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날아간 망치가 장화연의 이마를 강타했다.
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마에 커다란 자국을 남기며 장화연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마치 도살장의 죽은 돼지마냥 여자는 꿈틀 움직이지만, 더 이상 움직임은 없다.
박율은 그녀는 기절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어깨에 힘을 풀었다.
“후...”
그리고는 날숨을 뱉으며 일어났다.
“멍청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후...”
박율은 진저리를 치며 장화연에게 다가갔다.
그는 코어를 장검의 형태로 만들고는 망치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는 곁눈질을 한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듯.
박율은 망치를 내려찍는다.
망치가 여자의 이마에 내려 찍히려는 순간 가늘고 첨예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박율은 순식간에 몸을 비틀어 그것을 피한다.
얇디 얇은 실이 박율의 관자놀이를 스치고 건너편 나무에 박혔다.
관자놀이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뚝 떨어지며 허공에 맺힌다.
역시나 실이었다.
날아온 방향은 오른쪽 측면.
[탐색]
태산 같은 커다란 산의 울창한 나무들 너머로 움직임이 보인다.
“드디어 찾았다.”
장화연은 굳이 지금 잡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고양이는 달랐다.
또 언제 고양이를 마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박율은 코어를 석궁의 형태로 바꿨다.
그리고 재빨리 시위를 당겨 튀어나온 걸이에 거는 것과 동시에 망치를 그 위에 얹는다.
망치가 시위에 올라앉는 순간 박율은 방아쇠를 당겼다.
퉁!
시위의 반동으로 망치가 날아간다.
동시에.
발을 내디딘다.
어깨 높이의 벽을 밟고.
[신속]
망치와 함께 박율의 신형이 사라졌다.
박율은 벽을 딛고 실이 날아온 방향으로 도약했다.
저 멀리 나무 위 고양이가 보인다.
여기서 저 여자까지 처치할 수 있다면 너무나 큰 수확이었다.
박율은 코어를 장검의 형태로 바꾼다.
고양이는 예상대로 날아가는 망치를 피해 움직인다.
박율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허공의 실에 발을 딛고 한 번 더 뛰었다.
망치가 여자를 스치고 지나가는 동시에 박율의 신형이 그녀의 눈앞에 등장했다.
“안녕.”
박율은 장검을 내찔렀다.
푹!
장검의 검신이 고양이의 몸을 꿰뚫는다.
하지만 장검은 무언가에 막힌 듯 고양이의 몸을 끝까지 관통하지 못했다.
박율은 힘껏 장검을 찌른 채 고개를 들었다.
고양이 가면이 눈에 들어왔다.
“큭...”
반응을 봐선 어느 정도 데미지가 들어간 것 같지만, 그리 치명상은 아닌 듯했다.
“잘 있어.”
박율은 손을 흔들었다.
고양이는 팔을 뻗어 그를 잡으려고 하지만, 박율은 그새 꺼내놓은 폭탄 구슬을 장검이 파고 들어간 곳에 던진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숙여 뒤로 몸을 던졌다.
펑!!!
터지는 폭음과 함께 불꽃이 흩날렸다.
사방으로 번지는 불꽃이 고양이의 실들에 옮겨붙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곳에 박혀 있던 실에까지 불이 붙었다.
“사방에 안 박아놓은 곳이 없네.”
심지어 박율의 등에까지 실이 붙어있었다.
저렇게 동료가 머리에 망치를 맞고 기절할 정도인데도 그냥 보고만 있었다니.
혹시라도 장화연과의 싸움에 고양이가 끼어들었다면 승산이 전혀 없었을 것이었다.
역시 악사회 놈들 성격이 어지간히 고약하긴 했다.
다른 이들의 전투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건 그만큼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서이기도 했고, 그들만의 힘을 증명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시야를 가리던 뿌연 먼지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 너머에는 불에 타는 실뭉치만 있을 뿐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놀려야지.”
흠칫 들려온 목소리에 박율은 고개를 돌렸다.
분명 좀 전까지 그의 앞에 있었던 고양이가 어느새 그의 뒤로 장화연 곁에 있었다.
[신속]
박율은 재빨리 몸을 돌려 고양이를 쫓았다.
공기를 뚫고 날아온 박율이 고양이를 노리지만, 이내 그는 멈춰 섰다.
벌써 실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후우...”
박율은 가쁜 숨을 고르며 다음 대응을 위한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를 보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폭탄의 영향인지 그녀의 몸은 온통 검은 칠 범벅이었다.
“나 안 싸울 건데?”
고양이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말했다.
“너 죽이라는 명령 없었어.”
“그래, 저런 성격이었지.”
악사회가 그렇게 강했음에도 이명석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가 저 바로 저 성격들 때문이었다.
다혈질 장화연에, 귀찮은 일은 절대 마다하는 저 고양이도, 제멋대로 움직이는 까마귀까지.
그리고 곰이나 뱀, 사자 등.
너무나 개성들이 넘쳤기에 악사회는 구심점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말 그대로 괴짜 집단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단체였다.
“재밌었어. 폭탄은 조금 아팠지만.”
고양이는 기절한 장화연의 발을 잡고는 질질 끌었다.
작은 체구의 고양이가 덩치 큰 여자의 몸을 끌고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했다.
고양이는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면서 낑낑대며 장화연을 끌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박율을 보았다.
“좀 도와줄래?”
“우리가 그런 부탁을 할만한 사이는 아닐 것 같은데. 업체라도 불러 줄까?”
“그치?”
고양이는 이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여자를 끌고 움직인다.
“그럴바에 그냥 실 하나 박아서 데려가면 안 되나?”
“얘가 그거 싫어해. 하면 내일 나 때릴걸?”
“그래?”
“그래서 힘들어.”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뭐가?”
“어딜 가려고?”
“어딜 가긴 돌아가야지. 할 일도 끝났는데. 저놈 잡는 게 일이었거든.”
고양이는 피로 흥건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근데 얘가 죽여서 할 일이 끝났어.”
“그래서?”
“나 갈게.”
“어디 가냐니까?”
“돌아간다니까.”
“안 보내줄 건데?”
박율은 망치를 던진다.
하지만 망치는 어딘가에 걸려 바닥에 처박혔다.
그새 또 실들을 박아놓은 듯했다.
“귀찮은데 그냥 넘어가면 안돼?
”나도 귀찮긴한데, 지금 처리 안 하면 나중에 더 귀찮아지거든.“
”귀찮게 안 할게.“
”거짓말 하지 마.“
”거짓말 아니야.“
”그래도 싫어.“
”진짜?“
”응.“
고양이는 깊은 한숨을 내뱉더니 진저리를 쳤다.
”이번에만 그냥 보내주면 안돼?“
”미안.“
박율은 망치를 다시 불꽃 속에 넣고는 코어를 활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검은 불꽃을 화살 모양으로 만들어 시위에 걸었다.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쓰는 거야?“
”그냥 뭐 어찌저찌하다보니.“
고양이는 박율의 손에서 피어난 검은 불꽃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박율은 그대로 시위를 놓았다.
팡!
날아간 화살이 정면의 실을 뚫고 고양이를 향했다.
하지만 화살은 겹겹이 쌓인 실들을 모두 뚫지 못하고 허공에서 사라졌다.
”와우... 그새 이렇게 박아놨어?“
”이렇게 안 하면 네가 계속 달려들 거 같아서 말이야.“
”예리하네.“
”여하튼 난 이제 갈게. 재밌었어.“
”보내줄 생각 없다니까?“
”재밌었어.“
겹겹이 쌓인 실, 그 사이에 흠집이 생겼다.
박율은 주머니에 있던 폭탄을 던졌다.
고양이는 박율이 뭘 하던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펑!!!
폭탄이 터지면서 박율과 고양이를 막던 벽이 사라졌다.
고양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끌고가던 장화연을 물건 버리듯 던졌다.
쿠당탕하며 그녀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뿌연 흙먼지 너머에서 움직임이 느껴진다.
고양이는 한숨을 내쉬더니 실뭉치를 만들어 쿠션을 만들어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나타나는 박율.
그는 실들을 찢으며 다른 손으로는 하얀 불꽃의 커다란 망치를 만들어 고양이를 날렸다.
콰앙!!!
망치에 맞은 고양이의 몸뚱이가 저멀리 날아가 땅에 처박힌다.
하지만 그녀가 만들어 놓은 실뭉치가 에어백이 되어 고양이는 인상만 조금 찌푸릴 뿐 아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파...“
”거기서 쿠션을 만들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폭탄을 들고 다니는데, 뭔들 못하겠어. 진짜 이렇게 해야 돼?“
”소꿉놀이라도 할래?“
”차라리 그러자.“
”싫어.“
고양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박율은 곧바로 고양이에게 달려든다.
한 손에는 검은 불꽃의 첨예한 검을 쥐고, 다른 한 손엔 하얀 불꽃으로 가득한 망치를 들고.
그는 먼저 왼손을 휘둘렀다.
검은 불꽃이 지나간 자리엔 끊어진 실들만 남았다.
고양이는 민첩하게 움직이며 박율의 공격을 피했다.
첨예한 검이 실을 불태우며 자르고, 망치가 고양이를 향해 쇄도했다.
고양이는 그저 피하고만 있었다.
가면에 가려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성가시다는 느낌이었다.
박율 역시 그 정도까지만 공격할 뿐이었다.
고양이의 성질을 건드린다.
한참을 도망치던 고양이는 박율의 공격에 틈이 생기자 저 멀리 몸을 던졌다.
”쟤 주면 나 보내줄래?“
고양이는 장화연을 가리켰다.
”너희들은 동료 의식도 없냐?“
”그게 뭐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놔주면 쟤 두고 가려고?“
”네가 그렇게 해주면.“
”그럼 놓고가.“
박율은 알겠다며 망치와 코어를 불꽃 속에 숨겼다.
”진짜?“
”그럼.“
고양이는 기쁜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고양이가 발을 돌리는 순간.
박율은 다시 망치와 코어를 소환했다.
두 무기를 한데 겹쳐 커다란 망치로 만들어 주머니의 폭탄을 던진다.
그리고 친다.
망치에 맞은 폭탄 구슬이 고양이를 향해 날아갔다.
펑!!!
폭탄이 터지며 고양이의 몸이 저멀리 날아갔다.
콰과곽!
날아간 고양이의 몸뚱이가 바닥을 뒹굴었다.
고양이는 뜨거운 입김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다.
박율은 흠칫 자리에 멈췄다.
”알겠어... 그래...“
그녀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떨렸다.
고양이의 몸에서 새하얀 실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실들은 이윽고 하나의 실뭉치를 만들었고, 그것은 이내 커다란 인형으로 변했다.
고양이가 모든 실들을 꺼내 실인형을 만들 때만이 오직 그녀를 처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녀의 몸을 가리는 실에 공격이 막힐테니까.
”그게 소원이면 원하는 대로 해줄게.“
고양이는 열 손가락에 연결된 실을 만지작거렸다.
”죽어.“
실뭉치로 된 인형이 박율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속도는 가히 빛을 상회한다고 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탐색]
박율은 권능을 개방하고, 날아드는 주먹을 피해 몸을 굴렸다.
콰앙!!!
핵폭탄이라도 터진 듯 커다란 굉음이 전역을 울렸다.
박율은 왼손의 검은 불꽃과 코어를 한데모아 첨예한 검을 만들어 실뭉치를 자른다.
잘린 실뭉치는 순식간에 원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박율은 인형의 다리 사이로 달려들어 고양이를 노리지만, 인형의 형태가 변해 박율의 길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