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151화 (151/221)

<혈통이 깡패임 151화>

151. 천공투기장 (3)

“미안해요.”

사샤 바벨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참가자들을 향해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다섯 명 모두 팔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통과 조건이 한 명만 살아남는 거라 어쩔 수 없었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1차 경기 통과!>

<다음 경기가 시작됩니다.>

<2차 경기 : 미로의 중앙에 도착하세요!> 4면을 막고 있던 벽 중의 하나가 사라졌다. 사샤 바벨은 벽이 없어진 자리를 넘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거대한 미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높은 벽이 시야를 막고 있는 탓에 자칫 잘못하면 미로 내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부수고 가면 편할 거 같은데.”

사샤 바벨은 시험 삼아서 주먹에 오러를 담아서 벽을 때렸다. 하지만 벽은 부숴지기는 커녕 흔들리지도 않았다.

“……아파.”

사샤 바벨은 눈물을 찔끔 흘릴 수밖에 없었다.

부수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두 발로 직접 걸어서 미로를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미로의 구조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사샤 바벨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드래곤하트의 마력이 그녀의 주위로 떠올랐다.

“라 후 레타.”

사샤 바벨의 입에서 용언이 흘러나왔다. 고대의 언어에 드래곤의 마력이 반응했다.

메아리가 울려퍼지듯 마력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력이 퍼질수록 사샤 바벨의 머릿속에는 미로의 구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 흐 레.”

사샤 바벨이 다시 용언을 읋었다. 그녀가 밟고 있던 땅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흙덩어리의 이동속도는 무척 빨랐다. 사샤 바벨은 순식간에 미로를 반 이상 돌파했다. 운이 좋았는지 도중에 참가자를 마주치지 않았다.

“아니지 다른 참가자들이 운이 좋은 거지.”

만약 마주쳤다면 사샤 바벨에게 손도 못 써보고 패배했을 테니 말이다.

어느덧 사샤 바벨은 미로의 중앙에 근접했다. 이대로 가면 가장 먼저 2차 경기를 통과하는 사람은 그녀가 됐을 터였다.

그때였다.

공기 속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사샤 바벨은 흙덩어리를 멈췄다.

“……누구지?”

피비린내가 너무 지독했다. 한두 명이 피를 흘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냄새를 타고 섬뜩한 살기까지 느껴졌다.

이대로 무시하고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벨 가문의 혈족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샤 바벨은 피 냄새가 풍겨오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됐다.

네다섯 명의 참가자들이 전신이 난자가 된 채 죽어 있었다. 정말 사람이 한 짓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로 잔인한 손속이었다.

“아하, 아하핫.”

시체들 틈바구니 속에서 한 여성이 연신 팔을 높이 쳐들었다가 내려찍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손에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빨리 일어나. 이대로 계속 누워 있을 거야?”

단검이 시체를 찍을 때마다 핏방울이 튀었다. 그래도 여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응?”

문득 여성이 고개를 돌려서 사샤 바벨을 쳐다봤다.

“노리던 사냥감이 왔네?”

여성은 시체를 내던졌다. 숙였던 허리를 세워서 사샤 바벨을 쳐다봤다.

사샤 바벨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노 스톤라이트.”

여성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 * *

“……이게 다 무슨 짓이죠?”

“응? 무슨 짓이냐니.”

마노 스톤라이트는 단검에 달려 있는 고리에 손가락을 걸고 빙글빙글 돌리며 대꾸했다.

“한 명만 통과할 수 있다고 해서 다 죽였는데.”

“……굳이 죽이지 않아도 통과할 수 있잖아요.”

그 말에 마노 스톤라이트는 뱃살을 잡고 웃었다.

“순진한 소리하고 있네. 이게 스포츠 경기인 줄 알아? 엄연한 던전이야.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막을 수 없어.”

“천공투기장은 전세계에 중계가 되고 있어요. 당신 벌인 일도 이미 중계가 됐을 겁니다.”

사샤 바벨은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이 속해 있는 길드에서 당신을 가만히 냅둘 것 같나요?”

“우리 스승님이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그걸 제가 어떻게 알죠?”

“어차피 나한테 도망도 못치고 죽는 애들은 소속되어 있는 곳도 별 볼 일 없대. 그러니 마음 놓고 죽이라더라.”

마노 스톤라이트가 웃음소리를 흘리며 덧붙였다.

“사샤 바벨. 당신은 어떨까? 최소한 나한테 도망칠 수는 있겠지?”

사샤 바벨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녀는 바벨의 혈족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을 뿐이지 자신이 위험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마노 스톤라이트. 건방지군요.”

“내 기프트 몰라? 내가 봤을 때는 네가 더 건방진데.”

마노 스톤라이트가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단검을 제대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샤 바벨을 향해 달려들었다.

<‘적룡성(敵龍星)’의 기운이 감지됩니다!> <용심혈이 위축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감소됩니다!> 사샤 바벨은 몸이 살짝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적룡성이라는 기프트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는 가문의 어른들에게 지겹도록 들었다.

“라 후 타.”

사샤 바벨은 침착하게 용언을 내뱉었다. 그녀의 몸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마노 스톤라이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불만스럽게 소리쳤다.

“아, 치사하게!”

사샤 바벨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가문의 어른들에게 배운 적룡성의 대처법 첫 번째는 우선 거리를 벌리라는 것이었다.

하늘 위로 날아오르면서 마노 스톤라이트와 멀어지자 다시 몸이 가벼워졌다. 적룡성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였다.

“알 메 데르 세드.”

하늘 위에 뜬 채로 사샤 바벨이 또 다른 용언을 말했다.

그녀의 주위로 불길이 일어났다. 불은 고리가 되어 사샤 바벨의 주위를 맴돌았다.

“설마 나한테 던질 거 아니지?”

마노 스톤라이트가 물었다. 사샤 바벨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내리그었다.

불의 고리가 화살이 되어 마노 스톤라이트가 있는 지점에 내리꽂혔다.

“안 테르 마다.”

사샤 바벨은 마노 스톤라이트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또 다른 용언을 발현했다.

푸른 뇌전이 땅에 내리꽂혔다. 한 발이 아니라 수십 발이 연달아 꽂혔다.

“이 페 테라.”

이미 지상은 난장판이 됐지만 사샤 바벨은 멈추지 않았다. 세번째 용언을 발현했다.

보이지 않는 망치가 땅을 내리쳤다. 충격파 만으로 주변의 벽이 흔들리고 땅에 금이 갔다.

“……후우.”

사샤 바벨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가문에서 배운 적룡성의 대처법 두 번째. 그건 이렇게 반격의 틈을 주지 않고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불길을 뚫고 마노 스톤라이트가 튀어나왔다. 마노 스톤라이트는 벽을 밟으며 사샤 바벨을 향해 달려들었다.

“……말도 안 돼.”

말과 달리 사샤 바벨은 곧바로 대응했다. 이대로 있으면 마노 스톤라이트가 벽을 타고 도달한다. 사샤 바벨은 용언을 발현해서 거리를 벌렸다.

아니, 벌리려고 했다.

마노 스톤라이트가 비수를 던졌다. 스킬을 사용했는지. 비수는 쏜살같이 사샤 바벨을 향해 날아들었다.

“엘 라다.”

사샤 바벨은 침착하게 방어용 용언을 사용했다. 불투명한 장막이 비수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비수가 닿는 순간, 장막은 비누거품처럼 녹아내렸다.

“뭐?”

대응할 틈도 없이 비수가 사샤 바벨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적룡성의 기운이 침투합니다!>

<용심혈이 크게 위축됩니다!>

사샤 바벨의 몸을 띄우고 있던 용언의 권능이 사라졌다. 사샤 바벨은 어찌할 틈도 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크윽!”

땅에 부딪히는 순간, 큰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적룡성 때문에 약해진 몸에는 치명적이었다.

무척 괴로웠으나 사샤 바벨은 어떻게 해서든 고통을 억눌렀다. 아직 위에는 마노 스톤라이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용심혈의 권능이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 생각이 든 순간, 하늘에서 마노 스톤라이트가 떨어졌다. 마노 스톤라이트는 발로 사샤 바벨의 등을 내려찍었다.

“꺄악!”

이번에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그녀의 머리채를 마노 스톤라이트가 움켜쥐었다.

“하핫, 드디어 잡았네.”

희열에 가득찬 마노 스톤라이트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사샤 바벨은 고통을 참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어떻게 용심혈의 권능을 없앤 거죠?”

“적룡성의 마력이 직접 침투하면 원래 그래. 그것도 몰랐어?”

“무슨 소리를…… 그런 능력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마노 스톤라이트가 대뜸 단검을 허벅지에 찍었다.

“근데 기분 나쁘네. 왜 너만 질문해? 이제부터 나만 질문할 거야. 알았어?”

사샤 바벨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존심과 오기 때문이었다.

마노 스톤라이트는 그런 사샤 바벨의 팔뚝을 단검으로 그었다. 또 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래서 난 너희들이 좋아.”

마노 스톤라이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용의 혈통이니 드래곤의 혈통이니 그러면서 있는 척 없는 척 고귀한 척 잘난 척은 다하면서 정작 혈통이 없어지면 이렇게 무력해지잖아.”

마노 스톤라이트는 사샤 바벨의 등을 쫙 그었다. 피가 터져 나왔다.

“아까는 건방지니 뭐니 말 잘하던데. 왜 지금은 말이 없어? 응? 내가 묻고 있잖아. 빨리 말해 봐.”

마노 스톤라이트는 다시 단검을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별안간 엄청난 폭발소리와 함께 벽이 무너져 내린 것은.

마노 스톤라이트도, 사샤 바벨도 이 순간만큼은 당황한 얼굴로 벽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저게…… 무너지는 거였어?”

마노 스톤라이트가 멍하니 중얼거렸을 때였다. 무너져 내린 벽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으으응?”

마노 스톤라이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갑작스러운 침입자를 노려봤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아, 권한울이지? 권한울 맞지?”

남자, 권한울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말없이 사샤 바벨을 쳐다봤다.

그게 마노 스톤라이트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단검을 사샤 바벨의 어깨에 꽂아넣었다.

“왜 대답 안 해? 권한울 아니야?”

“아악!”

권한울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노 스톤라이트.”

“정답.”

마노 스톤라이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지막 사냥감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네?”

* * *

“마지막 사냥감?”

권한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천공투기장에 들어오기 전에 다짐했거든.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너랑 사샤 바벨은 꼭 죽이자고.”

마노 스톤라이트는 사샤 바벨의 어깨에 꽂혀 있던 단검을 뽑아냈다. 사샤 바벨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했다

지금은 권한울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난 너희들이 좋아.”

마노 스톤라이트의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다.

“혈통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쓰레기들이 거물 행세를 하고 다니지. 사람들은 그걸 또 추앙해 주고. 그런데 나한테는 그 혈통이 통하지 않거든.”

마노 스톤라이트는 적룡성의 기운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 세상에서 나랑 스승님만이 너희들의 진짜 모습을 폭로할 수 있다는 거지.”

마노 스톤라이트는 권한울에게 다가갔다. 들고 있는 단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뭐 할 말 없어?”

마노 스톤라이트가 한껏 기대를 품은 채 말했다. 여기서 권한울이 잘난 듯이 떠들어대야 굴복시켰을 때 쾌감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권한울은 잠시 고민하다 말햇다.

“뭘 믿고 이렇게 나대는 거죠?”

마노 스톤라이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말이었다.

<적룡성의 영향력이 강화됩니다!>

<범위 내의 모든 용종의 능력치를 대폭 감소시킵니다!> <범위 내의 모든 용종의 행동을 방해합니다!> 마노 스톤라이트가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적룡성은 능력치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

지금 권한울은 엄청난 압력이 몸을 짓눌러서 몸을 돌리는 것도 힘들 것이다.

‘일단 무릎부터.’

무릎의 인대만 살짝 베어 낼 생각이다. 그럼 다리를 못 쓰게 될 테니 도망도 칠 수 없을 테고 두려움도 커질 것이다.

마노 스톤라이트가 허리를 숙였다. 권한울의 무릎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권한울이 무릎으로 마노 스톤라이트의 얼굴을 찍었다.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몸이 튕겨져 나갔다.

“컥! 커억!”

마노 스톤라이트는 얼굴을 붙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코가 짓뭉개진데다 앞니도 여러 개 빠져 있었다.

“권한울!”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그런데 눈앞에 권한울이 엎었다.

그 순간, 섬뜩한 살기가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마노 스톤라이트는 황급히 옆으로 도망쳤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권한울이 떨어졌다. 발로 땅을 내려찍었다.

그 순간, 권한울의 발을 중심으로 금이 퍼져나갔다. 금은 땅을 뒤덮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변의 벽까지 붕괴시켰다.

“……어?”

마노 스톤라이트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권한울을 쳐다봤다.

분명 적룡성을 사용했는데? 흑룡혈의 힘이 대폭 깎여 나갔을 텐데?

근데 이 파괴력은 대체 뭐지?

“이봐.”

권한울이 마노 스톤라이트를 불렀다. 마노 스톤라이트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사냥감이라고?”

권한울의 말투는 몹시 신경질적이었다.

마노 스톤라이트에게 받은 모욕도 모욕이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흑룡혈이 크게 분노합니다! 용의 본능이 더욱 강해집니다!> <동화율 52% -> 58%> <적룡성의 모든 영향력을 몰아냅니다!> 흑룡혈이 역시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가뜩이나 드래곤슬레이어의 적룡성에 위축되어 있던 것도 화가 나는데. 그 제자까지 나타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파티장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자신감이 넘치는 건 이해를 하겠는데…….”

권한울이 짜증난다는 눈빛으로 마노 스톤라이트를 노려봤다.

“댁이 드래곤슬레이어인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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