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08화>
208. 비고 (3)
유물들을 모두 챙긴 뒤, 권명우는 부대원들을 데리고 도시로 돌아왔다.
비고를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잡음이 조금 있었으나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그전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흑미대가 정리를 했으니까.
도시로 돌아온 권명우는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부대원들을 쉬게 했다. 그리고 저녁에 한 자리로 불러 모았다.
“오늘 우리는 큰 위기를 겪었다.”
권명우는 호텔의 대형 홀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행히 잘 극복해 냈고 많은 보물을 얻었으나 마냥 기뻐할 수는 없구나.”
흑천대의 대원 중에서 3분의 1이 사망했다. 강철대를 이끌던 구언도 배신을 당해서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흘린 피가 너무 많았다. 기쁨을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며 이 시간을 보내자꾸나.”
권명우가 술잔을 높이 쳐든 다음 한 번에 들이켰다. 다른 이들도 똑같이 행동했다.
“크.”
술을 들이킨 권한울은 입가를 닦으며 인상을 썼다. 생각보다 더 독한 술이었기 때문이었다.
빈 잔을 내려놓은 뒤, 권한울은 홀에 모인 헌터들을 둘러봤다. 다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놈, 뭘 그렇게 훔쳐보고 있는 게냐.”
그때, 권명우가 권한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권한울은 고개를 돌려 권명우를 쳐다봤다. 어느새 권명우의 손에는 술병이 통째로 쥐어져 있었다.
“부상이 낫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술을 많이 드셔도 되는 겁니까?”
“내게 잔소리라니. 아직 백 년은 이르다 이놈아.”
그리 말하며 권명우는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저 독한 술을 마시고도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늘만 마시는 거다. 안 그러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구나.”
권명우의 얼굴에 쓸쓸함이 떠올랐다. 그 표정을 본 순간, 권한울은 눈치챘다.
이번 비고의 탐사를 지시한 사람은 권명우다. 자신의 선택으로 부대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으니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일 훈련소로 떠나려고 한다.”
흑천의 유명대는 각자 예비 부대원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훈련소를 갖춰 놓고 있었다. 권명우가 말한 훈련소도 그런 곳일 확률이 높았다.
“요양하기에는 거기만 한 곳이 없거든. 게다가 흑천대도 다시 정비해야 하고 말이다.”
“그렇군요.”
“무엇보다 이놈을 훈련시켜야 해서 말이다.”
이놈?
권한울이 의아함을 느꼈을 때였다. 권명우가 어딘가를 향해 손짓을 하자 권후돈이 걸어 나왔다.
“후돈이를 훈련시키시겠다고요?”
“그래, 제법 싹수가 보이기에 한번 키워 볼 생각이다.”
권한울은 새삼 놀랍다는 얼굴로 권한울을 바라봤다. 흑천제일권에게 인정을 받다니 권후돈도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전에 네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제가 허락을요? 이렇게 좋은 기회를 제가 반대할 리 없잖습니까.”
“흠, 그거야 당연하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훈련을 시켜 주겠다는데.”
권명우는 입 꼬리를 올리며 크게 웃었다. 그러다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후돈이까지 빠지면 흑암대의 숫자가 반으로 줄어들잖냐.”
권한울까지 합쳐 봤자 흑암대는 총 네 명밖에 안 된다.
가엘 가르시안이 벽력권을 따라가겠다고 나선 지금 권후돈까지 빠지면 두 명밖에 남지 않는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당분간 흑암대 활동을 쉬려고 했거든요.”
“그랬느냐?”
“예, 최근에 너무 많은 일을 겪기도 했고…… 저도 영약을 흡수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사실 영약을 흡수하는 것 자체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얻은 영약은 단순히 섭취하는 것을 넘어서 건강혈의 권능을 이용해서 효능을 극대화시킬 생각이었다.
다만, 이는 권한울도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나도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겠구나.”
“예, 부디 후돈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으하하핫! 당연한 부탁을 하는구나!”
권한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권명우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한울아…….”
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권후돈은 창백한 얼굴로 울먹이고 있었다.
“나, 나 좀 살려…… 웁, 우웁!”
“이놈이 쓸데없는 소리를 다하는구나.”
권명우가 손바닥으로 권후돈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흑천대에게 떠넘겼다.
“도망치지 못하게 단단히 묶…… 아니, 잘 타이르거라.”
권한울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 광경을 쳐다봤다. 굉장히 수상했으나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살면서 이런 엄청난 기회는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지. 메이홍이라고 했더냐? 기왕 이렇게 됐으니 너도 같이 갈 생각 없느냐?”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권명우가 근처에 있떤 메이홍에게 말했다. 메이홍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저요?”
“그래, 네가 얻은 그 힘을 제대로 흡수하고 싶지 않느냐?”
“저야 감사하죠!”
메이홍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애초에 흑천제일권 정도 되는 강자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호, 홍아! 아, 안…… 큽! 크흡!”
저 뒤에서 권후돈이 뭐라고 소리쳤으나 흑천대에 의해서 막히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훈련소로 가시려고요? 회장님의 얼굴은 한번 뵙는 게 좋지 않을까요?”
메이 가문에게 습격을 당한데다 권명우도 크게 다쳤으니 회장인 권선우를 직접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권한울의 말에 권명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쪽팔리잖냐.”
“예?”
“메이 가문 따위에게 당했는데. 어떻게 형님의 얼굴을 보겠느냐.”
그러니 먼저 쥐구멍에 숨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네가 수고 좀 해 줘야겠다.”
“……예?”
순간, 권한울은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도망을 치면 나 대신 네가 형님에게 이번 일을 보고해야 할 게 아니냐.”
“그걸 지금 제게 다 맡기겠다는 말씀이세요?”
권한울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은 할아버님, 이러시면 제 비밀을 어떻게 얼버무려야 할지…….”
“아, 그래. 당분간은 비밀로 해달라고 했던가? 그런데 그걸 꼭 비밀로 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 말에 권한울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다. 네 비밀이 공개됨으로써 밝혀질 파장이 걱정되어서 최대한 숨기려는 것이겠지.”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건 네가 아직 애송이었을 때 일이지. 지금의 네가 그 사실을 밝힌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게 있느냐? 설사 생긴다 하더라도 네 능력이라면 충분히 억누를 수 있을 텐데.”
권명우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어나갔다.
“굳이 네 개인의 능력으로 처리할 필요도 없다. 내가, 그리고 흑천이 네 울타리가 되어 줄 터인데. 어느 누가 널 문제 삼고 걸고 넘어지겠느냐.”
“그건…….”
그래도 권한울은 섣불리 권명우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굳이 온 세상에 공개할 필요는 없다. 최소한 형님에게는 밝히는 게 어떻겠느냐.”
“회장님께요?”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 반응에 권명우가 실소를 터트렸다.
“이놈, 아직도 형님을 안 좋게만 생각하고 있구나.”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있느냐. 형님이 까탈스럽고 성격 더러운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거늘. 하지만 한울아, 내가 장담하마. 형님께 말해서 나쁜 일을 생기지 않을 게다.”
권명우가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이내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물론 선택은 네 자유다만.”
권명우는 권한울의 어깨에 올려놓았던 팔을 떼어놓았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마.”
“어딜 가시려고요?”
“자리를 옮겨서 좀 더 마시려고 한다.”
권명우는 팔을 휘휘 흔들며 사라졌다. 권한울은 그런 권명우의 등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 * *
이튿날, 모두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권명우는 미리 말한 대로 권명우와 메이홍, 그리고 흑천대를 이끌고 훈련소로 떠났다.
“우리도 이만 가 봐야겠구나.”
카불 국제공항에서 벽력권이 권한울에게 말했다. 그런 뒤, 가엘 가르시안에게 시선을 보냈다.
가엘 가르시안은 한걸음 앞으로 나오며 고개를 숙였다.
“대장님, 그동안 실례 많았습니다.”
“흑암대를 탈퇴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요.”
권한울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가엘 가르시안의 얼굴에 나타난 진지함을 사라지지 않았다.
“반드시 지금보다 강해져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벽력권은 가엘 가르시안과 라이신을 데리고 떠났다. 자리를 떠나면서 라이신이 권한울을 잠시 노려보기는 했으나 별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그럼 우리도 가 볼까요?”
권한울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주하연과 강철대원들이 서 있었다.
권명우와 흑천대가 훈련소로 가게 됐으니 유물들의 운송과 강철대의 지휘는 권한울이 맡게 되었다.
모든 대원이 배신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비고에서 있었던 일들은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권한울은 강철대원들을 흑천 일가로 데려가서 처분을 맡길 생각이었다.
“혹시 몰라서 미리 말해 두는데. 도망치지 마세요. 아시겠죠?”
권한울의 말에 강철대원들은 맹렬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미 강철대원들에게 권한울은 권명우 급의 강자로 각인이 되어 있었다. 절대자의 명령을 어길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흑천으로 돌아가는 동안 권한울은 권선우에게 이번 사건을 보고 하기 위한 서류를 작성했다.
익숙하지 않은 작업이라 돌아가는 내내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했을 때, 권한울의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안 계신다고요?”
권선우가 본가에 없었기 때문이다.
비서실장의 대답에 권한울은 당황해 하며 물었다.
“무슨 일로 자리를 비우신 겁니까?”
“그건 함부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권한울은 앓는 소리를 냈다.
권한울은 하는 수 없이 준비해 둔 서류를 그대로 들고 건물을 나왔다.
“권한울 님, 저택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뒤따라 나오던 주하연이 물었다. 권한울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잠시 들릴 곳이 있는데. 거기를 먼저 가죠.”
* * *
권한울이 향한 곳은 흑천비고였다.
본래 흑천비고는 보안 때문에 정해진 시기에만 비고를 개방할 수 있다.
이번에는 운 좋게도 비고가 개방되는 기간이라 연락을 넣자마자 바로 출입할 수 있었다.
흑천비고로 들어온 권한울은 곧바로 30층으로 향했다. 30층의 구석진 곳으로 다가가자 어떤 메시지가 떠올랐다.
<진(眞) 흑룡혈을 감지합니다.>
<소유자 ‘권현문’의 비밀 금고를 발견하셨습니다.>
<인증 절차에 들어가겠습니까?>
“이걸로 세 번째 방문인가?”
권한울이 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흑룡혈의 동화율이 낮아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두 번째는 흑룡혈의 동화율이 어느 정도 기준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절기 ‘담천조룡’을 얻을 수 있었다.
“인증절차를 밟도록 하겠다.”
권한울이 조용히 말했다.
이것으로 세 번째 방문. 지금의 권한울은 흑룡혈의 동화울이 90%를 넘긴 상태.
<시험자의 동화율이 기준을 달성했습니다.>
<사용자 ‘권현문’이 안배를 개방합니다.>
벽면의 가운데가 열리며 빈 공간이 나타났다. 안에는 몇 가지 물건이 놓여 있었다.
권한울은 우선 수첩 크기의 석판 두 개를 들어올렸다.
<비룡승운(飛龍乘雲)>
-품질 : 측정불가
-설명 : 현룡승천공의 세 가지 식(式)을 극성까지 익히면 습득할 수 있는 절기 중 하나.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과 함께 한다. 절기를 펼치는 날, 세상이 좁게 보일 것이다.
<항룡유회(亢龍有悔)>
-품질 : 측정불가
-설명 : 현룡승천공의 세 가지 식(式)을 극성까지 익히면 습득할 수 있는 절기 중 하나.
정점에 도달한 용조차 후회를 할 때가 있다. 절기를 펼치는 날, 모든 것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얻지 못했던 두 개의 절기가 손에 들어왔다. 권한울은 이 자리에서 바로 메모리페이지를 부숴서 두 절기를 습득했다.
다음으로 메모리페이지 말고 다른 물건을 집어들었다.
“이건 뭐지?”
권한울은 물건을 펼쳐봤다. 예상과 달리 안에 담겨 있는 물건은 옷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익숙한 모양의…….
“정장이잖아?”
권한울은 남은 물건들을 살펴봤다. 하얀 와이셔츠와 구두, 장갑이 보였다.
<가뭇뫼>
-품질 : ???
-설명 : 대명장 박무명이 제작한 희대의 걸작. 흑룡의 비늘과 가죽, 힘줄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제작되었다.
권한울의 입이 벌어졌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건 분명 시조가 사용했다는 장비였다. 권한울은 떨리는 눈으로 정장을 몇 번이고 살펴봤다.
그러다 아직 남아 있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 깨달았다.
공간 안쪽, 깊은 곳으로 손을 집어넣자 무언가가 붙잡혔다.
꺼내놓고 보니 물건의 정체는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이었다.
“잠깐, 이거 설마…….”
권한울은 황급히 구슬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여의보주(如意寶珠)>
-품질 : ???
-설명 : 만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흑룡의 여의주. 흑룡의 모든 권능이 담겨 있다.
권한울은 얼어붙은 것처럼 한참동안 구슬을 응시했다.
그리고 한참 뒤, 비고 안쪽에서 뜻을 알 수 없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