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182화 (182/221)

<혈통이 깡패임 182화>

182. 보물찾기 (1)

일본의 어느 대형 병원.

“……에휴.”

VVIP만 쓸 수 있다는 1인실에서 권미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얀 백의를 입은 모습은 영락없는 환자였으나 그녀의 앞에는 온갖 서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왜 이 좋은 기회에 쉬지를 못하는 거야.”

흑천 그룹을 대표하는 무력대대 중 한곳인 흑예대는 이번 오딘의 습격으로 인해서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권미는 흑예대원들이 모두 회복할 때까지 요양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권미 본인도 아직 저주의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기에 휴식이 필수였다.

하지만 정작 결정을 내린 권미는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프랑스에서 의뢰했던 업무는 흑아대에 맡기기로 하고. 황해의 몬스터 소탕 건은 흑수대에 부탁해야겠다.”

흑예대가 맡고 있던 업무들을 대체할 인력들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타카미네 병원의 재건 공사도 시작해야 하는데.”

그 외에도 해결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권미는 쉴 새 없이 서류를 넘겼다. 머리가 아파졌는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무례한 행동에 권미는 확 인상을 썼다.

“누구신데. 노크도 없이 병실의 문을…….”

화를 내며 문쪽을 돌아봤다. 그 순간, 권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권선우.

그녀의 아버지이자 흑천의 회장이 서 있었다.

“내가 너무 무례했나 보구나.”

“아, 아니에요.”

권미는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 모습에 권선우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편하게 있어라. 이 병실의 주인은 네가 아니더냐.”

“새, 생각해 주셔서 감, 감사해요. 여, 여기 앉으세요.”

권미는 병실에 있는 의자를 권했다. 권선우는 당연하다는 듯 그 위에 앉았다.

권미 역시 권선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같은 의자였기에 눈높이는 같았으나 권미는 좀처럼 권선우를 쳐다보지 못했다.

“바쁘실 텐데 어째서 절…….”

심지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놀랐으리라. 그 당당하던 권미가 이렇게 떨고 있다니.

사실 그녀에게 아버지란 불편한 사람이었다.

철저하게 옷을 갖춰 입고, 마음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불시에 만났을 때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이번 일은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다.”

그 말에 권미는 바짝 긴장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권선우가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하지만 설마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이야.

“판데모니엄의 쓰레기들에게 흑예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다. 너는 하마터면 오딘에게 죽을 뻔했고.”

“……그렇습니다.”

“한심한 녀석.”

권선우가 혀를 찼다. 권미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흑천의 이름을 달고 그깟 쓰레기들에게 지다니. 이번 일로 세상이 흑천을 얼마나 비웃을지 걱정이 되는구나.”

“면목 없습니다.”

권미는 변명조차 꺼낼 수 없었다. 그녀와 흑예대는 흑천을 상징하는 무력부대였다.

그런 부대가 판데모니엄의 악인들에게 큰 피해를 입었다.

이토록 굴욕적인 일은 없었다.

“이온과 판데모니엄에 대해서 이미 척살령을 내려뒀다. 이제부터 본가가 움직일 것이다.”

권선우는 가문의 오점을 참는 사람이 아니다.

그 오점을 지우고 되갚아 주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광견에 가까웠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았구나.”

불쑥 권선우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권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것이지?

“바로 옆에서 네가 오딘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나는 몰랐구나. 흑천의 가주로서 이토록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권미는 눈만 깜빡거렸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권선우라면 이렇게 사과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일을 단순히 전화 통화로 넘길 수 없어서 직접 왔다.”

권미는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혹시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흑예대의 피해가 막심한 모양이더구나.”

“괜…… 찮습니다. 2군을 합류시키면 금방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흑예대쯤 되는 위상을 가진 부대라면 긴급시에 보충할 수 있도록 2군을 따로 준비해 놓고 있다.

“애쓰지 말 거라. 너의 고민이 얼마나 클지는 나도 알고 있다. 부대의 주축들이 많이 죽었으니. 예전의 위상을 회복하기 쉽지 않겠지.”

세상에 권선우의 입에서 위로가 나오다니.

권미는 졸도할 것 같은 정신을 꽉 움켜잡았다.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본가에 지원을 요청하거라. 나 역시 흑예대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으마.”

“가, 감사합니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보고가 몇 가지 더 있던데…….”

권선우가 말꼬리를 흐렸다.

“정보부에 올린 보고서를 봤다. 오딘이 흑룡혈을 억제하는 저주를 사용했다면서?”

권선우의 표정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흑천 일가의 가장 큰 힘은 흑룡혈이다. 그런데 그 흑룡혈을 억제하는 저주라니.

어쩌면 흑천 일가의 근간을 뒤흔들지도 모르는 대사건이었다.

“해주가 가능한 일회성 유물은 그 자리에서 네가 사용해 버려서 대처법을 알아낼 수 없고.”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가 멀쩡하니 되었다.”

사실 권한울의 도움으로 저주를 해주할 수 있었으나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권미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도 신경이 쓰이더구나. 최종적으로 오딘을 쓰러트린 사람이 권한울이라면서.”

권미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드디어 저 질문이 나왔다.

“맞습니다. 오딘도 큰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제가 마무리를 짓지는 못했습니다. 그 오딘과 싸워서 마무리를 지은 사람이 한울이입니다.”

“……권한울, 그놈이 정말 오딘을 쓰러트렸다고?”

권선우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권한울이 나이에 맞지 않게 월등히 강하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판데모니엄의 대의원이다.

아무리 상처를 입었다고 하지만 흑천 그룹에서도 경시할 수 없는 강자를 권한울이 쓰러트리다니?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권미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권선우는 더더욱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권선우를 보며 권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권선우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사실 권한울이 상처를 입고 죽어 가는 오딘을 마무리 지은 게 아니라.

온전한 오딘과 싸워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환골탈태가 사람을 그렇게 변화시킬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이는 권한울의 의향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혈통의 비밀을 밝히지 않고서 권한울의 급격한 무력 상승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권한울 그 녀석이 이번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이대로 보고서를 올리게 되면 네 명성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게다.”

흑예대는 흑천의 절대적인 힘을 상징하는 단체였다. 그런 흑예대가 오딘에게 무너진 것도 모자라서 권미는 패배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권미가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게다가 그만큼 한울이가 유명해지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게 진짜 목표였다.

권한울은 실력에 비해서 명성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권미는 어떻게든 이번 일을 알려서 전 세계에 권한울이라는 이름 석자를 다시 새기고자 했다.

“……그 녀석에게 과분한 배려를 하는구나.”

“제 조카니까요.”

조카라는 말에 권선우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이 병원에는 권한울 그 놈이 없더구나. 어디로 간 게냐.”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습니다.”

그 말에 권선우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메이 가주의 비고가 그곳에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곳을 열려고…….”

“벌써 그 소문을 입수하다니. 내 생각보다 권한울 그 놈의 정보 수집력이 뛰어난 모양이구나.”

“……예?”

이번에는 권미가 놀랄 차례였다. 분명 메이홍이 말할 때는 자신들만 안다고 했는데?

“뭘 놀라고 그러는 게냐.”

“아니, 그게 아니라…… 회장님께서도 그곳에 비고가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권선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나만 알고 있는 소문이 아니거늘.”

* * *

메이 가문.

지금은 흑천 일가에게 하루 만에 멸문을 당한 얼간이들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만만한 가문이 아니었다.

게이트가 나타난 초창기에 메이 가문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성장해 왔다.

중국 정부는 자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게이트를 메이 가문에게 몰아줬다. 설사 게이트로 인한 피해가 발생해도 메이 가문이 맡을 때까지 내버려 뒀다.

그 넓은 땅의 모든 게이트를 한 가문에서 독점하게 됐다. 그 많은 게이트에서 발생하는 모든 유물과 부산물 역시 메이 가문에 몰렸다.

그 덕분에 메이 가문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명문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런 메이 가문에게도 한계는 있었죠. 바로 흑천 일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중국 정부의 편애를 받으며 성장한 메이 가문이었으나 유독 흑천 일가에는 맥을 못 추었다.

오랜 역사동안 두 가문은 무수히 많이 격돌해왔으며 대부분 흑천의 승리로 끝났다.

“그래서 3대째인가 4대째 가주부터 흑천을 뛰어넘는 걸 숙원으로 삼았다고 해요.”

메이 가문은 흑천을 뛰어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중국에서 발생하는 게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를 돌아다니며 희귀하고 값비싼 유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모아놓은 장소가 바로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메이 가주의 비고라는 거죠!”

메이홍이 자랑스럽게 외치며 뒤를 돌아봤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권후돈과 가엘 가르시안이 기대감이 잔뜩 서린 얼굴로 손뼉을 쳤다.

“오, 오오…… 그렇게 대단한 곳일 줄은 몰랐어.”

“저는 그냥 메이 가주의 비자금 은닉처쯤 되는 줄 알았습니다.”

“떽! 아무리 그래도 역대 메이 가주들이 만들어 놓은 비고인데. 비자금 은닉처라뇨!”

메이홍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럼 홍이 너는 그 비고를 찾을 수 있다는 거지?”

“당연하죠. 메이 가주가 절 데리고 몇 번 비고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악착같이 기억해 놨죠.”

“너, 널 데리고 가? 왜?”

권후돈의 물음에 메이홍의 표정이 스산하게 변했다.

“왜긴 왜겠어요. 편리한 도구쯤으로 여기니까. 아무 생각없이 데리고 간 거죠.”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에 권후돈은 입을 꾹 다물었다.

“호, 홍이 너는 정말 대단하구나. 비고로 들어가는 길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니!”

“제가 좀 똑똑하기는 하죠.”

결국 권후돈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 메이홍을 칭찬하는 쪽을 선택했다.

다행히 잘 먹혀 들어갔는지. 메이홍이 뻐기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절 믿으세요! 제가 여러분들을 영약과 유물이 가득한 땅으로 인도하겠습니다!”

“오오!”

“와아!”

서로 잘 놀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들 신이 났네요.”

“보물을 앞두고 있으니 당연하겠죠.”

옆에 앉아 있던 주하연이 대꾸했다. 그녀는 보온병에서 시원한 냉수를 따르고 있었다.

“드시겠어요?”

“저야 좋죠.”

안 그래도 더웠던 참이라 권한울은 주하연이 내민 냉수를 한 번에 들이켰다.

“아프가니스탄은 처음인데. 굉장히 덥네요.”

권한울은 덜컹 거리는 자동차의 창문을 내다봤다. 끝없는 녹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처음인데.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사막이 많지가 않네요.”

“넓은 곳이니까요. 저희가 가는 바다흐샨은 사막과 황야가 많지 않은 곳이라 들었습니다.”

지금 일행이 향하고 있는 곳은 아프가니스탄의 끝단에 위치한 바다흐샨 주의 대도시 파르샤크였다.

파르샤크를 거점으로 메이 가문의 비고를 탐색할 계획이었다.

“응?”

창밖을 구경하던 권한울은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저 멀리서 헌터 두 명이 오우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몬스터를 잡는 과정 자체는 특이할 게 없었다. 문제는 오우거가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곳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그리 희귀한 풍경도 아니었다.

권한울만 해도 비슷한 광경을 열 번도 넘게 목격했으니까.

“말은 많이 들었는데. 정말 특이한 곳이네요. 헌터들이 민간인의 피해도 생각하지 않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나라라니.”

과거 종교적인 분쟁으로 유명했던 아프가니스탄은 현재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헌터들의 무법지.

게이트의 출현으로 인해서 많은 나라들이 위기에 빠지고, 일부는 망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도 한때 국가가 무너질 상황에 놓였다.

게이트는 발발하는데. 몬스터를 제압할 힘이 없었던 탓에 국가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에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내렸다.

바로 헌터들에 한해서 국경을 개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만 사냥할 수 있다면, 게이트만 닫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을 해도 죄를 묻지 않겠다는 특권까지 내걸었다.

과한 정책이었으나 효과는 확실했다. 전 세계의 헌터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모여들었다.

게이트로 인한 혼란은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헌터들의 무법지라 불리는 새로운 아프가니스탄이 탄생했다.

“아, 저기 보세요!”

메이홍이 소리를 쳤다. 자동차의 앞 유리 너머로 커다란 도시가 보였다.

“파르사크예요!”

* * *

차량에서 내린 권한울은 파르샤크를 보며 감탄했다.

도로가 제대로 깔려 있는 건 물론, 곳곳에 현대식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활기가 넘쳤다.

좀 더 구경하고 싶었으나 권한울은 미련을 접었다. 그 전에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흠…… 고모님께서 보낸 사람이 여기 있을 텐데.”

사실 권미는 권한울이 아프가니스탄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메이 가문과 이온이 권한울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한울의 집요한 설득에 조건을 하나 붙이는 것으로 허락을 했다.

그 조건이란 권미가 보낸 보호자와 항상 동행할 것이었다.

“우와…… 한울아 저거 봐봐.”

그때, 권후돈이 권한울의 어깨를 콕콕 두드렸다.

“쌍검귀 이자크야. 트리플넘버링의 세계랭커야! 앗, 저기 봐봐! 라이언킥의 압살이다! 중동 지역의 패자라고 들었는데. 우와, 우와아아아.”

권후돈은 파르사크 곳곳에서 보이는 헌터들을 보며 감탄했다.

권한울 입장에서는 저 많은 헌터를 다 기억하고 있는 권후돈이 더 신기했지만.

“역시 헌터들의 무법지야. 저렇게 유명한 헌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니…….”

권후돈이 꿈만 같다는 얼굴로 말했다. 옆에 있던 메이홍이 눈을 흘겼다.

“후돈 오빠. 저 사람들 중에 태반이 후돈 오빠보다 약한 거 알아요?”

“그, 그건…… 아, 알지만…… 그래도 시, 신기하지 않아?”

“전혀요.”

메이홍의 매정한 대답에 권후돈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아아아앗!”

그때, 누군가 큰 소리를 냈다. 이 지역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땅딸막한 체구의 동양인 여자가 서 있었다.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도 이 도시는 처음이라서요!”

몸집은 작은데 목소리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컸다.

여자는 모두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권한울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권한울에게도 집중되었다. 권한울은 부끄러움을 꾹 참은 채 여자에게 물었다.

“……혹시 권미 님께서 보낸 사람입니까?”

“예! 맞습니다!”

여자가 차렷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흑미대 대장 권소리! 권미 님의 명을 받고 권한울 님을 보좌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 * *

“다들 편한 곳에 앉으세요! 아, 이 찻집은 제가 오늘 하루 전세를 냈으니 걱정하지 마시구요!”

권소리는 일행을 파르사크 도시에 있는 어느 전통찻집으로 안내했다.

말이 찻집이지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곳이었다.

“호텔로 안내할까 했는데. 그래도 파르사크에 오셨으면 문화를 즐겨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곳으로 정했습니다.”

권소리는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냈다. 이름처럼 정말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흑미대 대장이라고 하셨는데…… 나머지 대원들은 안 보이는군요.”

“아! 쉬는데 방해가 되실까 봐 각자 몸을 숨기고 있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금 집결시킬까요?”

“아뇨.”

권한울은 황급히 권소리를 말렸다.

“제가 고모님께 듣기로는 아프가니스탄의 흑천 지부를 맡고 계신다고…….”

“예! 그렇습니다! 저 말고도 부대가 두 개쯤 있는데. 권미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다른 애들한테 맡길 수 없어서 직접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한 마디를 하면 두 마디가 튀어나왔다. 권한울은 조금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 그나저나 정말 놀랐습니다! 오딘을 처치한 영웅을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되다뇨!”

권한울이 권미를 도와서 오딘을 처리한 일을 이미 곳곳에 소문이 퍼졌다. 이곳 아프가니스탄도 예외가 아니었다.

“권미 님께서 다 처리하신 걸 제가 마무리 지었을 뿐인데요.”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죠! 오딘은 판데모니엄의 대의원이잖아요! 이런 시기만 아니었어도 권한울 님께 대련을 요청했을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권소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사리 같은 주먹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소문만 들었을 때는 어떤 분일지 궁금했는데. 제 기대를 뛰어넘는 분이라 놀랐습니다! 설마 이렇게 빨리 그 소문을 입수하시다뇨!”

“소문이라뇨?”

“메이 가주의 비고를 찾으러 오신 거 아닙니까?”

그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권한울과 흑암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걸 아신 겁니까.”

“예? 권한울 님이야 말로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시기에 파르사크에 오는 헌터들은 죄다 메이 가문의 비고 때문인데.”

“……뭐라고요?”

권한울이 되묻자 이번에는 권소리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모르셨습니까? 이미 최상위 헌터들 쪽에서는 소문이 쫙 퍼졌는데.”

이어지는 소리에 권한울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프가니스탄에 메이 가문의 비고가 숨겨져 있다고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