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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73화 (173/221)

<혈통이 깡패임 173화>

173. 시간 (3)

주하연이 공간을 해방시킨다.

완성된 마법은 어떤 형상을 이루며 오딘을 관통했다. 마치 배의 충각이 사람을 들이박는 것 같았다.

그 막대한 힘 앞에 오딘의 몸은 풍선처럼 터졌다. 육편 한 조각, 피 한 방울 남기지 못했다.

“…….”

오딘을 해치웠음에도 주하연은 기쁨을 표출할 수 없었다.

주하연의 두 무릎이 땅에 닿았다. 혈관이 퍼렇게 도드라졌다. 마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대량의 마법을 급격하게 소모한 탓이었다.

목숨을 걸어야겠다는 주하연의 말은 비유도, 투쟁심을 고양시키기 위한 다짐도 아니었다.

진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

“괜찮은 건가!”

김 비서가 주하연에게 달려왔다. 주하연을 살리기 위해 아공간에서 회복 물약을 꺼내면서.

그때였다.

별안간 김 비서의 몸이 터졌다. 사람이었던 조각이 사방으로 퍼졌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하연은 금방 반응하지 못했다. 멍한 얼굴로 김 비서의 잔해를 쳐다볼 뿐이었다.

“김 비서 님……?”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검은 그림자가 번졌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와우.”

오딘이었다.

“하연아, 언제 이런 걸 만들어 낸 거니?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오딘은 눈을 크게 뜬 채 감탄을 했다. 진심이 담겨 있는 칭찬이 쏟아졌다.

“응용을 넘어서 창조를 하다니! 공간계 마법을 이렇게까지 갈고닦았을 줄은 몰랐구나!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네 재능은 정말 대단해!”

“방금……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어떻게 김 비서님을……!”

“아, 저거?”

오딘이 김 비서를 가리켰다.

“내가 입은 피해를 전가한 거야.”

주하연은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모든 피해를 전가할 수는 없고, 대충 30% 정도?”

“거짓말하지 마세요! 저주 마법 중에 그런 게 있을 리가…….”

“하연아, 그게 무슨 멍청한 소리니. 네가 성장을 하는 동안 나라고 가만히 있었을 것 같아?”

오딘이 쯧쯧 혀를 찼다.

“그보다 남은 70%의 피해는 어디로 갔을까 궁금하지 않니?”

오딘이 양팔을 벌렸다. 그의 발밑에서 저주의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중의 상당수가 연기가 되어 소멸했다.

“내가 여태까지 끌어모은 저주들을 희생시키는 걸로 대신했단다.”

주하연은 말없이 오딘을 쳐다봤다. 저주의 덩어리가 소멸할 때마다 그녀는 주먹을 강하게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끄아아악!

-으아아아악!

사람의 비명소리가 끝없이 들려왔다. 저게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오딘이 다루고 있는 저주의 덩어리란 사람의 영혼이다.

사람의 영혼을 오염시키고, 부패시키고, 일그러트려서 사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오딘이 입을 피해를 대신하는 것 역시 가능했으리라.

“당신은…… 진짜 태어나서는 안 될 인간이야.”

“하연이 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좀 슬픈데.”

오딘이 검지손가락을 들어서 주하연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 저주가 맺혔다.

“일단 한숨 푹 자고 이따 보자.”

쇠약의 저주가 주하연에게 쏘아졌다. 주하연의 몸이 앞으로 허물어졌다.

“그럼 대충 정리됐고, 이제 남은 건……,”

오딘이 뒤를 돌아봤다. 새파랗게 어린 세 명이 보였다.

“내가 오늘 하연이를 만나서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데. 너희 세 명은 그냥 살려 줄까?”

비웃음이 튀어나왔다. 메이홍이 입가를 비틀며 칼을 손에 쥐었다.

“개소리 하고 있네.”

“얼굴은 예쁜데 입이 험하네.”

메이홍이 손바닥으로 칼날을 훑었다. 붉은 기운이 칼을 물들였다.

수라혈의 권능인 귀검(鬼劍)을 꺼내든 것이다.

“후돈 오빠는 어떻게 할 거예요?”

권후돈은 말없이 흑린갑으로 몸을 둘렀다. 굳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증오로 가득한 눈빛으로 오딘을 노려보고 있었다.

“가엘은?”

“대답할 필요가 있습니까.”

가엘 가르시안의 대답에 메이홍은 짧게 웃었다.

“거참 눈물겨운 동료애네.”

오딘은 지루하다는 듯이 세 명을 쳐다봤다. 사실 오딘은 주하연과 권한울이 아니라면 관심이 없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동료를 지키려하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애를 쓰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러운 걸.”

“아저씨, 망상증 있어?”

별안간 메이홍이 입을 열었다. 오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망…… 뭐라고?”

“죽을 각오? 우리는 그럴 생각도 없는데. 혼자서 주절주절 떠들면 망상증 맞지. 아니면 나이를 헛으로 쳐드셔서 헛소리가 느셨나.”

오딘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갔다.

“우리는 안 죽어.”

강적을 두고 허세를 부린다고 보기에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 전에 우리 대장님이 나올 테니까.”

오딘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가당찮다는 듯이 한참을 웃었다.

“어린 후배들에게 인생의 쓴맛을 알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권후돈이 흑린갑을 두른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메이홍이 장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가엘 가르시안은…….

“바알.”

나지막히 악마왕의 이름을 읊조렸다.

폭발적인 마력이 가엘 가르시안을 휘감았다. 검은 짐승으로 변한 가엘 가르시안이 오딘에게 달려들었다.

“어? 환수혈?”

가엘 가르시안을 막기 위해서 오딘은 저주의 장벽을 세웠다. 그러나 저주의 장벽은 가엘 가르시안의 마력이 닿자마자 거품처럼 녹아내렸다.

“아, 잊고 있었군. 마법은 원래 악마의 학문이었지.”

단순히 마법만 통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저주 역시 악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저주란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마법.

인간보다 강인한 영혼을 가진 악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여기서 내 천적을 만날 줄이야. 이래서 세상일이란 재미있다니까.”

그러나 말과 달리 오딘은 가엘 가르시안의 공격을 모두 가뿐하게 피했다.

[email protected]%!$#%@$!.

그럴 수 록 가엘 가르시안은 더욱 거칠 게 오딘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옷자락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

갑자기 오딘의 움직임이 멈췄다. 가엘 가르시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을 내리쳤다.

거친 소리와 함께 바닥이 갈라졌다. 그러나 오딘은 멀쩡했다.

“뭐야, 그럴 듯한 건 겉모습뿐이었나?”

오딘은 팔뚝으로 가엘 가르시안의 팔을 막고 있었다. 마치 깃털이 앉은 것처럼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럼 더 이상 볼일은 없지.”

오딘이 공세를 바꾸려던 때였다.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오딘은 뒤로 물러났다. 붉은 참격이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베었다.

“제법 날카로운데?”

메이홍은 곧바로 오딘에게 따라붙으며 장검을 휘둘렀다.

“나도 있어!”

뒤에서 권후돈이 오딘을 덮쳤다. 두 사람의 협공에 오딘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오딘이 아공간을 열어서 T자 모양의 짧은 지팡이를 꺼냈다. 그것을 거꾸로 쥔 채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 냈다.

권후돈의 주먹과 메이홍의 검격이 어지럽게 얽혔다. 짜놓은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공격에 오딘은 새삼 감탄했다.

“둘 다 미쳤는데? 그 나이에 여기까지 실력을 올려놔?”

오딘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두 명의 재능이 대단한 수준이라는 것을.

이 나이대에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어쩌면 업계 전체를 통틀어도 힘들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봤자 아직 채 설익은 과일에 불과했다.

-%$&!!!!

가엘 가르시안이 포효하며 삼파전에 난입했다. 권후돈과 메이홍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엘 가르시안과 합을 맞췄다.

그때였다.

“컥!”

권후돈이 피를 토해 냈다. 어느새 얼굴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후돈 오빠!”

권후돈의 몸이 허물어졌다. 어느새 걸린 저주가 그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었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오딘이 말을 내뱉자마자 이번에는 메이홍이 피를 토해냈다. 검이 먼저 떨어지고 다음으로 메이홍이 쓰러졌다.

“내가 저주를 뿌린 것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역시 아직은 애송이들이야.”

가엘 가르시안이 황급히 오딘을 덮쳤다. 오딘은 기다렸다는 듯이 지팡이로 가엘 가르시안의 복부를 힘껏 찔렀다.

강렬한 충격에 가엘 가르시안의 정신줄이 잠시 끊어졌다. 반신화가 해제되며 가엘 가르시안은 바닥에 쓰러졌다.

가엘 가르시안은 다시 환수혈의 권능을 사용하려고 했다. 허나 그보다 먼저 오딘이 달려와서 가엘 가르시안의 머리를 걷어찼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가엘 가르시안은 벽에 처박혔다.

“제법 즐거웠다.”

오딘은 지팡이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망신창이가 된 사람을 지나쳐 시술실의 입구로 향했다.

“제법 단단해 보이는군.”

오딘은 시술실을 보호하고 있는 힘에 대해서 한눈에 알아봤다.

어찌나 견고하던지 어지간한 헌터들은 감히 침범조차 할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오딘은 어지간한 헌터가 아니었다.

오딘은 저주의 덩어리를 이용해서 문을 후려쳤다. 시술실의 문은 너무나도 쉽게 박살이 났다.

“그럼 그릇을 담고 있는 놈 얼굴이나 보러 갈까?”

오딘은 희희낙락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 * *

백두산에서 돌아온 이후, 이다해는 고민에 빠졌다.

권혁이 보여 줬던 모습이 너무 신경 쓰였던 것이다.

‘단순한 질투가 아니야 그건…….’

어떤 선을 넘기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이 사실을 권천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일개 시녀인 그녀가 흑천의 혈족을 고발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믿어 주지도 않을 거야.’

권천은 평소에도 권혁을 형으로서 믿고 따랐다. 이다해가 끼어들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권혁 역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다해에게 그런 발언을 했던 것이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이 없어.’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권혁의 본 모습을 아는 사람은 이다해 뿐이다. 그 말은 권천을 도울 수 있는 사람도 그녀뿐이라는 소리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다해의 고민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 * *

슬슬 겨울로 접어드는 11월.

이국의 손님이 흑천 일가를 방문했다.

그 손님이란 중동에서 온 아랍인 노인이었다.

-먼 길을 오게 해서 미안하군.

언제나 근엄하던 흑천의 가주조차 반가움을 표할 정도의 손님이었다.

이다해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른 시녀에게 물었다.

-저분은 누군데 저렇게 환대를 받나요?

평소에도 사이가 나쁜 시녀인지라 날카로운 눈총부터 먹었다.

-넌 여기서 근무한 지가 얼만데 아직도 저분을 모르니?

아직 다섯 달밖에 안 됐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꾹 참았다. 사정이 급한 건 이다해였으니까.

-라사드 가문에서 온 압둘 라사드라는 분이셔. 1등 조율사이시지.

-조율사요?

-흑천 일가가 흑룡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라사드 가문은 천재혈을 가지고 있대. 그 천재혈을 사용하면 헌터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더라.

더 강하게.

그 말이 뇌리에 박혔다.

권천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아무도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해진다면.

권혁도 권천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였다.

<‘???’가 천재혈을 감지합니다.>

<진(眞) 천재혈을 습득합니다.>

갑작스럽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

이다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온에서 자신의 몸에 이상한 것을 넣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 이상한 것 때문에 건강혈을 얻었으니까.

하지만 흑천에서 일하는 동안 흑룡혈을 얻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 순간, 엄청난 통증이 그녀를 덮쳤다. 이다해는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떨었다.

-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옆에 있던 시녀가 당황해서 이다해를 흔들었다. 그럴 수 록 이다해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의, 의사를 불러올게!

시녀가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다해의 의식이 점점 어둠 속으로 잠겼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이다해는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금방 파악할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한 달이란다.

무심코 내뱉은 말에 대답이 들려왔다. 이다해는 화들짝 놀라며 옆을 돌아봤다. 권천이 의자에 앉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

-궈, 궈, 권천 님?

-갑자기 쓰러져서 놀랐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의사도 원인을 모르겠다던데.

권천이 근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이다해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얼버무렸다.

-저…… 그런데 정말 한 달이나 지났나요?

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다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한주 동안은 고열이 끓었고, 그 다음에는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예? 서, 설마…….

이다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한 달 동안 권천은 매일 같이 이다해를 찾아와서 병간호를 했다.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권천의 발목만 잡았다는 생각에 이다해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시 건강해져서 다행이네. 선생님 불러올 게.

권천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다해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말을 잇질 못했다.

그러나 권천이 일어난 순간, 이다해는 머릿속이 타오르는 것 같은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

-……어?

눈에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권천의 몸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근육과 뼈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마력통로까지.

문외한이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권천의 신체는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몇 군데 신경이 쓰이는 곳이 있었다.

-혹시 왼팔이 불편하지 않으세요?

이다해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응? 그건 또 어떻게 알았니?

-7번 신경과 연결된 마력통로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요. 최근에 마력을 격하게 사용하신 거 같은데 맞나요?

권천이 신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어, 맞아. 어제 흑룡십이승무를 연습하다가 연습용 인형을 잘못 때렸거든.

-당분간 왼팔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 같아요. 지금은 경미한 부상이지만 이게 계속 쌓이면 후유증이 남을 거예요.

-알겠어. 걱정해 줘서 고마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권천은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다해의 말이 이어질수록 권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왼쪽의 능형근과 대원근, 광배근이 과도하게 발달되어 있어요. 이 상태가 더 심해지면 불균형 때문에 갑작스러운 기습에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할 거예요.

-다해야?

-오른발의 무릎의 각도가 2도 정도 틀어져 있네요. 이 부분을 잡자야 골반이 바로 잡히고 척추의 균형이 제대로 설 거예요.

-지금 대체 무슨 말을…….

-심장과 이어지는 15번 마력통로를 더욱 확장시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야 위급할 때, 대량의 마력을 발산하고도 큰 무리가 없을 거예요.

권천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이다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이다해가 하는 말들이 전부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는 점이다.

한 달 전, 흑천 일가를 방문했던 압둘 라사드가 했던 말들과 비슷했던 것이다.

-앗……!

불현듯 이다해는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천천히 떠올리자마자 권천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제가 이상한 말을…….

권천은 이다해를 타박하는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걱정으로 가득한 목소리에 이다해는 마음속에 세워 놓았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게…….

이다해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이온에게 무언가를 주입당할 일. 그리고 그것 때문에 건강혈과 천재혈을 얻은 것까지.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권천은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많은 정보량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 일은 숨기는 게 좋겠어.

혈통을 습득하는 능력이라니. 외부에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흑천의 가주인 권선우만 하더라도 이 사실을 알면 이다해를 해부해서라도 그 이유를 알아낼 게 분명했다.

-너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건 차차 알아보도록 하자.

권천은 이다해의 비밀을 알고도 그녀를 내팽개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일처럼 고민을 했다. 그 모습에 이다해는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 * *

그 뒤로 권천은 이다해를 더욱 각별히 신경 썼다.

이다해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 정체모를 힘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났다. 이다해로서는 바라지 마지않은 상황이었다.

-방금 전, 그 기술 말인데요. 81번째 마력통로에 집중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이다해는 자신이 얻게 된 천재혈을 이용해서 권천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 권천은 이다해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다해의 조언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다해의 조언은 적절할 뿐만 아니라 권천조차 파악하지 못한 문제점들을 짚어 줬다. 이다해가 지적한 문제점을 고치는 것만으로도 권천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다해야…… 넌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제가 대단한 게 아니라 진(眞) 천재혈이 대단한 거예요.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천재혈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헌터를 조율할 수 있다고 알려진 혈통이다.

진(眞) 천재혈은 그 능력이 훨씬 뛰어났다. 권천이라는 천재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권천은 이다해의 도움 덕분에 빠르게 강해졌다. 이다해는 권천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러나 젊은 남녀가 오랫동안 붙어 있는데. 이상한 감정이 생겨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차츰 더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가끔 깊은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권선우가 약속했던 후계자 시험이 다가왔다.

* * *

-어때?

권천이 정장을 입은 채로 물었다. 흑천의 상징이라는 검은 정장은 권천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

-권천 님은 뭘 입어도 잘 어울리세요.

이다해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너는 맨날 그렇게 말하더라.

-사실인 걸요!

이다해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권천과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이다해는 권천만큼 잘생긴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

-넥타이가 좀 흐트러졌네요.

이다해는 걱정스러운 손놀림으로 권천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오늘 권천은 흑천 일가를 떠난다.

회장 권선우가 내건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임무를 어떻게 완수하느냐에 따라서 흑천의 후계자가 결정된다.

-그런데 정말로 권혁 님을 밀어 줄 생각이세요?

이번 임무에는 권혁도 함께 한다. 후계자의 자격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번에 말했잖아. 형님이야 말로 가주 자리에 어울린다고.

지난 1년 동안 권천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이다해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그녀는 권천이야 말로 가주 자리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다해에게 중요한 것은 권천뿐이었다. 권천의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사히 다녀오세요.

무사히만 돌아와 달라.

그 말은 꾹 참은 채 이다해는 권천을 배웅했다.

그리고 며칠 뒤.

권천의 방을 청소하던 이다해는 갑작스럽게 요란한 소리를 들었다.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이 열렸다. 흑천의 헌터들이 이다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다해, 맞나?

헌터들은 무척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권천의 반역 혐의 조사를 위해 우리와 같이 가 줘야겠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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