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86화>
186. 복수자 (1)
권한울은 당황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찾아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심지어 이 자리에는 권명우 혼자 온 것도 아니었다.
“오랜만이군.”
얼굴에 머리카락도, 눈썹도 없이 흉터만 빼곡한 남성이 권한울에게 인사를 건넸다.
흑천 일가의 징벌부대로 유명한 강철대의 수장 구언이었다.
“메이홍 때 이후로 처음인가?”
구언은 그을음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메이홍을 응시했다. 메이홍은 어깨를 움츠렸다.
“그 이후로 별다른 말이 들려오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목줄을 제대로 틀어쥐고 있는 모양이군.”
구언이 입을 열 때마다 공기가 끈적하게 달라붙는 것 같은 불쾌감이 들었다.
별다른 기세를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구언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방심하지 말도록 해라. 나는 언제나 너희 둘을 주시하고 있…….”
“이놈은 또 왜 지랄이야.”
별안간 권명우가 구언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구언의 허리가 앞으로 크게 숙여졌다.
“이, 이사님!”
“너 인마, 잘하고 있는 애한테 그게 무슨 개소리야!”
권명우가 한 대 더 후려칠 것처럼 손을 들어오렸다. 그러자 구언의 몸이 움찔 거렸다.
“한 번만 더 우리 한울이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 알겠냐!”
“…….”
“어쭈, 대답 안 하지. 애들 보는 앞에서 바닥에 대가리 박고 싶어?”
“마, 말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재수 없던 인간이 곧바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아이고, 한울아 미안하다.”
“아닙니다. 그보다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 녀석!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내가 이곳에 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느냐!”
권명우가 껄껄 웃으며 말하려던 찰나였다.
꼬르륵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권명우는 멋쩍은 얼굴로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일단 배부터 채우고 보자꾸나.”
* * *
권한울은 곧바로 음식점을 물색했다.
음식은 자고로 고기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권명우의 취향에 맞춰서 유명한 고기 전문점을 통째로 빌렸다.
최고급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질 좋은 고기만 취급해서 무척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권명우와 흑천대는 음식점에 흩어져 앉아서 웨이터가 내오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으음! 제법 괜찮은 식당이구나!”
권명우는 통구이로 나온 돼지뒷다리를 통째로 들어서 뜯어먹었다.
호쾌하다 못해서 충격적인 식사법에 뒤에 있던 웨이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너도 먹지 그러느냐.”
권한울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썰어서 입에 넣었다.
솔직히 말해서 권명우가 음식을 흡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왔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깨작깨작 먹어서 근육이 붙겠느냐! 헌터는 첫째도 둘째도 밥이다! 밥심으로 싸우는 거다!”
권명우는 권한울 뿐만 아니라 흑암대를 향해서 말했다. 권후돈과 메이홍, 가엘 가르시안은 그 말에 먹는 속도를 더욱 빨리했다.
“권소리 자네는 참으로 복스럽게 먹는군! 과연 지부를 맡을 만한 인재야!”
“가, 가가가가, 감삿합닛닷!”
권명우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권소리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그녀답지 않게 과도하게 긴장된 모습이었다.
“3인분 더 추가!”
권명우만 이렇게 많이 먹는 게 아니었다. 흑천대원들 역시 놀라울 만큼 많은 음식을 먹어치웠다. 웨이터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때, 권한울을 이상한 점을 떠올렸다. 옆에 앉아 있던 구언을 향해 물었다.
“구언 대장님.”
“무슨 일이냐.”
구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권명우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일이 아직도 앙금으로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강철대는 같이 식사하지 않는 겁니까?”
식당 안에 들어와 있는 인원은 흑천대뿐이었다. 같이 온 강철대는 보이지 않았다.
권한울의 물음에 구언이 입가를 비틀었다. 지독하리 만큼 싸늘한 미소였다.
“어찌 주인과 개가 겸상을 하겠는가.”
구언은 강철대를 종도 아니고 개 취급하고 있었다.
강철대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강철대는 흑천 그룹 내에서 발생한 죄인들을 붙잡아서 죽을 때까지 부려먹기 위한 부대니까.
“강철대는 이 식당 주변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신경 쓰지 말도록.”
권한울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사실 그는 강철대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중에 딱 한 명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배철민.’
청송 배씨 가문의 일원이자 건강혈의 소유자.
동시에 가주 암살미수로 강철대에 복역 중인 남자다.
‘청송 배씨 가문은 아버지를 도운 죄목으로 흑천에서 끔찍한 대우를 받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씨 가문 전체가 아니라 배철수라는 후계자가 아버지를 도운 탓이었다.
권한울이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배철수가 아버지를 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철수는 그 대가로 목숨을 잃고, 가문 전체를 나락에 빠트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배철민도 날 보고 있었지.’
방금 전, 권명우가 찾아왔을 때, 권한울은 강철대 속에 있는 배철민을 찾았다.
배철민 역시 권한울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씩 웃기까지 했다.
-단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과거 배철민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랏다.
-저희 청송 배 씨 가문이 당신의 아버지를 위해서 노력했다는 사실을요.
권한울은 스테이크를 마저 썰어서 입에 넣었다.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 * *
다들 한동안 식사에만 열중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권명우의 식사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때다 싶었던 권한울이 권명우에게 물었다.
“이제 파르사크에 왜 오셨는지 설명해 주시죠.”
“아, 하마터면 잊을 뻔했구나.”
권명우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혈살검 메이샤오를 찾으려고 왔다.”
그 순간, 식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메이홍이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로 권명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묻고싶은 게 많은 얼굴이었다. 그녀를 대신해서 권한울이 권명우에게 물었다.
“메이샤오가 파르사크에 있단 말입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바다흐샨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 중이란다.”
권명우는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에 말을 이어 나갔다.
“최근에 바다흐샨에 메이 가문의 비고가 있다는 소문이 퍼졌지. 흑천의 정보부에서는 이 소문의 출처가 메이 샤오가 아닐까 의심 중이더구나.”
“확실한 증거를 잡은 건가요?”
그 말에 권명우는 고개를 저었다.
“증거는 없다. 다만 이런 시기에 갑자기 비고에 대한 정보가 퍼지는 건 아무래도 미심쩍지. 게다가 정보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근에 바다흐샨 주에서 메이 혈족이 자주 목격이 되었거든.”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의심스러운 점이 많아서 권명우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
“당분간 이곳에 머물면서 메이샤오를 뒤쫓으려고 했는데. 네가 이곳에 와 있다는 소리에 곧바로 달려왔단다.”
문득, 권명우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너는 왜 여기에 와 있는 게냐? 설마 메이 가문의 비고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온 건 아니겠지?”
그 말에 권한울을 일단 흑암대의 얼굴을 살폈다. 흑암대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자 권명우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아이고, 한울아. 그딴 소문에 홀려서 이곳에 오다니. 이제 보니 헛똑똑이었구나.”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비고니 뭐니 듣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실상은 별 거 없는 법이다. 애초에 흑천의 비고가 있거늘 어찌하여 이미 망한 가문의 창고 따위에 홀린 게냐.”
권명우는 혀를 차며 권한울을 타박했다. 권한울은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진실을 밝히고 오해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메이홍과 흑암대와 상의를 해야 했다.
“어디서 딴 생각을 하는 거냐!”
권명우가 호통을 쳤다. 권한울은 억울한 마음을 꾹 참고 잠자고 권명우의 설교를 들었다.
* * *
다행히 권한울은 금방 권명우의 설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권명우가 식후로 나온 디저트에 정신이 팔린 덕분이었다.
권명우가 디저트를 즐기는 동안 권한울은 잠시 식당의 야외 테라스로 나왔다.
바람을 맞으며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을 때였다.
“이제 나오시죠.”
권한울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러자 테라스에 마련된 수풀 사이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작은 체구. 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육체.
“배철민. 오랜만입니다.”
“절 기억하고 계셨군요.”
만족스럽다는 듯이 배철민이 씩 웃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서 기쁩니다. 강철대는 워낙 험한 곳이라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곳이거든요.”
배철민이 너스레를 떨었다. 권한울은 저런 배철민의 행동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배철수.”
권한울이 그 이름을 말하자마자 배철민이 쓰고 있던 가면이 깨졌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두 눈동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알게 됐습니다. 제 아버지를 도운 사람이 누구인지.”
감정을 쉽게 제어할 수 없었는지. 배철민은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이내 이를 갈면서 손가락으로 가슴을 쥐어뜯었다.
다섯 손가락이 피부를 찢고 근육을 파고들었다.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그것까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권한울의 말에 배철민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게 중요한 아니죠. 중요한 건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죠.”
배철민은 끅끅 웃다가 말했다.
“배철수, 그분은 제 형님이십니다.”
그 말에 권한울은 적잖게 놀랐다. 즉, 배철민은 청송 배씨 가문의 직계라는 뜻이다.
“제법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였죠. 형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희생하실 때, 저는 아직 제대로 된 권능도 사용하지 못하는 애송이였습니다.”
그렇기에 배철민은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알고 있었다.
“제 형님께서는 정의롭게 행동하셨습니다. 누명을 쓴 당신의 아버지를 위해서 목숨을 내버리셨죠. 그 뒷처리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지만요.”
배철민의 눈동자에 분노가 떠올랐다.
“……청송 배 씨 가문은 그 뒤에 어떻게 됐습니까.”
권하울이 잠겨든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묻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알아야 했다.
“모든 권한을 박탈당하고 노동자 신분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위험한 던전에 투입되어서 그곳의 자원을 캐는 역할을 맡게 됐죠.”
“던전이라고요?”
“건강혈은 적응력이 뛰어난 혈통이니까요. 다른 헌터들은 발을 들이기도 힘들어하는 독지대나 산성지대에 투입되기에는 적격이죠.”
배철민이 조소하며 말했다.
문득, 권한울은 배철민의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흉터도 있었으나 불에 늘러붙고, 녹아내린 듯한 상처가 대다수였다.
어린 나이의 배철민이 어떤 성장기를 보냈을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 권한울 님,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배철민은 권한울을 똑바로 쳐다봤다. 표정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다.
“나와 함께 흑천에 복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