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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68화 (168/221)

<혈통이 깡패임 168화>

168. 판데모니엄 (3)

이온의 습격 사실은 시술실에 있던 의사들에게도 알려졌다.

“아, 아가씨…… 이걸 어떻게 하죠?”

시술실의 한쪽 벽에 마련된 여러 대의 CCTV 화면에서는 병원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전부 중계되고 있었다.

타카미네 료코는 말없이 CCTV 화면을 바라봤다. 시술실에 있는 의료진들은 전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아가씨!”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생각 중이에요.”

병원 외부에 펼쳐진 결계. 그리고 침입자들이 병원으로 들어올 때 사용한 기묘한 기술.

헌터랑은 다르다. 타카미네 료코는 저들이 마법사가 아닐까 추측했다.

그렇다면 저 많은 마법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단체는 한정되어 있다.

이온.

오직 마법사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그 단체 말이다.

“아가씨! 지금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닙니다!”

방금 전 그 의사가 다시 소리를 높였다. 그 바람에 타카미네 료코의 집중이 깨졌다.

“흑천이 지키고 있는데도 병원을 공격한 정신 나간 놈들입니다! 저 놈들이 노리는 게 뭐겠습니까! 바로 여기 있는 권한울이 아니겠습니까!”

타카미네 병원은 유물을 이용해서 헌터를 치료하는 전문 병원이다. 그렇기에 값비싼 유물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도둑들이 병원을 침입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대규모 침공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저놈들은 분명히 이 시술실로 올 겁니다! 여기 모여 있다가는 우리들도 큰일날 게 뻔합니다! 도망쳐야 해요!”

“마, 맞습니다! 흑천도 공격한 놈들이 우리들을 살려놓겠습니까?”

“저, 저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요! 내일이 우리 딸 생일이란 말이에요!”

타카미네 료코는 의료실에 모여 있는 의사들을 쓱 둘러봤다. 다들 공포에 질려 있었다.

“우리가 도망치면 권한울 님은 어쩌자는 거죠?”

환골탈태를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그때그때 필요한 약물을 주입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어지거나 실수하면 환골탈태는커녕 환자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지금 우리들이 죽게 생겼는데. 저 남자가 문제입니까?”

“우리부터 살고 봐야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가씨께서도 여기 모인 사람들이 죽으면 일본 의료계에 얼마나 큰 손실인지 아시잖습니까!”

타카미네 료코는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꾹 참았다.

목숨이 아까운 것이야 이해를 하겠지만 일본 의료계를 운운하다니.

“여러분들의 마음은 이해를 합니다.”

타카미네 료코가 의료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두렵고, 무섭겠죠. 누구나 그럴 겁니다.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 말입니다.”

의료진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타카미네 료코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의사로서 환자를 포기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이상적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시술 때문에 여러분들께서 어떤 혜택들을 받으셨죠?”

병원에서 최대한 편의를 봐준 것은 물론이고 흑천 일가에서 받은 것들도 많다.

놀랍게도 그 흑천 일가에서 의료진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간 것도 모자라서 눈이 빠질 만큼 엄청난 성의를 보인 것이다.

“누릴 것을 이미 다 누리셨으면 그만큼 내뱉으셔야 할 거 아닙니까. 여러분들께서는 죽든 살든 이 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그 말에 의료진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 중 한 명이 고함을 질렀다.

“시끄러워! 나, 나는 여길 벗어날 거야!”

“우리가 그딴 명령을 따를 것 같아!”

의료진들은 각기 흩어져서 자신들의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타카미네 료코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들 생각이 짧으시네요. 여기서 도망치면 흑천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요?”

그 한 마디에 모두의 행동이 멈췄다.

“잡혈의 혈족이 죽어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말살하는 게 흑천의 방식입니다. 하물며 직계…… 그것도 진혈이 죽었는데. 그 죽음을 방관한 여러분을 가만히 놔둘 것 같나요?”

의료진들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타카미네 료코를 돌아봤다.

혼란에 빠진 탓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여기에 있는 환자가 어떤 인물인지.

“여러분들만 화를 입으면 다행이죠. 어쩌면 그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 걸요.”

의료진들의 눈동자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의료실로 들어오는 출입문에서 굉음이 터져나왔다.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와 함께 문이 들썩였다. 의료진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아앗! 와, 왔다! 왔어!”

“사, 사람 살려!”

타카미네 료코는 출입문 바깥쪽에 있는 CCTV 화면을 돌아봤다.

알몸의 남자 몇 명에서 문을 연신 두들기고 있었다. 이온의 마법사들이었다.

“다들 조용히 하세요!”

타카미네 료코가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실을 가득 울릴 만큼 엄청난 성량에 의료진들이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이 의료실은 전체가 유물로 둘러싸여 있어요.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유물이 발동해서 누구도 침입할 수 없습니다.”

그제야 의료진들은 출입문이 들썩이기만 할 뿐, 뚫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이 병원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는 이곳입니다. 지금 나가봤자 저들에게 들켜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이곳에서 권한울 님의 시술을 이어 나가며 흑천이 이기기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의료진들의 눈동자에 떨림이 차츰 잦아들었다. 이성을 되찾고 있다는 증거였다.

“알아들으셨으면 빨리 움직이세요!”

“예, 예!”

의료진들은 허겁지겁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권한울의 상태를 확인하며 다음에 사용할 약재를 준비했다.

타카미네 료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CCTV 화면을 다시 돌아봤다.

사실 의료진들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이 의료실을 보호하고 있는 유물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는데…….”

어디까지나 응급상황에서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마련된 유물일 뿐이다. 침입자들의 수준도 보통이 아니니 금방 뚫릴 위험이 컸다.

“그렇다고 권한울 님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타카미네 료코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죽음 이후, 병원장의 수작으로 병원의 지배권을 하나씩 잃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병원장이 고용한 판데모니엄의 악인에 의해서 목숨까지 위험했던 상황이었다.

전전대 가주와의 의리를 잊지 않았던 흑천 일가가 아니었더라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권한울이 아니었더라면 타카미네 료코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앗.”

침입자의 공격에 의해서 출입구의 문에 금이 갔다. 타카미네 료코는 터져 나오려는 탄식을 간신히 참았다.

의료진이 이 광경을 눈치 채면 큰일이다. 그럼 모든 게 다 어그러지고 만다.

“제발…….”

타카미네 료코가 간곡하게 기도했을 때였다.

침입자들의 머리 위에 검은 고리가 나타났다. 그 직후, 침입자들의 몸이 압축기에 눌린 것처럼 으스러졌다.

대여섯 명의 침입자들이 순식간에 전멸했다. 그 자리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그 여성은 CCTV를 보며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현장을 지킬 테니 안에 계신 분들은 시술에 집중해 주세요.

양손에 마력을 일으키며 주하연이 말했다.

* * *

권천.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청년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권천이 누구던가.

그 악명 높은 흑천 가주의 둘째 아들이자 단신으로 골드 등급의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골드 등급의 던전을 클리어한 뒤, 몇 년이 더 지났으니 지금은 그때보다 더 강해졌을 터.

-이곳을 찾아낸 것은 칭찬해 줄 만하군…… 하지만 너무 건방지구나. 혼자서 찾아오다니.

-아, 제가 아니라 정보원들이 찾아낸 거라서 칭찬을 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청년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제가 한 일도 아닌데. 칭찬을 들으면 부끄럽잖아요.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 나올 말은 아니지 않나.

그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청년은 꾹 참았다.

-저기요. 선생님.

선생님?

낯선 호칭에 청년은 당혹감을 느껴야했다.

-선생님께서 납치한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흑천 일가의 협력 가문인 청송 배씨 가문의 후계자 배철수라는 사람이에요.

-알고 있다. 정확히는 납치를 한 다음에 알았지.

-그럼 왜 당장 돌려보내지 않으셨어요?

대단한 이유는 없다.

청년은 이온의 마법사들을 믿고 있었다. 다들 전투능력은 떨어지지만 흔적을 은폐하고 속이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은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권천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섬뜩했기 때문이다.

-사실 가문의 후계자씩이나 돼서 납치당한 철수 형도 문제가 많기는 해요.

-야! 그게 지금 할 소리냐!

납치당한 남성, 배철수가 항의했으나 권천은 혓바닥을 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걸 알고도 돌려보내지 않다니. 무슨 생각으로 그러셨어요? 아니면 우리 흑천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셨나요?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권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의에 압도당한 탓이었다.

-일을 저지르셨으니 대가를 치르셔야죠.

권천이 주먹을 쥐었다. 그 모습에 청년 역시 마력을 일으켰다.

-대가? 너야 말로 내 실험을 방해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그 직후, 용투기와 마법이 격돌했다.

* * *

전투는 권천의 승리였다.

전투의 양상은 어느 정도 대등하게 흘러가는 듯했으나 중반부터 권천이 압도했다.

-아, 놓쳐 버렸네.

하지만 결정타를 날리려던 찰나, 청년이 처음 보는 유물을 사용해서 도망을 쳤다. 권천은 청년이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며 한탄했다.

-아버지한테 혼나겠는 걸. 이 일의 주동자를 잡아오라고 했는데.

청년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배철수에게 다가갔다. 배철수를 묶고 있던 쇠사슬을 모조리 쥐어뜯었다.

-크, 크으…… 이제야 좀 살겠네.

-살겠다는 말은 너무 이르지 않아요?

-넌 또 무슨 개소리야.

-배씨 가문 가주님께서 형이 납치된 걸 알고 얼마나 화를 냈는지 아세요? 돌아오면 가만 안 놔두겠대요.

배철수라는 남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정도로 아버지가 무서운 모양이었다.

-대체 어쩌다 납치를 당하신 거예요.

-나도 정확히는 몰라. 그냥 저 새끼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내가 근처에 있으니까 그릇이 혈통을 생성했느니 뭐니 하던데.

-그릇이요?

배철수가 손가락을 들어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한 소녀가 구석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었다.

-넌 누구니?

권천이 소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소녀는 떨기만 할뿐 입을 열지 않았다.

권천은 소녀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공간을 열어서 담요와 보온병을 꺼냈다.

소녀의 등에 담요를 덮은 뒤, 보온병 뚜껑에 내용물을 따라서 건넸다.

향긋한 냄새가 폴폴 올라오자 소녀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민트 차야. 우리 엄마한테 들은 건데. 힘들 때, 차를 마시면 안심이 된다더라.

소녀는 조심스럽게 차를 받고 홀짝이기 시작했다.

-넌 무슨 아공간에 차를 넣어놓고 다니냐.

-쉿, 형은 조용히 하고 가주님한테 어떻게 혼날지 고민하고 있어.

권천은 소녀가 차를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한 잔 더 따라 줄까?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보다 한층 더 안정된 상태였다.

권천은 무릎을 꿇고 소녀와 눈높이를 맞춘 뒤, 물었다.

-넌 이름이 뭐니?

소녀는 우물쭈물하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

-이?

-이다해…….

-나랑 같은 한국인이었네.

권천은 소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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