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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28화 (28/183)

28화

왼손의 검은 불꽃에서 검의 손잡이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큭!”

한상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비틀었다.

한상호의 가슴팍에 올려놨던 손에서 피어나오는 검날이 한상호를 찌르고 지나갔다.

검 끝에 검붉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 새끼가...”

한상호는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검이 눈을 벤 듯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우와, 씨. 그걸 또 피해...? 후... 반사신경 한 번 미쳤네. 나쁜짓하지 말고 국가대표 같은 거나 하는 게 어때?”

박율은 배를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입을 놀렸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구슬을 하나 꺼내 복부의 구멍에 집어넣었다.

“큭...!!!”

구슬이 깨지며 터져 나온 붕대가 복부의 구멍을 가득 채웠다.

온몸의 살이 떨리는 고통이었다.

당장에라도 기절할 듯한 고통에 박율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과다출혈로 죽을 바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낫다는 그의 판단이었다.

“미친 짓을 하는 군.”

그를 본 한상호는 표정을 구겼다.

“익숙하거든 나한텐.”

박율에게 있어 고통이란 일상과도 같았다.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겪을 때까지 매 순간 일분일초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갔다.

그 시간은 박율에게서 죽음의 공포를 앗아갔다.

고통은 무뎌지고, 공포는 옅어졌다.

수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없는 남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기 때문이었다.

“너도 마냥 무사하진 못하나 봐?”

박율은 오른손의 망치를 소환했다.

“뭐...?”

“그 능숙한 검술로 칼질을 해대던 놈이 내 목을 안노리고 배를 찔렀다는 거 말이야.”

죽이려는 대상의 목을 노리는 것은 검술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한상호는 박율의 복부를 노렸다.

그 말인 즉슨 박율의 목을 정확하게 노릴 수 없었기에 그나마 치명적인 복부를 노린 셈이었다.

한상호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왜? 정곡이라도 찔렸나?”

박율이 말했다.

한상호는 말없이 검날을 세웠다.

[탐색]

권능을 개방하고, 한상호의 움직임을 파악한다.

한상호의 팔을 올라가고, 내려치는 검날이 박율에게로 쇄도했다.

박율은 몸을 비틀어 검을 피했다.

차악!

피한다고 피했지만, 검은 박율의 어깨를 스쳤다.

“큭...!”

어차피 그의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금 박율의 상태는 걸레짝이나 다름 없었다.

왼쪽 팔은 이전의 충격으로 제대로 들지도 못했고, 그나마 성한 오른팔 역시 지속된 전투 탓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당장 박율의 목적은 흙먼지가 모두 걷힐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시간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박율은 흠칫 눈살을 찌푸렸다.

“흙먼지가 모두 가라앉고, 그림자가 없어지면 될 거라고 생각하나본데.”

박율은 계속해서 쇄도하는 칼날을 간신히 피했다.

“내가 왜 그림자 속에서 싸우는지 알아? 그림자 속에선 아무도 나를 못 보거든.”

한상호의 신형이 사라졌다.

박율은 탐색으로 마기를 쫓았다.

마기는 순식간에 박율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박율은 몸을 비틀며 날아드는 칼을 막았다.

캉!!!

“큭...!”

몸을 움직일 때마다 격통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한상호의 신형은 또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나타나 박율을 공격하기를 반복했다.

왼쪽에서, 그리고 오른쪽에서, 때로는 뒤에서.

그를 향해 쇄도하는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찢어진 살가죽에서 핏방울이 흘러나온다.

“허억...!!!”

숨이 차올랐다.

시야가 흔들렸고, 온몸에 생긴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탐색으로 한상호를 쫓아 망치를 휘둘러도 망치는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나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끝까지 정체를 숨겼어야지.”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차악!

뒤에서 날아든 칼날이 박율의 아킬레스건을 끊었다.

“악...!”

박율은 신음을 내뱉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려 해도 끊어진 아킬레스건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아...하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뒤에서 날아든 검날이 등을 베고 지나간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척.

박율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 날카로운 일본도를 들이밀고 있는 한상호가 있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박율을 죽일 듯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박율을 베지 않았다.

“...너는 왜 악마랑 계약을 한 거지?”

박율이 피를 토해내며 물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이들은 악마가 되어 같은 사람들을 죽이는 걸까.

“왜...같은 사람들을 죽이는 거지?”

마인이 되는 이들은 각기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더이상 희망이 없어 악마에게 영혼을 팔거나, 살육을 즐기는 사이코패스거나.

하지만 박율의 눈앞의 남자는 무언가 달랐다고 해야 할까.

착각일지 몰라도 그를 죽이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난 아직 아무도 죽인 적이 없다.”

“뭐?”

“내가 죽이고 싶은 놈은 한 놈뿐이거든. 내 모든 걸 앗아간 놈. 그놈을 잡으려면 더 강해져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그의 목소리는 처연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속죄할 거다.”

그러고보니 박율이 아는 한에서 남자는 아직 그 누구도 죽인 적이 없다.

박율의 방해도 있었고, 그의 의지도 있었다.

하지만 중상을 입은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되려 그가 죽인 것이라곤 악마가 전부였다.

박율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함께 흙먼지가 걷히기 시작했다.

밝아진 시야 저 너머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뿌연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상호와 피칠갑을 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박율을 마주했다.

“율 씨...!!!”

한상호가 고개를 돌린다.

그의 시선이 모여 있던 사람들을 향했다.

“안 돼...!!!”

박율이 소리쳤다.

한상호는 검날의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림자 속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예상은 오판이었다.

그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한상호는 그림자가 되어 땅을 거닐고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사람들을 향했다.

그리고 이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왜...!!!”

박율에게 칼을 겨누었던 여자였다.

그녀는 한상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그녀를 베어 가를 뿐이었다.

칼날이 그녀를 스치며, 검붉은 핏방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여자는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충격적인 얼굴을 하고 있던 박석훈이 그에게 달려들지만, 그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탕!

김진목의 총탄이 그림자를 향했다.

하지만 총탄은 바닥에 박힐 뿐이었다.

차악!

그곳에 있던 모두가 핏물에 잠길 때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5분.

사방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눈을 감은 이는 없었다.

모두가 찢어진 상처를 부여잡은 채 비명을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한상호는 일을 끝마치곤 일본도에 묻은 핏물을 털었다.

그리고는 검집에 넣었다.

그는 누구의 목도 베지 않았다.

그저 움직임을 봉쇄했을 뿐이다.

[어어어어어!!!]

그새 토머가 심연의 골짜기에서 전신을 드러냈다.

그것은 자신을 요격하는 전투기들을 터트리고,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할 일은 끝났군. 살아남길 빌지.”

한쪽 눈을 감은 채 한상호가 박율을 보았다.

그는 발을 돌렸다.

토머를 상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 남자를 없애는 것도 중요했다.

추후에 저 남자는 더 많은 살육을 저지르게 된다.

박율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폭탄과 섬광탄을 꺼냈다.

그가 어떤 이유를 가지고 이런 짓을 벌였는 지는 몰라도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의 대의 하나만으로 수백의 사자들이 위험에 처할 테니까.

박율은 왼손의 검에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폭탄이 담긴 구슬을 던진다.

“얌마!”

박율의 외침에 한상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순식간에 검을 잡아 꺼냈다.

박율은 뒤이어 섬광탄을 던진다.

검이 구슬을 베어 가름과 동시에 불씨가 타오르며 폭음과 함께 터지기 시작했다.

한상호는 반사적으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펑하며 뒤이어 허공에 던진 구슬에서 굉음과 함께 눈을 터트릴 듯 섬광이 번쩍였다.

터지는 섬광은 그림자를 전멸시켰고, 미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한상호는 함께 터지는 폭탄에 직격을 맞았다.

하지만 아직 한상호는 살아있었다.

뿌연 연기 속에 쓰러진 한상호의 움직임이 보였다.

박율은 다리를 절뚝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망치를 소환해 높이 든다.

“무슨 사연이 있는 지는 몰라도, 넌 너무 위험한 놈이야.”

박율은 검에 몸을 기댄 채 망치를 내리찍는다.

캉!

“...!”

얼굴이 반쯤 그을린 한상호가 그새 눈을 뜨고 검을 치켜세웠다.

“...진짜 징하다. 너도.”

한상호는 망치를 튕겨냈다.

튕겨난 검의 반동으로 박율은 그대로 넘어졌다.

한쪽 다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한쪽 팔은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한상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그 역시 충격이 만만찮은 듯했다.

얼굴의 반쪽은 불에 그을린 듯 갈색으로 변해 있었고, 반대쪽 눈에 검에 찔려 뜨지도 못했다.

게다가 폭탄의 충격으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든지 일본도에 몸을 맡긴 채 겨우 몸을 지지하는 형편이었다.

박율 역시 다시 신음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죽긴 싫어서 말이지. 함께 사는 세상이니까. 그치?”

박율이 망치를 들었다.

“그냥 보내줄 수는 없는 모양이군.”

“널 살려 보내면 너무 많은 사람이 죽게 되거든.”

“다시 말하지만 난 누구도 죽이지 않는다.”

“그렇겠지. 그러고 죽기 직전까지 만들어놓겠지. 그게 죽이는 거야. 인마. 그걸 변명이라고 대는 거야? 살인미수나 살인이나 똑같은 거야. 쓰레기 자식아.”

한상호는 박율의 말에 이를 빠득 갈더니 먼저 발을 떼었다.

분명 좀 전까지 칼에 몸을 맡기던 그였지만, 칼을 잡은 순간부터는 너무나 멀쩡하게 달려왔다.

박율은 날아오는 검의 궤적을 따라 망치를 들었다.

캉!!!

“왜 찔리냐? 병신같은 논리를 논파 당하니까 기분이 더럽냐?”

캉!!!

다시 한 번 망치와 검이 부딪혔다.

찰나의 탐색이 없다면 그는 벌써 죽은 몸이나 다름 없었다.

살을 주고 치명상을 피한다.

캉!!!

캉!!!

쇳소리만 귀를 스쳤다.

저물어가는 해가 두 사람의 그림자를 늘렸다.

“...!!!”

한상호는 칼과 망치가 맞부딪히는 와중에도 그림자를 늘려 박율의 뒤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박율은 허리를 비틀어 공격을 피하려 하지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피할 수 없었다.

차악!

뒤에서 나타난 그림자의 날카로운 손이 박율의 등에 커다란 상흔을 만들었다.

“커헉...!!!

박율은 반사적으로 등을 활처럼 휘었다.

한상호는 검을 높이 든다.

그리고 박율을 향해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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