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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46화 (146/221)

<혈통이 깡패임 146화>

146. 천적 (1)

알리아 다비.

아니, 달리아 바벨은 소파에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안 그래도 창백하던 피부가 핏기가 사라지면서 더욱 새하얗게 보였다. 얼핏 보면 죽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사샤 바벨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수건으로 알리아 다비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사샤.”

달리아 다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언제나 강직하던 눈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말라붙은 우물처럼 짙은 어둠만이 보였다.

“이제 내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나.”

사샤 바벨은 손등으로 눈가를 닦아 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샤, 울지 마렴.”

무척이나 잔인한 말이었다.

사샤 바벨의 부모는 그녀가 어릴 때 임무에 나갔다가 사망했다.

그 이후, 사샤 바벨은 달리아 바벨에게 거둬졌다. 사샤 바벨의 재능이 확인되기 전의 일이었다.

사샤 바벨에게 달리아 바벨은 단순한 스승이 아니었다. 제 2의 어머니였다.

“나는 괜찮아. 오히려 기쁘구나. 죽기 직전에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끝마칠 수 있어서.”

차기 가주의 권력을 위해서 토대를 닦아 놨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이어 가 줄 후인, 사샤 바벨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구나.”

사샤 바벨은 입술을 깨물었다. 달리아 바벨의 손을 꼭 붙잡았다.

“……말씀하세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 가주님의 걱정거리를 해결할게요.”

“정말이니……?”

“네, 제 모든 것을 걸고 약속드릴게요.”

별안간 달리아 바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독한 통증이 다시금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사샤…….”

“듣고 있어요.”

사샤 바벨은 달리아 바벨의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잡았다.

그녀는 다짐했다. 반드시 달리아 바벨의 마지막 남은 한을 풀어주겠다고.

“진짜 언제쯤 남친을 사귈 거니?”

그리고 그 비장한 각오는 달리아 바벨의 말이 들려오자마자 사라졌다.

“내가 너 때문에 편하게 눈을 감을 수가 없구나. 나이도 젊은 애가 맨날 목석처럼 있으니…….”

“가주님 혹시 그게 걱정되신다는 건 아니겠죠?”

“왜 아니겠니. 내가 너 때는 얼마나 많이 놀러 다녔는지 아니? 방에 끌어드린 남자 숫자만…….”

사샤 바벨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후인의 앞에서 남성편력을 자랑하는 달리아 바벨을 보고 있자니 두통이 스멀스멀 치밀어 오른 것이다.

“덜컥 차기 가주로 내정되지만 않았어도 좀 더 즐기고 오는 건데.”

“……예예, 아쉬우시겠어요.”

“그렇게 성의 없이 대답하지 마렴.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그러니 너도…….”

사샤 바벨은 달리아 바벨의 말을 한쪽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그러면서 달리아 바벨의 안색을 살폈다.

태연해 보이는 달리아 바벨의 얼굴과 달리 목덜미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올라와 있었다. 억지로 고통을 참고 있다는 증거였다.

사샤 바벨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가, 가주님!”

그때, 벌컥 응접실의 문이 열렸다. 샤힌 라사드가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샤힌 님. 무슨 일이세요?”

“그, 그게……!”

샤힌 라사드는 침을 꿀꺽 삼킨 뒤 말했다.

“드래곤슬레이어가 찾아 왔어요!”

* * *

드래곤슬레이어 혹은 용살자.

최강의 헌터를 논할 때마다 반드시 거론이 되는 인물이다.

그만큼 드래곤슬레이어는 독보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최강의 헌터로 손꼽히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기프트 때문이었다.

적룡성(敵龍星).

적룡성의 기운에 노출된 용종 몬스터는 모든 능력치가 급감한다. 반대로 적룡성의 보유자는 모든 능력치가 상승한다.

흑천 일가와 바벨 가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용과 드래곤의 힘을 가지고 있기에 적룡성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내 정체를 알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지?”

드래곤슬레이어가 씩 웃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불규칙적으로 돋나난 누런 이가 보였다.

“그렇다고 겁먹지는 마라. 너 같은 애송이를 어쩔 생각은 없으니까.”

드래곤슬레이어는 권한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과거 드래곤슬레이어는 흑천과 맞서고도 살아남았다. 그것도 온몸이 멀쩡한 상태로.

그런 드래곤슬레이어가 권한울 한 명을 신경 쓸 리가 없었다.

“오늘은 우리 제자랑 싸울 놈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나 구경하러 온 것뿐이야.

“거짓말 하지 마세요.”

드래곤슬레이어의 제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고 따지러 오셨으면서.”

“그것도 있지. 내 제자가 왕따를 당하다니! 말이 되냔 말이야. 네가 다른 놈들을 왕따 시키면 모를까.”

드래곤슬레이어는 제자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제자는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대선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때, 권한울이 허리를 숙였다.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이었으나 무시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슬레이어의 명성을 생각하면 예의를 차리는 게 옳았다.

“흐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드래곤슬레이어의 표정이 변했다.

“너는 내가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나.”

파티장에 있는 헌터들은 전부 드래곤슬레이어에게 압도되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천공투기장에 참가하는 루키들뿐만이 아니라 파티장을 지키는 경비원들도 그러했다.

수틀리면 일반인도 죽여 버리기로 유명한 드래곤슬레이어의 잔혹한 성정 때문이었다.

“대선배님께서 저를 해할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겁을 먹겠습니까.”

권한울은 담담히 말했다. 사실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권한울은 이미 권찬성과 맞서 싸운 적이 있다.

물론 권찬성은 드래곤슬레이어보다 약하다. 하지만 권찬성 역시 상식을 벗어난 절대자 중 한 명이었다.

이미 권찬성을 겪어봤기에 드래곤슬레이어에게 압도되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만 궁금하기는 했다.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흑룡혈은 진혈이다. 과연 드래곤슬레이어의 적룡성이 진혈에게도 통할지 말이다.

“역시 흑천의 혈족은 뭐가 달라도 달라. 마노! 봤느냐? 이게 흑천이다. 아주 멋진 친구들이지.”

“알겠으니 목소리 좀 낮추세요.”

제자, 마노가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내 제자랑 좋은 승부가 되겠군. 일부러 파티장에 온 보람이 있어.”

드래곤슬레이는 크게 기꺼워하며 권한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갑작스러운 신체접촉에 권한울이 불쾌감을 느꼈을 때였다.

<‘적룡성(敵龍星)’의 기운이 감지됩니다!> <흑룡혈이 크게 위축됩니다!>

엄청난 기운이 권한울의 전신을 짓눌렀다.

<‘적룡성(敵龍星)’의 영향력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 <체력과 마력이 저하됩니다!>

두 다리가 저절로 구부러진다. 무릎이 땅에 닿는다.

전신의 근육이 덜덜 떨려왔다. 관절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응? 갑자기 왜 이래?”

드래곤슬레이어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순진함을 가장한 얼굴과 달리 눈빛은 지독하리만큼 싸늘했다.

그 태도에 권한울은 이전에 주하연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드래곤슬레이어는 굉장히 야만적인 인물입니다. 수틀리면 일반인조차 죽여 버리죠.

-하지만 동시에 교활합니다. 과거 흑천과 충돌했을 때, 드래곤슬레이어는 결코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흑천에서는 드래곤슬레이어와 전면전에 돌입할 수 없었죠.

“으하하하핫, 우리 젊은 친구. 많이 무서웠나 보지? 이렇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다니 말이야.”

드래곤슬레이어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면서도 권한울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놓지 않았다.

<‘적룡성(敵龍星)’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모든 능력치가 –50% 하락합니다!> <체력과 마력이 대폭 저하됩니다!> 오히려 적룡성의 힘을 더욱 강화시켰다. 권한울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군. 남들이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야. 어서 일어나도록 해.”

드래곤슬레이어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저기요.”

그때였다.

“우리 대장님 어깨에서 손 좀 떼 주시겠어요?”

누군가 드래곤슬레이어의 손목을 붙잡았다.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다.

“……너희들은 또 뭐냐?”

드래곤슬레이어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세 명을 쳐다봤다.

“이분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인데요.”

메이홍이 말했다. 그 말을 권후돈이 받았다.

“한울이를 놔주지 않으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가엘 가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님을 놔주십시오.”

드래곤슬레이어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싫다면?”

드래곤슬레이어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떠올랐다. 지독한 살기가 순식간에 파티장을 가득 채웠다.

살기의 농도가 너무 짙었다. 마치 물속에 빠진 것처럼 숨쉬기가 곤란하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말해. 싫다면 어쩔 생각인데?”

메이홍도, 권후돈도, 가엘 가르시안도 대답하지 못했다. 드래곤슬레이어의 살기를 견뎌 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대답 못하면…… 니들 다 내 손에 죽는다?”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드래곤슬레이어가 내뿜고 있는 살기가 증명을 하고 있었다.

“삼초를 세지. 그 안에 말해. 삼…….”

드래곤슬레이어는 천천히 숫자를 셌다.

“이.”

드래곤슬레이어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변했다

“일.”

그때였다.

“대선배님.”

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목을 꼿꼿이 세운 채 드래곤슬레이어를 향해 말했다.

“제 팀원들이 무례하게 행동했군요.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 모습에 드래곤슬레이어의 얼굴에 일그러졌다.

“……어떻게 일어났지?”

* * *

적룡성에 의해서 온몸이 짓눌리고 있을 때였다.

<진(眞) 흑룡혈이 분노합니다!>

적룡성에 의해서 억눌려 있던 흑룡혈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적룡성의 기운은 너무 강대했다. 진(眞) 흑룡혈조차 압도당할 정도였다.

‘과연…… 흑천에서 경계할 만하다.’

적룡성은 진혈조차 억누른다. 그보다 낮은 순도가 낮은 혈통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권한울이 이토록 심하게 적룡성의 영향을 받은 이유는 두 사람 사이의 격차 때문이었다.

아직 세 개의 능력치만 S급을 찍은 권한울에 비해서 드래곤슬레이어는 세계 최강자로 거론되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능력치가 순식간에 50%까지 깎여 나간 것이다.

‘버겁다.’

하지만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혈통은 흑룡혈뿐만이 아니었다.

<‘아수라왕(阿修羅王)’이 깨어납니다.> <‘초인혈(超人血)’이 포효합니다.> <‘권속혈(眷屬血)’이 반응합니다.>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혈통들은 적룡성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하며 적룡성의 기운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대선배님, 이만 돌아가시죠.”

권한울은 드래곤슬레이어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후배들이 노는 자리입니다. 대선배님께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만 좀 꺼지라는 뜻이었다. 드래곤슬레이어는 인상을 썼다.

“개소리하지 말고 내 질문에나 대답해라. 어떻게 일어난 거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권한울은 너스레를 떨었다.

“아, 혹시 대선배님의 기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별 것도 아니라 금방 적응했습니다.”

적룡성을, 자신의 모든 것을, 별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그 모습에 드래곤슬레이어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났다.

“이 새끼가…….”

금방이라도 손이 나갈 듯한 모습이었으나 드래곤슬레이어는 그러지 않았다.

여기서 손을 쓰는 순간, 정말로 권한울에게 패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그 입을 움직일 수 있나 보자.”

드래곤슬레이어가 마력을 일으켰다. 적룡성의 기운이 한층 더 강해졌다.

<‘적룡성(敵龍星)’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모든 능력치가 –70% 하락합니다!> <체력과 마력이 대폭 저하됩니다!> 다시 한 번 더 마력이 요동친다. 몸이 휘청거렸다.

<‘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적룡성의 기운을 몰아냅니다.> <‘초인혈(超人血)’의 권능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러나 적룡성의 기운이 거세질 수 록 다른 혈통들의 힘도 더욱 강해졌다.

권한울은 휘청거리던 몸을 바로 잡았다. 드래곤슬레이어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제 입이 언제 멈출지 궁금합니다만…… 이래서야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은데요.”

드래곤슬레이어의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적룡성(敵龍星)’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모든 능력치가 –90% 하락합니다!> <체력과 마력이 대폭 저하됩니다!> -90%.

능력치가 거의 바닥까지 깎여 내려갔다. 그러나 권한울의 몸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힘을 얻기 시작했다.

<‘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적룡성의 기운을 몰아냅니다.> <‘초인혈(超人血)’의 적룡성의 기운을 견뎌 냅니다.> 능력치가 대폭 감소했다. 압박감도 심해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

만약 이대로 전투가 시작됐다면 권한울은 바로 죽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대선배님.”

권한울은 드래곤슬레이어를 향해 물었다.

“더 없으십니까?”

그 순간, 드래곤슬레이어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이 애송이가!”

드래곤슬레이어가 권한울의 어깨에서 손을 놓았다. 대신 목을 움켜잡으려고 했다.

그 찰나였다.

“그쯤하시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드래곤슬레이어의 손이 멈췄다.

아니, 드래곤슬레이어는 손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괴한들에 의해서 억지로 손이 멈췄을 뿐이었다.

하얀 갑옷을 입은 헌터들이 드래곤슬레이어의 몸 곳곳에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바벨의 친위대.”

드래곤슬레이어가 그들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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