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44화>
144. 새로운 혈통 (2)
<‘???’가 ‘용심혈(龍心血)’의 기운을 감지합니다.>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권한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용심혈? 바벨의 혈통이 갑자기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이 여자는 사샤 바벨의 친구일 뿐인데.
‘정체를 숨긴 건가?’
그렇다면 대체 왜 정체를 숨겼단 말인가? 그럴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나저나…… 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지?’
분명히 섬뜩할 만큼 강렬한 불길함이 느껴지는데. 정작 여인에게서는 어떤 마력이나 기운도 감지되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힘을 숨길 정도의 고수인 건가?’
권한울은 복수의 혈통을 보유하고 있다. 그 혈통들의 감각을 모두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용심혈(龍心血)’을 습득합니다.>
<‘드래곤하트’를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완료까지 약 100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드디어 용심혈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별안간 저절로 움직이는 마력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재혈(天才血)’이 마력을 움직입니다.> <대상의 구조를 파악합니다.>
천재혈에 의해 움직인 마력이 알리아 다비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마력이 움직일 때마다 권한울의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건……?’
알리아 다비의 신체 구조였다.
뼈를 중심으로 근육이 퍼져 있었다. 그 밑으로 수백, 수천 가지의 혈관이 보였다.
그리고 혈관들 사이로 검은 선들이 보였다.
‘마력통로?’
헌터들이 마력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마력통로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마력통로가 꽉 막혀 있었던 것이다.
‘일반인이라는 뜻인가?’
권한울이 의문을 가질 때였다. 모든 마력통로가 모이는 심장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
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 정도로 알리아 다비가 지니고 있는 마력은 강대했다.
강대한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황금을 녹여놓은 것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런 마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마력통로가 막혀 있는 거지?’
권한울이 의문을 떠올렸을 때였다.
“언제까지 잡고 계실 건가요?”
알리아 다비의 목소리가 권한울을 깨웠다.
“아, 죄송합니다.”
권한울은 황급히 알리아 다비의 손을 놓았다. 알리아 다비는 손을 매만지다가 웃었다.
“제 손이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한참동안 쪼물락거리시는 걸 보니까.”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저런 얼굴로 아저씨나 할법한 소리를 할 줄은 몰랐다.
“알리아 다비 양?”
“왜 그러세요?”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혹시 번호를 물어보시려는 건 아니죠?”
또 다시 나온 소름끼치는 농담에 권한울은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혹시 질병을 앓고 계십니까?”
그 순간, 알리아 다비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윽고 경계심어린 눈빛으로 권한울을 노려봤다.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거죠?”
“죄송합니다. 실례되는 질문이었군요.”
“당연하죠.”
알리아 다비는 몸을 홱 돌려서 사라졌다. 그녀를 노려보며 메이홍이 화를 냈다.
“뭐 저렇게 무례한 여자가 다 있대요.”
권한울은 알리아 다비의 등을 가만히 바라봤다.
저 행동으로 확실해졌다.
알리아 다비의 신체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다.
* * *
15세가 되던 생일날.
라사드 가문의 순혈 혈족 샤힌 라사드는 영원히 잊지 못할 첫사랑을 만났다.
-사샤 바벨이라고 해요.
문제는 그 사랑의 대상이 바벨 가문의 혈족이라는 점이었다.
그것도 그냥 혈족이 아니었다. 바벨 가문의 여가주 달리아 바벨이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전수할 전인으로 삼은 여자였다.
몇십 년 뒤에는 바벨 가문을 지탱할 기둥이 될 것이 확실한 그런 여자였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사랑의 열병을 잠재우기에 샤힌 라사드는 너무나 어렸다.
결국 전전긍긍하다가 할아버지 압둘 라사드에게 털어놓았다.
-포기해라.
압둘 라사드는 고민 없이 그렇게 말했다.
-라사드 가문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 특정 가문과 가까이 지낼 수 없다.
라사드 가문이 지닌 천재혈은 굉장히 뛰어난 혈통이다.
천재혈의 조율을 받은 헌터는 전투력이 최대 1.5배까지 상승한다. 그뿐만 아니라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특수한 질병들을 낫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탐을 내는 곳이 많았다. 자칫 잘못하면 가문은 공중분해되고 혈족들은 다른 세력의 노예가 되었을 것이다.
그걸 라사드 가문은 원래 아랍의 왕족으로서 가지고 있던 막대한 재력과 중립선언으로 극복해 냈다.
-게다가 라사드 가문과 바벨 가문은 혈통을 가지고 있다. 혈통을 가지고 있는 가문끼리 혼담을 맺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가문들이 가장 경계하는 일은 혈통이 유출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압둘 라사드는 냉담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포기해라.
하지만 여기까지는 라사드 가문의 어른으로서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정 포기할 수 없다면 노력이라도 해 보려무나.
할아버지로서 손자에게 하는 조언은 달랐다.
-사내로 태어났으면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법이지.
압둘 라사드는 인생의 선배로서 쌓인 경험을 이야기 해줬다.
-사샤 바벨 양의 취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힘으로 어필할 생각은 집어치워라.
당연했다. 천재혈은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혈통이다. 반면 용심혈은 세계에서 최상위권의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는 혈통.
-너는 너만의 능력으로 싸워야 한다.
샤힌 라사드만의 능력.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천재혈이 너의 무기이자 장점이다. 너의 필요성을 어필해라.
할아버지에게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샤힌 라사드는 어떻게 해야 사샤 바벨에게 자신을 어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루하루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바벨 가문의 파티가 열리는 날이 됐다.
-사샤, 저 남자는 신랑감으로 어떠니?
그리고 이곳에서 샤힌 라사드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세요.
-마음에 안 드니?
-그 이전에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두 여인의 대화에 샤힌 라사드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하지만 그게 가문을 위한 일이라면 따를게요.
그리고 사샤 바벨의 대답을 들었을 때, 샤힌 라사드는 깨달았다.
위험하다! 고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샤 바벨은 지금이라도 당장 다른 남자에게 가 버릴 수 있다!
불안함은 조급함을 불러왔다. 조급함은 무모함을 불러왔다.
-너는 너만의 능력으로 싸워야 한다.
샤힌 라사드는 할아버지의 조언을 다시 되새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려구요?”
사샤 바벨이 놀라서 물었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오려구요.”
사실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었지만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샤힌 라사드는 파티장 한 가운대로 향했다.
다짜고짜 조율사임을 밝혀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경계심만 불러올 뿐.
샤힌 라사드는 참가자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봤다. 그러다 얼굴을 구긴 채 배를 쓰다듬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샤힌 라사드가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남자는 인상을 쓴 채 고개를 돌렸다.
“어린애?”
“샤힌 라사드라고 해요. 라사드 가문의 3급 조율사직을 맡고 있어요.”
라사드 가문, 조율사라는 말에 남자의 얼굴이 달라졌다. 냉큼 자세를 바로 잡았다.
“라, 라사드 가문의 조율사께서 제게 무슨 볼일이신지…….”
“문제가 생기신 것 같아서요. 혹시 배탈이 나신 건가요?”
남자는 쑥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헌터가 튼튼하기는 하지만 내부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결국 인간이기에 과식을 하면 탈이 났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게 손목을 보여 주시겠어요?”
남자는 망설임없이 손목을 내밀었다. 라사드 가문과 조율사의 명성은 헌터 업계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어린애가하는 소리라 해도 곧바로 믿을 만큼.
“마력을 조금 주입할 게요.”
샤힌 라사드는 남자의 손목을 움켜잡고 마력을 흘려보냈다.
마력은 저절로 움직이며 남자의 몸을 쭉 훑어고 사라졌다.
마력이 움직일 때마다 샤힌 라사드의 머릿속에 인체의 지도가 펼쳐졌다. 남자의 몸이 현재 어떤 상태이고, 어떤 점이 문제인지 세세하게 그려졌다.
“잠깐 실례할게요.”
샤힌 라사드는 남자의 등뒤로 이동했다. 의아해하는 남자의 등을 힘껏 때렸다.
“꺼억!”
등을 때리자마자 트림이 터져나왔다. 남자는 깜짝 놀라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제 좀 시원하시죠?”
남자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였다. 천재혈의 명성을 말로만 듣다가 직접 겪어보니 경외심이 차올랐다.
어느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샤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의도한 대로 시선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했다. 샤힌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혹시 또 문제가 있는 분 계신가요? 오시면 제가 봐드릴게요.”
몇몇 사람들이 샤힌에게 다가왔다.
계속 어깨가 아픈 사람, 어깨가 자주 탈골이 되는 사람.
몸이 아픈 사람 말고도 마력의 흐름이 개선되지 않아서 고민인 사람도 있었다.
“자자, 좀만 차분하게 기다려 주세요.”
샤힌 라사드는 능숙한 솜씨로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슬쩍 사샤 바벨이 앉아 있는 쪽을 쳐다봤다. 내심 그녀가 놀라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샤힌 라사드의 기대는 보기 좋게 어긋났다. 사샤 바벨은 다른 헌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것이다.
“힝…….”
샤힌 라사드는 풀이 죽어서 어깨를 늘어트렸다.
“나도 한번 받아 볼 수 있습니까?”
“네…….”
그래도 자신이 할일을 내팽개치지 않았다.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한번 시작한 일을 그만둘 수는…….
“으아악!”
고개를 돌리자마자 샤힌 라사드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조율을 부탁한 사람도 놀라서 눈만 꿈뻑거렸다.
하지만 샤힌 라사드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혀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궈, 권한울?”
말을 내뱉은 순간, 샤힌 라사드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님!”
냉큼 님을 붙였다. 권한울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혹시 제가 실례가 된 겁니까?”
“아, 아닙!”
너무 당황한 탓에 모르고 혀를 깨물고 말았다. 샤힌 라사드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는데요?”
“아픈 건 아니고 제 마력의 흐름을 한 번 조율 받아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권한울은 자리에 앉은 뒤, 손을 내밀었다. 샤힌 라사드는 침을 꿀꺽 삼킨 뒤, 권한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손목을 잡으면서도 갈등했다. 따지고 보면 권한울과 자신은 사샤 바벨을 사이에 둔 라이벌이 아닌가. 그런 남자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건…….
“……어?”
샤힌 라사드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