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221화 (에필로그) (221/221)

<혈통이 깡패임 221화>

221. 에필로그

흑천의 부회장 권혁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지도부를 잃은 데다 부대들끼리 서로 다투고 있는 상황.

흑천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복수의 칼을 꺼내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흑천을 공격한 외부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흑천의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흑천은 흑천이라는데 있었다.

기본적인 전력이 높기 때문에 어지간한 길드는 물론 트리플 넘버링의 세계랭커조차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두 번째 이유는 반란이 의외로 빠르게 진압되었다는 것이다.

권혁이 반란은 개시한지 불과 이틀 만에 수장인 권혁은 목숨을 잃었고, 그의 부대는 전멸했다. 흑천의 본가는 무사히 지켜졌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는…….

“이 버러지 새끼들이 감히 흑천에 무기를 겨눠?”

“아무래도 흑천이 어떤 곳인지 다시 한번 더 세상에 알려 줘야겠네요.”

부상에서 회복된 권명우와 권미가 흑천에 조금이라도 비협조적이거나 불순한 의도를 보인 집단들을 모조리 때려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흑천 운명을 뒤바꿨을지도 모를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한 달 뒤, 세상 사람들은 반란 따위는 머릿속에서 싹 지워 버릴 만큼 엄청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권선우 가주의 퇴임식 일정이 잡혔기 때문이다.

* * *

“봄바람이 따뜻하구나.”

갑자기 들려온 말에 권한울은 휠체어를 밀던 손을 잠깐 멈췄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잠깐 쉬었다 갈까요?”

“됐다. 나는 멈춰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더 좋다.”

“휠체어에 앉아만 계시면서 그게 무슨 말씀이시래요.”

“불만 있느냐? 그럼 자리를 바꿀까?”

“됐습니다. 그랬다간 온 세상 사람들이 저를 욕할 텐데요.”

권한울은 다시 휠체어를 밀었다. 휠체어의 바퀴가 정원의 벽돌 길을 굴러가기 시작했다.

“꼭 가주직에서 물러나셔야겠어요?”

문득 권한울이 권선우에게 물었다. 권선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이런 몸으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가주직은 만만하지가 않다.”

권혁이 일으킨 반란에서 권선우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워낙 큰 상처를 입은 탓에 신체에 장애가 남고 말았다.

한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으며 마력의 흐름도 원활하지 못했다.

여의주를 빼앗기면서 생긴 현상이라 권한울도 회복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조만간 가주직을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이 자리에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지쳤거든.”

권선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침 명우 그놈이 요트를 새로 샀다면서 놀러가자고 꼬시더구나. 술 한 상자를 들고 바다낚시나 가자던데.”

“그게 진짜 이유셨군요?”

권선우는 대답 대신 헛기침을 했다.

“그나저나 너는 괜찮겠느냐?”

“뭐가요?”

“이대로 가면 너는 흑천 일가에 얽매이게 될 거다. 그러기에는 네 젊음과 능력이 너무 아깝지 않느냐.”

푸핫, 권한울은 웃음을 터트렸다. 비웃음을 샀다고 느꼈는지 권선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슨 말씀을 하시나 했더니. 언제는 저한테 흑천을 부탁한다면서요?”

“그때는 그랬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너에게 흑천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권한울이 지니고 있는 혈통은 흑룡혈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혈통들의 진혈을 보유하고 있다.

어느 가문을 가도 정점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권한울이다.

“흠.”

“왜 그러느냐?”

“이렇게 온화하신 가주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 적응이 안 돼서요.”

권선우의 표정이 한 번 더 일그러졌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아직 흑천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거든요.”

“일이라고?”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요.”

권한울의 말에 권선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가 다시금 떠오른 듯했다.

“그거라면 내가 성명문을 따로 발표하도록 하마. 그 외에도 네 부모가 누명을 벗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

“아뇨, 이건 제가 해야 합니다.”

권한울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글로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버지의 자식인 제가 흑천에 남아서 흑천의 명예를 드높이고 흑천의 사람으로서 살아야지 인식이 바뀔 겁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권한울은 인정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의 명예는 진정으로 회복이 될 것이다. 권한울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까요.”

“그렇구나…….”

“그리고 흑천이 저한테 안 맞으면 제 힘으로 흑천을 그만큼 키우면 될 일 아닙니까.”

권한울이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 말에 권선우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도착했네요.”

한참을 걷던 권한울의 걸음이 멈췄다. 휠체어도 정지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흑천 일가 내에서도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사용하는 건물이었다.

“형님, 산책은 끝나셨수?”

문 옆에는 권명우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어서 들어가자.”

“알겠수.”

권선우의 말에 권명우가 두 손으로 문을 밀었다.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건물 안으로 엄청난 열기가 몰려왔다. 대형홀이 인파로 꽉 차 있었다.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흑천과 인연이 맞닿아 있는 정치인, 고위 헌터, 사업가 등등. 사회 각층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만이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들어가자.”

권한울은 휠체어를 밀며 걸음을 옮겼다. 카펫이 길게 깔린 복도를 쭉 걸었다.

사람들이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권한울과 권선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카펫의 끝에는 높은 단상이 놓여 있었다. 권선우는 호위들의 도움을 받으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권선우가 단상 위로 올라가자 권한울은 하객들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권한울 님, 이쪽입니다.”

먼저 앉아 있던 주하연과 흑암대가 권한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권한울은 흑암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자리에 앉았다.

“이 늙은이의 보잘것없는 퇴임식에 참석해 줘서 고맙습니다.”

보기 드물게도 권선우는 높임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의 위압적인 태도도 오늘만큼은 잠시 내려놓았다.

“지난날, 우리 흑천에는 썩 좋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고도 아니요. 느닷없이 떨어진 재앙도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흑천이 가지고 있던 상처가 곪아서 터진 것이었죠.”

언젠가 권선우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흑천의 방식은 흑천을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해결할 수 없는 상처를 여럿 남겼으며 그 상처 중 하나가 권혁이라고.

“모두 이 노부에게서 비롯된 일들이었습니다. 이에 책임을 느끼고 오늘부로 가주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퇴임식이 열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신반의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운 가주를 선포하려고 합니다.”

권선우가 손을 뻗어 아래에 있던 권한울을 가리켰다.

“내 손자인 권한울을 새로운 가주로 선포하는 바입니다.”

충격적인 선언에 모든 하객들이 당황하고 말았다. 이는 사전에 예고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권한울은 올라오거라.”

권한울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권선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권선우는 권한울에게 가주를 상징하는 반지를 내밀었다. 권한울은 두 손을 뻗어 반지를 받았다.

그 순간, 우레와도 같은 박수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다.

“으하하핫! 한울이 이놈! 출세했구나!”

그중에서도 권명우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존재감이 어찌나 돋보였던지. 듣고 있던 권선우와 권한울이 수치심을 느낄 정도였다.

권선우는 권한울을 일으켜 세웠다. 하객들 앞에 권한울을 세운 뒤에 말했다.

“이로서 12대 가주가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 * *

퇴임식 겸, 취임식이 끝나고 권한울은 밀려드는 하객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발롱 길드의 길드마스터 모나카 드롱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가주님이 취임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이렇게 영광스러운 날은 없을 겁니다!”

“작은 기업 하나 운영하고 있는 황순철이라고 합니다. 예예, 맞습니다. 한국 재계서열 2위의 순광기업의 주인 되는 사람입니다.”

인사를 하러 오는 사람마다 유명한 이들뿐이었다. 그 탓에 권한울은 귀찮다는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만 온 것은 아니었다.

“한울이 이노오오옴!”

“숙부님…… 제발 진정하세요.”

“이렇게 기쁜 날 어떻게 진정을 한단 말이냐!”

권명우와 권미 같이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지! 이놈은 크게 될 놈이라는 것을! 근데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구나!”

권명우는 크게 기꺼워하며 권한울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옛날에는 그렇게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견딜 수 있었다.

“크흠, 한울아 축하한다.”

권미가 헛기침을 하더니 슬쩍 다가왔다.

“그…… 알지? 우리 후돈이 좀 잘 부탁한다.”

“그거야 당연하죠.”

“고, 고맙구나.”

권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뒤를 돌아서며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라며 중얼거렸다.

그 뒤로도 벽력자와 박태식 명장도 찾아왔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던 것도 잠시, 다시 낯선 사람들만 몰려들었다.

“으에…… 한울아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서 있어야 해?”

“검 손질이나 하는 게 더 유익할 것 같아요…….”

“저도 이런 자리는 거북합니다…….”

대장이 고생하는데 부대원들이라고 놀 수는 없었다.

흑암대 역시 권한울 직속 부대라는 타이틀 때문에 손님들을 맞이해야만 했다.

“여러분들,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물론 주하연도 함께였다. 주하연은 권한울의 비서라는 명목으로 이 자리에서 있었다.

“으아…….”

“으어…….”

“끄어…….”

세 사람이 너무 힘들어하자 권한울이 격려할 겸 입을 열었다.

“다들 조금만 참아요. 보아하니 행렬도 얼마 안 남았네.”

“저게 얼마 안 남은 걸로 보여……?”

“대장님, 설마 그 사이에 시력이 안 좋아지셨나요?”

권후돈과 메이홍이 투덜거렸다.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세 사람 모두 지금이 행복할 때 아닌가요? 이따 퇴임식이 완전히 끝나면 다시 훈련받으러 가야 한다면서요?”

그 말에 세 사람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권한울은 실력으로 보나 위치로 보나 흑천의 정점에 올랐으나 흑암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

이를 두고 볼 수 없다며 권명우와 벽력권이 매일 같이 세 사람을 지옥 같은 훈련 속에서 굴리는 중이었다.

“듣고 보니 갑자기 이 자리가 너무 좋은 걸.”

“저, 저도요. 갑자기 막막 행복해져요.”

“손님. 좋다. 더 많이. 만나고. 싶다.”

권한울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다음 손님을 맞이했다.

그때, 주하연이 권한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권한울은 왜 그러나 싶어서 주하연을 돌아봤다.

“권한울 님, 저쪽을 보십시오.”

주하연이 가리킨 곳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데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와서는 안 될 자리에 온 것 같은 반응이었다.

“권한울 님께서 초대하신 그들입니다.”

“……그렇네요.”

권한울은 하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권한울의 인사에 무리에 있던 사람들은 크게 당황했다. 가장 연장자인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크게 허리를 숙였다.

“미, 미천한 것들이 흑천의 새로운 가주님을 뵙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분의 명령이라고 거부하겠습니까.”

예의를 차리는 것을 넘어서 비굴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권한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가, 감히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아뇨, 어르신께서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이 노인이 바로 말로 청송 배 씨 가문의 가주이자 어머니의 목숨을 살린 배철수의 아버지였다.

“배 씨 가문이 제 부모님께 주신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그 한 마디에 노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다른 배 씨 가문의 가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하여 지금까지 여러분들의 도움을 몰랐습니다. 이제야 겨우 감사를 드립니다.”

“아, 아닙니다. 저희들이야 말로 감사드립니다. 권한울 님 덕분에 가문원 전체가 사면 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철민이…… 아니, 배신자에 대한 일도 묻지 않으셨잖습니까.”

배홍명의 말에 권한울은 가슴이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죄가 없다. 지금까지 억울하게 범죄자 취급을 당했을 뿐이다.

권한울이 한 일은 인정을 베푼 것이 아니라 이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려 놓은 것뿐이다.

“앞으로 청송 배 씨 가문은 제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권한울이 배홍명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배홍명은 황망하다는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정말 하늘의 도움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아뇨, 이건 하늘의 도움이 아닙니다.”

권한울은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이 마땅히 누려야할 것들을 되찾은 것뿐이죠.”

* * *

청송 배 씨 가문 일행이 물러났을 때였다.

“권한울 님~!”

사뭇 다른 어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려한 옷차림의 여인이 권한울의 목을 확 끌어안았다.

“왜 이제야 불러 주시는 거예요. 저는 언제든지 권한울 님이 부르기만 하면 달려올 텐데.”

권한울은 일단 여인의 팔을 붙잡고 떨어트렸다. 그러자 여인, 카탈리나 블라가가 섭섭하다는 듯 안색을 굳혔다.

“혹시 제가 부담스러우신 건가요? 이렇게 쌀쌀맞게 굴면 슬퍼서 울지도 몰라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눈물을 글썽거리자 주변에 있던 하객들이 애가 닳는 얼굴로 변했다.

그사이에 카탈리나 블라가가 발현한 권속혈의 권능에 포로가 된 것이다.

권한울은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튕겼다. 권한울이 발현한 권속혈의 권능이 카탈리나의 권능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덕분에 사람들은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카탈리나. 함부로 권속혈 남발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어머, 안 그런다고 하면서도 자꾸 그러네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부담스러우니까 빨리 지나가세요. 이따 다시 부를 게요.”

권한울의 냉정한 태도에 카탈리나 블라가가 항의를 했다. 하지만 권한울이 다시 명령을 내리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피곤한 사람이야.”

그럼에도 카탈리나 블라가를 부른데는 이유가 있었다.

악연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 카탈리나 블라가와 블라가 가문의 혈족들은 모두 권한울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

자신의 사람이 되었으니 이대로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흑천과 화해를 주선하기 위해서 카탈리나 블라가를 따로 부른 것이다.

흑천은 전투력이 뛰어나고 블라가 가문은 정보력이 뛰어나니 둘이 연합하면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

다음 손님이 권한울의 앞에 섰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인사도 하지 않고 딱딱한 얼굴로 권한울을 노려볼 뿐이었다.

권한울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제 초대를 받아 줘서 고마워요. 마리아 산체스.”

“……진혈의 말씀을 나 같은 순혈이 어떻게 거절하겠어.”

마리아 산체스.

초인혈을 보유하고 있는 산체스 가문에서 상당히 높은 자리에 있는 여인이었다.

오래 전, 해상도시 미스트리에서 권한울과 충돌을 일으켰다가 초인혈의 상하관계에 의해서 복종을 하게 된 여인이었다.

“그 뒤로 제가 명령을 내린 대로 가문을 지배하는데 성공했나요?”

“……거의 성공했어요. 그래서 저는 왜 부른 건데요?”

“제안을 하나 할까 싶어서요.”

권한울이 마력을 펼쳐서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다.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막기 위함이었다.

“산체스 가문을 데리고 흑천으로 오세요. 언제까지 판데모니엄의 소속으로 범죄자 가문이라는 오명을 달고 살 수는 없잖아요?”

“……지금 제정신이세요?”

마리아 산체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산체스 가문을 받아들이겠다고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요? 우리 산체스 가문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겠다는 뜻이에요.”

산체스 가문은 혈족 전체가 판데모니엄에 투신한 가문이다.

판데모니엄의 소속으로 저지른 악행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제가 세상을 살다보니 배운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갑자기 뭔 뜬구름 잡는 소리예요.”

“힘이 있으면 아무도 뭐라 못한다고요.”

그 말에 마리아 산체스는 입을 쩍 벌렸다. 권한울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물론 변상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원한은 흑천에서 해결해야겠죠.”

“……당신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강요는 하지 않을 테니 잘 생각해 봐요.”

그렇게 권한울은 마리아 산체스를 보냈다.

다음으로 권한울 앞에 선 사람 역시 여인이었다.

“달리아 바벨 가주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권한울은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가주라는 위치 때문이었다.

“못 보던 사이에 놀랍도록 달라졌네요. 능력도 위치도 말이에요.”

“‘못’보던 사이라니. 농담이 과하시군요.”

권한울이 웃으며 말했다.

“제 주변에 감시자들을 풀어놓지 않으셨습니까.”

“역시 알고 있었네요.”

달리아 바벨은 그다지 당황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권한울 정도 되는 강자의 이목을 속일 수 있는 헌터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한테 관심이 가서 그런 거니까 너무 나쁘게 보지 말아줘요.”

달리아 바벨이 슬쩍 권한울에게 속삭였다.

“당신, 흑룡혈 말고 다른 혈통을 가지고 있죠?”

비밀을 들켰음에도 권한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협박하실 생각이라면 소용없을 겁니다. 이제 들통이 나도 상관이 없거든요.”

밝혀지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게 뻔하기 때문에 여태 비밀로 하고 있었을 뿐이다. 협박거리로 삼을 만한 가치는 없었다.

“어머, 오해하지 말아요. 이걸로 뭘 어쩔 생각은 없으니까. 다만, 서로 비밀을 공유하고 있으니 좀 더 긴밀한 사이가 되지 않겠어요?”

달리아 바벨이 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서 건넸다.

“제 직통 전화번호예요.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그런 말을 남긴 뒤, 달리아 바벨도 자리를 떠났다.

달리아 바벨의 명함을 주머니에 넣을 때였다.

“이제 보니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으시네요.”

뒤에 서 있던 주하연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권한울은 깜짝 놀라서 주하연을 돌아봤다.

“하연 씨, 이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다기보다는…….”

“제가 틀린 말 했나요? 찾아오는 사람마다 죄다 여자던데?”

“아니, 그건…….”

주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권한울은 당황해서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을 훔쳐보며 메이홍과 권후돈이 소근거렸다.

“갑자기 둘이 왜 저런데? 혹시 둘이 사귀나?”

“어? 설마 모르셨어요? 저 둘이 매일 아침 같은 방에서 나오는데.”

“……뭐어?”

권후돈은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황급히 자신의 입을 가로막고 다시 물었다.

“그, 그그, 그게 정말이야? 대체 언제부터?”

“꽤 됐죠? 둘만 있으면 서로 말까지 놓고 그래요.”

권후돈은 다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세상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얌전한 고양이가 두 마리가 엮이니 부뚜막이 아니라 굴뚝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하연 씨, 제 말 좀 들어보라니까요.”

“들어봤자 달라질 것도 없던데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새삼 두 사람의 싸움이 다르게 보였다.

“둘이 기만질 하는 거였구나!”

권후돈이 화가 난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혈통이 깡패임 완결>

* * *

<작가 후기>

안녕하세요. 혈통이 깡패임의 작가 오렌지망고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완결 후기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연재할 당시에는 후기에 적을 내용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후기를 작성하려니 아무 생각도 안 나네요.

우선 완결까지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독자님들께서 함께해 주셨기에 혈통이 깡패임을 완결 낼 수 있었습니다.

흔히 소설을 완결 내는 과정을 마라톤에 비유하고는 합니다.

마라톤은 선수 혼자 뛰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관객들의 응원과 호응, 주최 측에서 준비한 안내원들과 도우미들이 없었더라면 선수들은 결코 완주를 해내지 못할 겁니다.

작가와 독자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 바라보고 글 쓰는 작가는 거의 없을 겁니다.

독자님들의 덧글, 추천을 보면서 힘을 얻고, 방향성을 고민하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연재를 해내는 작가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렇기에 저와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을 담아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또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빈말로도 좋은 작가라고 하기 어려운 작가입니다.

장기간의 연중, 잦은 휴재 등등.

작가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너무나도 많이 저질러 버렸습니다. 독자님들의 신뢰를 계속 배신하면서도 끝끝내 태도를 고치지 못하고 완결을 내는 시점에도 긴 휴재를 하고 말았네요.

면목이 없고, 부끄럽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좀 더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보여 드리지 못한 점도 죄송합니다.

사실 보여 드리고 싶은 스토리가 더 많았는데. 작가인 제 역량이 부족해서 여기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스토리를 전개했다가 막상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엉성하게 마무리를 지은 적도 많습니다.

독자님들께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만족감을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고 또 죄송합니다.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습니다만,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 소설을 봐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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