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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31화 (31/183)

31화

박석훈은 이젠 묘비가 된 박율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은 아니었지만, 짧은 시간 그에 대한 추억과 그와의 인연이 너무나도 깊었다.

박석훈은 그와 함께 있었던 짧은 시간을 회상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폭탄...매타작...무시... 아냐아냐... 죽은 사람 앞에서...”

조금 짓궂은 면도 있었지만, 아니 조금 많았지만 그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박물관에서부터 남산타워까지.

“수고했어요... 거기선...흑...편하게 쉬어요...”

박석훈은 터져나올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느라 콧잔등을 씰룩였다.

“오늘도 오셨어요?”

소리에 흠칫 고개를 돌리자 한지원이 보였다.

박석훈은 고개를 틀어 눈물을 닦았다.

“안녕하세요...”

“손에 그건 뭐에요...?”

“아 이거요?”

박석훈은 들고 있던 활과 캡슐을 들어올렸다.

“...율 씨 마지막 유언이었어요. 무기를 지켜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것도, 그 커다란 악마의 피를 담아달라고 하더라고요. 뭐 죽기 전에 전리품이라도 하나 간직하고 싶었나봐요.”

한지원은 고개를 푹 숙이며 작은 콧방귀를 꼈다.

그 일들을 저지르고 유언이라고 뱉은 말이 고작 활 하나와 이상한 캡슐이라니.

“참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한지원이 쓴 웃음을 지었다.

“별로 본 적도 없는데, 이상한 책을 건네지 않나, 맨손이랑 활을 꿰어 달라고 하질 않나...”

“이상한 사람이긴 했어요...”

두 사람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박율의 묘지를 보았다.

박석훈이 먼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다...죽지 않았을까요...?”

“...가족도 친구도 없는 양반이 혼자 그렇게 다 짊어지고 갔네요...”

“누구 죽었어요?”

“에...?”

“그리고 왜 남의 무덤 앞에서 가정사를 읊고 계세요.”

박석훈이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둘 다 여기 계시네요? 로또 당첨금 수령 하러 가는데 보이더라고요. 오! 활이랑, 이건 제가 부탁한 거 맞죠? 좋아, 좋아.”

박율이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그를 본 박석훈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고, 일그러진 얼굴 근육은 바르르 떨렸다.

그리고 이내 공포에 질린 듯 입을 떡 벌렸다.

“어?...어...어!!! 으아아아아아!!! 귀...귀...귀...귀신이다!!!”

세 차례나 눈을 의심하던 그는 박율에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박율에게 삿대질을 하며 경기를 하더니 경악을 내질렀다.

박율은 그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맞는 지 주위를 둘러보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 으어!”

짧은 숨을 내뱉던 박석훈의 몸뚱이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쾅!

뒤로 넘어간 박석훈의 머리가 박율의 묘지에 쾅 하고 떨어졌다.

“웜마? 저기요?”

박율은 흠칫 놀라며 그에게 다가가 건드려보지만,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뺨을 때리고, 흔들어봐도 충격에 혼절한 듯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죽었어요? 설마? 장난이 심했나? 아니 뭐 고작 이걸로 기절하고 그래. 사람 무안하게. 몸뚱이는 돌 같은 사람이. 에휴.”

박율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그의 손에 있던 활과 캡슐을 가져갔다.

활은 그의 손에 닿자 다시 빛줄기로 변했다.

박율은 빛줄기를 이리저리 보더니 만족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캡슐은 잠시 흔들어보더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한지원을 보았다.

“음, 그나저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그녀 역시 박석훈과 비슷했다.

마치 괴물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다...다...당신은 죽었...”

“맞아요. 저 귀신이에요.”

“허...허억...”

한지원은 놀란 가슴을 움켜쥐며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이승에 못다한 원한이 많아서 말이에요.”

그녀는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고 있었다.

박율은 씨익 웃으며 양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으어어어.”

“아...아...!!!”

“내 다리 내놔아아....악!”

박율은 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장난스레 그녀를 놀래키곤 즐겁다는 듯 배를 잡고 웃었다.

“아유, 다 장난이에요. 장난. 너무 재밌어서 그랬어요.”

“...”

“장난이라니까요? 저기요. 자요? 저기요~? 왜 말이 없어요.”

박율은 한지원의 반응이 없자 그녀에게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손이 그녀에게 닿자 그녀의 몸뚱이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웜마, 이 사람은 선 채로 기절했어?”

* * *

“아 머리야...”

박석훈은 머리를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가 어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그가 좀 전까지 있었던 묘지였다.

“기절이라도 한 건가? 갑자기?”

박석훈은 잠시 상황을 파악하며 머리를 굴렸다.

묘지 앞에서 한지원을 만났고...

돌아가는 시선 끝에 한지원이 누워있었다.

저 사람은 왜 여기서 자고 있지?

박석훈은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고개를 돌렸다.

“분명...율 씨가...”

“저 불렀어요?”

소리를 따라 눈을 옮기자 바닥의 풀들을 뽑고 있는 박율이 보였다.

“악...!!!”

“귀 떨어지겠네! 소리 좀 그만 질러요! 목청도 더럽게 큰 양반이!”

“유...율 씨...?”

“워뗘, 좀 반갑나?”

“어떻게...”

“제가 말했잖아요. 나중에 보자고.”

“죽었잖아요...! 당신...!”

“내가 죽을 거 같아요? 사람 한참 잘못 보셨네.”

“분명 시체를...!!!”

“설명은 이따 한지원 씨 일어나면 그때 해드릴게요. 가만히 있지 말고 일어나서 풀 좀 뜯어봐요. 이거 폭음탄 만들 때 쓰는 재료라 많이 모아놔야 해요. 뭐해요? 일어나요.”

“에...?”

“준비할 게 많아요. 이런 건 시간 있을 때 틈틈이 준비해야 하거든요.”

“끝난 거 아니에요...?”

“웜마? 그렇게 끝날 일이면 이렇게 개고생도 안 하죠. 앞으로 몇 번이나, 아니 몇 번이 뭐야, 수십 번은 더 처들어올걸요? 아, 얼른 일어나요. 빨리.”

박석훈의 박율의 재촉에 저도 모르게 일어나 풀을 뽑기 시작했다.

“그건 아니에요. 그 옆에 누런 거 그거 있죠? 그거 뽑으면 돼요. 오오 그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에요?”

“그냥 뭐. 그렇게 됐어요.”

“그냥 뭐가 뭐에요!”

“그냥 뭐가 그냥 뭐죠. 그냥 뭐가 뭐냐뇨.”

“말 장난 하지 말고...!”

“알았어요, 미안해요. 앞으로 움직이려면 죽은 상태로 움직이는 게 더 편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대체 무슨... 율 씨는 진짜 무슨 사람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차영훈 씨랑, 김진목 씨, 차세진 씨는 어디 있어요?“

”정부 기관에서...아 이거 말해도 되는 건가?“

”벌써 정부에서 움직이나 보네요. 음?“

박율은 익숙한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한지원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던 참이었다.

눈을 뜬 한지원은 눈 앞에 있는 박율을 보더니 눈을 의심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곤 눈을 비비더니 뺨을 찰싹 때렸다.

”일어나셨네.“

”이거 혹시 꿈이에요?“

”꿈이라고 해줄까요?“

”당신이 어떻게...?“

”안 죽었으니까.“

”분명히 시체를...“

”감쪽같았죠? 정신 차리고 일어나봐요. 이야기 할 게 많아요.“

박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곤 허리를 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박율의 설명을 들은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그러니까 율 씨가 미래에서 온 사자였고, 모든 일들을 알고 있어서 이 모든 일들을 벌였다?“

”역시 석훈 씨, 이해가 빨라요.“

”그게 말이...“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은 변수 제거를 위해 최대한 숨기려고 했지만, 벌써 이렇게 된 마당에 숨긴들 무엇하겠는가.

박율은 그냥 시원하게 입을 열었다.

마른 세수를 하는 박석훈은 그간의 일들을 회상하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제 상식은 종이 쪼가리가 되는 시대에요.“

”그럼...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건지도 알고 계신다는 거에요...?“

한지원이 물었다.

”그렇죠. 그래서 두 사람을 찾은 이유도 같은 이유에요.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도 있으면 좋을텐데.“

”네...?“

박율의 말에 두 사람의 미간이 좁아졌다.

박율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제 본론이에요. 우리는 길드를 만들 거에요. 뭐 길드라기보단 기업 같은 느낌이지만.“

”예?“

”네?“

두 사람의 말이 겹쳤다.

너무 놀란 나머지 놀랄 기운조차 없는 목소리였다.

”아니, 그, 제가 지금 정신이 없거든요? 이해 좀 시켜주실래요?“

박석훈은 지칠 대로 지친 얼굴로 말했다.

”말 그대로에요. 길드를 만들 거에요. 벌써 정부 쪽에서 움직였다면 시간이 없어요. 아마 두 분 다 접촉을 했겠지만, 이제 사자들을 모으는 일을 시작할 거에요. 그런데 위쪽 양반들은 꼰대가 워낙 많아서 뭐만 하려고 하면 딴지를 걸거든요. 정부에서 하는 건 너무 오래 걸리고, 제약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차라리 우리가 길드를 만들어서 사자들을 모을 생각이에요.“

”...그게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에요...?“

한지원의 질문이었다.

”없는 이야기라면 제가 말을 안 꺼냈죠.“

”전...모르겠어요.“

박석훈이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 같은 일반인이 어떻게 기업을 세워요. 그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그리고 돈은 어떡해요?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박율이 손가락을 부딪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금 조달. 이게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일 거에요. 그것에 대해선 해결해 줄 사람이 있어요.“

”누구를...?“

”태성그룹 회장, 장대호.“

”태...태...태 뭐...뭐요?“

”태성 그룹 회장, 장.대.호.“

”예!?“

박석훈은 버럭 소리를 내뱉더니 이내 헛웃음을 내뱉었다.

대한민국의 중추를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기업인 태성 그룹을, 그것도 그 태성 그룹의 회장을 끌어들인다고?

그의 입장에선 미쳐서 내뱉는 헛소리나 다름없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되게 만들어야죠. 다 계획이 있어요.“

박석훈은 고개를 저으며 이마를 짚었다.

”뭐 세상이 멸망한다는 데 그 정도도 못하겠어요? 그리고 무작정 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사업 아이템을 주겠다 이 말이에요.“

한지원은 말이 되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이내 어쩔 수 없이 납득한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희가 뭘 해야 하는 건가요...?“

”별로 할 건 없고, 제가 죽은 상황이니 제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해주시면 돼요.“

”예를 들어 어떤...?“

”일단 지원 씨는 정부 쪽 동향을 살펴주세요. 치유계 능력자는 드물어서 무슨 제안을 하던 일단 튕겨요. 그리고 나머지는 제가 도와줄게요. 그리고 석훈 씨는 저랑 같이 갈 곳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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