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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54화 (54/183)

54화

“이제 본편 시작이에요.”

굉음이 세상을 가득 채우듯 사방에 소리가 깔렸다.

함께 성을 이루던 골조들과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구궁!!!

“다들 빨리 들어요. 우리 넷 중 한 사람은 이 미로의 조정자가 될 거에요. 나머지 세 사람은 그 사람의 지시를 따라서 움직여야 하고. 순서에 맞춰 길을 찾고 트리거를 발동시켜야 미로를 탈출할 수 있어요. 누가 조정자가 될지는 몰라요. 누가 되든 간에 일단 저한테 먼저 이야기 해주세요. 그리고 절대 먼저 움...”

쿵!

커다란 벽이 박율의 앞을 막아서며 그의 말을 끊었다.

“...직이면 안되는데.”

이제 더 이상 그의 말은 닿지 않는다.

네 사람이 서 있던 땅 역시 제멋대로 움직이며, 네 사람을 각기 다른 곳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조정자가 자신이 되길 빌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욕심인 듯했다.

어차피 뭐 안 될 거라고 예상은 했다.

겨우 성을 이루던 부속품들의 움직임과 소리가 멎자 보이는 풍경.

거대한 궁전 같던 성은 순식간에 하나의 커다란 미로처럼 변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말아야 할 텐데.”

이곳은 단탈리온의 두 번째 시험,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였다.

매 칸마다 악마가 나타나고, 그 악마를 죽여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무한의 미로.

“조정자는 누가 되려나.”

기왕이면 박석훈 말고 아무나...

『율 씨...!!!』

역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는 않나보다.

* * *

“제가 조정 뭐시기 그거 된거 같아요...!”

박석훈은 미로가 전체적으로 보이는 자리에서 세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로는 상당히 복잡했고, 심지어는 막힌 길들이 사방에 있어 위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길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안 그래도 머리 쓰는 일은 질색인 그가 이런 자리에서 지시를 하려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세 사람 전부 다른 곳에 떨어져 있어서 더더욱 머리가 아팠다.

대충 눈으로 훑어보며 길을 찾아보려 해도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율 씨 어떡해요?”

박석훈은 박율을 향해 소리를 치지만, 그는 고개만 돌릴 뿐 대답을 하진 않았다.

“율 씨...?”

역시나 대답은 없다.

혹시나 싶어 다른 이들을 살펴보니 입이 뻥긋거리는 것만 보였다.

“다들 제 목소리 들려요? 들리면 고개를 끄덕여 주세요!”

다행히 그의 목소리는 들리는 지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박율을 제외한 두 사람은 무어라 대답은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그에게 닿지 않았다.

“미친...!”

박석훈은 머리를 쥐어 감쌌다.

다 같이 풀어도 못 풀 것 같은 미로를 혼자서 풀어야 한다니!

『으어!』

“악!”

박석훈은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소리를 내질렀다.

“뭐야!?”

그는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지만, 역시나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내 말이 들리는가?』

“누구...누구세요? 설마 율 씨...?”

목소리는 박율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옆에 없다.

혹시 저 사람의 목소리만 내게 들리는 건가?

박석훈은 고개를 내려 박율을 보았다.

그는 자신을 올려다보지도 않은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신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나침반...?”

『정답.』

“예!?”

『석훈 씨 목소리를 들을 순 있어도, 우리가 하는 말은 안 들릴 거에요.』

“근데 율 씨는 어떻게...?”

『다 준비 해놨죠.』

그는 허공에 대고 나침반을 흔들어댔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한 성유물이에요. 자 그럼 설명해주세요.』

“뭐...뭘요...?”

『뭐겠어요? 설마 종갓집 김치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할까봐? 미로 구조나 말해달라고요.』

“미로 구조요? 잠시만요.”

박석훈은 그래도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미로로 시선을 옮겼다.

“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 거지?

길들이 아주 사방으로 뒤죽박죽인데다가 뭐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른 설명해줘요.』

“그게... 복잡해요.”

『복잡한 건 당연히 알고. 트리거들 먼저 알려줘요.』

“트리거요?”

『아마 여러 개의 트리거가 있을 거에요.』

박석훈은 일단 그의 말을 따라 미로를 살폈다.

대충 그가 말한 것 같은 그런 트리거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벽들이었다.

“네 몇 개 보여요.”

『거기서 진짜 트리거 세 개를 찾아서 작동시키야 해요.』

“세 개요...!? 이렇게 많은 벽 중에서...?”

『그러니까 잘 골라야 해요. 잘못 고르면 미로 구조가 바뀔 테니까. 뭐 굴러야 답이 나오는 미로에요. 쉽게 말해서. 그럼 위치를... 아! 맞다! 다른 사람들 움직이면 안 되는데. 움직이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멈추게 해요.』

박율의 말에 다른 이들의 동선을 살피니 벌써 두 사람은 무작정 움직이고 있던 참이었다.

박석훈은 그들에게 멈추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벌써 두 사람은 멈춰있었다.

그것도 커다란 마수를 눈 앞에 두고.

“늦은 거 같은데요...?”

『...뭐 죽지는 않겠죠. 일단 우리가 할 거 먼저 합시다. 제일 가까운 벽은 어디 있어요?』

“김진목 씨 앞에 있어요.”

『그 사람은 어디 있는데요...?』

“싸우고?”

박율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마 다음으로 가까운 건 영훈 씨 인 거 같아요. 근처에 주황색 벽이 있거든요.”

『그렇게 말해도 몰라요. 제 권능으로 길이 보인다지만, 어떤 벽이 어떤 색인지는 석훈 씨만 보일 거에요. 그건 그렇고 지금 어때요? 잘 싸우고 있어요?』

“어... 잘... 싸우고 있는 거 같기도...?”

* * *

“후우...”

첨예하게 만든 날이 호랑이를 닮은 마수의 턱을 그었다.

그리고 동시에 허리를 꺾어 다른 팔에 톤파로 호랑이의 앞다리를 벤다.

“저거 뭐야, 도대체?”

횟수로만 수십 번을 베었지만, 저 호랑이 놈에게 상처는커녕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호랑이는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김진목은 날아드는 앞발을 피해 몸을 뒤로 던졌다.

콰곽!

호랑이의 발톱이 그가 서 있었던 바닥을 세 갈래로 찢었다.

김진목은 혀를 내둘렀다.

저 정도 세기면 실수로 닿기만 해도 온몸이 찢어질 듯 싶었다.

『진목 씨! 내 말 들려요?』

김진목은 박석훈의 목소리에 흠칫 고개를 돌렸다.

허공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석훈 씨!?”

『피해요!』

“뭐...”

정면에서 호랑이의 커다란 덩치가 날아오는 중이었다.

김진목은 재빨리 톤파를 꺼내 들어 호랑이의 공격을 막았다.

콰과곽!

톤파에 걸린 발톱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눈앞에서 멈추었다.

힘은 또 어찌나 센지 잠시만 방심을 해도 발톱이 그를 짓이길 것 같았다.

“으...!!!”

앞발의 압박이 더욱 세게 그를 내려찍으려 했다.

김진목은 앞발이 그를 짓이기기 직전, 허리를 앞으로 꺾어 호랑이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머지 손의 톤파를 치켜들어 호랑이의 허파를 베었다.

호랑이가 멈칫하는 사이 김진목은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어디서 말하는 거에요!? 아! 그 조정자인가 그거에요!?”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저기요!”

『그렇게 소리쳐도 진목 씨 말은 저한테 안 들려요!』

“그럼 뭐 어떻게 해야 돼요!? 저놈 아무리 베어도 안 죽는데!?”

『율 씨가 말하길 모든 함정들엔 분명한 약점이 있고, 패턴이 있데요! 나머지는 진목 씨의 몫이라고 열심히 하래요.』

“거참 고맙수다.”

약점이라.

그의 말에 김진목은 다시 자세를 잡고 호랑이를 보았다.

상처를 수복한 호랑이는 다시 으르렁대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호랑이 뒤에 보이는 저 꼬리.

착각일지 몰라도 분명 싸울 때마다 호랑이는 꼬리를 최대한 숨긴 채 움직였다.

“혹시...? 꼬리에요?”

답은 없었다.

꼬리가 약점이 아니라고 하기엔 다른 약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뭐. 밑져야 본전이지.”

하지만 정면에서도 상대하기 힘든 저 호랑이의 뒤를 노리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작정 달려드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이미 수십 번의 합을 이룬 상대였다.

또 달려든다한들 결과는 같을 터.

패턴을 찾아보자.

“흠...”

전혀 모르겠다.

항상 무기만 믿고 무작정 싸워대기만 했지, 이렇게 분석까지 해가며 싸운 적은 없으니까.

일단 저 호랑이가 공격하는 수단은 저 발톱.

동시에 호랑이가 높이 뛰었다.

“흡...!”

날아든 호랑이의 발톱이 땅바닥을 내리찍는다.

이렇게.

그리고 곧바로 달려든다.

발톱을 피해 물러서던 김진목은 땅바닥에 톤파의 날을 박아넣고 그것을 축으로 몸을 돌렸다.

발톱을 두 번 사용하고, 잠시 텀이 생긴다.

김진목은 재빨리 중심을 되찾고, 땅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뛴다.

호랑이의 시선이 그를 향하는 순간, 그는 그 시선을 너머로 크게 도약했다.

하지만 호랑이의 발톱은 그를 쫓아 올라왔다.

김진목은 재빨리 날아든 발톱 사이에 톤파를 끼워 넣고, 방향을 틀어 나머지 손의 톤파로 호랑이의 등허리를 크게 벤다.

차악!

김진목은 다시 뒤로 거리를 벌렸다.

저 호랑이가 가진 마지막 패턴.

상처 이후의 텀.

그 순간은 김진목이 호흡을 고르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치 저 호랑이는 그의 체력에 맞춘 듯 그의 패턴과 너무나 비슷했다.

“시련이라는 게 이런 뜻인 건가.”

김진목은 다시 자세를 잡고 다음 패턴을 기다렸다.

대상에 걸맞은 시련이라함은 한계를 돌파하라, 뭐 그런 뜻인 게 아닌가 싶었다.

“마왕이 변탠가보네.”

명색이 마왕이란 놈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가 아주 잠시 상념에 잠기던 순간 호랑이는 움직였다.

그것의 움직임에 맞춰 김진목 역시 발을 굴렀다.

역시나 똑같은 패턴이었다.

달려드는 호랑이의 발톱이 그를 향해 쇄도하고, 김진목은 피한다.

잠시 멈칫하는 틈에 김진목은 다시 호랑이를 향해 달려들고, 호랑이는 그것을 방어한다.

그리고 김진목의 무기가 호랑이에게 상처를 남긴다.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이대로 가면 끝이 없겠는데...”

『파이팅!』

“거참 고마운 말 해주시네요.”

『죽을 수도 있다니까 조심하래요!』

“아, 예. 몹시 감사하네요.”

꼬리가 약점이라는 가정하에 어떻게 상대를 해야하는 가.

그의 공격은 계속해서 등허리에 멈추었다.

왜냐고 말한다면 그곳까지 가지 못해서겠지.

뒤쪽으로 움직이기까지의 소요 시간과 과정이 너무나 빡세다.

그리고 공격과 공격의 간극에 호랑이 역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똑같은 패턴에 공격의 리치를 늘리는 것이 답이었다.

김진목은 양손의 톤파를 보았다.

“율 씨 무기 보니까 막 변형도 되고 그러던데.”

그의 무기는 그런 능력은 없는 듯했다.

기껏해야 날을 둥글게 만들고, 날카롭게 만드는 게 끝이었다.

“그럼...”

문득 박율이 망치를 변형시키던 방법이 생각났다.

밑져야 본전이라 그랬던가.

김진목은 톤파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렇지...!”

예상대로 무기의 날에 하얀 불꽃이 일렁이더니 더욱 날카로운 날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길이 역시 생각한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늘어났다.

이 정도면 충분히 꼬리를 노릴 수 있다.

고개를 들어 호랑이를 본다.

그 역시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리고 동시에 호랑이와 김진목의 발이 바닥을 굴렀다.

그 둘이 부딪히는 순간, 김진목은 발톱을 피해 호랑이의 아래로 몸을 굴렀고, 호랑이는 그를 피해 높이 올랐다.

땅바닥을 쓸던 김진목의 톤파가 바닥에 박히고, 그는 반동을 이용해 뛰어 높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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