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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7화 (7/183)

7화

보석을 흡수한 덕에 힘이 강화된 것은 확실하게 느껴졌지만, 몸이 느끼는 피로는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어우 허리야.”

한참을 땅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하던 박율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그래도 대충 회복인 된 듯 하니, 움직여야지.

박율은 녹아내린 지옥견들에게서 추출을 시도했다.

“오호라?”

지옥견 하나에서 보석 두 개와 잠든 성유물인 마과회통이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악마들을 사냥하다보면 이런 경우가 많았다.

박율은 곧바로 보석을 이용해 마과회통을 일깨웠다.

다 헤져 바랜 책이 보석을 만나자 새 책마냥 형태를 탈바꿈했다.

마괴회통(麻科會通).

치유계 권능을 강화시켜 줄 의학 저서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수많은 저서 중 유물이 된 얼마 안 되는 귀중한 물건이었다.

이 유물은 쓸 사람이 따로 있었다.

박율이 쓰는 것보다 곱절은 효과적인 사람이.

이번엔 문양이 늘어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무엇인가 싶어 박율은 손을 펼쳤다.

[진명 : 박율]

[권능 : 성흔/추출, 탐색]

역시나 권능이 늘어나진 않았다.

“...?”

하지만 왼손에 있던 탐색의 문양 형태가 조금 달라졌다.

원래 있던 문양이 다른 문양이 덮힌 느낌이랄까.

[탐색]

권능을 개방하자 더 넓어진 시야가 들어왔다.

피로도도 줄어들고 게다가 동체시력까지 좋아진 건지 날아가는 나비의 날갯짓까지 보일 정도였다.

“와우...”

그나저나 능력들만 봐선 정찰병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도 감지덕지지 뭐.“

게다가 악마들을 사냥한 덕인지 하얀 불꽃의 크기 역시 전보다 커져 있었다.

박율은 떠나기 전에 생가를 향해 허리 굽혀 감사를 전했다.

”본의 아니게 좀 더럽히고 갑니다.“

* * *

우웅.

멍하니 침대에 몸을 기대 티비를 보던 백봉기는 울리는 휴대폰을 들었다.

처음 보는 번호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리 썩 달가운 번호 역시 아니었다.

이 번호로 전화가 온다는 건 항상 불길한 일을 예고하는 것 같았으니까.

백봉기는 무거운 숨을 내뱉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백기우 씨 보호자 맞으신가요.”

“네.”

백봉기는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기우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어서...”

백봉기는 다음 말을 들을 자신이 없었다.

그는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 떨어뜨렸다.

희미하게 핸드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들리진 않았지만, 유일하게 마음의 준비라는 단어는 선명하게 들렸다.

쿵 심장이 내려앉는 절망감이 온몸을 가득 채운다.

백봉기는 전화를 끊었다.

손이 떨리고,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는 침대에 몸을 맡긴 채 팔뚝으로 눈을 가렸다.

왜 이런 불행한 일들은 나한테만 일어나는 거지?

신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아...”

[슬프고 힘들겠지.]

어디선가 들려온 의문의 목소리에 백봉기는 팔을 치우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도 없었다.

시끌벅적한 병원이 일순간에 침묵에 휩쌓였다.

[신들은 너를 버렸어. 그것들은 이기적인 족속들이거든. 아니 그것들이 진정 신이긴 한 걸까?]

“뭐야 누구야.”

백봉기는 소리를 쫓아 입을 열었지만, 여전히 보이는 건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붉은 풀들이 나부끼는 초원이었다. 백봉기는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진정 신이었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너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야.]

꿈이라고 믿고 싶어도 모든 것이 너무나 생생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무형의 존재가 나타났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컸고, 그렇다고 짐승이라 하기엔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보고 싶어도 마치 뿌연 안개가 낀 듯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누...누구야...!!!”

[너의 소망을 들어줄 수 있는 존재이자 오직 너만의 신.]

“뭐...뭐!?”

[그날이 머지 않았다.]

백봉기는 사라져가는 무형의 존재를 보고 있었다.

[아이를 살리고 싶거든 나를 찾아라. 너의 소망을 이뤄주지.]

* * *

겨우 집으로 돌아온 박율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너무나 피곤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박율은 씻지도 않은 채로 눈을 감았다.

...”안으로 대피하세요!“

검은 안개, 불타는 정경, 뿔 달린 짐승들이 사방을 헤집어 놓은 그곳에서 박율은 사람들을 커다란 포탈 속으로 대피시켰다.

”바알의 군단이 오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커다란 덩치의 박석훈이 하얀 불꽃으로 타오르는 철퇴 같은 무기를 들고 긴장한 채 서 있었다.

”모두가 도망칠 때까지 버틴다.“

신의 가호를 받은 이들은 비장한 눈빛을 했다.

”살아서 봅시다.“

한지원의 한마디를 시작으로 악마들의 진격과 함께 그들은 맞서 싸웠다.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지고, 불기둥이 솟아난다.

날아드는 칼날에 피가 비산하면 한지원이 나타나 그들을 치료했다.

아무리 죽여도 줄지 않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전쟁터였다.

피가 흩날리고 살점이 튀는 전쟁터에서 박율은 무력했다.

그저 그들의 뒤에서 시민들을 이끌었다.

그것 말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동료라 부르는 이들이 죽는 것을 구경하는 수밖에.

비참하고 참혹했다.

그래서 그는 신을 원망했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전력의 절반을 잃었다.

그 중엔 한지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허억...!”

박율은 눈을 떴다. 침대는 땀에 절어 축축했다.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전쟁. 그 이후로 우리는 승기를 잃었다.

박율은 다시 얼굴을 배게 속에 파묻었다.

이번엔 할 수 있다.

바꿔야 한다.

그 악몽 같은 시간을 다시 보낼 순 없다.

박율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우...”

전날 너무 격하게 싸운 탓인지 온몸이 뻐근했다.

마음 같아선 온종일 퍼질러 자고 싶었지만, 쉴 시간이 어딨어.

박율은 침대에서 벗어나 주방으로 걸어갔다.

“아 맞다. 먹을 거 없지.”

박율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이러나저러나 나가기는 해야 한다.

박율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을 대충 걸치고는 밖으로 향했다.

집을 나온 박율이 향하는 곳은 병원이었다.

백봉기의 상태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병원 밥이 먹고 싶었다.

* * *

병원을 찾은 박율은 먼저 백봉기를 찾아갔다.

“형 몸은 괜찮아요?”

“어 왔냐. 너 몸은 왜 그래? 다쳤어?”

백봉기는 접힌 침대에 기댄 채 박율을 맞이했다.

박율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아주 살판 났구만. 어제 넘어졌어요.”

“뭐 어떻게 넘어져야 그렇게 되냐?”

박율은 백봉기의 침대로 걸어와 의자에 몸을 맡겼다.

“혹시 나쁜 일하고 그런 거 아니지?”

“내가 설마 그런 일을 할까 봐?”

“못할 이유도 없지.”

백봉기는 혀를 찼다.

“그런 거 안 해요. 그나저나 로또 내 말대로 샀죠?”

박율은 백봉기가 말이 없자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 형 사라니까. 돈 줘봐요. 아직 시간 있으니까 사 올게.”

“됐어, 인마. 샀다, 됐냐?”

“그래, 진작 말하지.”

박율은 만족스럽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뭘요?”

자연스레 냉장고를 뒤지던 박율은 캔 음료를 하나 따며 백봉기를 보았다.

“네 말대로 나도 일 좀 쉬려고. 기우가 얼마 안 남았거든.”

“그래 좀 쉬어요.”

박율은 자연스레 캔 음료를 마셨다.

그러더니 화들짝 놀라며 입에 머금은 음료를 뿜었다.

푸왁!

“뭐요?”

“뭐가?”

“기우가 뭐라고 했잖아요.”

“아, 기우 상태가 안 좋아져서, 얼마 안 남은 거 같아.”

“...예?”

박율은 입가에 음료를 잔뜩 묻힌 채 말을 잃었다.

“입 닦어. 새끼야. 더럽게.”

“아니 진짜에요?”

“뭐 내가 그런 걸로 거짓말이라도 칠까?”

“뭐 그런 건 아닌데...”

박율은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얼마나... 남았데요?”

“아마 며칠 안 남은 거 같아. 길어야 한두 달. 아마 포기하면 그보다 더 빠를 수도 있지.”

박율은 허탈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기우가 올해 몇 살이었죠?”

“열 넷.”

“아이고...”

밥 달라 아우성을 벌이던 배에서도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왜 네가 자책을 하냐.”

조용히 캔을 내려놓던 박율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백봉기를 보았다.

“...근데 형 그때 나한테 기우를 부탁한다고 그랬잖아요...? 병원이 아니라 대피소에 있다고.”

“뭐래. 내가 언제 그랬냐?”

분명 백봉기는 두 달 뒤 악마 사태가 벌어지던 때에 기우를 부탁한다고 그랬었다.

당시 기우는 인천 대피소에 있다고 했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이를, 게다가 산소호흡기 없이는 숨도 못 쉬는 아이가 대피소에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는 말은 2달 뒤에도 아이는 살아있다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어떻게?

박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가망이 아예 없데요?”

“없으니까 나한테 연락이 온 게 아닐까.”

말을 내뱉는 백봉기의 얼굴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아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권능.

치유계 권능을 가진 능력자가 아이를 살렸다는 것.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신의 가호를 받은 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는 지금부터 2달 뒤라면.

그래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시간대가 애매하긴 했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차마 생각하기도 싫었다.

“...포기하면 안 돼요.”

“율아.”

“...네?”

“...기우를 살릴 수 있으면 뭐든 해봐야겠지...?”

“그럼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죠.”

“그래...”

말을 끝맺고 허공을 응시하는 백봉기의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다.

박율은 도저히 백기봉의 곁에 있을 수 없어 병실을 나왔다.

뭐든 해보겠다는 게 무슨 뜻일까?

왠지 모를 찜찜함이 느껴졌지만, 박율은 굳이 따지지 않고 넘겼다.

“아 씨 배고픈데.”

본래의 목적은 병원 밥이었지만, 차마 밥을 얻어먹기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겨우 집에서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3000원을 만들어왔지만, 이것마저 캔커피를 산다고 절반이나 쓴 상황이었다.

돈을 아낀다고 400원짜리 레츠비는 너무 없어 보였고, 그렇다고 카페 커피는 너무 비쌌다.

나름대로 고민 끝에 그는 1500원짜리 커피를 샀다.

명분을 만들어야 했으니까.

지금 그의 잔고는 고작 5000원이었다.

“컵라면이나 먹어야지...”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들자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한지원이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걸어오던 한지원은 박율을 보더니 멈칫 인사를 받아주었다.

“바쁘신가봐요?”

“아, 네. 뭐.”

“이거라도 드시면서 하세요.”

박율은 주머니에서 캔커피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이것도.”

그리고는 마과회통을 건넸다.

하지만 한지원은 애써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저희 이런 거 받으면 안돼요.”

“아, 정말요...? 아, 그럼.”

박율은 커피를 오른쪽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에 버릴 테니까 주워 가시겠어요?”

박율의 의도적인 말에 한지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구를 꼈다.

“이런 거 받...”

“전 일이 있어서 이만...”

박율은 싱긋 미소를 보이곤 재빨리 자리를 떴다.

* * *

한지원은 커피와 헌 책을 버려두고 도망치듯 나가는 박율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그녀에게 워낙 이런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저렇게 대놓고 치근덕대는 남자들은 질색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또 뭐야.

근래에 들어 자주 보이는 남자이긴 했지만, 행색도 작업복 아니면 트레이닝복.

자기관리가 안되는 남자는 더더욱 싫었다.

게다가 오늘은 어디서 싸움판이라도 벌였는 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한지원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거 뭐에요?”

지나가던 동료 간호사 하나가 물었다.

“아, 이거...”

“아까 나가던 그분이 주신건가?”

“드실래요?”

“에이 어떻게 한 선생님한테 준 걸 제가 받아요. 한 선생님은 그런 것도 받고 부럽다. 역시 사람은 예쁘고 볼 일이야.”

“에이, 선생님도 이뻐요.”

“난 늙었지. 한 선생님에 비하면 지나가는 똥개 수준이잖아요.”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셔요.”

동료 간호사는 피식 웃으며 한지원을 놀렸다.

“여하튼 사람 좋아 보이던데, 매번 계속 튕기지만 말고 이번엔 한번 받아줘 봐요.”

“아이, 선생님.”

“난 먼저 가볼게요.”

동료 간호사는 재밌었다는 듯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에휴...”

한지원은 손에 들린 캔커피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간밤에 꾼 꿈이 너무 생생해서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아니, 꿈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새하얀 풍경에 그녀를 바라보는 한 남자.

평범한 남자라기엔 너무나 이색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대천사 라파엘.

그는 그녀에게 한 가지 덧붙였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어요.”

그날이라는 단어가 귀를 스치는 순간 마치 지옥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새하얀 풍경은 어디 가고 마치 세기말 폐허 마냥 모든 것이 부서진 어딘가로 변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검은 뿔의 괴물들이 도망치는 사람들을 죽였고, 악마의 모습을 한 인간들은 사람들을 겁탈하고 약탈했으며 장난감 가지고 놀 듯 그들을 유린했다.

세상이 멸망한 듯, 어지러웠다.

그리고 이내 사방은 다시 새하얀 어딘가로 바뀌었고, 눈 앞에 있던 남자는 새하얀 불꽃이 되어 그녀에게로 날아들었다.

마냥 꿈이라 치부하기엔 모든 감각이 생생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집 안에 있었다.

“아 씨, 미치겠네.”

일에 집중을 하고 싶어도 그 장면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한지원은 결국 병가를 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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