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박율은 던진 망치를 다시 불러들이곤 그림자 악마를 향해 던졌다.
횡을 그리며 날아가는 망치는 순식간에 그림자 악마의 신형을 터트렸다.
흠칫 한상호가 고개를 돌렸다.
“실수, 실수.”
박율은 그와 눈이 마주쳐서야 몰랐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고는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중간중간 한상호의 동태를 파악해 그림자 악마가 나타날 때마다 신속하게 모르는 척 그것을 터트리거나 다른 이들에게 신호를 보내 그림자 악마의 존재를 알렸다.
당장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아직 저 마인은 박율을 같은 류의 마인으로 알고 있고, 그를 죽일 다음 기회를 엿보기 위해선 최대한 그것의 이점을 살려야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방법이 통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 저 마인이 눈치를 챌지도 모르는 형편이었다.
“후...”
시간이 지체될수록 남산타워의 그림자는 더 많은 사자들을 집어삼켰다.
그말인즉슨 언제든지 저 남자는 사자들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사단이 나기전에 결단을 해야 했다.
조금 이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진목 씨.”
박율이 김진목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리곤 소리를 죽였다.
“대답하지 마요. 제가 신호하면 남산타워 쪽으로 총 쏴요. 최대한 세게. 불을 뿌린다는 느낌보다는 불을 응축해서 날린다는 느낌으로. 우리의 목적은 남산타워를 무너뜨리는 겁니다.”
김진목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박율은 고맙다며 싱긋 미소를 보이더니, 이번엔 달려드는 악마를 상대하며 은근슬쩍 차영훈에게로 다가갔다.
“제가 신호하면 김진목 씨 무기에 권능을 넣어요. 역시나 우리의 목적은 남산타워를 무너뜨리는 겁니다.”
차영훈은 흠칫 박율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뭘 하면 될까요?”
근처에서 몰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석훈이 슬금 얼굴을 내밀더니 물었다.
“때려부셔요.”
“네?”
“그림자가 닿는 곳이 어디든 일단 다 때려 부셔요. 발 디딜 틈도 없게, 사람들은 그림자에서 떨어뜨려 놔야 해요.”
“무슨 소린진 모르겠지만 일단 난장판으로 만들면 된다는 거죠?”
“정확히 파악하셨네.”
박율은 다시 군중 속으로 스며들었다.
지금까지 시간이 있었음에도 남산타워를 무너뜨리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단 하나의 가능성.
남산타워를 쓰러뜨린 탓에 보석의 성장이 멎을 가능성.
만에 하나 섣부른 판단으로 남산타워를 넘어뜨려 보석의 성장이 멎는다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한 번 과거로 돌아온 그에게 또 다른 기회는 오지 않는다.
그의 입장에선 가장 최적의 경우의 수를 생각한 것이었다.
여전히 그 ‘무기’를 깨우기 위해선 아직 보석의 크기는 불안정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이상의 지체는 다른 이들의 희생 혹은 다른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시작합시다.”
박율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말에 박석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뛴다.
그가 향하는 곳은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릴라 형상의 마수였다.
“이야아아아아!!!”
박석훈과 마수가 맞부딪혔다.
마치 힘겨루기를 하듯 박석훈과 마수는 양 손을 마주 잡고 기합을 넣었다.
“으랴!!!”
찰나의 힘겨루기의 승자는 박석훈이었다.
그는 마주 잡은 마수의 손을 그대로 뒤편으로 날렸다.
쾅!
박석훈은 그에 그치지 않고 고릴라를 다시 잡아 패대기쳤다.
땅이 부서지고 흙먼지가 사방에 깔렸다.
난데없는 난동에 사람들은 저마다 둘을 피해 그림자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아직 그림자 속에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
박석훈은 다시금 고릴라에게 달려가 그것을 던졌다.
던져진 마수의 몸뚱이가 사람들의 중심에 떨어졌다.
박석훈이 신호를 보낸다.
“오케이.”
박율은 망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전투의 축적으로 더욱 커진 하얀 불꽃이 망치를 감싸고, 망치의 크기는 곱절로 커졌다.
박율이 도약했다.
동시에 박석훈이 뛰었다.
먼저 박석훈의 몸뚱이가 마수를 덮쳐 마수와 함께 저 멀리로 떨어졌다.
쾅!!!
뒤이어 떨어지는 박율의 망치가 사람들이 서 있던 땅을, 아니 정확히는 남산타워의 그림자가 차지하고 있던 땅을 산산조각냈다.
충격으로 남아 있던 사람들이 그림자에서 멀어지자 이번엔 박율이 김진목과 차영훈을 보았다.
“지금...!”
그리고 입 모양으로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받은 김진목이 황자총통을 가슴팍에 견착했다.
한쪽 발을 뒤로 몸을 지지해주고, 한쪽 발을 앞으로 힘을 실었다.
동시에 차영훈의 강화가 황자총통을 감싼다.
탕!!!
황자총통의 총신에서 하얀 불꽃이 폭발함과 동시에 하얀 불꽃을 머금은 총탄이 터져 나온다.
허공을 나선으로 가르며 나아가는 총탄이 겹겹이 쌓인 사람들과 악마들을 지나 남산타워로 달려갔다.
그리고.
펑!!!
남산타워와 부딪힌 총탄은 커다란 굉음을 내며 폭발을 일으켰다.
터지는 폭음에 모두의 시선이 남산타워를 향했다.
박율 역시 남산타워를 본다.
뿌연 연기 속에 하얀 불꽃이 피어났다.
“...!!!”
하지만 남산타워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기둥이 골조를 드러내며 부서지긴 했지만,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힘이 약했던 건가? 아니면 총의 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건가?
아직 김진목의 힘이 그 정도까지는 안 된다는 건가.
박율은 흠칫 고개를 돌려 한상호를 보았다.
그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이러면 나가린데...!”
게다가 지금 김진목의 발은 그림자를 밟은 채였다.
저물어가는 태양에 그림자가 위치가 바뀌는 탓이었다.
한상호가 칼날을 세웠다.
어떡하지?
제압해야 하나?
하지만 그는 그림자 속에 있다.
그의 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 박율이 나선다는 건 너무나 무모한 행위였다.
그리고 지금 박율이 적이라는 사실을 한상호가 알게 된다면 그를 죽일 또 다른 기회를 놓치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를 가만히 놔둔다면 그는 김진목을 죽일 터였다.
김진목과 한상호, 둘을 저울질한다.
“씨...”
박율은 한상호가 김진목에게 다가서기 전에 먼저 발을 떼었다.
그리고 다시 도약했다.
한상호와 김진목이 박율을 본다.
그의 선택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이었다.
박율의 망치가 김진목을 향했다.
쾅!
망치가 아주 미세한 차이로 김진목의 발치에 내려 찍혔다.
그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박율을 보았다.
박율은 한상호의 눈치를 살피며 김진목에게 몸을 던졌다.
쿠당탕!
“왜 그래요!”
“조용히...!”
박율이 소리를 죽여 말했다.
“박석훈 씨가 저 제압하러 오면 바로 한 번 더 쏴요. 이번엔 부서야 해요.”
박율이 다급하게 말했다.
여전히 김진목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박율은 김진목을 눕힌 채 망치를 높이 들었다.
“율 씨!!!”
예상대로 박석훈이 소리친다.
그리고 박율의 망치가 내려 찍히는 순간 달려온 박석훈이 박율을 밀쳐냈다.
“왜 그래요!!!”
“...나이스.”
박율이 눈빛을 보낸다.
김진목은 곧바로 다시 황자총통을 들었다.
“박석훈 씨. 빨리 저 남자한테 던져요.”
“예?”
“얼른...!!!”
박석훈은 인상를 찌푸리더니 이내 석연치 않은 얼굴로 박율의 멱살을 잡았다.
“터지는 거 없죠...?”
“없어요. 던져요.”
박석훈은 허리를 비틀어 박율의 몸을 던졌다.
박석훈의 손에 의해 던져지는 박율은 날아가는 와중에 한상호를 보았다.
역시나 김진목을 노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굳이 남산타워를 노린다는 것은 분명하게 한상호를 겨낭한 것과 다름 없었다.
한상호의 몸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쿠당탕!
날아간 박율의 몸뚱이가 남아 있던 한상호의 몸과 부딪혔다.
“아파라... 감정 담아서 던지는 건 아니지...!”
박율이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한상호가 그림자를 통해 이동하기 직전 그를 방해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탕!!!
또 다시 황자총통의 총탄이 날아갔다.
이번에 제발...!!!
박율은 이를 꽉 깨문 채 날아가는 총탄을 보았다.
펑!!!
이윽고 폭음이 터진다.
여전히 남산타워는 움직이지 않았다.
실패였다.
“씨발...!”
하지만 뿌연 연기가 걷히고 나자 보이는 골조.
가느다란 쇠 하나가 남산타워를 떠받치고 있었다.
저것만 부술 수 있다면 남산타워는 넘어진다.
박율은 김진목을 보았다.
두 번이나 큰 기력을 소모한 나머지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고개를 돌려 한상호를 본다.
이미 그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이제 한상호를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김진목이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쳇.”
박율은 왼손에 망치를 든다.
오른발을 축이자 지지대로 힘을 싣고, 왼발로 방향을 정한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체해서도 안 된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박율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검은 불꽃이자 마기를 폭발시켰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힘줄이 도드라진다.
고작 힘을 주는 것만으로 왼팔의 모든 힘줄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아직 부족했다.
거리는 대략 1km, 이 거리에서 저 골조를 끊기 위한 위력으로는 부족하다.
더욱 힘을 넣는다.
우두둑.
뼈가 비틀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다음으로 허리와 어깨를 비튼다.
그리고.
허리와 어깨의 반동으로, 폭발하는 힘을 연료로 망치를 던진다.
탕!!!
손으로 던진 망치에서 총을 쏜 듯한 소리가 울렸다.
반동으로 그의 몸은 상체를 숙인 낮은 자세가 되었다.
동시에 그 자세 그대로 권능을 개방한다.
[탐색]
순식간에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허공을 가르며 직선으로 나아가는 망치는 다행히 정확한 궤도로 날아가고 있다.
그 아래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는 마기 역시 느껴진다.
속도 역시 만만치 않다.
이미 마기는 김진목의 바로 앞까지 도착해 나타나기 직전이었다.
탐색을 푸는 순간 한상호는 김진목을 죽인다.
그가 김진목을 죽이기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했다.
시큰한 통증이 느껴졌다.
너무 힘을 주고 망치를 던진 탓인지 어깨가 빠진 듯했다.
하지만 어깨를 맞출 시간은 없었다.
바로 다음 권능을 준비했다.
[신속]
그림자 속에서 한상호의 모습이 차츰 드러났다.
그의 손엔 일본도가 들려있다.
그의 몸의 반쯤 빠져나왔을 때 박율의 몸이 김진목과 한상호의 사이에 도착했다.
지금 그에게 망치는 없다.
그렇다고 검을 소환할 수도 없었다.
그의 왼손은 이미 넝마짝이 된 상황이었다.
박율은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김진목의 허리띠에 손을 뻗었다.
콰당탕!!!
신속이 끝남과 동시에 박율의 몸뚱이가 바닥을 뒹굴었다.
박율은 최대한 빨리 중심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림자 속에서 전신을 드러낸 한상호가 김진목의 목 앞에 칼을 들이밀었다.
“커허헉...!!! 하아... 거기...!”
박율이 끓어오르는 고통을 간신히 참으며 소리쳤다.
한상호가 반사적으로 흠칫 곁눈질을 한다.
그리고 이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오른손엔 김진목이 사용하던 소총이 들려있었다.
“하아... 잠시만 빌릴게요.”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