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99화>
199. 붕괴 (1)
“벽력권 님께서 여기는 왜…….”
주하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너무 의외의 인물이 나타난 탓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비고가 열렸다는데. 어찌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나. 궁금해서 들어와 봤네.”
“입구를 흑미대가 지키고 있었을 텐데요?”
“흑천의 마녀. 내가 그렇게 늙은이로 보이는 건가?”
주하연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았다. 이 노인은 흑천제일권의 맞수라 불리던 권사다. 흑미대가 어쩔 수 있을 리가 없다.
“걱정 말거라. 무력을 쓰지는 않았으니. 그냥 내 제자랑 같이 냅다 달려서 들어온 것뿐이니라.”
세계최속권사와 그 제자가 달리는데.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들어와 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아서 끼어들었느니라. 설마 이런 걸로 흑천에서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그럴 리가요.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별안간 벽력권의 입가에 씩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그렇지? 감사할 수밖에 없겠지?”
“그…… 렇습니다.”
“으하하핫, 살면서 권명우 그놈한테 빚을 지울 일이 생길 줄은 몰랐군. 이래서 인생은 재미있는 거야.”
벽력권은 껄껄 웃기 시작했다. 권명우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어서 많이 기쁜 모양이었다.
“벽력권 님,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딜 가려는 게냐?”
“다른 분들이 위험하실지 모릅니다. 저희라도 가서 도와야죠.”
벽력권에게 부탁을 할 만큼 염치없지는 않다.
아니, 염치를 따지기 이전에 더 이상 외부인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괜한 걱정을 하는구나.”
벽력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비고에는 권명우, 그 친구가 있지 않느냐.”
“맞습니다. 하지만 다들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흑천의 마녀. 그대는 흑천의 소속이면서 나보다 더 흑천제일권을 모르는군.”
짧게 혀를 차며 벽력자가 이어서 말했다.
“권명우 그 친구는 흑천제일권이라고 불리지만 간혹 천하제일권이라 칭하는 사람도 있지. 뭐, 나는 그 친구에게는 과분한 칭호라고 생각하네만…… 그럴 게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일세.”
벽력자는 먼 곳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했다.
“젊은 시절. 그 친구에게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았지. 어떤 위험이 닥쳐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 내고는 했어. 심지어 자신보다 몇 급은 더 위인 강자도 쓰러트리고는 했다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권명우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흑천제일권(黑天第一拳).
모든 헌터들이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흑천의 혈족 중에서도 가장 강한 남자.
“괜한 걱정은 하지 말고 여기 앉아서 기다리도록 하세. 그럼 분명 권명우 그 친구가 모든 일을 끝내고 돌아올 테니까.”
* * *
“흑천의 권을 견식시켜 주겠다고?”
드래곤슬레이어가 입가를 비틀었다. 아공간을 열어서 이번에는 쌍도끼를 꺼내들었다.
“그럼 나는 이 몸의 도끼를 구경시켜 주마!”
드래곤슬레이어가 성난 황소처럼 돌진했다. 그의 몸에서 자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적룡성.
용을 약화시키는 기프트가 그 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적룡성의 영향력이 권명우에게 집중되었다. 권명우의 기운과 마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무리 흑천제일권이라 해도 적룡성을 견뎌 낼 수는 없었다.
“흐아아압!”
드래곤슬레이어는 고함과 함께 쌍도끼를 내리쳤다. 그러나 도끼를 제대로 휘두르기 전에 권명우가 다리를 들어서 땅을 내려찍었다.
용투기가 땅으로 침투했다. 땅이 갈라지더니 그 틈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밑에서 일어난 폭발이 드래곤슬레이어를 집어삼켰다. 드래곤슬레이어는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크악!”
드래곤슬레이어는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섬뜩한 예감이 드래곤슬레이어의 뒷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새 권명우가 코앞에 와있었다. 용투기가 담긴 주먹을 일직선으로 휘둘렀다.
“이, 이 미친!”
드래곤슬레이어는 쌍도끼를 교차했다. 그러나 권명우의 주먹은 쌍도끼를 손쉽게 부쉈다.
권명우의 주먹이 드래곤슬레이어의 몸통에 틀어박혔다.
“커, 커, 커걱!”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에 드래곤슬레이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권명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연달아 드래곤슬레이어의 몸에 공격을 꽂아넣었다.
“칵! 카악!”
권명우의 주먹과 발차기가 몸에 박힐 때마다 드래곤슬레이어는 괴성을 질러댔다.
“제법 단단하구나.”
권명우가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와 달리 두 손은 드래곤슬레이어의 급소를 무자비하게 후드려 패고 있었다.
“이상하군. 이렇게 때렸으면 진작에 뼈가 으스러져서 죽어야 하는데.”
이내 권명우는 해답을 떠올렸다.
“적룡성 덕분이군. 그 기프트 덕분에 용투기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렸다?”
정답이었다.
적룡성은 용의 비늘을 부수는 것뿐만 아니라 송곳니와 이빨을 막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드래곤슬레이어는 여태 권명우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었다.
“알면 그만! 그만 패 이 미친 늙은이야!”
드래곤슬레이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권명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공격이 약화된다면…… 그보다 더 세게 때리면 되겠구먼.”
“뭐, 뭐야?”
그때였다.
마치 불 속에 휘발유를 들이부은 것처럼 권명우의 양손에 맺힌 용투기의 양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 모습에 드래곤슬레이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 이런 씨이…….”
권명우가 용투기를 담아서 힘껏 휘둘렀다. 드래곤슬레이어 역시 모든 마력을 긁어내서 방어했다.
용투기와 적룡성이 충돌했다. 적룡성의 기운에 용투기가 급격하게 깎여 나갔다. 그러나 끝내 용투기가 적룡성을 깨트렸다.
검은 오러에 휩싸인 주먹이 드래곤슬레이어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그 순간, 드래곤슬레이어는 피를 뿜어냈다.
“……!”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드래곤슬레이어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양손으로 가슴을 긁어대며 피를 토해 냈다.
“컥! 커억!”
그때, 드래곤슬레이어의 망막에 무언가가 맺혔다. 권명우가 그에게 달려들어서 다리를 내려찍는 모습이었다.
“으, 으아아악!”
생존본능이 고통을 이겨 냈다. 드래곤슬레이어는 땅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발버둥치던 자리에 권명우의 발이 내리꽂혔다. 바닥이 으스러졌다.
“어딜 도망치는 것이냐!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 지랄하지 마! 누, 누가 그딴 무식한 공격을…….”
말을 끝낼 여유도 없었다. 권명우는 곧바로 드래곤슬레이어에게 달려들었다.
“으, 아아아앗!”
드래곤슬레이어는 뒤돌아서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째 공격할 때보다 더 속도가 빨랐다.
“드래곤슬레이어라는 놈이 내 앞에서 도망을 쳐?”
권명우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살면서 이렇게 추한 헌터는 본적이 없었다.
“어딜 도망치는 것이냐! 얌전히 목을 내놓거라!”
“시, 시끄러워! 누, 누가 이딴 곳에서 조, 죽을 거 같아?”
도망을 치면서 드래곤슬레이어는 끊임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빌어먹을! 그 인간 말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드래곤슬레이어는 도망치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이만 목숨을 거둬 주마!”
권명우가 땅을 박찼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주먹을 내리쳤다.
그 찰나였다.
한 자루의 장검이 권명우의 가슴에서 돋아난 것은.
권명우는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쳐다봤다.
“쿨럭.”
심장을 통째로 관통당한 탓에 피가 터져 나왔다.
권명우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안녕하세요?”
메이샤오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뒤를 내주셨네요?”
* * *
메이샤오가 칼을 쑥 뽑아냈다. 권명우의 두 무릎이 굽혀졌다.
권명우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막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심장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왈칵왈칵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왜, 왜 이제야 나타난 거냐!”
드래곤슬레이어가 메이샤오를 향해 소리를 쳤다.
“하,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잖아!”
“어머, 안 죽고 살아 계시잖아요.”
“이 년이?”
“진정하세요. 저분의 경계가 너무 심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메이샤오는 피가 묻은 장검으로 권명우를 가리켰다.
“그 격전 속에서도 절대로 틈을 안 보이시더라니까요?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제가 있다는 게 탄로 났을 거예요.”
메이샤오는 살짝 질렸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랬으면 어떻게 됐을 거 같아요? 우리 둘이서 저 괴물을 상대로 승산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 그건…….”
드래곤슬레이어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그러게 제가 말을 좀 들으시지. 다른 방법이 있었는데. 기어코 자기가 주의를 끌겠다고…… 사실 혼자서 권명우를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죠?”
드래곤슬레이어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잘 풀렸네요. 저 괴물을 이렇게 쉽게 죽였…….”
“누가…… 죽었다는 것이냐.”
권명우가 몸을 일으켰다. 메이샤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쉬시지 그래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편하게 돌아가실 텐데.”
“때려잡아야 할 개새끼들이 둘이나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
“힘드실 텐데.”
메이샤오가 권명우의 가슴을 가리키며 꺄르륵 웃었다.
“제가 괜히 암살검수겠어요? 심장을 찌르는 순간, 오러를 이용해서 심장을 모조리 찢어놨어요. 생명력이 워낙 강하셔서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 1분도 못 버티실 걸요?”
권명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폐가 커지면서 상처를 자극했는지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 정도면 차고 넘친다.”
권명우가 마력을 일으켰다. 강대한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시종일관 여유롭던 메이샤오조차 얼굴이 굳을 정도였다.
“……드래곤슬레이어. 무기를 드세요.”
드래곤슬레이어는 군말 없이 아공간에서 커다란 도리깨를 꺼내들었다.
그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권명우가 얼마나 위험한지.
“방심하지 마세요. 까딱 방심하면 우리 둘 중 한 명은 죽을 거예요.”
본래 상처 입은 짐승일수록 위험한 법.
목숨을 도외시한 채 달려드는 권명우가 얼마나 위험할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한 명? 내 말을 제대로 못 들었구나.”
권명우가 땅을 박차며 소리쳤다.
“나는 분명 너희 둘 다 때려잡겠다고 했느니라!”
그때였다.
갑자기 천장이 박살이 났다. 그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세 사람은 자리에 선 채 떨어지는 잔해들을 쳐냈다.
“무슨 일이지?”
메이샤오가 미간을 좁혔다. 이건 그녀의 예정에도 없었던 일이었다.
뻥 뚫린 천장에서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메이샤오는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수십 명이 되는 헌터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권명우를 보호하듯이 둘러쌌다.
“대장님!”
“괜찮으세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시래요!”
헌터들은 권명우를 부축했다. 그 소리를 들은 메이샤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흑천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흑천대는 지금쯤 풀려난 강철대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을 텐데.
“너, 너희가 여기는 무슨 일이냐?”
권명우도 얼떨떨하다는 얼굴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당장 치료약 드세요!”
“상처 보여 주세요! 빨리 봉합해야죠!”
“아, 아니…… 잠깐만 아직 적들이…….”
“저놈들은 걱정마세요.”
흑천대원 중 한 명이 말했다.
“곧 도착하실 겁니다.”
곧?
권명우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때, 천장에서 누군가 떨어졌다. 땅에 가볍게 착지한 남자는 짧게 말했다.
“다들 성질도 급하시지.”
문득, 남자와 메이샤오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메이샤오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중얼거렸다.
“권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