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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97화 (197/221)

<혈통이 깡패임 197화>

197. 각개전투 (3)

“용을 잡으러 왔다고?”

드래곤슬레이어의 말에 권명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안 그래도 나 역시 제대로 된 용을 잡아 본 적도 없는 풋내기가 용살자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꼴이 심히 거슬렸느니라.”

“그 대단하신 흑천제일권이랑 뜻이 통하다니. 이거 큰 영광이로군.”

드래곤슬레이어가 능글능글 웃으며 대꾸했다.

“근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다 내 도끼에 목이 떨어져 나가면 얼마나 부끄럽겠어?”

“하! 당장 그 건방진 입부터 틀어막아야겠구나.”

권명우의 양팔과 어깨가 흑린갑에 뒤덮였다. 검은 철권을 단단히 움켜쥔 채 드래곤슬레이어에게 다가갔다.

“어허, 그렇게 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위험할 텐데.”

대략 3미터 이내로 들어왔을 때였다. 권명우는 갑자기 자신의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적룡성(敵龍星)’이 당신의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마력운용에 방해를 받습니다!>

<신체능력이 하락합니다!>

기력이 빨려 나가는 듯했다. 마력은 진흙으로 변한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이 몸의 기프트인 적룡성은 흑룡혈의 천적이라는 걸.”

드래곤슬레이어가 지금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기프트 때문이다.

용족 몬스터, 용의 혈통, 심지어 용의 힘을 받은 유물까지.

용에 관련된 모든 것은 적룡성 앞에서 약해진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적룡성의 영향력을 더욱 커진다. 함부로 다가왔다가 모가지가 썰리는 수가…….”

그때였다.

권명우가 앞으로 돌진했다. 그 모습에 드래곤슬레이어는 양손도끼를 들어 올렸다. 자색 오러가 도끼에 모여들었다.

“내 경고를 듣고도 정면에서 달려들겠다는 거냐?”

권명우가 두 손에 용투기를 일으켰다. 양손을 동시에 뻗으며 용투기를 해방시켰다.

흑룡십이승무 상승형(黑龍十二承武 上乘形)

기격식 투염분화(氣擊式 投炎焚火)

용투기가 폭발하며 드래곤슬레이어를 휩쓸었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용투기는 공간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때였다.

별안간 용투기가 반으로 갈라졌다. 자색 오러가 권명우에게 들이닥쳤다.

권명우는 재빨리 오러를 막아냈다. 그러나 오러가 팔뚝에 닿는 순간, 흑린갑이 갈라졌다.

“……으음?”

흑린갑은 흑룡혈을 상징하는 최고의 방어형 권능.

그런 흑린갑을, 그것도 권명우가 만들어낸 것을 이렇게 쉽게 찢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권명우는 우선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드래곤슬레이어가 그에게 돌진했다.

“어딜 도망치려고!”

드래곤슬레이어가 양손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도끼가 허공을 밸 때마다 자색 오러가 반월 모양의 잔상을 그렸다.

권명우는 드래곤슬레이어가 휘두르는 도끼를 손바닥과 팔꿈치로 쳐냈다.

“애송이 놈이 제법이구나!”

“다 늙어서 말라비틀어진 주제에 더럽게 팔팔하네!”

둘은 서로를 향해 악담을 퍼부었다. 그렇게 수십 번을 격돌했을 때였다.

갑자기 드래곤슬레이어가 히죽 웃었다.

“그보다 이제 슬슬 기별이 올 때가 됐는데?”

“뭐라?”

극심한 현기증이 권명우를 덮쳤다. 그 바람에 자세가 살짝 무너졌다.

드래곤슬레이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권명우의 목을 노리고 양손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권명우는 팔뚝으로 도끼를 막아냈다. 도끼와 팔뚝이 맞닿는 순간, 도끼가 흑린갑을 가르며 팔뚝에 박혔다.

“……흠!”

팔뚝이 베이자마자 권명우는 바로 몸을 회전시켰다. 도끼보다 더욱 빠르게 팔뚝을 빼내며 뒤로 물러났다.

권명우는 자신의 팔뚝을 바라봤다. 베인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쳤다.

다행히 뼈까지 닿기 전에 빼낼 수 있었지만 신경이 다쳤는지.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드래곤슬레이어가 실실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적룡성은 댁 같은 인간들에게 독이나 다름없어. 충돌하면 충돌할수록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 말이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드래곤슬레이어의 오러는 흑린갑을 너무나도 쉽게 베고 있었다.

적룡성의 기운이 담긴 오러와 흑룡혈의 권능이 충돌했을 때, 전자가 훨씬 유리하다는 증거였다.

“당신은 나랑 싸울 게 아니라 도망쳐야 했어!”

드래곤슬레이어가 다시 달려들었다. 권명우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이번에야 말로 목을 쳐 주마!”

별안간 권명우가 손등으로 도끼를 후려쳤다.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도끼의 날이 박살이 났다.

“……뭐, 뭐?”

드래곤슬레이어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권명우가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명치에 틀어박혔다. 그와 동시에 권명우는 용투기를 폭발시켰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막대한 충격이 드래곤슬레이어의 내부를 강타했다.

“큭! 크억!”

드래곤슬레이어는 괴성과 함께 날아갔다. 그러고 나서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별 볼 일 없는 놈인 줄 알고 방심했더니. 상처를 입고 말았구나.”

권명우는 옷을 찢어서 팔뚝에 휘감았다.

“적룡성?”

권명우가 하찮다는 얼굴로 드래곤슬레이어를 쏘아봤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그딴 걸로 이 몸을 약화시켰다고 네놈이 나보다 강해질 줄 알았느냐?”

권명우가 기세를 내뿜었다. 기파만으로 방 전체의 벽과 바닥에 금이 새겨졌다.

“와라. 하찮은 네놈에게 흑천의 권을 견식시켜 주마.”

* * *

“반고(盤古).”

권한울이 뜻 모를 단어를 내뱉은 직후였다.

갑자기 권한울이 내뿜고 있는 기운이 달라졌다.

흑룡혈 특유의 사납고 패도적인 기운은 바람에 날라간 것처럼 사라진다. 대신 그 빈자리를 육중하고 느릿한 위압감이 채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배철민은 이해하지 못했다. 마력이란 사용자의 감정에 따라서 변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거칠어지냐 진정되어 있느냐의 차이일 뿐,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처럼 기운의 성질 자체가 달라지는 현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문득, 배철민은 과거의 경험을 떠올렸다.

판데모니엄의 귀족 가문이라 불리는 산체스 가문.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초인혈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런 위압감을 풍기고는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권한울은 흑천의 혈족이다. 그것도 진(眞) 흑룡혈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초인혈의 기운이 느껴진단 말인가.

-내 비밀을 모르는 건가?“

그때, 권한울이 입을 열었다. 분명 입으로 말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공기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렷다.

-아마 당신은 이온을 만나서 금제를 없앴겠지. 그런데도 내 비밀을 모른다는 것은 그쪽 역시 단순한 버림말이라는 뜻이로군.

버림말.

심하게 거슬리는 소리였다. 배철민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팔뚝의 근육이 철근처럼 단단하게 뼈를 조여왔다.

“시끄러워.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권한울은 죽인다.

그 머리를 뜯어서 버려지듯 죽어 간 가문의 혈족들을 위로하겠다.

“이번에는 적당히 안 끝날 거다.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리시켜 주마.”

배철민이 권한울을 향해 돌진했다. 발이 땅을 박찰 때마다 바닥이 박살이 났다.

가공할만한 각력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권한울은 복부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마치 채찍처럼 팔을 휘두른다.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어깨와 팔뚝의 관철이 탈골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건강혈에게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뒤져라.”

탈골된 팔이 채찍처럼 호선을 그렸다. 팔이 먼저 권한울의 몸에 도달하고 나서야 소리가 들려왔다.

배철민의 팔이 권한울의 몸을 절단했다. 그 순간, 권한울의 몸이 허상이 되어 사라졌다.

“분신이었나?”

권한울은 연기가 되어 사방으로 퍼졌다. 배철민은 권한울의 실체를 찾기 위해서 주변을 훑었다.

그러나 권한울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로 숨은…….”

그때였다.

흩어지던 연기들이 허공에서 어떤 형상을 만들었다

주먹, 그리고 그것을 쥐고 있는 거인의 상반신이 배철민을 내려다봤다.

배철민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 그 순간이었다.

거인이 주먹을 내질렀다.

배철민은 반사적으로 팔뚝을 앞세우고 몸을 웅크렸다. 그 직후, 거인의 주먹이 배철민을 후려쳤다.

온 세상이 뒤흔들렸다. 거대한 통속에서 뇌가 마구 튀어 다니는 것 같았다.

흔들리던 시야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제야 배철민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있었다.

팔뚝이 으스러져 있었다.

모든 근육이 파열되었다.

내장은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건강혈(健康血)’이 신체의 위기를 감지합니다!> <생명반응이 빠르게 감소합니다!>

<권능 ‘회광반조(回光返照)’를 발현합니다!> 겉보기에만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권능 ‘회광반조’는 죽기 직전에만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다.

그것이 자동적으로 발현될 정도로 배철민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배철민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거인의 형상이 사라지더니 연기들이 다시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이윽고 권한울의 모습이 나타났다.

“방금…… 무슨 기술을 사용…… 했지?”

-주먹을 휘둘렀지.

또다시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배철민은 몸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핏덩어리를 꾹 삼키며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날…… 나를 단 일격에…… 이 꼴로 만든 그게…… 주먹질이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옥을 뒹굴면서 완성시킨 이 육신은 다른 것은 몰라도 내구성만큼은 세계제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튼튼할 뿐만 아니라 건강혈의 회복력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치명상을 입지 않는다.

과장 좀 보태서 심장이 터져 나가도 죽지 않는다. 3분 뒤면 다시 재생되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 몸을 단 일격에.

단 한 번에.

“……쿨럭.”

결국 배철민은 피를 토해 내고야 말았다.

건강혈의 권능이 최대한 발휘되고 있음에도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만약 지금 권한울이 공격을 하면 배철민은 죽을 수밖에 없다.

-당신의 그 몸, 보통이 아니더군. 아마 남들에게는 없는 능력들이 많이 있겠지.

다행히 권한울은 마무리를 짓지 않았다.

-타격할 때마다 느낌이 이상하더군. 단단하다? 보호막이 덧씌워져 있다? 그런 느낌이 아니었어. 마치 어떤 힘이 내 공격을 방해하는 것 같더군.

“……예리하군. 맞다. 건강혈로 혹사시킨 덕분에 나는 수많은 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

배철민은 그 대화에 응했다. 어떻게든 몸을 회복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비굴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중에는 물리저항력을 가지는 능력도 있었지. 원래는 상태이상을 막는 유물에나 달려 있을 법한 능력이 내게는 몸에 깃들었다.”

조금만 더 회복되면 된다.

그러면 전투를 계속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피부로 호흡하거나 오러를 차단하는 능력도 갖추게 되었지.”

배철민에게는 무기가 없다. 방어구도 없다. 가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육체야말로 무기요. 방어구다. 실제로 강철대로 활동하면서 배철민은 자신의 육체보다 뛰어난 장비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도 초인혈을 꺼내 들었다. 이 힘이라면 당신의 육체를 부술 수 있을 테니까.

초인혈.

그 말에 배철민의 눈동자가 커졌다.

“역시…… 내 착각이 아니었어……!”

의문이 풀림과 동시에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인간은 두 개의 혈통을 동시에 지닐 수 없다.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증명이 되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권한울은 흑룡혈과 초인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단 말인가.

-그보다 이제 다 회복된 것 같은데.

권한울의 말에 배철민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권한울을 노려봤다.

“……언제부터 눈치 채고 있었지?”

-처음부터.

일부러 기다려 줬다는 소리에 배철민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적에게 동정을 받다니. 이보다 굴욕적일 수는 없었다.

“후회하게 될 거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기다려 준 거지.

배철민은 미간을 좁혔다.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미안하다.

순간, 배철민은 무언가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배 씨 가문에 대한 일도.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무언가 치밀어올랐다. 그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서 배철민은 이를 악물었다.

“뭐가…… 뭐가 미안하다는 거냐!”

-배 씨 가문에 대한 일도,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 점도.

“이제 와서 그딴 소리를 해도 소용없다!”

-알고 있다. 그래서 기다려줬다. 최소한 미련이라도 남기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하.”

배철민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얌전히 맞아줄 생각도 없으면서 화풀이라고?”

-나는 너에게 질 수 없다. 그러기에는 이루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배철민은 몸을 일으켰다. 망가진 몸은 이제 다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빌어먹을 새끼.”

분하지만 인정을 해야 했다. 지금의 배철민은 권한울을 이길 수 없다.

“내가 어떻게 권선우를 습격할 수 있었는지 알려주지.”

배철민은 아공간을 열었다. 그곳에서 온갖 종류의 약물을 꺼냈다.

약물을 마시고, 주사기에 넣어서 몸에 꽂아 넣었다. 온갖 방법으로 약물을 섭취했다.

“……끄윽!”

약물은 금방 배철민의 몸에 영향을 끼쳤다. 온몸의 혈관이 도드라지며 피부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평범한 헌터였다면 진즉에 죽었을 양이었으나 배철민은 살아 있었다.

건강혈의 권능 덕분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흐, 흐하핫.”

약물의 고통과 더불어서 비틀린 쾌감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배철민은 광소를 터트리며 소리쳤다.

“그럼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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