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48화>
148. 천적 (3)
바벨의 파티에서 돌아온 뒤, 권한울은 선박에 머물면서 천공투기장을 준비했다. 천공투기장이 열리기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비라고 해 봤자 대단한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각 혈통의 권능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바벨의 혈통, 용심혈(龍心血)에 대해서 조사했다.
“어디 보자……,”
권한울은 노트북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모니터에는 흑천의 정보부에서 보내온 자료가 떠올라 있었다.
바벨 가문은 흑천과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그만큼 흑천의 정보부는 바벨 가문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용심혈이…… 여기 있군.”
권한울은 가장 먼저 용심혈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건너뛰었다. 권한울이 궁금한 것은 용심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권능에 대한 정보였으니까.
“드래곤하트를 얻는 순간부터 용심혈의 소유자는 마력이 완전히 바뀐다.”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용심혈을 통해서 심장이 완전히 드래곤하트로 완전히 변이 되면 마력 또한 바뀐다고 한다.
마력의 순도가 정순해진다. 질이 높아진다. 효율이 증가한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마력 자체의 격이 달라진다.
평범한 헌터의 마력이 흑연이라면 드래곤하트에 의한 마력은 다이아몬드라고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각 속성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 속성을 띄는 스킬의 위력도 증가, 근처에 다가온 스킬을 자동적으로 분해, 흡수…… 이게 말이 되나?”
권한울은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적힌 정보가 사실이라면 어지간한 스킬로는 바벨의 혈족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뜻이다.
수준이 높은 스킬, 혹은 실력자라도 바벨의 혈족을 상대하기는 까다로울 것이다. 마력의 수준 차이 때문에 공격이 제대로 통하지 않을 테니까.
“용심혈의 진가는 드래곤하트로만 발동시킬 수 있는 용언(龍言)으로 특정 단어를 말하는 것만으로 현실을 조작할 수 있다.”
권한울의 눈동자가 빛났다.
용언이라면 권한울도 많이 들어봤다. 실제로 바벨 가문의 상징이 바로 이 용언이었기 때문이다.
드래곤하트를 가진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용의 언어.
입에 담는 것만으로 온갖 괴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권능.
과거 바벨의 순혈 혈족이 한 마디의 용언으로 해안가로 밀려오는 해일을 모조리 얼려 버린 적이 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계시나요?”
주하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슬쩍 모니터 화면을 곁눈질 했다.
“바벨 가문이라…… 파티장에서 감명을 많이 받으신 모양이네요.”
“음…… 그렇죠.”
사실 그게 아니라 권한울이 용심혈을 얻었기 때문이지만.
권한울은 사실을 말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렸다.
“정말 까다로운 사람들이죠. 바벨의 혈족과 싸워 본 사람들은 모두 꼭 물 덩어리를 때리는 기분이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물 덩어리요?”
“아무리 공격을 해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더군요. 저도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됩니다.”
“하연 씨도 바벨 가문이랑 싸운 적이 있으신 모양이네요.”
“회장님과 같이 있을 적에 지겹도록 부딪혀 봤습니다.”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는지. 주하연은 인상을 썼다.
“그런데 의외네요. 권한울 님이라면 당연히 드래곤슬레이어의 제자를 경계하실 줄 알았는데요.”
파티장에서 만난 강적은 바벨의 혈족뿐만이 아니다. 모든 용족의 천적이라는 드래곤슬레이어도 있었다.
이번 대회에는 드래곤슬레이어의 제자도 참가한다. 그리고 그 제자 역시 스승과 똑같은 기프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 그 여자 말이군요.”
권한울은 기억을 더듬어서 드래곤슬레이어의 제자를 떠올렸다. 기억이 흐릿한 탓에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한울아!”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 권후돈이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권한울이 앉아 있는 책상 앞에 섰다.
권한울도, 주하연도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이야?”
“이, 이거 봐봐!”
권후돈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인터넷 기사의 헤드라인이 쭉 떠올라 있었다.
<속보! 흑천 일가에 진혈이 나타나다!>
<시조 이후의 첫 진혈! 흑천 일가에 출현!> <현대에 진혈이 가지고 있는 의미란?>
미간이 저절로 좁아졌다. 권한울은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오늘 아침부터 이런 기사가 자꾸 나오고 있어.”
권후돈은 안절부절 못했다. 권한울이 진혈이라는 것은 절대로 외부에 유출되서는 안 될 비밀이다. 그게 폭로되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권한울은 차분한 얼굴로 기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울아? 괜찮아?”
그게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권후돈이 재차 물었다. 권한울은 그제야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어놓았다.
“이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아.”
“없다고?”
“그래,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그때, 권한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권한울음 발신자를 확인한 뒤,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구나.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 역시 인사를 했다.
“예,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인사를 한 뒤, 곧바로 물었다.
“흑천 일가에 진혈이 나타났다는 기사가 많이 뜨던데. 혹시 회장님께서 지시를 내리신 겁니까?”
-그래.
권선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명을 내렸다.
* * *
권한울의 예상대로 소문의 출처는 권선우였다.
-너에게 천공투기장의 참가를 명령했을 때, 미리 말하지 않았더냐. 그 자리에서 네가 진혈이라는 사실을 공표하겠다고.
“아직 천공투기장이 열리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데요.”
-다짜고짜 네놈이 진혈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누가 믿어주겠느냐. 그래서 미리 밑작업을 해 두려는 게다.
진혈을 얻은 사람은 각 가문의 시조들 외에는 없다. 그 탓에 지금은 거의 전설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에 권한울이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믿어 줄 사람은 적을 것이다.
-조만간 기자들이 널 찾아갈 거다. 그 자리에서 네가 진혈이라는 것을 밝히면 된다.
언젠가 진혈이라는 사실을 밝히게 될 것이다.
이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자 뭐라 말하기 힘든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네가 진혈이라는 것을 부정해도 좋다.
그런데 권선우가 뜻 모를 소리를 해 왔다.
-흑천에 진혈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기뻐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거다. 오히려 위기감을 느끼겠지.
현 시대에 헌터란 전략병기와 똑같은 위치를 가지고 있다.
뛰어난 헌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집단일수록 강력한 권세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안 그래도 최강이라 이름이 높은 흑천에 진혈까지 나타났다?
-내 장담하건데. 천공투기장을 이용해서 네놈을 죽이려는 자들이 수두룩할 거다.
진혈을 마뜩찮게 생각하는 자들이 천공투기장을 놓칠 리가 없다.
모두가 똑같은 능력치를 지니고 있고, 서로의 격차가 크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진혈을 처리하기 적기일 테니까.
“절 노리는 놈들이 많아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은데요.”
-자만하지 마라. 천공투기장에 참가하는 헌터들은 저마다 특기를 가지고 있는 유망주들이다. 방심하다가는 그들의 독니에 찔려서 네가 죽게 될 거다.
권선우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권한울도 할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는 이야기기도 했다.
권한울이 이곳의 참가자들보다 월등히 강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천공투기장처럼 개방된 장소에서는 흑룡혈 이외의 혈통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천공투기장이 끝난 이후도 문제지. 너는 결코 편한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시도 떼도 없이 네 목숨을 노리는 자리들이 나타날 테니 말이다.
권선우는 뜸을 들인 뒤, 한 번 더 물었다.
-그래도 너는 진혈임을 공표할 생각이냐?
“예.”
권한울은 곧바로 대답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회장님께서는 제가 진혈임을 밝힘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득이라고 했느냐?
“제가 진혈임을 밝히면 모두가 절 차기 흑천의 가주라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전 세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진혈이 가문을 이어받지 않으면 대체 누가 적임자란 말인가.
흑천의 혈족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회장이 저것을 허락했다는 것은 권한울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건방진 놈.
권선우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정말로 가주를 노릴 생각이로구나.
권한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한 번 더 확인을 받고 싶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제가 이번 천공투기장에서 흑천의 이름을 빛내면 환골탈태에 필요한 모든 약재를 제공해 주시겠다고 하셨잖습니까.”
-나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네가 천공투기장에서 우승하면 타카미네 병원에서 요구하는 모든 재료를 대주도록 하마.
환골탈태.
세계를 주름잡는 헌터들조차 경험해 보지 못한 그것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것만으로 천공투기장에서 우승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한 가지 더 너에게 알려 둬야 할 것이 있다.
“뭐죠?”
-권혁에 대한 처벌을 보류하기로 했다.
순간, 권한울은 권선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권혁 부회장님은 권찬성을 시켜서 절 죽이라고 했습니다.”
-알고 있다.
“흑천의 법도에서 이는 용납하지 못할 일이 아닙니까.”
-네 말이 맞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권혁을 잃으면 흑천이 입을 피해가 너무 막대하다.
권혁은 오랫동안 부회장으로서 일해 왔다. 그런 권혁을 숙청한다는 것은 그가 맡은 모든 일이 중단된다는 뜻.
더불어 권혁은 권선우, 권명우의 뒤를 이어서 3인자로 거론되는 강자다.
권혁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헌터는 현재 흑천 일가에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권혁의 처벌을 보류하기로 했다.
권선우는 지금 권한울에게 양해를 구하려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내린 결정을 통보하는 것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 결정을 권한울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 행동에 되레 권선우가 놀라고 말았다.
-불만은 없는 게냐?
“왜 없겠습니까. 아주 넘쳐납니다.”
-그럼 어째서 말하지 않는 게냐.
“어쩐지 이렇게 될 것 같았거든요.”
블라가 가문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권한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번 일로도 권혁을 숙청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동족은 동족을 알아본댔던가.
오랫동안 권모술수를 주특기로 삼아왔던 카탈리나 블라가는 권혁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제가 봤을 때, 권혁은 아무리 유리한 상황에서도 도망칠 구멍부터 확보해 놓을 인간이에요. 순순히 당해줄 리가 없죠.’
그 외에 또다른 이유도 있었다.
‘권혁이 가문 내외로 가지고 있는 위상은 엄청나요. 차기 가주로 불렸으니 그 권세가 오죽하겠어요? 아무리 회장님이라 해도 쉽게 처리하기는 힘들 거예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의견이 있었기에 권한울은 미리 마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제 가치가 권혁 부회장님에 못 미쳐서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거겠죠. 이해합니다.”
마음 준비를 했다고 하지만 기분까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권한울은 권선우를 향해 짧게 투덜거렸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구나.
그런데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가치를 따져서 이번 결정을 내렸다면 당연히 널 선택했을 거다.
자신도 모르게 입이 살짝 벌어졌다. 권선우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씀…….”
-불만이 있는 듯 하니 내 나름대로 보상을 줘야겠구나.
“아뇨, 그보다 방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천공투기장이 끝나거든 비고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해 주겠다.
엄청난 결정이었다. 큰 공을 세워야 딱 한 번 열어 주는 비고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 주겠다니.
하지만 권한울은 그보다 방금 들은 말이 더 중요했다.
“회장님, 자꾸 말 끊지 마십시오. 방금 제 가치에 대해서…….”
-이만 끊도록 하마.
권한울은 끊지 말라며 권선우를 붙잡으려 했다.
-또한 천공투기장이 끝나면 네 아비에 대한 것을 모두 이야기해 주마. 네 아비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네가 누구를 원수로 삼아야 하는지도.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사이, 권선우가 전화를 끊었다.
권한울은 꺼진 전화기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젠장.”
* * *
회장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처음에 권선우를 만났을 때, 권한울은 권선우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진혈, 그리고 손자임에도 불구하고 권선우는 권한울을 조금도 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배반자의 자식이라며 멸시하면 멸시했지.
심지어 권한울은 직계혈족으로서의 지원을 단 하나도 받지 못했다.
권선우는 뭘 쉽게 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전부 조건을 걸었으며, 무언가를 완수해야만 주었다.
권한울이 이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혈통의 존재, 그리고 스스로 쟁취해 낸 보상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권한울은 권선우가 자신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최근들어서 그런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권한울 님.”
권선우의 수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몇 달 전, 권한울이 대한민국의 아이언펭 길드를 통해서 아버지에 대해서 조사한 적이 있다.
그때, 권선우는 아이언펭을 통해서 정보를 건넸다. 무려 자신이 권한울의 아버지 권천을 죽였다는 내용의 정보를 말이다.
“권한울 님?”
권선우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그리고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권한울 님!”
별안간 들려온 목소리에 권한울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들자 갑판 위에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이제 기자회견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기자 중 한 명이 따지듯이 물었다. 그제야 권한울은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떠올렸다.
“시작하시지요.”
권한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아우성을 쳤다.
그중 한 명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정말로 진혈이십니까?”
질문을 받는 순간, 권선우의 말이 떠올랐다. 진혈이라는 게 밝혀지면 목숨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소리.
“맞습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지금도 권혁 같은 절대자가 적이다. 몇 명 더 늘어난다고 다를 건 없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기자들 중에서 한 명이 소리쳤다. 꼬투리를 잡는 기색이 역력한 질문이었다.
권한울은 그 기자를 빤히 노려봤다.
“대, 대답이나 해 주시죠!”
나름 기개가 있는지. 기자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권한울은 손가락을 들었다.
“저 위에서.”
그래서 하늘을, 아니, 더 정확히는 그 위에 떠 있는 천공투기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공투기장에서 직접 증명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