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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33화 (33/183)

33화

“율 씨, 우리 이래도 되는 거에요? 이거 범죄 아니에요...?”

“저질렀는데 어떡해요?”

“이러면 우리가 나쁜 놈 같잖아요.”

“지금 상황에 우리가 착한 놈으로 보이진 않죠.”

“아니...”

“괜찮아요. 어차피 이 사람도 경찰에 신고 못해요.”

“예?”

“으...”

“아이고, 일어나셨어요?”

최지호는 오만상을 지으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끄자 보이는 두 사람.

최지훈은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려 하지만, 벌써 그의 몸은 이미 주박 되어 있는 상태였다.

암만 발버둥을 쳐도 단단하게 속박된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당신들 뭐야...”

“그러게 가만히 있었으면 이럴 일 없잖아요. 그냥 얘기 좀 하자니까.”

“이거 풀어!!!”

“봐봐 또 저런다. 가만히 좀 있으면 안 돼요?”

“경찰 불러!!! 사람 납치하고 이러면 당신들 무사할 거 같아!?”

“여기 경찰 있어요. 물론 이젠 그만뒀지만.”

박율은 능청스럽게 박석훈을 가리켰다.

그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그를 보더니 애써 최지호의 눈빛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경찰에 신고하려고요?”

“내...내가 못할 줄 알아!?”

“못 갚은 대출금만 3억이 넘는데다 횡령, 사문서 조작, 사기죄로 수배 중이잖아요. 신고해봐요.”

박율의 말에 최지훈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놀란 건 최지훈만은 아니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박석훈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누...누가 시킨거야...”

“시킨 거 아니에요.”

“사...살려줘...하라는 거 다 할게...!!! 돈 갚을게!!! 일주일만...일주일만 시간을 줘!!! 제발...!!!”

“율 씨, 진짜에요? 그럼 완전 쓰레기...”

“조용히 해봐요. 최지호 씨, 우리 당신 죽이려고 데려온 거 아니에요. 도와주려고 온 거에요.”

넋이 나간 얼굴로 박율을 보는 최지호의 얼굴은 공포에 떨리고 있었다.

“빚 탕감에, 당신 죄목도 지워줄게요. 어때요? 구미가 조금 당겨요?”

“...뭐...뭐?”

최지호의 일그러진 얼굴이 그의 답변을 대신했다.

“싫으면 말고.”

“자...잠깐...!”

“어떻게, 하실래요?”

“다...당신네들이 어떻게 그걸 할 수 있는데...?”

“따라오면 알 수 있어요.

“...조건은.”

“저희가 만들 길드에 들어오시죠.”

* * *

“그걸 다 어떻게 저희가 해줘요?”

“왜 못해요?”

“아니, 다 양보해서 빚 탕감까지는 어떻게 한다쳐요. 근데 죄목을 무슨 수로 없앱니까?”

“저 못 믿어요?”

“아니 그런 이야기가...”

“저만 믿어요. 태성그룹이랑 이야기만 잘 끝나면 바로 끝날 문제에요.”

“하...”

박석훈은 한숨을 내뱉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래, 오케이. 그거 다 된다 쳐요. 근데 너무 성급하게 찾아온 거 아니에요? 태성 그룹이랑 언제 이야기할 줄 알고 벌써 깽판을 쳐요?”

“더 늦으면 저 사람 빼앗겨요.”

“...예?”

“악마들도 눈독 들일 인재죠. 그래서 뺐겼었고.”

최지호가 얻게 될 권능은 착란(錯亂), 대상을 조종 혹은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정신계 능력이었다.

이전의 역사에서는 현실을 비관하는 그가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악마와 손을 잡았고, 악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 결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박율은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가 행한 일들에 그의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매번 망설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역사에서만큼은 그에게 한 번이라도 기회를 주고 싶었다.

“정신착란계 능력은 전세계적으로도 드물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악마들이 먼저 접근했을 거에요.”

“그럼 이렇게 끝낼 일이 아니잖아요!? 데려와야죠!”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토머의 피를 왜 가져 와 달라고 했겠어요, 제가?”

“...?”

박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토머의 피, 즉 상급 악마의 마기를 최지호에게 묻히고 왔다.

다시 말해 상급 악마의 마기가 남아있는 한동안은 악마들이 그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소리였다.

그 사이 나머지 일들 역시 처리해야 했다.

“석훈 씨. 이제 다음 단계로 가시죠.”

다음 단계.

최지호가 사자가 되기 전에 해야 할 들이 있다.

그가 마인이 되었던 가장 결정적인 사건.

악마의 싹을 치우러 갈 시간이었다.

* * *

“요즘 내가 못 챙겨줬지? 얼른 먹어.”

이명석은 골목 어귀에 쭈그리고 앉아 작은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배가 고팠던 건지 허겁지겁 캔에 담긴 먹이를 해치웠다.

“그렇게 배고팠어?”

이명석은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가방에서 캔을 하나 더 까 고양이 앞에 놓아주었다.

벌써 사흘이나 넘게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못했었다.

세상에 이상한 괴물들이 나타난 탓이기도 했고, 그 여파로 일이 많아져 시간이 없었기도 했다.

게다가 너무 피곤한 탓인지 환청이 들린 것도 한몫했다.

[네게 힘을 주지.]

귀가 아플 정도였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대로면 스트레스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얼른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흠칫.

“...?”

순간 뒤에서 알 수 없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명석은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행동을 멈췄다.

말 그대로 본능이었다.

평범한 사람의 것이라기엔 너무 이질감이 느껴졌고, 말 그대로 소름이 돋는 인기척이었다.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아니 하지 못한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본능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너무나도 불길한 기척이었다.

허겁지겁 먹이를 먹던 고양이도 그 기척에 쓰레기 봉지 사이 동굴로 사라졌다.

“누구야...”

이명석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감이 좋아.]

한국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는 더더욱 아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언어였지만, 이명석은 그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명석은 땅바닥에 놓여있는 캔 뚜껑을 몰래 집었다.

“너 뭐야...”

이명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가 느껴졌다.

온몸이 떨리고, 숨이 가빠진다.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존재. 내게 무한한 힘을 줄 수 있는 신 같은 존재라고 해두지.]

“...신?”

이런 존재를 신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등줄기가 차갑게 식고 있었다.

이명석은 가볍게 들었던 캔 뚜껑을 저도 모르게 세게 쥐었다.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기울어진 저울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당신이 신이라며 그럼 그쪽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가 아니야...?”

[신 같은 존재지. 나는 신이 아니야.]

“당신...도대체 뭐야...?”

[기울어진 저울의 구도자.]

이명석은 이를 꽉 깨문 채 손에 쥔 캔 뚜껑을 뒤로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뒤엔 누구도 있지 않았다.

캔 뚜껑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흔적조차 없었다.

짧은 숨을 몰아쉬는 그의 광대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네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

“당신 뭐야!!!”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 모든 것이 환청이었다는 듯, 너무나 조용했다.

하지만 그 감각은 도저히 환청이나 환각일 수 없었다.

온몸의 감각이 날이 서고, 심장이 죽음을 경고하는 그 서늘한 느낌.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뚝. 뚝.

갈 곳을 잃은 손에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캔 뚜껑을 세게 쥐었던 건지 캔 뚜껑의 날카로운 단면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있었다.

깊은 상처가 벌어졌지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제야 시큰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이명석은 여전히 짧은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런 표정으로 캔 뚜껑을 놓았다.

그리곤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손을 감쌌다.

얼마나 상처가 깊었는지 손수건이 전부 빨갛게 물들 정도였다.

그는 여전히 두려운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고양이에게 줄 간식들이 남아있지만, 고양이는 쓰레기 봉투 사이 동굴에서 공포에 떨며 나올 생각을 않았다.

게다가 이명석 역시 지금은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비야. 내일...내일 올게.”

이명석은 고양이 간식 하나를 내려놓고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자리를 떴다.

그가 사라진 자리, 땅바닥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얼굴을 까마귀 가면으로 가린 누군가가 나타났다.

허리춤엔 일본도가 있었고, 가면으로 가린 얼굴에 드문드문 화상자국이 번져 있었다.

그는 땅바닥에 놓인 간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동굴 속에 숨어있는 고양이를 향해 뻗었다.

동굴 속에 숨어있던 고양이는 잠시 그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까마귀 가면을 쓴 남자는 간식을 든 채 움직임이 없었다.

고양이가 완전히 동굴에서 빠져나오고 나서야 그는 간식을 내려놓았다.

“저놈이야?”

까마귀 가면의 뒤로 인기척도 없이 여자 하나가 나타났다.

그녀는 작은 주택의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왜 저놈이지? 딱히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여자는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까마귀의 옆에 내려왔다.

쿵!

제 키에 곱절은 될법한 높이에서 내려왔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맘에 안 들어.”

“맘에 안 들면?”

“새로운 놈 찾자고. 저 안경쟁이 샌님이 뭘 할 수 있겠어?”

“벌써 주군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다.”

여자는 할 말이 없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근데 넌 뭐하냐?”

“보는 대로.”

“그러니까 뭐하냐고. 봉사 활동하러 왔냐?”

여자는 까마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의 행동을 보며 이죽거렸다.

그리곤 당장에라도 고양이를 밟아 죽일 듯 발을 들었다.

그 순간 까마귀의 손은 칼 손잡이에 올라갔다.

“장화연.”

“뭐? 그러다 베겠다?”

“거기서 움직이면.”

“움직이면 뭐?”

살 떨리는 살기가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장화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눈 깜빡 안 하고 사람한테 칼 들이대던 사이코 새끼가 고양이한텐 연민을 느끼나 봐? 동질감이라도 드냐? 그러니까 혼자 남산타워에서 그 병신 짓을 했겠지. 죽이진 못하고 반병신이나 돼서 돌아온 새끼가.”

까마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궁금하긴 했어. 뭐 얼마나 쎄면 그따위로 일을 처리해도 문제가 없고, 사람 말을 개좆으로 듣는 건지. 이 기회에 한번 싸워보자.”

장화연의 발이 고양이를 향해 쇄도했다.

동시에 까마귀의 일본도가 칼집을 빠져나온다.

“그만.”

고양이의 머리가 터지기 직전, 까마귀의 일본도가 장화연의 다리를 베어 가르기 직전, 새롭게 나타난 가면을 쓴 남녀 한 쌍이 둘을 저지했다.

얇은 실이 여자의 발을 속박했고,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힘이 남자의 일본도를 막았다.

장화연은 당장에라도 고양이를 터트릴 듯 다리에 힘을 주지만, 단단하게 속박된 실을 끊을 순 없었다.

“덕분에 산 줄 알아.”

장화연은 이를 빠득 갈며 발을 치웠다.

까마귀 역시 조용히 일본도를 칼집에 넣었다.

“다시 움직이지.”

커다란 덩치가 돋보이는 그는 곰처럼 생긴 가면을 쓰고 있었다.

“재밌을 뻔 했는데.”

그의 뒤엔 고양이 가면을 쓴 실을 조종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들은 할 일을 끝마쳤다는 듯 발을 돌렸다.

까마귀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그의 눈에 띄인 쥐 한 마리.

그는 쥐에게 다가갔다.

쥐는 이명석의 냄새를 쫓고 있었다.

“장난질을 했군.”

그는 쥐를 잡아 암시를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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