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20화>
220. 화신체 (3)
-화신체? 화신체라고? 대체 언제 그 권능을 손에 넣은 것이냐!
권혁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까 설명 드리지 않았습니까. 고뇌를 극복하면 화신체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개소리 하지 마라! 고뇌라면 나도 지겹도록 해봤다! 그래도 내가 얻지 못한 권능을 네놈이 얻었다고?
-숙부님, 제가 흑천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아십니까?
첫날부터 배반자의 자식이라 모독을 들었다. 흑천의 이름난 강자인 권천에게 목숨이 노려졌다. 살아남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제 부모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두 분께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제가 얼마나 몹쓸 놈이었는지 깨달았죠.
그릇을 통해서 과거의 기억을 보고 난 뒤, 권한울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색에 잠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렇듯 권한울은 이미 옛날에 화신체의 습득 조건을 충족시켰다.
다만 아직 육신의 능력과 실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아서 여태 화신체를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옛 이야기다. 모든 능력치가 SS급에 도달한 지금, 권한울은 화신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른 이유가 있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네가 화신체에 도달한 게 설명이 되지 않아!
-믿던 말던 그건 숙부님 자유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들 겁니까?
권한울이 움직였다. 거대한 용의 몸체가 꿈틀거렸다.
-나는 숙부님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회장님과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온 것이지.
권한울의 살기가 들불처럼 타올랐다. 권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니 이만 시작하도록 해야겠다.
-……그래, 나도 원하던 바다!
권한울과 권혁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마리의 용이 이빨과 손톱을 세었다.
-크아아앗!
가장 먼저 공격한 사람은 권혁이었다. 앞발을 휘둘러 권한울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나 권한울은 아주 잠깐 휘청거렸을 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
권한울이 몸을 한 바퀴 돌리더니 꼬리로 권혁의 목덜미를 강타했다. 목덜미에 돋아나 있던 비늘이 깨지며 살점이 으깨졌다.
-커억!
권혁은 비명을 토해 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권한울은 그 짧은 틈조차 놓치지 않았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권혁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대로 땅바닥을 향해 내리찍었다.
-이거 놔라!
권혁은 권한울의 손을 움켜잡으며 저항했다. 하지만 권한울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어째서 내 아버지를 미워했나. 아버지는 당신을 진심으로 따랐는데.
권한울은 연달아 권혁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온 세상이 쿵쿵 울렸다.
-내 아버지를 죽였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즐거웠나? 행복했나? 성취감을 느꼈나?
그때, 권혁이 이를 악물었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권한울의 머리를 꼬리로 후려쳤다. 살짝 힘이 풀린 그 순간에 재빨리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헉! 허억! 그딴 게 그렇게 궁금했나?
얼굴의 반쪽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권혁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나는 아버지께, 회장님께 배운 대로 했을 뿐이야! 가치를 증명해라! 잃어버릴 것 같으면 먼저 뺏어라! 질 것 같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앞질러라!
-변명이로군.
권한울은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딱 잘라 말했다.
-결국 네놈이 저지른 짓이다. 네놈의 손으로 내 아버지를, 네놈의 형제를 죽였다. 그런 주제에 변명 따위는 늘어놓지 마라.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권혁의 자존심에 제대로 상처를 냈다. 권혁은 이를 갈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여의주가 권혁의 코앞에 나타났다. 여의주는 적색 광채를 내뿜기 시작했다.
-패배자의 아들 주제에 입만 살았구나!
권혁의 마력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푸른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먹구름 사이로 번개가 끊임없이 번쩍였다. 기이하게도 번개의 색은 자색이었다.
-그렇게 애비가 그립나? 조금만 기다려라 당장 네놈을 죽여서 저승에서 재회시켜 줄 테니!
하늘에서 번쩍이는 자색 번개의 양이 점점 더 늘어났다. 색도 더욱 짙어졌다.
-내리쳐라!
하늘이 번쩍였다.
뇌우가 지면을 강타했다.
* * *
뇌우(雷雨).
번개의 비가 내린다. 모두 권한울을 한 명에게 집중되었다.
용으로 변한 탓에 면적이 커서 피할 수도 없었다. 저 가공할 양의 뇌우를 모조리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권한울도 여의주를 꺼냈다. 그런데 다른 여의주와 많은 부분이 달랐다.
옥색 혹은 흰색인 여의주와 달리 권한울이 꺼낸 여의주는 묵색이었다.
깊고 고요한 검은색을 머금은 여의주가 빛났다.
<‘여의보주(如意寶珠)’가 권능을 펼칩니다.>
권한울을 향해 떨어진 뇌우들이 모두 한 점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여든 뇌우가 구체를 만들어 냈다.
여의보주의 마력이 구체에 더해졌다. 그러자 구체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색 뇌전으로 이루어진 용이 권한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권혁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지금 권한울은 권혁이 펼친 기술을 완전히 장악해서 자신의 것으로 바꿔 놓았다.
설명은 쉽지만 실제로는 쉬운 방법이 아니다. 희대의 귀물인 여의주를 통해 만들어 낸 기술을 강탈한다?
권혁은 살면서 이렇게 정신 나간 마력제어능력을 본 적이 없었다.
-보통 여의주라면 안 되지.
-뭐라고?
-이건 흑룡의 여의주다.
권혁의 시선이 묵색 여의주로 향했다.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흑룡? 설마 시조가 만났다던 그 흑룡을 말하는 것이냐?
권한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보여 주기로 했다.
뇌전룡의 주위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염룡이 뇌전룡과 어울렸다. 이윽고 물방울이 모여들더니 수정룡이 추가가 되었다.
세 마리의 용이 얽히는 모습은 장관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적의 입장에 있는 권혁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용들에게서 느껴지는 막대한 힘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한 번 버텨보시지.
세 마리의 용이 해방되었다. 동시에 권혁을 향해 날아들었다.
권혁은 여의주의 힘을 이끌어 내서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밀려드는 힘이 너무 강대했다. 보호막은 순식간에 깨지고 권혁은 뇌력과 화력, 수력을 동시에 견뎌야 했다.
-크아아악!
뇌력이 뼛속까지 침투하고, 화력에 온몸의 피가 들끓고, 수력에 전신이 두들겨 맞는다.
단 한 번의 공격에 권혁은 망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헉! 허억!
결국 권혁은 권한울의 공격을 버텨 냈다.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권한울이 만들어냈던 묵색 여의주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권한울도 용에서 인간의 몸으로 되돌아왔다.
“아직 익숙하지가 않은데.”
권한울이 피곤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소리에 권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본신의 능력이 미약한 탓에 화신체와 여의보주를 완전히 다루지 못하는 게 틀림없었다.
화신체는 몰라도 여의주의 경우에는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대기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권혁에게도 반격의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다른 걸 써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시 한 번 더 권한울의 마력이 폭발했다.
이번에는 흑룡혈의 마력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살기가 짙고 섬뜩한 마력이었다.
권한울이 있었던 자리에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흑룡보다는 작았으나 인간보다는 한참 컸다.
온통 붉은 몸체.
여섯 개의 팔.
각기 다른 무기.
그 모습은…….
-설마 수라혈의 화신…….
권한울이 자세를 잡았다. 여섯 개의 팔이 동작을 취했다.
여섯 개의 무기가 동시에 휘둘러졌다.
그 순간, 수십만 번이 넘는 참격이 권혁을 뒤덮었다.
* * *
온몸의 비늘이 잘려나간다.
그 밑에 있는 살점이 베인다.
근섬유가 절단되며.
뼈까지 참격이 닿는다.
상처가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온 세상에 피의 비가 내린다.
-……커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상처가 벌어진다. 더 많은 고통과 피가 터져 나온다.
그때, 권한울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수라왕에서 인간이 되었다. 흑룡혈의 화신체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완전히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기회다.
권혁은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였다. 몸을 빼곡하게 뒤덮은 상처에서 참기 힘든 고통이 밀려왔다.
분노와 굴욕이 권혁의 야성에 불을 지폈다. 권혁은 고통을 씹어 삼키며 권한울에게 달려들었다.
-권…… 한울!
피를 흩뿌리며 달려든 용이 앞발을 휘둘러 권한울을 짓이겨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앞발이 닿기 전, 권한울의 몸이 사라졌다. 이윽고 권혁의 코앞에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마치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몽글몽글함 몸체였다. 그러나 그 크기가 남달랐다.
화신체로 변한 권혁조차 배꼽에 간신히 닿을 정도로 격차가 심했다.
몽글몽글한 거인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력이 권혁을 덮쳤다.
-……설마 이번에는 초인혈이냐?
권한울은 대답 대신 주먹을 내리쳤다. 믿기 힘들 만큼 거대하며 믿기 힘들 만큼 빨랐다.
벼락처럼 떨어진 주먹이 권혁의 등에 내리꽂혔다. 그 순간, 허리가 꺾이며 무언가가 부러졌다.
-커헉!
권혁이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권한울이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밑에서 위로 올라온 주먹이 권혁의 턱을 올려쳤다. 턱관절과 윗니 아랫니가 동시에 으스러졌다.
-그, 그만!
권혁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권한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손바닥을 휘둘렀다.
거인의 손바닥이 권혁의 얼굴을 강타했다. 얼굴이 탁구공처럼 땅에 처박혔다.
-으, 으어…… 으어어…….
권혁의 몸이 서서히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다.
“쿨럭, 쿨럭.”
인간이 되었음에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권혁은 망신창이가 된 채로 피를 토해 냈다.
그 앞에 권한울이 섰다. 권한울 역시 인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권혁과 달리 상처가 전혀 없었다.
“빌어먹을…… 내가…… 이 권혁이 이렇게…….”
권혁이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권혁의 눈동자에는 의욕이 사라져 있었다.
“죽이려거든 빨리 죽여라. 아니지 승자는 너지. 네 마음대로 해라.”
굴욕을 주든, 고통을 주든 마음대로 해라.
권혁은 몸을 축 늘어트린 채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뭐냐.”
“정말 제 아버지를 싫어하셨습니까?”
“하, 당연한 걸 묻는군.”
권혁은 비웃음과 함께 소리쳤다.
“아주 끔찍하게 증오한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이 행동할 거다! 아니, 그때는 너라는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더 철저하게…….”
“아버지께서는 당신을 존경했습니다.”
그 순간, 권혁이 입을 다물었다. 멍한 눈동자고 권한울을 올려다봤다.
“끝까지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그걸 네놈이 어떻게 안단 말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모르죠. 하지만 당신은 잘 알 거 아닙니까. 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형제니까.”
사실 권한울은 그릇을 통해서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권혁을 존경했노라고.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권혁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생각할 때는 어떻습니까. 아버지는 당신을 증오하고 원망할 사람이었나요?”
권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빨리 죽여. 어차피 살려 둘 생각은 없었을 거 아니야?”
권한울은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주먹을 움켜쥐었다.
용마기가 주먹을 중심으로 응축되었다. 권한울은 그 강대한 힘을 손에 쥔 채, 권혁과 마주봤다.
“그럼 숙부님, 부디 지옥으로 떨어지길 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권한울이 주먹을 내질렀다.
용마기의 폭발이 권혁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 * *
권한울은 천천히 주먹을 접었다. 그리고 깊게 숨을 내쉬고 마쉬었다.
“권한울 님!”
저 멀리서 다른 사람들이 권한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주하연, 흑암대, 그리고 권선우까지 있었다.
“한울이 네 이놈……!”
가까이 다가온 권선우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저놈을 이겼다! 이 흑천을 구한 게야!”
그 말에 권한울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
“그래, 말해라!”
“뒷일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하자마자 권한울은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