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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67화 (167/221)

<혈통이 깡패임 167화>

167. 판데모니엄 (2)

아제트 헤르메스가 동양인 소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 아이가 이번 그릇의 소유자인가?

-제가 판단하기로 지금까지 봐 왔던 실험체 중에서 최고의 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네가 확신을 할 정도로 대단하다니 기대가 되는군.

청년의 말에 아제트 헤르메스는 크게 기꺼워했다.

이온이 창설된 이후, 수많은 마법사가 탄생했다. 그중에는 아제트 헤르메스와 버금가는 마법사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이 청년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릇을 이식하는데 영혼이 조금도 소모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호숫물을 대야로 퍼낸 것처럼요. 이 아이의 영혼은 실로 방대하고 거대합니다.

청년은 어떤 마법사들보다 영혼에 민감했다.

그릇의 연료가 영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실험을 진행하는데 적합한 인물이었다.

아마도 이 청년의 주특기가 저주 마법이기 때문이리라. 저주 마법이란 사람의 영혼을 더럽히는 마법이니까.

-이 정도로 강대한 영혼이라면 여러 가지를 실험할 수 있을 겁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청년의 두 눈동자가 탐구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좋아. 이번 실험체는 자네가 전담하도록 하게.

-제, 제가 말입니까?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일이야. 그릇에 있어서는 나보다 자네가 월등히 뛰어나네.

청년이 실험에 참가하면서 연구의 진행 속도고 놀랍도록 빨라졌다.

-좋은 성과를 기다리고 있겠네.

아제트 헤르메스는 청년을 격려한 뒤, 연구실을 떠났다.

* * *

청년은 아제트 헤르메스가 떠나자마자 실험을 시작했다. 기대감에 벅차올랐기에 1초라는 시간도 기다릴 수 없었다.

-안녕?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구나.

그릇을 이식받은 동양인 소녀는 청년의 말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죽은 생선 같이 멍한 눈동자로 바닥을 응시할 뿐이었다.

-모든 게 당황스러울 거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 사람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지.

여전히 소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년은 이런저런 말을 떠들어댔다.

-우리는 이온이라고 한다. 마법사들의 단체야. 이온은 몰라도 마법사에 대해서는 들어봤지?

마법사는 무척 희귀하지만 그렇다고 비밀스러운 존재는 아니었다. 종종 헌터들과 함께 던전에 참여하고는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일은 아무도 모를 거야. 그만큼 은밀하고, 조심해야 할 일이거든.

이온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납치를 은폐해 왔다.

만약 이온의 범죄행각이 조금이라도 드러난다면 단체의 존속이 위험한 것은 둘째치고 실험을 지속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고등한 존재가 남긴 물건의 사용법을 알아내는 일이란다. 근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말이야.

단체가 설립된 이후, 이온에서는 악마들이 건너온 이차원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수집해 왔다.

유물 중에서 기록물이 발견됐다고 하면 만금을 들여서라도 매입하고, 특이한 건축물이 세워진 던전이 발견되면 숨어들어서라도 확인했다.

그렇게 어렵게 수집한 정보 중에는 그릇에 대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전부 단편적인 지식들뿐이라 그릇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그릇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실험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거지. 침팬지 무리에 갑자기 외계인들의 우주선이 툭 떨어진 거야. 하지만 침팬지들의 지능으로는 이게 대체 어떤 물건인지.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몰라.

오랜 시간 실험을 해 오면서 이온에서는 그릇의 사용법을 몇 가지 찾아냈다.

하지만 그건 그릇의 위대함에 비하면 부스러기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이 멋진 물건을 가만히 놔둘 수도 없지.

그릇을 아주 조금, 부스러기만큼 사용한 것만으로 이온은 놀랍도록 대단한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사람의 능력치를 뜯어고칠 수 있었으며 기프트라 불리는 특수한 재능을 만들어낸 것도 또한 가능했다.

-기대가 되지 않니? 그릇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을지. 그릇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지.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너희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단다.

길고 긴 이야기가 끝났다. 그러나 소녀는 여전히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저런…… 충격을 심하게 받은 모양이구나.

종종 이런 경우가 있었다. 납치될 당시에 험한 일을 겪은 여파로 정신이 망가져 버린 것이다.

-이래서야 재미가 없는데.

그릇은 영혼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리고 영혼이란 감정에 의해서 좌우되는 법.

적성이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감정이 죽어 버리면 실험을 하는데 여러 가지 곤란한 점들이 많았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대충 알겠구나.

이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로 알아본 것은 아니다.

다만, 이곳에 오는 실험체들은 다 비슷비슷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엄마가 먼저 죽었니 아빠가 먼저 죽었니?

소녀의 몸이 움찔거렸다.

-내 정신 좀 봐. 엄마가 먼저 죽었을 리는 없겠구나. 죽기 직전에 험한 꼴을 당했을 테니까. 납치조에 속한 마법사들은 하나 같이 변태들 뿐이니까.

소녀가 청년을 쳐다봤다. 죽어 버린 눈동자에 감정이 조금씩 깃들기 시작했다.

-너 혼자 납치된 걸 보면 외동이거나 형제가 있어도 너보다 나이가 많았나 보구나. 혹시 여자 형제가 있었니?

청년은 소녀의 눈동자에 깃든 감정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보았다. 짙은 미소를 지으며 더욱 소녀를 자극했다.

-여자 형제가 있었던 거 같은데…… 안됐구나. 끔찍한 광경을 두 개나 봤을 테니까. 그래서 묻는 건데. 엄마가 먼저 죽었니. 언니가 먼저 죽었…….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듣기만 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이 끔찍한 소리였다.

그러나 청년은 그게 뭐가 그리 좋은지. 기꺼워할 뿐이었다.

-역시 분노를 해야 영혼이 격동하는구나.

청년의 눈에는 보였다. 이 소녀의 영혼이 범람하는 것이.

-이제 다음 실험으로 넘어가도 되겠구나.

청년이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문이 덜컥 열리더니 바퀴가 달린 철제 의자가 굴러왔다.

의자 위에는 한 남성이 단단하게 포박이 되어 있었다.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청년이 남성에게 속삭였다. 남성은 힘겹게 눈을 떴다.

-……이 쓰레기 같은 면상을 또 봐야 한다니. 돌아버릴 것 같군.

-참으세요. 어차피 계속 봐야할 텐데. 조금이라도 익숙해져야 할 거 아닙니까?

남성의 눈가가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그럼 오늘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청년이 소녀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소녀의 영혼을 움직여서 그릇에 명령을 내렸다.

-자, 혈통을 얻을 시간이란다.

소녀의 영혼을 조작하고 있었기에 청년은 지금 소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가 건강혈에 반응합니다.>

<진(眞) 건강혈을 습득합니다.>

메시지를 본 순간, 청년의 입가가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역시 대단해! 이렇게 완벽한 실험체는 처음이야!

대다수의 실험체들은 혈통의 근원을 흡수하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하지만 이 소녀는 혈통을 흡수하고도 멀쩡했다.

-아, 멀쩡한 건 아니군.

소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 냈다.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웅크렸다.

청년은 그런 소녀를 내려다보며 관찰했다.

-그릇에는 문제가 없는데…… 아직 육신이 완전하게 성장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그렇다고 어른을 가지고 실험할 수는 없는데. 영혼이 순수하지 못해서.

의자에 묶여 있던 남성은 그런 청년을 역겹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개 같은 새끼들. 대체 왜 이딴 짓을 벌이는 거냐!

-귀찮게 그걸 또 물어요? 저번에 설명해 드렸잖아요.

침팬치가 우주선의 사용법을 알아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일까?

닥치는 대로 버튼을 눌러보는 것이다. 그래야 뭐라도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이 실험도 마찬가지였다.

그릇이 있으면 기프트조차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혈통을 생성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이한 게 말이죠. 이 그릇과 혈통을 가까이에 두면 그릇이 그 혈통을 습득한단 말이죠. 그것도 진혈로 말이에요.

어째서 이렇게 되는지는 모른다. 우주선이 하늘로 날아오른다고 해서 침팬치들이 그 원리를 어찌 이해하겠는가.

그러니 계속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래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애가 죽는다고 해도 말이냐!

-위대한 희생이죠.

-개 같은 새끼들. 언젠가 반드시 천벌이 내릴 거다.

-천벌?

청년의 휙 몸을 돌렸다. 남성을 향해 검지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그런 불명확한 걸 믿다니. 이렇게 감성적일 줄은 몰랐네요.

청년은 천천히, 느릿하게 양손을 펼쳤다.

-이 실험이 지속된 지 몇 백년이 넘었어요. 하지만 이온은 천벌의 ㅊ자도 본 적이 없죠. 왜 그런지 알아요?

청년은 소녀를 가리켰다. 소녀는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우리의 손에 신보다 더 대단한 게 있기 때문이에요.

청년의 얼굴에 자부심이 떠올랐다. 그는 자랑스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앞에 신이 있다는 게. 그리고 그 신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게.

-그러니 당신도 천벌 같은 미신은 믿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기쁜 마음으로 실험에 참가해 주세요.

별안간 벽에 걸려 있던 인터폰이 울렸다. 청년은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에요?

-크, 큰일입니다! 치, 침입자가 들어왔습니다!

청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즐거운 순간에 갑자기 훼방꾼이 등장한 것이다.

-이 실험실이 들켰다고요? 대체 무슨 수로 이곳을 찾아낸 거죠?

-자, 자세히 말씀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놈이 경비원들을 전부 죽…… 마, 막아! 막으라고! 절대로 놈이 들어오게 하지…… 끄아아악!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이봐요? 이봐요!

청년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경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 아아, 들리세요?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여기가 이온의 지부가 맞나요? 정보부에서 찾아냈으니까. 맞을 건데. 혹시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무척 앳된 목소리였다.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누구냐. 누군데 이온을 건드리는 거지?

-아, 맞는 모양이네요. 그럼 더 참을 필요가 없죠.

참을 필요가 없어?

청년이 의문을 느낀 순간, 굉음이 터졌다. 한 번으로 멈추지 않고 연달아 들려왔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말이 끝나기 직전, 문이 박살이 났다. 주변의 벽까지 같이 날아가버렸다.

그 여파로 청년은 날아갔다. 청년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뻥 뚫린 문 앞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양손에 피가 한 가득 묻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까 인터폰으로 연락드렸던 사람이에요.

소년이 순박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청년은 그 인사를 받을 수 없었다.

-겨, 경비! 경비는 어디 간 거야!

-불러도 소용없어요. 오는 길에 제가 다 처리해 버렸거든요.

소년이 피 묻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청년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하게 변했다.

-너, 넌 누구야.

-저요?

소년이 짧게 기침을 한 뒤 말했다.

-권천이라고 하는데요. 내 친구를 납치한 나쁜 사람이 있다고 해서 잡으러 왔어요.

그 말에 철제 의자에 묶여 있던 남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참 일찍도 온다.

그런 뒤, 청년을 향해 조롱 어린 어조로 말했다.

-야, 내가 말했지. 천벌이 내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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