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213화 (213/221)

<혈통이 깡패임 213화>

213. 아버지와 아들 (2)

사금옥의 내부.

주하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눈앞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화신체라고……?”

화신체란 혈통을 보유하고 있는 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다.

흑천의 역사에도 화신체를 이룬 혈족은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그 엄청난 힘을 권혁이 손에 넣었을 줄이야.

“저게 정말 화신체가 맞는 걸까?”

하지만 주하연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권선우의 화신체는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이 완벽한 용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반면 권혁의 화신체는 그렇지 못했다.

이빨은 마구잡이로 나 있었으며 비늘이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이 더 많아서 새빨간 살점이 그대로 보였다.

볼품이 없다 못해서 용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시작된다.”

두 용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밀려오는 충격에 주하연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 * *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충돌했다.

몸통으로 들이박거나 발톱으로 서로의 몸을 긁어 내렸다.

사소한 행동이 폭풍을 불러오고 지진을 일으켰다. 자연재해가 형상을 이루고 서로 싸우는 듯했다.

-하하핫! 화신체의 전투란 정말 대단하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

두터운 비늘이 전신을 뒤덮고 있는 권선우와 달리 권혁의 화신체는 비늘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같은 공격이라도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권혁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큰 소리로 웃었다.

-말이 너무 많구나.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와 노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나이도 잊고 말았지 뭡니까!

권혁이 꼬리를 휘둘러 권선우의 머리를 후려쳤다.

권선우는 그 공격을 그대로 받아 내며 동시에 권혁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머리를 잡은 채로 그대로 땅으로 찍어 눌렀다. 엄청난 충격이 지면을 강타했다.

-크하하핫!

권혁 본인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지.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역시 강하십니다. 같은 화신체라도 경험치가 다르군요!

이런 상황에서조차 권혁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권선우는 그런 권혁을 지긋이 내려다보다 말했다.

-그만 항복하거라.

-이제 시작인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아직 더 할 수 있…….

-나는 널 죽이고 싶지 않다.

그 한 마디에 권혁의 웃음소리가 뚝 멈췄다. 눈동자를 굴려 권선우를 응시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네 목숨만큼은 살려 주마.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적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분이시잖습니까.

-너는…… 내 자식이다.

권선우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 왔다.

-나는 널 죽이고 싶지 않구나. 그러니…….

별안간 권혁이 꼬리를 휘둘러 권선우의 몸통을 후려쳤다. 충격으로 권선우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 틈에 권혁이 권선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동시에 앞발을 휘둘러 권선우의 머리를 강타했다.

권선우는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 자식? 자식이라고? 드디어 노망이 나셨군. 그게 아니고서야 이제 와서 애비 노릇을 하려고 들 리가 없지!

권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소리와 달리 두 눈동자는 살기로 번들거렸다.

-제가 7살이 되던 첫날,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하셨죠. 장남이라고 해서 안심하지 마라! 후계자로 인정을 받고 싶다면 가치를 증명해라! 그렇지 못하면 설사 자식이라 해도 널 버리겠다고!

권혁이 달려들었다. 권선우를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하셨죠! 제 성장이 당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한심하다며 경멸하고! 매번 나보다 뛰어난 혈족을 데려와서 비교하고! 임무를 실패할 때마다 내 지위를 격하시키고!

공격이 쏟아질 때마다 권선우의 몸이 휘청거렸다. 피가 튀고, 비늘이 뜯겨 나갔다.

-나는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 팔다리가 으스러질 정도로 기술을 연습하고! 임무 도중에 내장이 뜯겨져도 견뎌 내고!

이상하게도 권선우는 단 한 번도 막지 않고 맨몸으로 받아 냈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어! 그게 흑천의 방식이었으니까! 직계혈족들은 대대로 그래 왔으니까! 하지만 내가 정말로 참기 힘든 게 뭐였는지 아나? 내게는 그딴 것들을 강요했던 당신이! 애비로서의 정을 내다 버렸던 당신이! 천이에게는 그러지 않았다는 거야!

권혁의 앞발이 권선우의 턱을 올려쳤다. 권선우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쓰러졌다.

-내게 강요했던 것들은 어디로 가져다 버렸나! 어째서 잊어버렸나! 나와 천이가 어떻게 달랐기에!

권선우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힘없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말해! 말하란 말이야!

-내…… 내 잘못이다.

-잘못?

권혁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내 폭소를 터트렸다.

-아버지! 대체 어디까지 추락하실 생각이십니까! 흑천의 가주가! 모두가 두려워하던 당신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이내 권혁의 웃음소리가 멈췄다. 지루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뭐, 됐습니다. 사과를 받자고 이런 건 아니니까.

권혁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당신을 죽이고 흑천의 모든 걸 손에 넣을 겁니다.

-미안하구나.

-사과는 그쯤 하십시오. 점점 더 추해 보이니까요.

-네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권선우가 힘을 일은 눈동자로 권혁을 바라봤다.

-네가 얼마나 분노했을지. 얼마나 실망했을지 헤아리지 못했다.

-이제 와서 그래 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리고 네 응어리를 풀어 주지 못하고 마무리를 지어서 미안하구나.

사그러지던 권선우의 기세가 다시 살아났다.

-널 멈출 수 없다면 이 자리에서 널 죽일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모든 걸 바로잡을 수 있을 테니까.

흔들리던 육신에 힘이 깃든다. 죽어 가던 눈동자에 살의가 담겼다.

-하하핫! 좋습니다. 그렇게 나오셔야죠. 이제야 흑천의 가주 답군요.

권혁 역시 크게 기꺼워했다. 발톱을 세운 채 권선우와 대치했다.

두 용이 다시 대치했다. 서로의 급소를 노리기 위해 집중력을 높였다.

-아버지, 깜빡하고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게 있군요.

그때, 권혁이 말했다.

-천이를 죽인 건 접니다.

그 한 마디에 권선우의 살기가 지워졌다. 멍한 얼굴로 권혁을 쳐다봤다.

-한울이가 태어났을 때, 천이와 그 아내를 만나러 가신 적이 있죠? 몰래 가신다고 감시자들을 모두 물리셨을 때를 노려서 처리했습니다.

-너…….

-아버지께 들키지 않으려고 고생 좀 했습니다. 다행히 성공적이었던 것 같군요.

-너 이노오오옴!

권선우가 분노를 터트렸다. 그 바람에 집중력이 깨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생긴 작은 틈.

그 틈을 비집고 권혁의 이빨이 권선우의 목을 물어뜯었다.

* * *

권한울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충격적인 일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른 부대는요? 권명우 이사님과 권미 님께서는요?”

“그게 확실하지 않은 정보들뿐이라서…….”

“괜찮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아는 바로는 그 두 분이 계신 곳도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권한울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데반 위프스가 황급히 덧붙였다.

“다, 다행히 두 분께서는 무사하시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습격 때문에 무리를 하시는 바람에 다시 상처가 심해져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권한울은 으득, 이를 갈았다. 권혁이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다른 유명대에서 본가로 향했는데…… 지금은 모두 소식이 끊어졌다고 하더군요.”

지금 본가에는 권혁의 전력이 집중되어 있다. 어지간한 부대로는 결판을 낼 수가 없었다.

권명우와 권미가 부상 때문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이 반란을 진압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권한울은 자신의 짐을 챙긴 뒤, 시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권한울을 데반 위프스가 허겁지겁 따라왔다.

“권한울 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미처 차량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괜찮습니다.”

권한울은 짧게 말했다.

“그걸 타고 가면 늦습니다.”

“예? 그럼 대체 어떻게 가실 생각이신지…….”

그때, 저 멀리서부터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권한울은 먼 하늘을 쳐다봤다. 무언가가 번쩍인다 싶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폭발과 함께 빙하가 갈라졌다. 빙하가 박살나며 하늘로 날아오른 얼음조각들이 시야를 가렸다.

“으아아악!”

데반 위프스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저, 적이다! 적이야! 권한울 님! 빨리 시설로…….”

잔뜩 겁에 질린 데반 위프스와 달리 권한울은 침착했다. 아니,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깊게 파인 구덩이에서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울아!”

“대장님! 그동안 뭐 하고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권후돈, 메이홍, 가엘 가르시안이 달려오더니 권한울을 둘러싸고 재잘거렸다.

“가엘은 그렇다쳐도. 후돈이 너랑 메이홍은 어떻게 여기 온 거야? 작은할아버님이 계신 곳이 습격을 받았다면서.”

“어, 벌써 알고 있었네? 권혁 큰아버지…… 가 아니라 그 배신자의 부대랑 이온의 마법사들이 동시에 공격해 왔어.”

“의외로 만만치 않더라고요. 흑천대도 피해를 입고, 권명우 님도 무리를 하시는 바람에…….”

권후돈과 메이홍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근데 작은할아버님이 나랑 홍이를 따로 빼면서 말하시더라고.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한울이 널 도우러 가래.”

“대장님한테 모든 걸 맡기겠다고 하시던데요.”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저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두 분과 합류했습니다.”

“벽력권 어르신께서 보내 주시던가요?”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조를 드리고 왔죠.”

가엘 가르시안다운 대답이었다.

권한울은 세 사람을 살폈다.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세 사람은 크게 강해져 있었다.

겨우 한 달 만에 이 정도로 강해지다니. 믿기 힘들 정도였다.

“다들 많이 강해졌군요. 고생 많았습니다.”

그 말에 권후돈의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다.

“갑자기 왜 이래?”

당황한 권한울이 물었지만 권후돈은 계속 눈물만 흘렸다. 메이홍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신경 쓰지 마세요. 권명우 님께서 정신교육부터 시켜야 한다면서 옆에서 붙잡고 1:1로 학…… 아니 훈련을 시키셨거든요.”

권한울은 딱하다는 얼굴로 권후돈을 바라봤다. 애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나날이었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됐다.

“대장님을 도우려고 부랴부랴 달려왔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메이홍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권한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겨우 한 달만 훈련을 받았고…… 그렇게 강해지지도 못했고…….”

메이홍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툭 까놓고 말해서 이대로 대장님의 발목만 잡을 것 같아서요…….”

메이홍의 말에 공감했는지. 권후돈과 가엘 가르시안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그 말에 권한울은 웃으며 말했다.

“이상한 질문을 하시네요.”

“이상하다뇨…… 진지하게 말씀드린 건데요.”

“제가 부대를 결성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나만의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사방이 적이었으며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제 부탁에 응해 준 사람들이 여러분이죠. 여러분들이 저를 돕지 않으면 누가 절 돕는단 말입니까?”

그 말에 세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출발하죠.”

“아, 잠깐만 한울아. 미안한데 조금만 쉬면 안 될까……?”

“맞아요.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많이 지쳐서…….”

“면목 없지만 저도 그렇습니다.”

세 사람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사실 탑승물을 이용하는 것보다 헌터들이 직접 움직이는 게 훨씬 빠르다. 지치기 때문에 다들 그러지 않을 뿐.

이 세 명은 권한울에게 최대한 빨리 합류하기 위해서 두 발로 직접 달려왔으리라.

“아, 그거라면 걱정 마세요. 가는 도중에 회복하면 되니까.”

“응? 무슨 소리야?”

권한울이 마력을 일으켰다. 마력이 반구체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순간, 세상이 고요해졌다. 미친 듯이 흩날리던 눈발도 사라졌다.

그 광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특히나 흑암대 세 명의 충격은 더욱 컸다.

“하, 한울아? 대, 대체 이걸 어떻게…….”

“이렇게 짙은 마력은 처음 봐요…….”

“못 보던 사이에 대장님께서는 진짜 괴물이 되셨군요.”

마력을 방출한 것만으로 일대 영역을 완전히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다.

경악스럽다 못해서 두려울 정도의 마력운용력이었다.

“그럼 출발하죠.”

“뭐, 뭐라도 잡아야 해?”

“그럴 필요는 없고.”

“바로 본가로 갈 생각이세요?”

메이홍의 물음에 권한울은 고개를 저었다.

“공방으로 먼저 갈 겁니다.”

그 말에 세 명이 모두 의문을 표했다.

“가져올 물건이 있어서요.”

그 말과 동시에 권한울이 땅을 굴렀다.

바닥에서부터 공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폭풍이 세 사람을 허공에 띄웠다.

현룡승천공 종극(玄龍昇天功 終極)

절기 비룡승운(飛龍乘雲)

폭풍이 세 사람을 집어삼키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한 줄기의 섬광이 하늘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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