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10화>
210. 준비기간 (2)
“와, 진짜 가도 가도 얼음밖에 안 보이네요.”
바퀴 대신 캐터필러가 달린 빙설지 전용 차량.
권한울은 그 안에 앉아서 창문을 내다보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에는 새하얀 빙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옛날에는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는 바람에 빙하들이 많이 녹았다고 합니다.”
마주보고 앉아 있던 주하연이 차를 따르며 말했다.
“지금은 빙설계 몬스터들이 남극에 자리를 잡고 지속적으로 냉기를 배출하기 때문에 원래대로 돌아갔다더군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권한울은 주하연이 내민 찻잔을 잡았다. 잠시 찻잔의 온기를 즐겼다.
“그런데 하연 씨, 굳이 이런 곳에 있는 시설을 이용할 필요가 있나요? 흑천에도 폐관수련을 위한 비밀장소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예,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쪽으로 약속을 잡으려고 했습니다만…….”
주하연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회장님께서 이 장소를 이용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회장님께서요?”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명령이었다.
“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의 사태라니.”
순간, 권한울의 얼굴이 굳었다. 머릿속에 어떤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부회장님 때문일까요?”
헌터는 영약을 흡수할 때 가장 약해진다. 그렇기에 권한울도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영약을 섭취하려는 것이다.
만약 권한울이 흑천의 시설을 이용한다면 권혁이 무슨 수작을 부릴 지도 몰랐다.
“모르겠습니다. 다른 말씀은 듣지를 못해서…….”
주하연은 애매하게 말을 얼버무렸다. 권한울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찻잔을 기울였다.
“회장님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지금 가시는 곳이 흑천의 시설보다 훨씬 안전할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예, 헌터들을 위한 시설을 건설하는 세계적인 건설업체인 돌핀 사에서 고위 헌터들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한 곳이니까요.”
“이미 유명한 장소 같은데…… 그런 곳이 안전할까요?”
권한울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 말에 주하연이 고개를 저었다.
“달리 생각하면 유명해져도 괜찮을 만큼 안전한 장소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하긴 권선우가 직접 추천한 장소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으리라.
“빨리 구경해보고 싶네요.”
그리 말하며 권한울은 다시 찻잔을 입에 댔다.
* * *
2시간 뒤, 권한울을 태운 차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중년의 남성이 권한울을 반겼다.
“돌핀 사의 회장 데반 위프스라고 합니다!”
회장이라는 말에 권한울은 조금 놀랐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직접 반겨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권한울은 데반 위프스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회장님께서 직접 반겨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하핫! 흑천의 혈족께서 오시는데 어떻게 부하 직원을 보내겠습니다! 심지어 보통 혈족도 아니고 앞으로 흑천을 이끌어 가실 분께서 오시는데 직접 찾아뵙고 설명을 드려야죠!”
데반 위프스는 권한울의 손을 꽉 맞잡으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친분을 쌓고 싶다는 의지가 전해져 왔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밖은 추우니 안에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데반 위프스는 권한과 주하연을 데리고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저희 돌핀 사가 제작한 이 쉘터는 본래는 비상시에 생존을 위해 구상이 된 장소입니다. 외부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할 뿐만 아니라 내부시설과 자원만으로도 최소 30년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죠.”
“대단한 곳이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구조는 지상 1층, 지하 6층, 총 7개의 층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가장 최하층인 지하 6층이 수련을 위한 장소이며 나머지 층들은 시설의 관리를 위해 존재하죠.”
상상 이상으로 큰 규모였다.
“굉장히 크군요. 저 말고도 몇 명이 이 시설을 이용 중이죠?”
“예? 아하핫!”
갑자기 데반 위프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당혹스러운 질문이셔서 그만…… 저희 시설은 딱 단 한 명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 명이요?”
“예, 물론 시설을 관리하고 지키기 위해서 상주하는 인원들이 따로 있기는 합니다.”
권한울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한 명만 받아서 이 시설을 운영할 수 있나요?”
“그래서 비용을 굉장히 비싸게…… 아, 비용 문제를 모르시는 걸 보니 그것도 모르시겠군요.”
“그거라뇨?”
“원래 이 시설은 다른 사람이 이용하기로 예약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걸 흑천의 회장님께서 세 배의 가격을 치르고 빌리셨죠.”
그 말에 권한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대형 시설을 빌리는 가격이 쌀 리가 없다. 그걸 세 배나 되는 비용을 치르고 빌리다니?
“흑천의 회장님께서는 정말 통이 크신 분이시더군요. 역시 흑천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데반 위프스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엄청난 돈을 벌게 됐으니 기쁠 만도 했다.
“그럼 다음으로는 지하 1층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데반 위프스의 설명은 이후로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지하 3층은 창고입니다. 모든 물자가 이곳에 모이죠.”
“지하 5층은 정화조입니다. 시설의 모든 하수가 이곳에서 정화되고 재활용됩니다.”
각 층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지하 6층의 폐관실에 도착했다.
“이곳이 저희 시설의 핵심이죠. 한 번 닫히면 안쪽에서만 열 수 있습니다. 만약 불상사가 생겨서 시설 전체가 파괴되어도 6층만은 무사하도록 설계가 되었습니다. 안쪽에는 10년을 버틸 물자도 마련되어 있죠.”
과연 중요한 장소인 만큼 데반 위프스의 설명도 길엇다.
설명이 끝난 뒤, 권한울은 지하 1층에 있는 개인실로 향했다.
이곳에서 하루 쉰 뒤에 폐관실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가지고 온 짐은 이미 직원들에 의해서 말끔하게 정리가 된 상태였다.
“우선 씻을까.”
권한울이 웃옷을 벗으려던 찰나였다.
“권한울 님, 들어가봐도 되겠습니까?”
노크 소리와 함께 주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은 문을 열고 주하연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세요?”
“방금 회장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회장님이라는 말에 온몸이 긴장이 됐다.
“폐관실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연락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주하연은 꾸벅 허리를 숙인 뒤, 물러났다. 권한울은 문을 닫고 한참 동안 고민했다.
명확한 기한을 정하지 않고 폐관실에 들어가기 전에 연락을 달라고 했으니 나중에 전화를 해도 된다.
하지만 권선우의 부탁을 마냥 뒤로 미룰 수도 없었다.
“……그냥 지금 하는 게 낫겠지.”
권한울은 마음 준비를 마친 뒤, 권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대기음이 지나가고 나서야 통화가 연결되었다.
-나다.
스마트폰 너머로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은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생각보다 일찍 전화를 했구나.
“회장님의 명령을 미룰 수는 없잖습니까.”
-명령을 한 적은 없다.
권선우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곳을 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한울은 우선 감사를 표했다. 원래 가격의 3배를 치렀다고 하니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됐다.
“하지만 세 배의 비용을 치르렸다고…….”
-그딴 푼돈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러는 것이냐.
권한울은 혀를 내둘렀다. 이 시설을 빌릴 만큼 많은 돈이 푼돈이라니.
“그보다 무슨 용무로 전화를 하라고 하셨는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시 물어봐야 하는 건지 고민할 때였다.
-네 몸에 다른 혈통들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냐?“
* * *
“…….”
잠깐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그걸 어떻게…….”
-그 말을 들어보니 사실인 모양이구나.
“……작은할아버님께 들으셨습니까?”
-명우? 설마 그 녀석도 알고 있었는데. 내게만 비밀로 했던 것이냐?
권선우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뭔가가 잘못됐음을 느낀 권한울은 황급히 변명했다.
“이번에 메이 가문의 비고 때 아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르셨고요!”
-그래?
권선우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권한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흑룡혈 외에 다른 혈통들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 그 얼간이들이 한 말이 사실이었다니…….
아직도 믿기 힘들었는지 권선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어째서 네놈이 그렇게 성장이 빨랐는지. 강자들이 어째서 너에게 패배했는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고 권한울이 물었다.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최근에 해결할 일이 있어서 이것저것 조사하다 알게 됐다.
“해결해야 할 일이라뇨?”
-그보다 하나만 더 물어보자.
권한울이 물었으나 권선우는 대답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째서 지금까지 비밀로 한 것이냐?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위험? 하긴 흑천에 처음 왔을 때, 너는 경계의 대상일 뿐이었지. 숨기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말했더라면…….
권선우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나조차 믿지 못했던 것이로군.
권한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불찰이로구나.
“아닙니다.”
-됐다. 빈말은 하지 말 거라.
전화기 너머로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도 계속 그 비밀을 지킬 생각이냐?
“잘 모르겠습니다.”
-네 선택이니 굳이 참견하지는 않으마. 하지만 나는 밝히는 쪽을 추천한다.
“어째서입니까?”
-그 편히 수월할 테니까.
권한울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무엇이 수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앞으로 기다리면 알 게 될 게다.
“예?”
오늘 따라서 권선우는 뜻 모를 소리만 계속 하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다 됐구나. 나는 볼일이 있어서 이만 끊어야겠다.
“예…… 알겠습니다.”
-내 말을 명심하거라. 되도록 그 비밀을 밝히는 쪽으로 고민해 봐라.
그 말을 끝으로 권선우는 툭 전화를 끊었다.
권한울은 다소 어이없다는 얼굴로 전화기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계신 거지?”
* * *
이틀 뒤, 권한울은 폐관실에 입관했다.
몸을 깨끗하게 닦은 뒤, 새 옷을 입고 폐관실로 향했다.
“그럼 하연 씨, 갔다 오겠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랄게요.”
폐관실로 들어가는 권한울을 주하연이 마지막으로 마중했다.
“여기가 폐관실이란 말이지.”
폐관실은 상당히 넓고 냉장고와 화장실 같은 시설도 전부 갖춰져 있었다.
다 완벽한 곳이었으나 딱 한 가지, TV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었다. 외부와의 연결을 완전히 단절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권한울은 아공간을 열어서 영약들을 꺼냈다.
메이 가문에서 손에 넣은 천도의 밀약.
바벨 가문에서 보내온 소마.
마지막으로 블라가 가문의 선물인 선도복숭아까지.
영약 하나당 SS급 능력치가 하나이니 총 세 개의 능력치를 SS급까지 상승시킬 수 있다.
하지만 권한울은 거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언제 또 SS급 영약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
흑천 일가에서도 구하기 힘든 것이 SS급 영약이다. 어쩌면 권한울 인생에 SS급 영약은 이 세 개로 끝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 했다.
“후우.”
권한울은 심호흡을 하며 건강혈의 권능을 끌어올렸다.
<‘건강혈(健康血)’의 권능을 일깨웁니다!>
건강혈을 이용해서 영약들의 기운을 최대한 받아들인다.
성공한다면 모든 능력치를 SS급까지 상승시킬 수 있다.
“성공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거창한 계획이었으나 권한울도 성공을 확신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계획은 실패하고 원래대로 3개의 능력치만 SS급이 될지도 몰랐다.
“먹어 볼까.”
권한울은 영약들을 차례로 섭취했다.
그 직후, 변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