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02화>
202. 절대자 (1)
권준열와 흑천대는 권명우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원래 목표물이었던 권명우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음에도 메이샤오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권한울이 너무 거슬렸기 때문이다.
“어떻게 수류검이 죽었는지 궁금했는데. 직접 보니 알겠군요.”
메이샤오는 권한울을 살피며 말했다.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강해지다니…… 당신의 몸에는 사람의 이지를 초월한 힘이 있다던 그 남자의 말이 맞았군요.”
“그 남자? 아제트 헤르메스를 말하는 겁니까? 내친김에 하나만 물어봅시다. 어떻게 이온과 손을 잡게 된 거죠?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권한울의 물음에 메이샤오가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건방지단 말이죠. 감히 우리를 동시에 상대하겠다는 말을 하다니. 그렇지 않나요?”
“그래, 아주 시건방진 새끼야.”
대답은 메이샤오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권한울에게 명치를 얻어맞고 날아갔던 드래곤슬레이어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젠장, 쪽팔려 죽겠네.”
드래곤슬레이어는 짜증을 내며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는 명치를 정통으로 얻어맞고도 멀쩡했다. 아니, 조금도 충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게 조심 좀 하시지 그랬어요. 권한울은 이제 방심해도 좋을 친구가 아니에요.”
“그래봤자 고양이한테 깨물리는 정도지.”
드래곤슬레이어는 콧방귀를 뀌며 메이샤오의 옆으로 걸어왔다.
“이봐, 흑천의 지렁이. 너는 내 손으로 직접 찢어 죽여 주마.”
드래곤슬레이어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순간, 권한울은 쇳덩어리가 몸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적룡성(敵龍星)’의 영향력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
<체력과 마력이 저하됩니다!>
과거 바벨의 파티에서 만났을 때와는 천지 차이다.
드래곤슬레이어가 제대로 된 적의를 담아서 발휘한 적룡성은 권한울의 모든 힘을 억제했다.
“어머, 혹시 나까지 나설 필요도 없었나요?”
메이샤오가 장검을 바로 잡았다. 칼끝에서 오러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붉은 오러가 불길처럼 번지더니 천장까지 닿았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오러와 달리 그녀의 기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고요하게 변해갔다.
거칠고 패도적이지 않다. 오히려 존재감이 흐릿해진다. 눈앞에 있음에도 금방이라도 놓칠 것 같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싸워주겠다니. 이거 영광이군.”
권한울이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쪽은 흑룡혈의 천적이라는 드래곤슬레이어.
반대쪽은 암살검수의 수장이었던 메이샤오.
적룡성에 의해서 모든 감각이 차단당한 상태에서 메이샤오의 검을 피해야 한다?
이보다 끔찍한 상황은 없었다.
“두 분께서 이렇게 환영해 주시는데.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군.”
권한울도 마력을 일으켰다. 흑룡혈의 권능을 활성화 시키며 읊조렸다.
“용.”
<‘환수혈(幻獸血)’의 권능을 발휘합니다.> <‘흑룡혈(黑龍血)’과 ‘환수혈(幻獸血)’이 서로 반응합니다.> <‘환수혈(幻獸血)’의 권능이 변형됩니다!> <‘흑룡(黑龍)’의 힘이 이 자리에 현현됩니다!> <반(半) 화신체를 구현합니다!>
검은 태풍이 휘몰아쳤다.
* * *
마력이 태풍처럼 소용돌이친다.
밀려 나온 공기가 주변에 떨어진 잔해들을 날려 보냈다.
이윽고 태풍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비늘로 뒤덮인 몸체.
등 뒤에서 흔들거리는 꼬리.
머리에 돋아난 뿔과 이마가 갈라지며 드러난 세 번째 눈동자.
그 모습을 본 순간, 메이샤오와 드래곤슬레이어는 깨달았다.
저것은 인간과 비슷한 형상이지만 인간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고차원에 있는 존재다.
“……반룡(半龍).”
반룡(半龍)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공간을 가득 채웠던 메이샤오와 드래곤슬레이어의 기운이 밀려났다. 그 자리를 용의 기세가 채웠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진혈의 권능을 드디어 제 눈으로 직접 보는군요.”
흑천 일가에 복수하기 위해서 메이샤오는 수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 있게 본 것이 권한울이 사용했던 진혈의 권능이었다.
일시적으로 용의 힘을 얻는 권능.
권한울은 저 권능을 사용해서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강자들을 쓰러트렸다.
“정말 대단하네요.”
메이샤오가 순수하게 감탄할 정도로 지금 권한울이 내풍기고 있는 힘은 대단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누가 있는지 잊은 건 아니겠죠?”
권한울이 용의 힘을 꺼내들었다지만 이쪽에는 드래곤슬레이어가 있다.
용살자라는 그의 권능이 있다면 아무리 진혈의 권능이라도…….
“……저기요?”
문득, 메이샤오는 드래곤슬레이어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악, 충격, 부정.
잔뜩 굳어 있는 그의 얼굴에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떠올라 있었다.
“말도…… 말도 안 돼……!”
급기야 드래곤슬레이어는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질르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내 권능이…… 적룡성이 네놈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것이냐!”
메이샤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리라. 하지만 드래곤슬레이어와 권한울은 볼 수 있었다.
<‘적룡성’이 위축됩니다!>
<용의 힘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이, 이럴 수는 없…….”
그 순간, 권한울이 움직였다.
검은 번개가 공간을 내달리더니 드래곤슬레이어를 걷어찼다.
똑같이 명치를 얻어맞은 드래곤슬레이어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때였다.
권한울이 드래곤슬레이어를 걷어찬 그 순간.
의식의 틈이 아주 느슨해진 이 순간.
메이샤오가 예비동작도, 소리도 없이 권한울의 목을 향해 장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녀가 장검을 휘두르는 찰나, 권한울이 먼저 움직였다.
마치 미리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보다 먼저 복부에 권격을 쑤셔 넣었다.
“……!”
주먹이 아니라 포탄에 관통을 당한 듯한 격통이 메이샤오를 강타했다.
메이샤오의 몸이 길게 밀려 나갔다. 메이샤오는 장검을 땅에 박아넣어서 몸을 멈춰 세웠다.
“쿨럭.”
몸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피가 올라왔다. 메이샤오는 핏덩어리를 한 움큼 토해 냈다.
-혈살검. 내게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하라고 말했던가?
머릿속에서 권한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권한울은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지. 당신이야 말로 내게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을 드는 순간, 메이샤오는 분노보다 실소가 먼저 터져 나왔다.
그녀는 언제나 강자였다. 살면서 저런 말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걸 저렇게 어린놈한테 들을 줄이야.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저 말에 반박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흑천의 혈족들은 마음에 안 드네요. 혓바닥을 뜯어버리고 싶을 만큼 건방져요.”
하지만 그녀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메이샤오는 땅에 박아넣은 칼을 다시 빼들었다. 그것을 바로 잡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 보죠.”
그때였다.
한쪽 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권한울과 메이샤오는 놀라서 그쪽을 쳐다봤다.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폭발과 동시에 뿜어져 나온 마력이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마력에 닿은 잔해들이 가루가 되어 부서지고 있었다.
“메이샤오! 그놈은 건드리지 마라!”
그 가운데에서 드래곤슬레이어가 분노를 토해 내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새끼는 내가 죽여 버릴 거니까!”
드래곤슬레이어는 흉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 * *
상처 입은 짐승은 위험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위험한 것은 자존심에 금이 간 짐승이라 할 수 있었다.
드래곤슬레이어가 딱 그러했다.
상성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며 얕잡아보던 권명우에게 압도당했다. 그의 공격을 피해서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결국 메이샤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드래곤슬레이어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상처 사이로 분노가 새어 나와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권한울!”
흑천제일권에게 당해도 이렇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그보다 한참 모자란 애송이에게 공격을 허용하다니?
“지금 당장 머리와 몸통을 쪼개 주마!”
그것도 두 번이나 같은 부위에?
“거기서 딱 기다리고 있어라!”
드래곤슬레이어는 아공간에서 거대한 철제 몽둥이를 꺼내들었다.
땅을 박차며 권한울에게 질주했다. 권한울의 머리를 향해 방망이를 일직선으로 내리찍었다.
권한울은 뒤로 물러나며 방망이를 피했다. 방망이가 땅을 찍었다. 바닥 전체가 으스러지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도망치지 마라!”
그러나 곧이어 흙먼지를 찢으며 드래곤슬레이어가 튀어나왔다. 드래곤슬레이어는 권한울을 향해 연신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래, 소원대로 해 주마.
그 순간, 뒤로 물러나던 권한울이 오히려 땅을 박차며 튀어 나갔다.
드래곤슬레이어가 횡으로 휘두른 몽둥이에 똑같이 주먹을 휘둘렀다. 쩌렁, 울리는 소리와 함께 몽둥이가 박살이 났다.
경악하는 드래곤슬레이어에게 접근해서 늑골에 주먹을 두 번 꽂아 넣었다. 고통으로 인해서 드래곤슬레이어의 몸이 꺾였다.
낮아진 그 턱을 발꿈치로 올려 찼다.
드래곤슬레이어의 얼굴이 밑에서부터 짓뭉개졌다. 그 거대한 거구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권한울이 마무리를 지으려던 찰나, 등 뒤에 나타난 메이샤오가 심장을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권한울의 꼬리가 칼끝을 쳐냈다. 그와 동시에 권한울이 몸을 돌리며 팔꿈치를 휘둘렀다.
“그 꼬리, 장식이 아니었군요!”
메이샤오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팔꿈치를 피했다. 뻗은 칼날을 재빨리 회수하며 권한울을 향해 칼을 내리그었다.
반 화신체를 사용했다지만 메이샤오의 오러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권한울은 몸을 틀면서 메이샤오의 검격을 피했다. 그러면서 빈틈이 보일 때마다 주먹을 뻗었다.
참격이 몇 번이고 허공을 베고, 총알처럼 쏘아진 주먹이 몇 번이고 허공이 관통했다.
권한울과 몇 번이고 합을 주고받던 메이샤오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권한울의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메이샤오의 움직임을 미리 읽고 대처하는 것처럼.
“……당신 설마?”
말을 하기가 무섭게 권한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메이샤오의 장검을 팔꿈치로 찍어서 바닥으로 튕겨낸 뒤, 그녀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강타했다.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메이샤오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충격은 그녀의 심장까지 닿았다.
“컥!”
메이샤오는 비명을 토해 내며 뒤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서 있지 못했다. 땅에 엎어진 채 신음했다.
“크, 크허어어억!”
별안간 멀리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권한울에게 턱을 걷어차이고 기절했던 드래곤슬레이어가 깨어내면서 내지른 소리였다.
혈살검 메이샤오, 드래곤슬레이어.
두 절대자가 헙공을 하고도 바닥을 내뒹굴고 있는 상황.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믿지 않을 그 광경을 눈앞에 두고 권한울이 나지막이 말했다.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