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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47화 (147/221)

<혈통이 깡패임 147화>

147. 천적 (2)

“가주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정신병자들이 이곳에는 와 있을 줄은 몰랐군.”

친위대는 오직 가주의 명령만을 따르는 직속부대.

그만큼 모든 단원들이 대단한 실력과 광적인 충성심을 갖추고 있다.

드래곤슬레이어조차 무시할 수는 없을 정도였다.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여인이 드래곤슬레이어 앞에 나섰다. 드래곤슬레이어가 그녀를 노려봤다.

“넌 누구냐.”

“사샤 바벨이라고 합니다. 부족한 몸이지만 이번 천공투기장에서 바벨 가문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아, 네가 바로 바벨 가주의 후인이구나.”

드래곤슬레이어가 흥미롭다는 듯 사샤 바벨을 훑어봤다. 흥미 이외에도 끈적한 욕망이 엿보였다.

“생긴 건 제법 반반하군. 그래, 네가 친위대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냐?”

“친위대가 아니면 드래곤슬레이어 님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요.”

사샤 바벨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드래곤슬레이어 님. 바벨은 당신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만 나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였다.

드래곤슬레이어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싫다면?”

“실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죠.”

“으하하핫!”

드래곤슬레이어는 광소를 터트렸다. 친위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 이깟 놈들로 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오만한 말이었으나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바벨 가문의 권세가 막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 남자는 드래곤슬레이어다.

모든 용종 몬스터의 천적이자 유일하게 단신으로 바벨 가문과 맞설 수 있는 헌터.

그런 강자를 친위대 한 부대만으로 저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건 힘들겠죠.”

사샤 바벨조차 그 사실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이 배에는 친위대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그건 또 뭔 소리…….”

순간, 드래곤슬레이어의 고개가 돌아갔다. 저 멀리서 한 여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장을 다르게 한 탓에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자마자 곧바로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했는데. 진짜 가주가 와 있었군.”

아무리 드래곤슬레이어라 하더라도 가주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슬레이어의 기프트 ‘적룡성(敵龍星)’은 가주 정도 되는 절대자에게도 통한다.

하지만 적룡성의 영향력은 실력 차이가 비슷할수록 감소한다.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가주의 실력은 드래곤슬레이어보다 위에 있다. 그 격차는 적룡성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

“가주의 얼굴도 봤으니. 이만 물러나야겠군.”

드래곤슬레이어는 곧바로 살기를 거둬들였다. 곳곳에서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노. 이만 돌아가자.”

“알겠어요.”

드래곤슬레이어는 몸을 돌렸다. 파티장을 떠나기 전, 권한울을 돌아보며 말했다.

“권한울이라고 했지? 이번에는 운이 좋았구나. 하지만 명심해라. 이런 요행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드래곤슬레이어의 목소리에 은은한 살기가 맺혔다.

“자꾸 그딴 식으로 대가리를 쳐들고 살다가는 금방 뒤질 거다.”

“운이 좋은 건 대선배님이시죠.”

그때, 권한울이 입을 열었다.

“때마침 바벨의 친위대가 나타나서 대선배님을 막아 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자기 분에 못 이겨서 새파란 후배를 패 죽인 망나니라고 소문이 퍼졌을 거 아닙니까.”

드래곤슬레이어의 목덜미에 혈관이 돋아났다. 누가 봐도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다만, 충고는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폭발 임계선까지 한 발자국을 남겨뒀을 때, 권한울이 물러났다.

“……그래.”

드래곤슬레이어는 결국 분노를 터트리지 못한 채 속으로 삭혀야겠다.

“다음에 꼭 다시 보도록 하지.”

그 말을 남긴 채 드래곤 슬레이어는 제자와 함께 배를 떠났다.

* * *

드래곤슬레이어가 사라지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다.

“후우…….”

권한울도 예외는 아니엇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적룡성의 기운을 버티느라 적잖게 심력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저런 기프트가 존재할 수 있다니.”

기프트란 극소수의 헌터들만이 타고나는 특수한 재능이다.

흔히 특수한 재능이라 비유가 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재능 따위와는 다르다. 천재성과도 비교할 수 없다.

초능력이라 불러야 할 만큼 신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두들 고생했어요.”

권한울은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다들 너무 무모했어요. 앞으로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는…….”

별안간 메이홍과 권후돈이 권한울에게 달려들었다. 권한울을 꼬옥 끌어안았다.

“대장님!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하, 한울아 나, 나는 또 네가 어,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

권한울은 크게 당황했다. 가엘 가르시안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는 시선을 보냈다.

가엘 가르시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에도 도움이 못 되서 죄송해요…….”

“바, 방패라도 되고 싶었는데…… 몸조차 안 움직이더라…… 미안해…….”

권한울은 양손으로 세 사람의 등을 토닥거렸다.

처음에는 이 둘이 왜 이렇게 과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분 다 블라가 가문 때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움직이셨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가엘 가르시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세 사람 모두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권한울이 블라가 가문에 납치 된 일이 큰 충격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두려움에 맞서면서까지 드래곤슬레이어에게 대든 것이다.

“……하이고.”

권한울은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권한울 씨.”

그때, 별안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샤 바벨이 권한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사고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습니까.”

권한울과 사샤 바벨의 눈이 마주쳤다.

사샤 바벨과 이렇게 직접 대면한 것은 파티장이 열린 이후 처음이었다.

‘제법이야.’

다른 참가자들은 별 볼 일 없다. 누구 한 명 권한울의 눈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사샤 바벨은 달랐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마력과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그때, 사샤 바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가는 게 눈에 보였다.

권한울이 사샤 바벨을 알아본 것처럼 사샤 바벨 역시 권한울을 파악한 것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사샤 바벨은 파티장의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른 분들께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혼란은 조만간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샤 바벨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오늘의 파티는 이쯤에서 파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어두운 바다 위를 두 사람이 뛰어가고 있었다.

수면을 박찰 때마다 훌쩍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작은 요트였다.

“젠장.”

뭐가 불만인지 요트에 도착하자마자 드래곤슬레이어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오늘 밤에는 유람선에 가서 즐기다 오려고 했건만. 쓸데없는데 시간을 다 보냈네.”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놀이가 빠질 수 없는 법.

특히 이곳에는 혈기왕성한 젊은 헌터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유흥거리를 가득 싣고 있는 유람선도 이 해역이 정박해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이온(Aion)이 특별히 부탁한 일인데.”

이온(Aion)이라는 이름에 드래곤슬레이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 샌님들은 꼭 자기들이 일을 저지르고 나한테 뒤처리를 맡긴다니까. 그 잘난 마법은 어디다 두고 말이야.”

“이온이 머리는 잘 굴러가는데. 일머리가 부족하기는 하죠. 마법사들만 모여 있어서 그런가?”

두 사제는 한참 이온을 욕했다.

“그래서 바벨 가주는 어떻던가요? 이온이 말한 그대로인가요?”

“그래. 정말로 모든 힘을 잃었더구나.”

드래곤슬레이어가 바벨의 파티장에 쳐들어간 이유는 제자를 위해서 경쟁자들을 확인해 보기 위함이 아니다.

이온의 부탁대로 바벨 가주의 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지.

“내게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는 했다만.”

친위대의 기세로 벽을 치고, 사샤 바벨을 앞세우고, 본인은 뒤로 물러났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정도 수작질에 쉽게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슬레이어는 이온에게 이미 언질을 받고 왔다.

그렇기에 통하지 않았다.

“하여간 신기한 놈들이야. 대체 어떻게 바벨의 가주를 그런 꼴로 만든 거지?”

이온에서 직접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정황상 그들이 수작을 부린 게 확실했다.

마법이란 이치를 벗어난 금단의 지식.

그리고 이온은 이 세상의 모든 마법을 보유하고 있다.

“역시 방심해서는 안 될 놈들이야.”

바벨의 여가주 달리아 바벨은 드래곤슬레이어조차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다.

그런 인물을 어떻게 저렇게 일반인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걸까.

“그러니 더더욱 친하게 지내야죠.”

마노는 스승과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스승님과 제 기프트도 이온에서 개량해 줬잖아요.”

기프트란 특수한 재능.

오로지 선천적으로만 습득할 수 있다.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

“뭐, 그건 그렇지.”

드래곤슬레이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파티장에 가 본 소감이 어떻더냐.”

스승의 물음에 마노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딱히 대단해 보이는 사람은 없던데요.”

제자의 대답이 흡족했는지. 드래곤슬레이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다만…….”

마노의 표정의 조금 달라졋다.

“권한울이랑 사샤 바벨은 많이 달랐어요.”

마노의 두 볼이 불그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체온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잘 다듬어진 최상급 보석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지…… 피어나기 전의 꽃봉오리라고 표현해야 할지…….”

마노의 눈동자에 기이한 욕망이 떠올랐다.

“지금 당장 부셔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드래곤슬레이어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어렵지는 않을 거다. 너는 나와 똑같은 기프트를 가지고 있으니까.”

마노가 드래곤슬레이어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그녀 역시 똑같은 기프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참아라. 이제 곧 천공투기장이 열린다.”

드래곤슬레이어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날, 내키는 대로 실컷 죽이거라.”

* * *

“사샤 정말 수고 많았다.”

바벨의 선박 내부.

달리아 바벨의 말에 사샤 바벨은 손사래를 쳤다.

“수고라뇨. 저는 가주님의 권위를 빌려서 나댄 것밖에 없는 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생한 거란다. 상대는 드래곤슬레이어잖니.”

드래곤슬레이어는 개인의 무력만으로도 세계최강의 후보라 불리는데. 적룡성이라는 기프트까지 갖추고 있다.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사샤 바벨이 맞서기에는 터무니없는 강적이었다.

“……가주님의 상태를 눈치 채지 못했겠죠?”

사샤 바벨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굳이 그녀가 나선 이유는 가주의 몸 상태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당연하지. 설사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고 하더라도 내 몸 상태가 이렇게 나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거란다.”

그제야 사샤 바벨은 안심을 했다.

“샤힌 라사드 님께서도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달리아 바벨은 드래곤슬레이어의 침입을 알린 라사드 가문의 어린 혈족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듣자하니 파티장의 다른 분들을 치료해 주셨다죠? 훌륭한 일을 하셨어요.”

그의 할아버지인 압둘 라사드가 들으면 크게 기뻐할 것이다. 소소하게나마 라사드 가문의 이름을 빛냈다며 말이다.

“그게…… 사실 저 혼자 한 게 아니에요.”

두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 하신 게 아니라뇨?”

“권한울 님께서 도와주셨어요.”

그 말에 두 여자의 표정이 굳었다.

파티장의 참가자 중 한 명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의술을 베풀든 말든 그건 딱히 중요하지 않다.

“……권한울이라고요?”

하지만 그게 권한울이라니. 무척 신경 쓰이는 이야기였다.

“제가 치료하지 못한 사람도 권한울 님의 손만 거치면 멀쩡해지더라니까요.”

샤힌 라사드는 신이 나서 권한울의 활약상을 이야기했다.

“……가주님.”

사샤 바벨이 조용히 가주를 불렀다. 달리아 바벨은 뒷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불러보도록 해요.”

“라사드 가문도 치료하지 못했어. 하물며 흑천의 혈족이라고 다를 것 같니?”

“하지만……!”

사샤 바벨은 주먹을 꼭 쥐었다.

“초면인데도 가주님의 몸 상태를 바로 눈치챘다면서요! 거기다 파티장의 사람들까지 치료했어요.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다급한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사샤 바벨이 딱 그 상황이었다.

하지만 달리아 바벨은 달랐다.

“그만하렴.”

그녀는 지푸라기 따위에 매달릴 생각이 없었다.

“만에 하나 권한울이 날 치료할 수 있다 해도 나는 흑천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다.”

달리아 바벨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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