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16화>
216. 방해 (3)
권한울은 권찬성이라는 인간에 대해 그리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데뷔전 때부터 줄곧 자신을 방해했으며 한 번은 권찬성의 손에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권한울의 손으로 직접 매듭을 지었기에 지금까지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랬던 인간이 다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제정신을 되찾은 거지?”
카탈리나 블라가에게 납치되었을 당시, 권찬성은 권한울을 구출한다는 명목 하에 실제로는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때, 권한울은 역으로 권찬성을 쓰러트리고 정신을 파괴했다. 영원히 백치로 살면서 고통을 받으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무슨 수를 써도 망가진 정신을 회복시킬 수 없었을 텐데.”
진(眞) 권속혈의 권능을 빌려서 행한 일이다.
그 어떤 영약이나 유물을 들고 와도 회복시킬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파괴시켰다.
그렇기에 권한울은 권찬성이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맞다. 나는 네 손에 머저리가 되었지. 이온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그렇게 살아야 했을 거다.”
“이온이라고?”
권찬성이 기괴하게 변이된 손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거 보이나? 이게 이온에서 내게 한 짓이다. 듣자하니 흑룡혈을 강화시키는 실험이었다더군.”
권찬성의 입가가 비틀렸다.
“살아 있는 사람을 실험체 취급하다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주 개 같은 놈들이지만 나한테는 다행이었지. 실험을 거듭하면서 흑룡혈의 권능이 강화되었고 그 덕분에 몸과 정신이 회복되었으니까.”
“……이온의 실험체가 되었다고?”
그릇을 통해서 봤기에 잘 알고 있다. 이온에서 행하는 실험이 얼마나 끔찍한지 말이다.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건 아니야. 이제 겨우 최근의 기억만 돌아왔을 뿐이지.”
별안간 파충류 같던 동공에 살기가 깃들었다. 권찬성은 권한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래, 최근의 기억! 네놈에게 당했던! 그날의 기억만이 생생하다! 그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서 날 괴롭히고 있어!”
권찬성이 분노를 터트리자 강대한 마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네가 문제다! 너만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신뢰를 잃지 않을 거야! 머저리로 살지도 않았을 거고, 이런 괴물로 변하지도 않았을 거다!”
권한울은 마력보다 권찬성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집중했다.
순혈의 기운이 아니었다. 거기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진혈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군.”
굳이 따지자면 권찬성이 지니고 있는 흑룡혈은 순혈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나마 진혈에 가까워져 있었다.
대체 이온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험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실험 성과만큼은 진짜였다.
“지금 내가 얼마나 기쁜지 모를 거다! 오랜 원한을 이제야 끝낼 수 있게 되었어!”
권찬성이 권한울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때, 권한울이 물었다.
“권지석은 어떻게 되었지?”
그 한 마디에 권찬성이 멈칫했다.
“권지석? 그게 누구냐.”
“정신이 회복되었다고 하더니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로군.”
“날 모욕하지 마라!”
“그쪽의 동생 말이다.”
잠시 권찬성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러다 탄성을 흘렸다.
“그래, 그런 녀석이 있었지. 내 동생이랍시고 아버지께서 데려오셨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죽었다.”
권찬성은 곧바로 말했다.
“실험 재료가 부족하다는 이온의 말에 아버지께서 데려오셨지.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나중에 죽었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충격적인 말에 실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권혁이 인간 같지 않은 종자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친자식을 두 명이나 희생시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권찬성의 태도 역시 역겨울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질문은 다 끝났나?”
“그래, 덤벼도 좋다.”
권한울이 손가락을 까딱 거리며 덧붙였다.
“와라, 첫수는 양보해 주마.”
“……이 시건방진 놈이 감히 날 얕잡아 봐?”
“얕잡아보는 건 그쪽이지.”
권한울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정신이 파괴당하기 전에도 나한테 졌던 놈이 지금이라고 다를 것 같나?”
“그건 네놈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어! 카탈리나 블라가와 영약의 힘을 빌려서 했던 일이잖아!”
“패배에 변명을 붙이다니. 그 대단하다던 권찬성이 맞는지 의심스럽군.”
이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권찬성이 변이된 팔을 옆으로 펼쳤다.
“그 말, 후회하게 될 거다.”
검은 불길이 변이된 팔을 휘감았다. 용투기가 예리한 칼날이 되어 손톱에 휘감겼다.
“크아악!”
짐승 같은 기합소리와 함께 권찬성이 달려들었다. 단숨에 수십 미터를 도약한 뒤, 권한울을 향해 낙하했다.
다섯 개의 손톱들이 허공에 긴 궤적을 남겼다. 궤적이 권한울에게 닿는 순간, 땅바닥이 푹 꺼지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크하하핫! 카하하핫!”
흙먼지에 시야가 가려진 탓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권찬성이 휘두르는 손톱의 궤적만 번쩍일 뿐이었다.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 손에 네놈을 찢어발기는 이 날을!”
갑자기 권찬성의 웃음소리가 뚝 끊어졌다. 용투기의 번쩍임도 보이지 않았다.
흑암대와 흑소대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던 그때, 흙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헉, 허억, 헉.”
권찬성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권한울을 노려보는 두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반면 권한울은 처음과 똑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힘든 기색조차 드러내지 않은 채 권찬성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째서냐.”
그 모습에 권찬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째서 멀쩡하냐 이 말이다!”
방금 전, 권찬성은 섬광과도 같은 공격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흑암대와 흑소대 중에서 권찬성이 몇 번을 공격했는지 제대로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공격들에 노출되고도 권한울은 옷자락 하나 상하지 않았다.
“자기가 못할 걸 나한테 따지면 어쩌나.”
권한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왜? 한 번 더 양보해 줄까?”
그 한 마디가 권찬성의 자존심을 뒤흔들어 놨다. 거의 눈이 뒤집힌 상태로 달려들었다.
“지랄하지 마!”
그 순간, 권한울이 움직였다. 다리를 들어서 권찬성의 무릎과 복부, 턱을 연달아 걷어찼다.
동작만 보면 가볍게 때린 것 같은데 권찬성은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큭, 크윽!”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권찬성은 뒤로 물러났다. 그를 향해 권한울이 말했다.
“양보 받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권한울이 품에서 장갑을 꺼내서 착용했다.
그 장갑을 본 순간, 권찬성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 반응에 권한울이 즐겁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알아보는군. 하긴, 워낙 대단한 물건이니까.”
박태식이 이 장갑에 자부심을 느낀 만큼, 권한울 역시 이 물건이 마음에 쏙 들었다.
“마땅히 시험해 볼 곳이 없었는데 잘됐어.”
권한울이 너클 장갑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짙은 용마기가 장갑을 휘감았다.
“딱 한 대만 때리겠다. 막아 낸다면 군말 없이 보내 주지.”
권한울이 자세를 잡았다. 권찬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윽고 분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으드득, 소리와 함께 피가 터져 나왔다.
“좋아. 그 시건방진 얼굴을 이 자리에서 찢어 주마.”
권찬성의 몸에서 거대한 마력이 일어났다. 대단한 기세였으나 권한울의 눈에는 보였다.
지금 권찬성이 모든 마력을 박박 긁어모으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권찬성의 변이된 팔에 용투기가 모여들었다. 용투기는 한층 더 거대한 팔을 만들어 냈다.
흑룡십이승무 상승형(黑龍十二承武 上乘形)
기격식 용참백혈(氣擊式 龍斬白血)
거대한 팔을 내리치는 순간, 용투기가 참격으로 변했다. 땅과 하늘을 동시에 갈랐다.
권찬성이 기술을 펼친 순간, 권한울 역시 팔뚝에 힘을 주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으나 상관없었다.
“합!”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너클 장갑에 맺혀 있던 용마기가 방출되었다.
현룡승천공 상승형(玄龍昇天功 上乘形)
멸격식 역림선풍(滅擊式 易林旋風)
나선 모양의 용마기가 모든 것을 꿰뚫었다.
권찬성이 구현한 기술이 산산이 찢어졌다. 그 끝에 있던 권찬성마저 휩쓸어 버렸다.
그리고 땅 위에는 더 이상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권찬성의 죽음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흑소대의 부대장 권문주였다.
방금 전에 권한울이 보여 준 한 수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권문주는 고사하고 흑소대 전원이 달려들어도 권한울을 막을 수 없다. 막는 건 고사하고 살아남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권문주는 재빨리 결단을 내렸다.
“……다들 뭐 하는 거냐! 당장 흑암대를 붙잡아!”
흑암대를 인질로 잡는다는 결단을 말이다.
흑소대원들은 권문주의 명령을 즉시 이행했다. 흑암대의 뒤로 이동한 뒤, 세 명의 목에 무기를 겨누었다.
“부하들의 목숨이 아깝다면 움직이지 마라.”
권한울이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자 권문주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 착한 아이네. 그렇게 계속 가만히 있도록 해. 손가락이라도 까딱했다가는 그 즉시 부하들을…….”
권문주의 경고에 권한울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흑천의 부대가 인질 따위를 잡다니.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조롱거리가 되다 못해서 흑천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겠어.”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어. 이게 우리 흑소대의 방식이니까.”
권문주가 턱짓을 하자. 흑소대 두 명이 무기를 든 채 권한울에게 다가갔다.
“어깨의 힘줄을 잘라라.”
흑소대가 무기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권한울이 말했다.
“한번 해 보시던가.”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권문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라고 했다.”
“우리가 못할 줄 알고?”
“그러니까 해 보라고.”
권문주는 고민에 빠졌다. 이게 허세인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직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모양인데.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지.”
권문주가 흑암대를 인질로 잡고 있는 대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한 놈을 죽여!”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권문주의 목소리를 듣고도 대원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저 멍한 얼굴로 권한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죽이라니까!”
그럼에도 대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권문주는 다른 대원에게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흑소대원들이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권한울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뭐 하는 거냐! 당장 정신 차려!”
“소용없다. 네놈들 따위가 떨쳐 낼 수 있는 권능이 아니니까.”
권한울이 손을 들자 권소대 전원이 무기를 바닥에 떨구었다. 덕분에 흑암대도 자유로워졌다.
“다들 이쪽으로.”
흑암대 세 명은 후다닥 권한울 쪽으로 달려왔다. 그 뒤, 권한울이 권문주를 향해 말했다.
“이곳에 올 때, 너희 흑소대의 처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하는 짓을 보아하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군.”
권한울의 눈동자가 권문주에게 향했다. 엄청난 현기증이 권문주를 덮쳤다.
처음에는 저항하려고 했으나 결국 정신이 굴복하고 말았다.
권문주는 다른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흑소대는 스스로를 포박하고 감옥에 들어가 있도록 해라. 네놈들의 처분은 나중에 결정하겠다.”
흑소대원들은 모두 아공간을 열어서 구속구를 꺼냈다.
구속구를 스스로 착용한 뒤, 흑천 일가에 마련된 가목으로 향했다.
“너는 예외다.”
권한울이 권문주를 붙잡았다.
“지금 당장 나를 권혁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 * *
권문주가 권한울을 데려간 곳은 반파되어 있는 회장의 업무실이었다.
건물 전체가 박살이 나 있어서 더 이상 원래 용도로는 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저 물건…… 입니다…….”
권문주는 잔해 속에 떨어져 있는 작은 금고를 가리켰다.
금고를 본 순간, 권한울은 저 물건의 정체를 떠올렸다.
굳이 권문주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오래 전, 메이 가문에서 매중제일검이 권한울에게 사용했던 격리 유물 사금옥이었다.
“이 안에 회장님과 권혁이 들어가 있다 이거냐?”
“……흑천의 마녀도…… 같이…… 있습니다…….”
권한울은 이를 빠득 갈았다. 어쩐지 세 사람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했더니 사금옥을 사용했을 줄은 몰랐다.
사금옥은 한 번 발동하면 절대로 외부에서 열 수 없다.
그 말은 사금옥 내부의 상황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소리였다.
“젠장.”
“입이 상당히 거칠군.”
그때, 어디선가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건물 내부.
그 안에 체구가 작은 노인이 서 있었다.
“이렇게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지? 본인은…….”
“아제트 헤르메스.”
권한울이 먼저 말을 했다. 직접 본 것은 처음이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릇이 보여 줬던 기억 속에서 지겹도록 봤던 인간이니까.
“이온의 수장 아제트 헤르메스지 아닌가?”
“……내 생각보다 잘 알고 있군.”
아제트 헤르메스는 잠시 당황했으나 곧바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 앞에 나타난 이유를 모르겠군. 저승 가는 길을 재촉하고 싶은 건가?”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데. 어머니의 원수까지 나타났다. 불쾌감은 이윽고 마력으로 표현되었다.
권한울이 일으킨 마력이 사방을 휩쓸었다. 그 힘에 노출된 아제트 헤르메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역시 대단해. 하지만 나라고 아무 생각 없이 네 앞에 선 게 아니다.”
아제트 헤르메스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네놈의 어미가 내게서 도둑질해간 물건을 되찾으러 왔다.”
아제트 헤르메스가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손을 집어넣고 빼냈다.
찬란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그 빛이 권한울에게 닿는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가 반성혈(半聖血)을 감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