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91화>
191. 설득 (1)
권한울은 일행과 함께 비고의 입구가 발견된 장소로 향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고원에 어금니처럼 생긴 암산이 돌출되어 있었다.
암산의 한쪽 면은 완전히 붕괴가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안쪽의 공동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그 앞에 수많은 헌터가 모여 있었다.
권한울 일행이 도착했음에도 헌터들은 눈치를 채지 못했따. 그러기에는 암산 안쪽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 신비했기 때문이다.
공동 안쪽에는 어둠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광경이었다.
“왜 들어간 사람이 나오질 않는 거야!”
“다음은 우리가 들어간다! 다 비켜!”
헌터들은 던전 입구 앞에서 아웅다웅거리고 있었다. 다들 비고에 숨겨져 있다는 보물에 눈이 멀어 있었다.
“메이 가문의 비고가 정말 있었을 줄이야.”
권명우는 의심의 눈초리로 비고를 쳐다봤다. 다른 헌터와 달리 권명우는 비고 자체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권소리. 비고의 입고가 어떻게 발견되었다고 했지?”
“아, 옙! 최근에 지진이 발생했는데. 그 바람에 암산이 무너지면서 비고의 위치가 드러난 것을 지나가던 헌터가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래?”
권명우는 턱을 매만졌다. 두 눈에 맺힌 의심이 더더욱 커졌다.
“저기요. 대장님.”
별안간 메이홍이 권한울의 어깨를 콕콕 찍었다. 권한울은 그녀를 돌아봤다.
“왜 그러세요.”
“저건 말이 안 돼요. 비고의 위치는 결코 자연재해로 노출될 수가 없어요.”
“저게 비고가 맞는 겁니까?”
권한울이 놀라서 묻자 메이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어요.”
“노출될 수 없다는 건 무슨 소리죠?”
“비고를 설치할 때, 암산 자체에도 여러 가지 공사를 했다고 들었어요. 미사일을 한 다발 퍼부어도 저 암산은 부서지지 않을 걸요.”
“그런 게 떡하니 놓여 있는데 여태 아무도 몰랐단 말입니까?”
그 물음에 메이홍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나갔다.
“그게 수상해요. 원래 저 암산은 결계 때문에 감춰져 있거든요. 어느 누구도 찾아낼 수 없도록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도 아무도 비고를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는데…….”
결계로 감춰져 있는 비고가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라 견고하게 지어진 외부방벽마저 파괴되었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할아버님께 말씀드려야겠군요.”
더 이상 감출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권한울은 메이홍과 함께 권명우에게 다가갔다.
“할아버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무슨 일 있느냐?”
권한울은 권명우에게 메이 가문의 비고에 대한 내용을 털어놓았다.
설명을 모두 들은 권명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금 내게 한 말이 사실이렸다.”
“그렇습니다.”
권명우는 말없이 권한울을 바라봤다.
권한울은 그 시선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비고처럼 중요한 사안을 흑천 일가에 알리지 않았으니 화가 났으리라.
“한울이 이놈…….”
“질책은 달게 받겠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혼자 낼름 삼키려고 하다니. 다음부터 꼭 나도 부르도록 하거라.”
“……예?”
어째 예상했던 말이 아니었다.
“그…… 화 안 내십니까?”
“화? 내가 왜 네게 화를 내느냐?”
“비고를 숨겼으니 작은 할아버님께 혼이 날 줄 알았는데요…….”
“으하하핫.”
별안간 권명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다 그러는 거지. 사실 나도 흑천 일가에 알리지 않고 혼자 털어먹은 곳이 꽤 많단다.”
권한울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권명우는 헛기침을 했다.
“어쨌거나 네가 한 말이 다 사실이라면 그냥 넘길 수 없겠구나.”
권명우는 강철대의 구언과 권소리를 불렀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를 공유한 뒤, 의견을 구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확실히 수상쩍긴하군요.”
구언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현상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분명 누군가가 개입을 했을 겁니다.”
누가 개입했을지는 뻔하다.
메이 가문의 남은 잔당들.
혈살검 메이샤오가 저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흠…… 마음 같아서는 저 비고인지 뭐시기를 깔끔하게 날려 버리고 싶군.”
권명우가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말했다. 그 말에 메이홍이 냉큼 소리쳤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불가능하다?”
“메이 가문의 비고는 전이공간 유물을 이용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저기 보이는 입구는 실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부술 수 없습니다.”
“……전이공간 유물이라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권한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이공간.
간단히 말하자면 아공간의 거대화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아공간과 달리 생명체가 마음대로 출입을 할 수 있으며 내부가 무척 넓기 때문에 건물을 짓거나 다른 물건들을 설치할 수 있다.
“딱 세 번 발견됐다고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메이 가문에 있었군.”
“흑천에도 없는 것을 메이 가문이 가지고 있을 줄이야…… 역시 만만하게 볼 곳은 아니군요.”
“뭐, 메이 가문이 돈은 많았지.”
권명우와 구언이 한 마디씩 중얼거렸다.
“그럼 메이홍. 너에게 물을 수밖에 없겠구나. 저 안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이 모든 게 메이 가문의 수작이라고 한다면 비고의 내부에 위험이 도사릴 게 분명했다.
“제 예상이 맞다면…… 아마 메이샤오는 비고의 보안 시스템을 모두 발동시킨 채 대기하고 있을 거예요.”
“보안 시스템이라?”
“원래 비고는 메이 가문의 대피소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 준비되고 있었어요. 그걸 중간에 보물을 보관하는 비고로 방향을 바꾼 거죠.”
대피소를 사용할 정도면 가문이 멸문 직전까지 몰렸다는 뜻.
그런 곳을 지키기 위해서 준비된 것들이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저곳은 메이 가문의 혈족들을 위해서 준비된 홈그라운드에요.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큰일이 날 거예요.”
이 자리에는 권명우가 있다. 흑천제일권으로 이름이 높은 그에게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하다니.
경을 쳐도 모자랄 일이었으나 권명우는 신중한 얼굴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이미 강철대와 함께 메이 가문을 뒤쫓으면서 그들이 만만치 않은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수장인 메이샤오는 검강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최고수다.
권명우조차 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미있겠군.”
그러나 권명우의 얼굴에 떠오른 신중함은 금방 사라졌다.
대신 사납고 희열에 가득 찬 미소가 떠올랐다.
“이미 망해서 가문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먼지 같은 것들이 함정을 파 놓고 흑천을 기다리고 있다 이건가?”
흑천의 혈족 특유의 오만함이 권명우를 자극했다. 그는 구언을 향해 말했다.
“강철대에게 저 안으로 진입할 준비를 하라고 말해라.”
“알겠습니다.”
구언은 쓸데없는 것은 묻지 않고 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권소리.”
“하명하세요.”
“이 지역을 통제해야겠다. 흑미대 일부를 불러올 수 있겠나?”
“예, 지금 당장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다음으로 권명우는 권한울을 쳐다봤다.
“한울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나와 함께 저 안으로 들어가겠느냐?”
“당연한 것을 물어보시는군요.”
권한울은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권명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다. 그럼 메이 가문의 싹을 말리러 들어가 볼…….”
순간, 권명우가 입을 꾹 다물었다. 식은땀을 한 방울 흘리며 메이홍을 바라봤다.
“아, 너한테 한 소리는 아니란다.”
“……예?”
“메이 가문의 혈족이기는 하지만 흑천에 들어왔으니 같은 편이지. 그러니 내 말을 신경 쓰지 말거라.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라…….”
보기 드물게 권명우가 안절부절못했다. 메이홍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저도 그 쓰레기들을 죽이고 싶으니까요.”
“으허허헛! 그거 마음에 드는구나.”
메이홍의 대답을 뜨고 나서야 권명우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런데 할아버님.”
“왜 그러느냐.”
“이 근방을 통제한다고 하셨는데. 저 헌터들이 순순히 우리 말을 들어줄까요?”
권한울은 비고 입구에 모여 있는 헌터들을 가리켰다.
흑천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다들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절대 고분고분하게 흑천의 말을 들어줄 이들이 아니었다.
“그런 쓸데없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으냐.”
권명우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다 요령이 있는 법이다. 이번 기회에 잘 보고 배우거라.”
권명우는 자신 있게 말하며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보게 젊은이들. 저 앞으로 가고 싶은데. 잠시 비켜주겠나.”
권명우가 가장 뒷줄에 있는 헌터에게 말했다. 헌터들이 워낙 촘촘하게 모여 있던 탓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뭔 개소리야! 순서를 지켜!”
“늙은이가 미쳤나!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아?”
하지만 헌터들은 권명우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거친 말을 쏘아냈다.
“허허헛, 그렇단 말이지.”
권명우는 더 이상 헌터들을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두 헌터의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뭐, 뭐야!”
“이 늙은이가 미쳤나!”
권명우가 헌터들을 뒤로 집어던졌다. 두 헌터들의 몸이 쑥 딸려 나왔다.
“으아앗!”
“으아아악!”
두 헌터는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권명우는 지체 없이 다른 헌터들을 붙잡고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누구…… 으아아악!”
“어떤 미친 새…… 끄아아악!”
권명우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헌터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비명과 함께 하늘 높이 날아갈 뿐.
비명 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앞에 있던 헌터들도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음을 깨달았다.
“저건 뭐 하는 놈이야!”
“웬 미친 늙은이가…… 어, 어어엇?”
당연하게도 그중에 몇 명은 권명우의 얼굴을 알아봤다.
“……흐, 흐흐흐흐, 흐흐흐흐흐, 흑천! 흑천제일권이다!”
“궈, 궈궈궈, 권명우다! 권명우가 왔다!”
모세의 기적처럼 헌터들이 좌우로 쫙 갈라졌다. 권명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다들 노인을 경공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구먼.”
권명우는 편하게 비고의 입구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헌터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다들 주목해 주겠나. 이 늙은이가 자네들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하네.”
권명우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결코 성량이 높지 않았으나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저 비고 안에는 우리 흑천 일가가 뒤쫓고 있는 악적들이 숨어 있다네. 따라서 나는 저 안으로 들어가서 악적들을 처단하고자 한다네.”
그리 말한 뒤, 권명우는 헌터들을 한 명씩 훑어봤다. 그의 시선을 받은 헌터들은 몸을 움츠렸다.
“그러니 잠시 비고의 출입은 우리 흑천 일가가 통제하도록 하겠네.”
그 말에 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불만 섞인 얼굴이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나. 흑천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비고 안에 있는 물건을 흑천이 독차지하려는 속셈 아니야?”
“흑천이 이렇게 치졸한 곳일 줄은 몰랐네!”
집단에는 묘한 힘이 있다.
평소에는 권명우에게 대들 생각조차 못했을 헌터들이 다 같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불만 있나?”
권명우가 한 마디를 내뱉으며 자신의 기세를 일으켰다.
엄청난 기세가 헌터들을 향해 휘몰아쳤다. 마치 용암지대에 떨어진 것처럼 엄청난 열기가 피부를 긁어내렸다.
헌터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들 바짝 얼어붙었다.
“불만이 있는 자는 앞으로 나와라. 그럼 내가 다시 설득해주지.”
“그럼 어디 한번 설득해 보시지.”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구릿빛 피부에 몸 곳곳에 피어싱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청년이었다.
“흑천제일권께서는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지 궁금한걸?”
청년은 껄렁껄렁한 태도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헌터들의 시선이 그 청년에게 모여들었다. 그중 한 명이 소리쳤다.
“……처단자 마스테?”
어느 헌터가 내뱉은 소리는 파문처럼 다른 헌터들에게 퍼져나갔다.
“처단자 마스테라면…… 판데모니엄의 의원이잖아?”
“대의원의 총애를 받는다던 그놈……?”
“놈이라니! 조심해! 마스테가 얼마나 잔인한데! 자기 심기를 거슬렀다고 같은 판데모니엄의 악인들도 망설임 없이 죽일 정도란 말이야!”
헌터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그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마스테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흑천제일권. 왜 말이 없으신가? 이제 나를 설득해 보시…….”
그 순간, 권명우가 땅을 박찼다.
마스테의 코앞에 나타난 권명우가 그의 얼굴을 손으로 붙잡았다.
그대로 마스테의 머리를 땅으로 내려찍었다. 일대의 땅이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다.
“으, 으아아악!”
“지, 지진이다!”
땅이 마구 흔들렸다. 헌터들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윽고 지진이 끝났을 때, 권명우는 어느새 허리를 펴고 손을 탁탁 털고 있었다.
“마스테라고 했나?”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스테의 머리는 땅에 깊이 박혀 있었으니까.
기절했는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 마스테는 간헐적으로 몸을 떨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저런…… 조용한 것을 보니 내 설득이 잘 먹혀든 것 같군.”
권명우가 살기등등한 눈초리로 다른 헌터들을 쏘아 봤다.
“그럼 또 불만 있는 사람 있나? 어서 나와라. 내가 친히 ‘설득’을 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