죠? 소문은 많이 들었어요.”
알리아 다비가 악수를 청했다. 권한울은 그 손을 함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불길함이 더욱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천길 낭떠러지를 낡은 다리에 의지해서 건너는 기분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발을 헛디디면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왜 그러시나요?”
알리아 다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권한울은 이를 악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그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