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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54화 (154/221)

<혈통이 깡패임 154화>

154. 악마 (2)

천공투기장에 악마가 출현하는 모습은 방송사들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

“이, 이봐…… 저, 저게 대체 뭐야……?”

드래곤슬레이어가 천공투기장을 가리키며 아제트 헤르메스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악마일세.”

“그걸 누가 몰라? 저게 무슨 악마냔 말이야!”

천공투기장 밖에서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저 악마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드래곤슬레이어 정도 되는 강자조차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여섯 개의 팔…… 하늘을 뒤덮는 날개…… 허리를 펴면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신장…….”

아제트 헤르메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악마의 왕. 베르엘이 틀림없다.”

드래곤슬레이어의 입이 한껏 벌어졌다.

“악마가 원래 던전에 숨어 들어가는 재주가 있다고 하지만…… 천공투기장에 악마의 왕이 잠들어 있었다고?”

아제트 헤르메스는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설마 그릇을 알아보는 방법이라는 게 베르엘을 뜻하는 것이었나?”

그때였다.

베르엘의 날개가 녹아내리더니 천공투기장의 투명한 막에 들러붙었다.

천공투기장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더 이상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거지?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야?”

드래곤슬레이어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제트 헤르메스는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았나. 지금부터는 우리 이온도 모르는 영역이라고.”

* * *

악마가 팔에 머리를 묻었으나 권한울은 안심할 수 없었다.

인류와 악마의 전쟁이 끝난지 수십 년이 지났으나 그 악명은 아직도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무척 잔인하고, 교활하며,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라고 말이다.

저 행동 역시 권한울을 안심시킨 뒤, 공격을 하려는 속셈일지 몰랐다. 권한울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악마는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설마 진짜 자는 건가?”

권한울이 반신반의하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악마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권한울을 깜짝 놀라서 주먹을 들어올렸다.

-크어어어…….

고개를 든 악마의 눈동자는 잔뜩 풀려 있었다.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왜 자도 자도 피곤한 건지 모르겠어. 너도 그렇지 않아?

악마는 권한울에게 말을 건넸다. 무척 친근한 말투였다.

“……무슨 속셈이냐.”

-무슨 속셈이냐니?

“시치미 떼지 마라. 네놈은 악마잖냐.”

그것도 그냥 악마가 아니었다. 이 기세, 그리고 저 외형.

“악마의 지도자 베르엘은 세 쌍의 팔과 거대한 날개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 악마의 정체는 베르엘.

악마의 왕이었다.

“말해라. 무슨 속셈이냐. 어째서 악마의 왕이 이곳에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거지?”

악마는 한때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던 적이었다.

오죽하면 헌터 협회에서도 악마가 출현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살시키려 들까.

-그런 인종차별적인…… 아니지 악마차별적인 발언은 삼가 줬으면 좋겠어. 내 여린 마음에 스크래치가 나잖아.

그리 말하며 악마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름대로 농담을 한 것 같았지만 권한울의 입장에서는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

그러자 머쓱했는지. 악마는 팔을 들어서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심하게 경계하는군. 결국 우리들은 패배자에 불과한데 말이야.

악마의 어조가 변했다. 장난기가 사라지고 음울하게 변했다.

-너희들과 벌였던 전쟁…… 거기서 나는 큰 상처를 입고 도주했다. 이 천공투기장에 몸을 숨겼지. 혹시라도 동족들이 반격의 기회를 마련했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반격의 기회라고?”

베르엘은 기둥처럼 굵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권한울을 가리켰다.

-네 몸속에 있는 방주를 말하는 거다.

베르엘이 자신의 비밀을 바로 꿰뚫어봤으나 권한울은 놀라지 않았다. 멕시코에서 만났던 악마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그럼 방주 때문에 네가 깨어났다는 건가?”

-눈치 빠르네.

베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덩치가 큰 탓에 이 행동마저도 위협적이었다.

-동족이 아니라 인간이 방주를 가지고 있다는 건…… 결국 전쟁은 우리들의 패배로 끝났다는 뜻이겠지? 예상은 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네.

베르엘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방주가 대체 뭐기에 반격의 기회라는 거지?”

-방주는 너희 인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일 뿐이야. @#@!%!이 정확히 무엇인지 너희 인간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어.

멕시코의 악마와 대화할 때도 방주의 정확한 이름을 들을 수 없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이라며 말이다.

-방주가 무엇인지 괜히 이해하려고 들지 마. 인간의 문명이 한 만 년쯤 더 발전하면 모를까. 지금은 어림도 없으니까.

베르엘이 얼굴 앞에서 손을 휙휙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강풍이 불었다.

-다만 반격의 기회라는 말뜻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겠네. 너는 우리 악마가 어째서 인간에게 졌다고 생각하지?

“그거야 시간이 자나면서 인간 측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잖아.”

-그럼 어째서 더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거지?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스킬과 아이템을 통해…….”

-다른 말로하면 우리들의 힘을 빼앗은 거지.

“빼앗았다고?”

-너희 인간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상태창, 스킬, 특성, 유물, 장비. 그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들의 것이다. 그걸 너희 인간들이 멋대로 빼앗아간 셈이지.

베르엘은 여섯 개의 팔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빼앗긴 가장 큰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지금 네 몸속에 있는 혈통이다.

용, 드래곤, 수라, 거인 등등.

-우리 악마들이 지구도 도착하기도 전에 너희 인간들은 혈통의 근원을 죽이고 그 힘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았지. 그리고 후손을 남겨서 그 힘을 나눠 주기까지 했어.

악마와의 전쟁 때, 누구보다 크게 활약했던 이들은 혈통을 보유하고 있는 가문의 혈족들이었다.

특히 흑천은 항상 전쟁의 선봉에 서서 무수한 악마들을 학살했다.

“혈통과 방주가 무슨 상관이지?”

-그 방주를 가지고 있으면 접촉하는 것만으로 혈통의 근원을 되찾아올 수 있지. 혈통의 근원만 있다면 하위 혈통들을 지우는 건 일도 아니야.

“……그게 가능하다고?”

-방주 안에 혈통의 근원만 담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방주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혈통의 근원이란 진혈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방주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너희는 어쩌다 방주를 잃어버린 거지? 그리고 그게 왜 나한테 있는 거야?”

-몰라.

권한울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라며 그런 걸 왜 모른단 말인가.

-방주를 잃어버린 악마는 내가 아니라 자세한 경위를 몰라. 그리고 방주가 왜 너한테 있냐면…… 그건 네가 알아야지. 내가 어떻게 알아.

듣고 보니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나야 말로 어이가 없네. 방주를 어떻게 가지게 됐는지 모른다고?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알아? @[email protected]#@가 얼마나 굉장한 물건이데. @[email protected]#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베르엘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email protected]!$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 동족들을 모두 되살리고 멸망한 문명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베르엘의 동공이 커졌다. 전신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마력이 느껴지자마자 권한울은 온몸에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었다.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바람에 잠시 잊고 말았다. 눈앞의 존재는 악마의 왕이다. 존재 자체가 인류의 재앙인 괴물 말이다.

-그래! @[email protected]!다! 그것만 있으면 돼! @!$!%#만 회수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베르엘의 기운에 저항하기 위해서 권한울 역시 마력을 일으켜야 했다.

온몸의 마력을 동원했음에도 베르엘의 기세를 견뎌내는 것이 몹시 버거웠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다! @#[email protected]!만 있다면!

베르엘이 여섯 개의 팔을 펼쳤다. 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권한울은 팔뚝으로 얼굴을 가렸다.

-역시 관둘래.

별안간 베르엘이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베르엘의 위압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관…… 두겠다고?”

-그래.

“방금 전까지 중요한 거라고 말하지 않았나?”

-중요하지. 근데 이미 패배한 전쟁이고, 동족들은 다 전멸 당했고, 내가 잠든 사이 인간들은 계속 강해졌을 테고…….

베르엘은 입맛을 다셨다.

-그런 마당에 나 혼자 난리를 피워서 뭐하겠어. 게다가 너도 방주를 쉽게 뺏길 거 같지 않거든. 최소한 인류 측에서 지원군을 보낼 때까지는 버틸 거 같단 말이지.

정확한 추측이었다. 만약 베르엘이 달려든다면 곧바로 모든 권능을 총동원해서 베르엘과 맞설 생각이었다.

“그럼 넌 이제부터 어떻게할 생각이지?”

이미 온 세상에 베르엘의 존재가 드러나고 말았다. 다시 숨는 건 불가능했다. 모든 헌터들이 그를 죽이려 들 테니 말이다.

-싸우기는 싫고, 그렇다고 얌전히 죽어 주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베르엘은 다시 팔짱을 낀 뒤, 고민에 잠겼다.

-그나저나…… 너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인간의 몸으로 일곱 개나 되는 혈통을 모으다니. 모으는 건 둘째 치고 그 많은 힘을 신체에 온전하게 담아내는 건 끔찍한 일이었을 텐데.

베르엘이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이 허공에 모여들었다. 이윽고 검은 수정을 만들어냈다.

-후우…… 역시 피곤한 일이야.

베르엘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기분 탓일까. 베르엘의 기운이 한층 약해진 것 같았다.

-받아라.

검은 보석이 권한울을 향해 날아왔다. 권한울이 경계심어린 눈동자로 보석을 바라봤다.

“이게 뭐지?”

-내 힘의 근원이다.

그 말에 권한울은 경악했다.

힘의 근원.

다시 말하자면 이 보석을 얻으면 새로운 혈통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그것도 악마왕의 혈통을.

“왜 내게 이걸 주는 거지?”

-방주의 주인이자 일곱 개나 되는 혈통을 수집한 너에게 베푸는 친절이다.

또한, 베르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살고자 발버둥치기에 나는 너무 지쳤다.

마치 노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메마른 어조였다.

-너희 인간은 상상도 못하겠지. 우리가 지구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나는 이만 그 종지부를 찍고 싶다.

베르엘이 다시 권한울을 재촉했다.

-악마의 왕으로서 약속하마. 나는 그대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그것을 취하라.

베르엘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말뿐인 약속이었으나 기이하게도 믿음이 갔다.

권한울은 손을 뻗어서 보석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보석이 흡수되었다.

<악마의 왕 ‘베르엘’의 근원을 흡수하셨습니다!> <반마혈(半魔血)이 생성됩니다!>

몸속에서 또 다른 힘이 만들어지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베르엘의 몸이 외곽에서부터 서서히 먼지로 변해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권한울에게 근원을 넘긴 탓에 베르엘의 신체 역시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끝이구나.

그럼에도 베르엘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방주의 주인이여. 부디 인간들에게 전해다오.

시간이 지날 수 록 붕괴되는 속도는 가속화 되었다.

완전히 소멸되기 직전, 베르엘이 말했다.

-그대들이 승리했다고.

그 말을 끝으로 베르엘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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