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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87화 (187/221)

<혈통이 깡패임 187화>

187. 복수자 (2)

그때, 권한울은 볼 수 있었다.

배철민의 두 눈동자에 떠오른 광기어린 열망을.

“흑천대와 구언 대장님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딴 소리를 하다니.”

권한울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나간 겁니까. 아니면 생각이 없는 겁니까.”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죠. 흑천대와 구언 대장은 권명우 이사를 상대하느라 바쁘니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할 겁니다.”

그 말대로였다. 권한울이 감각을 일으켜서 안쪽을 살펴봤으나 이쪽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강철대 같은 곳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이런저런 요령이 생기는 법입니다.”

배철민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니 안심하고 제게 답을 해 주시죠.”

배철민은 조금도 기다리지 못했다. 권한울을 재촉했다.

“흑천의 가주 권선우는 무고했던 당신의 부모님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 죄악이 아직도 흑천에 그대로 남아 있단 말입니다.”

배철민이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몸을 떨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당신 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나와 뜻을 같이 할 수 있고, 흑천의 중심부에 아무런 제지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사람……!”

배철민 권한울은 손을 움켜잡았다. 악력이 강하게 손을 조여 왔다.

“나와 같이 권선우에 복수합시다. 그래서 우리의 원한을……!”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권한울은 손을 빼며 그리 말했다.

그 순간, 배철민의 눈동자에 빛이 사라졌다. 마치 영혼이 떠난 것만 같았다.

“……예?”

“저는 복수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 들은 말은 구언 대장께 알리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물러나시죠.”

“궈, 권한울 님.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권선우는 당신의 부모를 죽음으로 내몰았어요.”

환골탈태 시술 도중, 권한울은 과거를 보았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면 진짜 원흉은 권선우가 아니라 권혁이다.

물론 권선우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권한울은 권선우를 복수의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께서는 회장님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권혁에게 죽는 그 순간, 아버지는 권선우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했다.

“그게 뭔…… 이미 죽은 사람의 속마음을 당신이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아버지께서는 그런 분이셨으니까요.”

과거를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기에 권한울은 그렇게 말했다.

“배철민, 저는 흑천의 가주가 될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을 겁니다.”

권천은 화가 날 만큼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과오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내와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청송 배 씨 가문을 끌어들였으니까.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흑천의 가주가 되는 그날, 청송 배 씨 가문을 복권시키고 정식적으로 사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철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내 이를 갈면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개소리.”

그러다 이를 갈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권천이 권선우를 원망하지 않아? 가주가 되어서 부모님의 명예를 되살려? 우리 가문에 사죄를 해?”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분노가 묻어 나왔다.

“개소리는 집어치워. 결국 너는 흑천이 가져다주는 영광에 눈이 멀어서 부모조차 내다버린 버러지 새끼일 뿐이야!”

배철민은 권한울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끝없이 분노를 토해냈다.

“내 형님은 정의로운 일을 행하고도 끔찍하게 살해당했어! 우리 가문은 은혜도 모르는 금수 새끼들이 되어서 지옥으로 떨어졌지!”

배철민의 분노는 금방 끝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쌓이고, 고이고, 썩어 버린 것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왔다.

“배 씨 가문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도 전에 던전에 들어가야 해! 흑천이 시킨 일거리를 끝내기 위해서 지옥을 기어 다녀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배철민의 살기가 점점 짙어졌다.

“우리 가문의 혈족들을 모두 나락으로 떨어트린 권천의 자식인 네가! 우리에게 빚을 지고 있는 네놈이! 감히 그딴 식으로 말을 해!”

배철민이 마력을 폭발시켰다. 엄청난 살기가 휘몰아쳤다.

이 순간, 권한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거 배철민과 처음 만났을 때, 권한울은 그의 힘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강하다고만 생각했을 뿐.

그때보다 성장한 지금은 배철민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최소한 오딘, 어쩌면 그보다 강했다.

“권한울!”

배철민이 고함을 지르며 권한울에게 달려들었다. 목을 움켜잡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건방진 놈.”

그때, 낮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철민의 목둘레에 검은 글자들이 떠올랐다.

검은 글자는 끔찍한 마력을 내뿜으며 배철민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끄, 끄아아악!”

배철민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두 손으로 목을 마구 긁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글자는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권한울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테라스로 통하는 문 앞에 구언이 서 있었다.

“쯧쯧.”

구언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나 싶었더니…… 주제 넘는 짓을 벌이고 있었구나.”

구언이 배철민의 머리에 발을 올려놓았다.

“내가 쓰레기 관리에 소홀히 하는 바람에 자네가 피해를 볼 뻔했군.”

구언이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 동시에 배철민의 머리를 밟고 있는 발에 지긋이 힘을 주었다.

“사죄의 뜻으로 자네가 보는 앞에서 이 쓰레기를 처분하도록 하지.”

배철민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목을 죄이는 고통과 별개로 머리를 압박하고 있는 발의 무게 때문이었다.

구언의 행동과 살기로 보아 그는 정말 이 자리에서 배철민을 죽일 생각인 듯 했다.

권한울은 잠시 고민했다. 결정을 내린 뒤, 그에게 말했다.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때, 권한울이 입을 열었다.

“이분은 제가 실례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귀찮게 굴었죠.”

배철민이 인상을 썼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건강혈로 어떻게 싸우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가르침을 구했거든요. 이분은 어쩔 수 없이 제 부탁을 들어주셨을 뿐입니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구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권한울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구언은 권한울과 배철민은 한 번씩 번갈아 쳐다봤다. 이내 배철민의 머리에서 다리를 떼어놓았다.

“꺼져라.”

배철민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숨을 헐떡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괜한 짓을 했군. 저런 쓰레기에게 관용을 베풀다니.”

갑자기 구언이 한걸음 다가왔다. 권한울을 코앞에서 마주봤다.

“하지만 이상하군. 저놈은 쓰레기들 중에서도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란 말이지. 그런 놈이 내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구언의 얼굴에 의심이 떠올랐다.

“대체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눈 거지?”

“개인적인 내용이라 말씀드리고 싶지 않군요.”

구언은 권한울을 한동안 가만히 노려봤다. 그러다 몸을 돌렸다.

“명심해라. 나는 언제나 널 주시하고 있…….”

“저놈이 또 지랄이네.”

그 순간, 구언의 몸이 움찔 떨렸다.

어느새 권명우가 테라스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야 이놈아, 내가 강철대원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으니 말리고 오라고 했지. 한울이한테 시비 걸라고 했냐?”

“이, 이사님. 시비라뇨. 이건 엄연히 강철대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필요한 취조…….”

권명우가 손을 쳐들었다. 그러자 구언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취조? 취조는 무슨! 우리 한울이가 가문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할 것 같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권명우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구언은 찍 소리도 못한 채 권명우의 질책을 받아야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권한울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권력의 힘.’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굴던 구언이 아무 말도 못한 채 당하고만 있었다. 권한울이 감탄하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하여간 돌아가서 보자. 내가 정신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별안간 권명우가 하늘을 쳐다봤다. 뭐가 문제인지 두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기까지 했다.

“저놈은 또 왜 오는 거야.”

온다?

권한울도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권명우의 말과 달리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했다.

그때였다.

한 줄기의 번개가 하늘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대낮이라 태양이 환한 빛을 발하고 있음에도 번개는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저건 대체…….”

권한울이 중얼거린 찰나, 번개가 테라스로 떨어졌다. 전류가 폭발하며 눈부신 빛을 발했다.

“……후우.”

번개가 떨어진 자리에서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새하얀 노인과 금발벽안을 가진 미녀가 권한울과 권명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니 장거리를 이동할 때마다 피곤하구먼.”

노인은 손으로 자신의 등을 토닥였다. 옆에 서 있던 여인도 조막만한 주먹으로 노인의 등을 두드렸다.

권한울은 긴장한 얼굴로 둘을 바라봤다. 저 정도로 먼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하고도 지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저 둘이 엄청난 실력자라는 증거였다.

“벽력권. 그 뻔뻔한 낯짝은 여전하구나.”

권명우가 노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 순간, 권한울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벽력권(霹靂拳).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절대자 중 한 명.

흑천제일권 권명우의 맞수로 유명한 세계최속의 권사.

거물 중의 거물이 눈앞에 있었다.

“이곳에는 왜 온 게냐.”

“오랜만에 보는 친구한테 너무 까칠하군.”

“친구? 재미없는 농담은 여전하구나.”

권명우와 노인은 서로를 노려보며 입가를 비틀었다.

“메이 가문의 비고를 찾기 위해서 이 도시에 왔다가 자네의 기운이 느껴져서 잠시 얼굴이나 보러 왔다네.”

“비고? 노망이 나도 단단히 났구나. 천하의 벽력권이 그딴 소문이 낚여?”

“그러는 자네도 이곳에 와 있지 않은가?”

“나는 네놈과 사정이 달라! 가문의 명령을 받고 왔단 말이야!”

“명우야. 추하구나.”

그 말에 권명우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났다.

“뭐? 추해?”

“너도 비고를 노리고 왔으면서 아니기는 무슨. 그냥 솔직히 말해라.”

“이 미친 놈이 진짜 노망이 들었나!”

“너도 부끄러울 테니 더 이상 캐묻지 않으마. 하지만 나이를 먹고 그렇게 행동하면 추한 법이니까 다음부터 그러지 말 거라.”

혈압이 오르는지 권명우는 뒷골을 붙잡았다.

벽력권은 시선을 돌려서 권한울을 쳐다봤다.

“그래, 네가 권한울이라는 놈이구나.”

벽력권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권한울은 끝없는 무저갱으로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맞봤다.

그 정도로 이 노인의 실력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방대했다. 권한울이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소문은 많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대단한 일들을 이뤄냈더구나. 최근에는 판데모니엄의 대의원과 싸워서 승리했다지?”

“소문이 과장되었을 뿐입니다.”

권한울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 태도에 벽력권은 웃기 시작했다.

“겸손이라. 흑천의 혈족 답지 않구나. 명우 저놈은 네 나이에 판데모니엄의 의원을 때려잡은 걸로 가는 곳마다 광고를 하고 다녔는데.”

“이 미친놈이 없는 일을 지어내고 있네!”

권명우가 항의했으나 벽력권은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권한울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을 뿐이다.

“그래, 내 제자를 죽인 소감은 어떻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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