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65화>
165. 시술 (3)
알렉산더 애런이 백색과 대치하고 있는 그 시각.
주하연과 김 비서의 앞에도 또 다른 마법사가 나타났다.
“적색이라고 해요.”
이름 그대로 붉은 망토를 입고 있는 여성이었다.
적색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두 사람의 얼굴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앞서 습격을 해 왔던 자들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쪽도 이온의 마법사인가?”
“예에…… 그렇죠.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된…….”
말을 하다 말고 적색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참,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었죠. 저어는…… 그러니까 그쪽을 죽이고 저 여자를 데려가려고 왔어요.”
적색이 손가락을 들어서 김 비서와 주하연을 각각 가리켰다. 그 행동에 주하연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이 자리에 오딘도 온 건가요?”
“노코멘트.”
적색이 하품을 하며 대꾸했다.
“예전부터 많이 궁금했어요. 마법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공간계 마법에 적성을 보였다던데…… 참, 또 잡담을 하고 말았네.”
김 비서는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적색을 살폈다. 이내 주하연에게 말했다.
“여기는 내가 맡도록 하마. 너는 먼저 가서 권한울 님을 보호하고 있어라.”
“어어…… 그럼 곤란한데.”
적색의 얼굴에서 졸음기가 사라졌다.
“그랬다가는 당신을 죽이고 또 저 여자를 쫓아가야 하잖아요. 그냥 둘이 같이 싸우는 게 어때요?”
그 말에 김 비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넥타이를 풀어서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이온의 얼간이가 주제파악을 못하는군.”
“그건 내가 할 말인데요.”
적색이 목을 왼쪽으로 기울였다. 뚜둑, 소리와 함께 머리가 정확히 직각으로 꺾었다.
그 직후, 적색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아니, 그녀의 몸 자체가 불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불덩어리가 된 적색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복도를 완전히 막아 버렸다.
-마법이란 스킬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묘하고 고등한 분야…….
별안간 김 비서가 손을 휘둘렀다.
오러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고리가 적색의 몸을 갈랐다.
하지만 반으로 절단된 몸은 곧바로 하나로 합쳐졌다.
-……말하고 있는 도중에 공격하면 반칙인데.
“멀쩡하잖아?”
김 비서는 적잖게 놀란 얼굴이었다.
-지금 내 몸은 화염 그 자체에요. 그리고 불이란…… 꺼진다 해도 장작만 있으면 되살아나는 법이죠.
“그렇군. 마법사랑 싸운다는 건 이런 뜻이었나.”
김 비서가 양팔을 펼쳤다. 열 개의 고리가 팔뚝에 휘감겼다.
주하연도 마법을 준비하며 전투를 대비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내가 말했을 텐데. 자네는 권한울 님을 도우러 가라고.”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 있어서 깜빡한 모양이군. 내가 누군지 잊은 건가?”
그 말에 주하연은 번개로 맞은 것처럼 눈동자가 커졌다.
“……아뇨, 알고 있습니다.”
김준호.
권미의 보좌관으로서 흑예대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강자가 이 남자였다.
“먼저 가라. 곧바로 따라가마.”
“……알겠습니다.”
주하연은 뒤를 돌아서 달려갔다. 적색이 재빨리 손을 뻗었다.
-멈추지 못해요!
거인만큼 커다란 손이 주하연을 덮치려고 했다. 그 순간, 김 비서가 한쪽 팔을 휘둘렀다.
열 개의 고리가 적색의 팔을 찢어발겼다. 적색은 깜짝 놀라서 손을 뺐다.
“이온의 마법사.”
김 비서가 팔을 높게 쳐들자 고리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쪽의 상대는 나다. 쓸데없는데 신경을 쏟지 말도록.”
적색의 팔이 다시 돋아났다.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적색이 으르렁거렸다.
-……숯덩이로 만들어 버리겠어요.
* * *
“백, 적, 청, 녹, 금, 흑…….”
아제트 헤르메스는 병원을 바라보며 색들을 쭉 나열했다.
“이온에서 길러온 배틀메이지들 중에서도 특히나 뛰어난 이들에게만 색을 허용했다.”
이온의 역사는 방대하다.
게이트가 처음 발발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세력을 이어오고 있었으니까.
“흑천에게 패배한 이후, 나는 배틀메이지를 양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지.”
그렇게 오랫동안 쌓여 온 지식과 힘을 이용해서 병력을 키워 냈다.
“흑예대라고 했던가? 내가 만들어낸 컬러즈의 실력을 시험하기에 안성맞춤이야.”
아제트 헤르메스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청년은 영 못 마땅한 얼굴로 아제트 헤르메스를 쳐다봤다.
“컬러즈…… 이름이 너무 구린데요.”
“시끄럽다! 너는 그 자리에서 컬러즈의 활약이나 지켜보고 있도록 해라.”
아제트 헤르메스가 마법을 발현했다. 허공에 거울이 여러 개 떠올랐다.
거울은 각각 다른 장면을 비췄다. 컬러즈가 싸우고 있는 현장을 말이다.
“오…… 그쪽 마법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니까.”
청년은 기대된다는 얼굴로 거울 중 하나를 들여다봤다.
“저건 화염마신이잖아?”
청년이 쳐다본 것은 적색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체 자체를 불덩어리로 변환시켜서 싸우는 화염마신의 마법은 결코 죽지 않는 마법으로도 유명했다.
“굉장히 어려운 마법인데 잘 다루고 있군.”
청년은 옆에 있는 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거대한 도끼를 든 여자가 수만 명으로 늘어난 백색과 대치하고 있었다.
“백 년 동안 아무도 익히지 못한 분신마법이잖아?”
마력과 체력의 손실 없이 원본과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 내는 마법.
저기 있는 수만 명은 전부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즉, 분신이 늘어나는 만큼 전력이 늘어나는 것이다.
“다들 수준이 높긴 하군.”
컬러즈 전원이 희귀한 마법을 극한까지 익히고 있었다. 아제트 헤르메스가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다.
“이거라면 나름 기대해 볼 만하겠는데?”
청년은 부푼 마음을 안은 채 거울을 지켜봤다. 그때, 도끼를 든 여인이 움직였다.
그 순간, 수만 명의 백색이 모조리 사라졌다.
“……응?”
* * *
단 두 번.
알렉산더 애런이 도끼를 휘두른 횟수였다.
한 번으로 분신을 모조리 절단해 버리고.
두 번으로 본체의 두 다리를 잘라 버렸다.
“힉! 히이이익!”
백색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잘려 나간 두 다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어, 어떻게! 내, 내 분신들을 전부…… 컥!”
어느새 다가온 알렉산더 애런이 백색의 머리를 움켜잡고 바닥으로 내려찍었다.
“마법의 위대함에 굴복시키니 뭐니 하더니. 이게 끝이야?”
“이, 이거 놔라!”
딱.
백색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똑같이 다리가 잘린 백색이 나타났다.
“으아아아악!”
다리가 짤린 백색이 비명을 질렀다. 알렉산더 애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그 모습을 쳐다봤다.
“너 지금 나랑 장난치니?”
알렉산더 애런이 백색의 머리를 연신 땅으로 내려찍었다. 백색은 고통섞인 비명을 질러댔다.
딱, 딱, 딱.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마법을 발동했다. 하지만 역시나 다리가 잘려서 싸우지 못하는 분신만 나올 뿐이었다.
바닥을 나뒹구는 백색을 보며 알렉산더 애런이 혀를 찼다.
“이런 등신을 봤나.”
* * *
-무슨 수를 써도 날 죽일 수 없……!
김 비서가 고리를 내던졌다. 적색의 몸이 찢겨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다시 허공에 불길이 일어나며 적색이 나타났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소용이 없…….
김 비서가 다시 고리를 내던졌다. 이번에도 적색의 몸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 그만! 내가 공격할 시간도 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김비서가 다시 적색을 향해 고리를 던졌다. 적색은 또 다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내 말을 좀 듣고…….
-이, 이제 그만…….
-마, 마력이 너무 빨리 줄어들…….
-마력이 바닥이 나면…….
-재, 재생을 못하면 죽…….
그렇게 얼마나 던졌을까.
더 이상 적색의 몸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있던 자리에 망토와 옷자락이 허물처럼 남아 있었다.
김 비서는 그 옷자락을 집어들었다. 이리저리 살피다 말했다.
“설마 마법을 유지할 마력이 없어서 소멸한 건가?”
* * *
“…….”
“…….”
아제트 헤르메스와 청년 사이에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지금 제대로 본 게 맞나 싶긴 한데.”
청년이 거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컬러즈인지 뭔지 다 죽은 거 같은데요?”
“……나도 알고 있으니 좀 닥치게.”
아제트 헤르메스가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어, 어떻게 컬러즈가 이렇게 쉽게…… 그동안 내가 쏟은 노력은 대체…….”
청년은 안쓰럽다는 얼굴로 아제트 헤르메스를 바라봤다.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원래 마법사란 전투에 특화된 이들이 아니었다.
뭘 모르는 멍청이들은 마법이야 말로 스킬보다 우월하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마법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에 비해서 스킬은 단순하고 빠르며 강력하다.
마법사로서 뛰어난 전투력을 갖춘 마법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청년 자신이라던가. 아니면…….
“주하연.”
청년의 시선이 거울로 향했다. 거기에는 젊은 여성이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언제 봐도 탐난단 말이야.”
청년은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았다. 끈적한 침이 입술을 덮었다.
“작전 완전히 조진 거 같은데.”
청년이 아제트 헤르메스를 향해 말했다.
“어떻게 해요. 내가 힘 좀 써 볼까?”
아제트 헤르메스가 말없이 청년을 돌아봤다.
“……물론 공짜는 아니겠지.”
“당연하지. 이제 우리는 한 식구가 아니잖아요?”
“무엇을 원하나.”
“주하연. 그리고 그릇을 얻었을 때, 나도 다시 연구에 잠가할 수 있는 권한을 줄 것. 마지막으로 그릇의 연구에는 내 의향을 최대한 반영해 줄 것.”
아제트 헤르메스로서는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 조건이었다.
“어차피 다른 방법은 없을 텐데? 흑천을 건드렸는데. 이대로 물러나면 그날로 이온은 끝이잖아요.”
흑천은 집요하며 잔인하다.
이 세상에서 이온, 아니 마법사라는 것들은 단 한 명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좋네. 자네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아제트 헤르메스의 말에 청년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판데모니엄의 대의원으로서 그 의뢰를 반드시 완수하죠.”
* * *
최초의 마법사가 된 아제트 헤르메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일이었다.
마법을 이용해서 헌터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이를 통해 재화와 연줄을 모은 다음, 그것들을 기반으로 던전에서 발견되는 마법서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평범한 헌터는 봐도 무엇인지 몰랐지만 악마의 지식을 흡수한 아제트 헤르메스는 마법서를 해석할 수 있었다.
-마법은 적성에 맞는 것을 하나만 익힐 수 있군.
아제트 헤르메스는 악마의 지식과 권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여러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수의 마법을 익히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 게 된 이후, 아제트 헤르메스는 자신처럼 마법적인 적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찾아서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규합한 다음에 어떤 단체를 만들었다.
-이온(Aion). 이온이라고 이름을 짓자.
그렇게 이온이 탄생했다.
어느 정도 기반이 닦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온의 세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많은 마법사가 생기고, 그들이 전 세계로 흩어져서 마법사의 적성에 맞는 아이들을 찾아냈다. 그들이 또 마법사가 되고…….
그렇게 장장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제트 헤르메스는 여전히 정정했다. 악마의 힘을 얻은 시점부터 그는 수명의 한계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이제 계획을 시작할 때가 되었군.
아제트 헤르메스는 이온의 마법사들을 이용해서 전 세계에서 어린아이들을 납치하기 시작했다. 실험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무척이나 비인륜적인 행위였기에 반대하는 마법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이 역시 아제트 헤르메스가 의도한 바였다. 그는 이온의 마법사들을 연구를 위해서라면 친인척도 죽일 수 있게끔 유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마법사들은 모두 죽였다. 그렇게 전 세계에서 백여 명의 아이들을 모았다.
-네가 영광스러운 제 1호가 되겠구나.
아제트 헤르메스는 그 여자아이에게 악마에게서 얻었던 빛의 구체를 집어넣었다.
-이게 뭔가요?
-아주 위대한 물건이란다. 자 느낌이 어떻니?
-음…… 아직은 잘…… 모르…….
여자아이의 몸이 풀썩 쓰러졌다. 그 작은 몸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제트 헤르메스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냉정한 눈동자로 여자아이를 관찰할 뿐이었다.
-역시 이 그릇은 영혼에만 반응을 하는군.
딱히 인간의 영혼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악마 역시 이 그릇을 다룰 때는 영혼을 소비해야만 했다.
다만, 악마의 경우에는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영혼이 거대하기 때문에 죽을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영혼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그릇을 정착시키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지 죽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그릇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아제트 헤르메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내 정신 좀 보게.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실험체를 구한 게 아니던가.
아제트 헤르메스는 수하를 시켜서 다른 아이를 올려보내라고 시켰다.
-네가 영광스러운 제 2호가 되겠구나.
아제트 헤르메스는 수많은 실험체를 희생해 가면서 그릇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처음에는 집어넣기만 해도 실험체가 죽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실험체의 목숨을 유지한 채로 그릇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실험체의 영혼을 이용해서 어떻게 해야 그릇을 사용할 수 있을지 시험했다.
이 과정에서 또 많은 실험체가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아제트 헤르메스는 시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20XX년.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네가 다음 실험체로구나.
검은 머리의 동양인 소녀에게 그릇이 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