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98화>
198. 각개전투 (4)
메이 가문에 붙잡힌 지 벌써 1시간이 넘었다.
주하연은 의자에 앉은 채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고민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다른 일행들은 메이 가문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자신만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언니.”
그때, 옆에 있던 메이홍이 은밀하게 속삭였다.
“왜 그러세요?”
“계속 이렇게 붙잡혀 계실 건 아니죠?”
주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메이홍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베시시 웃었다.
“계획은 있어요?”
“있기는 하지만 전부 성공확률이 낮습니다.”
“왜요?”
“저 남자 때문이죠.”
주하연이 눈짓으로 단목검 메이챤을 가리켰다.
다른 검수들이야 주하연 선에서 해결이 가능했으나 메이챤은 아니었다.
흑천의 마녀라는 이명도 매화칠검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그 정도로 매화칠검은 강했다.
“다른 검수들을 뚫어도 저 남자에게 막힐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상황만 더 골치 아프게 될 테니까요.”
“에이, 뭐 그런 걸로 고민하고 있어요.”
메이홍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주하연은 놀라서 물었다.
“그럼 메이챤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그럼 아까 그런 말은 왜 한 건데요.”
“어차피 고민해 봤자 답이 안 나오는데. 뭐 하러 고민하냐는 뜻이었어요. 어차피 여기서 탈출해야 하니까 일단 저지르고 봐야죠.”
그 말에 주하연이 고민에 잠겼다.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그쵸?”
“크흠.”
그때,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 서 있던 암살검수가 낸 소리였다.
“허튼 짓하지 마라. 그랬다가는 크게 후회하게 될 거다.”
두 여자는 잠시 암살검수를 바라봤다가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 메이챤 말고는 다 자신 있습니다. 메이홍은요?”
“저도 그래요. 저기 저 아저씨가 제일 큰 문제네요.”
“이봐, 내 경고를 못들은…….”
그때, 주하연이 양손을 펼쳤다. 손바닥에 마력이 떠올렸다.
두 여자를 둘러싸고 있던 암살검수들의 머리 위에 검은 링이 떠올렸다. 이윽고 암살검수들이 모두 으스러졌다.
“저, 저년들이!”
“결국 일을 저지르는구나!”
메이 가문의 검수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들이 무기를 빼들기도 전에 메이홍이 칼을 휘둘렀다.
귀검을 넓게 휘둘렀다. 불씨가 튀더니 폭발이 일어났다.
“아악!”
“끄아악!”
폭발에 휘말린 검수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절반이나 되는 인원이 폭발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어우, 속 시원해.”
메이홍이 칼날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때였다.
폭발을 가르며 검기가 날아왔다. 메이홍은 황급히 칼을 빼들어서 오러를 막았다.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메이홍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팔이 저릴 정도로 아파 왔다.
“이노오오옴!”
단목검 메이챤이 분기탱천하며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혈살검이 자비를 배풀어서 살려 두려 했건만 그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지랄하고 계시네요.”
메이홍이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그 년이랑 나는 같은 하늘을 두고 살 수 없는 원수에요. 근데 은혜?”
“닥쳐라 이년!”
단목검이 칼을 휘둘렀다. 오러의 참격이 메이홍을 향해 날아들었다.
메이홍도 칼을 휘둘렀다. 귀검과 오러가 충돌했다.
이번에도 메이홍의 몸이 밀려나갔다. 두 사람 사이의 격차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메이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감히 내 검을 막아?”
죽일 생각으로 휘두른 칼을 메이홍이 아무런 피해도 없이 막아 냈다.
메이챤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호랑이 새끼가 이렇게 버젓이 크고 있었다니. 가문의 미래를 생각하면 결코 살려 둬서는 안 되겠구나!”
메이챤이 본격적으로 살기를 해방했다. 압도적인 기운에 주하연과 메이홍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언니, 이제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요. 잘 살아남아야죠.”
두 여인은 마력을 일으켰다. 두 사람의 기운을 합쳐도 메이챤에 맞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자, 누구부터 내 손에 죽겠느냐! 한 명씩 앞으로 나와…….”
그 순간, 한줄기의 번개가 내리꽂혔다.
번개는 메이챤과 그 주변에 있는 검수들을 전부 집어삼켰다. 수십 명이 넘는 검수들이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주하연과 메이홍은 얼떨떨한 얼굴로 번개가 떨어진 장소를 바라봤다.
“에구구.”
새까맣게 변한 폐허 속에서 한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힘 좀 썼더니 허리가 아프구먼.”
노인, 벽력권이 두 여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씩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제대로 도착했구먼.”
* * *
-정신 나갔군.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천재혈을 보유하고 있기에 배철민의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과도하게 주입한 약물이 신체의 세포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있었다.
체온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피부 밑의 진액이 들끓어서 전신에서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혈압이 너무 높아져서 전신의 혈관이 도드라지고 급기야 터져서 피가 새어 나오기까지 했다.
평범한 헌터였다면 죽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가 폭탄처럼 터져 버렸으리라.
그러나 배철민은 버티고 있었다.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건강혈이 모조리 상쇄시키고 있었다.
-두 배…… 아니 세 배인가?
하지만 그 덕에 배철민은 방금 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생명력을 바닥까지 긁어내서 얻어낸 힘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가주의 암살미수…… 이걸 보니 이해가 되는군.
권선우의 주변은 수십 명이 넘는 경호원들이 철통처럼 지키고 있다.
경호대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개개인의 실력이 더블넘버링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라고 한다.
배철민은 그들을 뚫고 권선우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결국 제압당했지만 대단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시끄럽군. 닥치고 아까 그 힘을 꺼내라.”
배철민이 날선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말하는 게 힘들어 보였다.
아무리 건강혈이라 해도 저만한 약물을 투여하고 멀쩡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정면에서 처부숴 주마.”
배철민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권한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권한울은 어중간한 방법으로는 배철민을 막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래, 보여 주지.
권한울의 몸이 흩어졌다. 허공에 거인의 반신이 나타났다.
산체스 가문의 시조는 반고라고 불리는 거인을 사냥함으로서 초인혈이라는 혈통을 얻었다.
기록에 의하면 반고는 몸집이 계속 변화하는 거인이었다고 한다.
어떨 때는 어린아이 크기로, 또 한 번은 빌딩만큼, 심할 때는 히말라야 산맥이 명치쯤에 올 정도로 거대하게.
그리고 반 화신체를 구현한 지금, 권한울도 그 권능을 일부분 사용할 수 있었다.
“크구나! 부수는 보람이 있겠어!”
배철민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망설임 없이 거인의 가슴을 향해 뛰어들어 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인간이 휘둘렀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맹한 권격이었다.
우드득.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배철민은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분명히 이쪽에서 공격했는데. 자신의 주먹에 금이 가 있었다.
“……크윽!”
배철민은 신음을 흘리며 주먹을 거둬들였다. 이를 악물며 반대쪽 주먹을 내리쳤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배철민은 주먹을 휘둘러서 연달아 권한울의 몸을 후려쳤다.
때리면 때릴 수 록 배철민의 주먹에 무리가 갔다. 뼈가 갈라지고 근육이 터졌다.
그럼에도 배철민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기는커녕 더욱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급기야 두 손이 사라지고 잔상만이 남았다.
잔상이 허공을 스칠 때마다 권한울의 몸에서 타격음이 들려왔다. 권한울의 몸 곳곳에 충격이 가해졌다.
보는 사람이 혀를 찰 정도로 무지막지한 난타전이었다.
하지만 거인의 신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으아아악!”
배철민은 제정신을 잃은 것처럼 괴성을 질러댔다.
오직 권한울을 부수는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때려도 권한울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때, 권한울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기 시작했다.
모든 동작은 무척이나 느릿하게 진행이 되었다. 그러나 배철민은 그걸 모르는지 계속 권한울을 공격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크아아악!”
배철민의 괴성이 한층 더 커졌을 때, 권한울은 비로소 주먹을 온전히 쥐었다.
그 순간, 권한울의 주먹이 사라졌다.
“……!”
거인의 주먹이 배철민을 강타했다. 배철민은 팔공에서 피를 뿜어내며 날아갔다.
“컥, 커억……!”
배철민은 땅에 엎드린 채로 피를 토해 냈다.
내지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았다. 피하는 건 고사하고 막을 수도 없었다.
“이…… 이 괴물 같은…….”
저렇게 거대한 몸을 움직이는 주제에 자신보다 훨씬 빠르다.
불합리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아직…… 아지이익!”
배철민은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약물로 강화된 신체는 거인의 일격을 견뎌냈다.
건강혈의 권능을 바닥까지 긁어내서 신체를 회복했다. 배철민은 다시 권한울에게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전략을 바꾸었다. 배철민은 권한울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거인의 주변을 돌면서 틈을 살폈다. 그러다 갑자기 배철민의 몸이 사라졌다.
거인의 뒷덜미를 두 주먹으로 내리쳤다. 사람이라면 일격에 정신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급소였다.
그러나 거인으로 변한 권한울의 내구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히려 배철민이 튕겨져 나갔다. 배철민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다시 땅을 박찼다.
“크아아악!”
배철민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권한울의 급소 곳곳을 가격했다.
권한울의 몸 곳곳에서 충격파가 퍼졌다. 하지만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죽어! 죽으란 말이야!”
배철민은 절규를 하며 권한울의 몸을 두드렸다.
그때, 또 다시 권한울이 주먹을 쥐었다. 여전히 느릿한 동작이었으나 배철민은 방심하지 않았다.
이번에야 말로 주먹을 휘두르면 피하고 반격을 꽂아 넣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머리 위로 거인의 주먹이 떨어졌다.
인지했을 때는 이미 주먹이 배철민을 으깬 뒤였다. 엄청난 충격에 배철민은 땅속에 처박혔다.
“……쿨럭.”
배철민은 피를 토해 내며 땅속에서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바닥에 쓰러진 채 숨만 헐떡였다.
이길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권선우의 말도 안 되는 강함을 목격했을 때도, 흑천제일권의 실력을 견식했을 때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언젠가 반드시 따라잡겠다는 열망만 들 뿐이었다.
하지만 권한울과 싸울 때는 아니었다. 지독한 절망감이 차올랐다.
-배철민. 이만 포기하고 자수해라.
그 말에 배철민의 어리둥절한 얼굴로 권한울을 올려다봤다.
-난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
“하, 개소리하고 있군.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약속을 지키는 모습은 봐야하지 않겠나.
그 말에 배철민의 얼굴이 멍해졌다.
“설마 그때, 나한테 한 말이 진짜였어? 진짜 흑천의 가주가 되어서 우리 가문을 복권시킬 생각이었던 거야?”
-설마 안 믿은 건가?
“그딴 소리를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러니 살아서 지켜보면 될 게 아닌가.
배철민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권한울을 바라봤다. 이윽고 실소를 흘렸다.
“지랄하고 있네.”
-결국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나는 이미 구언 대장을 죽였어.”
이번에는 권한울의 말문이 막힐 차례였다.
“반역자가 한 번 더 반역을 저질렀다. 이걸 흑천이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아?”
배철민은 입가를 비틀었다.
“너도 말이야. 가주를 목표로 하는 놈이 나 같은 걸 살리려고 하면 어떻게 해. 다른 놈들이 알면 가만히 안 있을 걸?”
배철민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다 부서진 몸으로 억지로 주먹을 쥐었다.
“네가 정말로 날 위한다면…… 이 자리에서 날 죽여라.”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건강혈의 권능도 무한하지 않다. 방금 전 두 번의 공격은 배철민을 벼랑까지 몰아넣었다.
“대신, 이번에는 봐주지 말고 때려라.”
-……알고 있었나?
“그럼 모르는 게 등신이지.”
아무리 도핑을 했다지만 권한울과 배철민 사이에는 절대적인 격차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배철민은 권한울의 주먹을 두 번이나 견뎌냈다.
권한울이 봐주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권한울은 배철민의 적의만 꺾을 생각이었으리라.
“사람 봐주고 그러지 마라. 기분 잡친단 말이야. 난 그딴 식으로 기분 더러운 상태로 죽고 싶지 않다.”
사실 거짓말이었다.
배철민은 가능성을 보고 싶었다.
자신의 가문을 책임지겠다 약속한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
권한울이 주먹을 쥐었다. 거대한 몸체에서 황금빛 광채가 뿜어냈다.
엄청난 압력이 배철민의 몸을 짓눌렀다. 바닥이 들썩거리며 떨려 왔다.
“하, 하핫…… 이게 진짜였군.”
어이가 없어서 되려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배철민은 권한울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가문을 부탁한다.”
그 순간, 거인의 주먹이 떨어졌다.
모든 것이 붕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