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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62화 (62/183)

62화

구슬에서 터지는 하얀 불꽃은 사방을 불태웠고, 순식간에 박석훈에게 달려든 악마들을 섬멸시켰다.

박율은 악마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모습을 드러냈다.

“크...”

박율은 검은 핏물만 남기고 사라진 악마들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곤 그것들에게서 악마의 정수를 추출했다.

“자 그럼 다시 갑시다.”

마치 공포영화 속 한 장면처럼 박석훈의 고개가 박율을 향해 돌아갔다.

상처 하나 없는 그의 얼굴에 검은 칠들이 가득했다.

박율은 흠칫 그의 눈치를 보며 엄지에 침을 묻혀 얼굴에 묻은 칠들을 닦았다.

“...조금 많이 묻었네.”

“지금...”

“저번에 폭탄보다 조금, 아주 조오금 세졌을 거에요.”

저번 폭탄이 일반 커피였다면 이번 폭탄은 top였다.

자그마치 세 번이나 폭탄에 폭탄을 뭉치는 작업을 했으니까.

박석훈은 마치 당장에라도 박율을 죽이겠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화내는 건 돌아가서 하고. 일단은 돌아갑시다. 여기서 희희낙락거릴 시간 없어요.”

박율은 그가 화내기도 전에 그를 잡고 끌었다.

“한 번만 더 이러면 저 진짜 화낼 거에요.”

박석훈이 경고아닌 경고를 내뱉자 박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참 박율의 뒤를 쫓던 박석훈은 흘깃 뒤쪽으로 눈을 흘겼다.

수백, 수천의 악마들이 서로의 피를 탐하고, 서로를 유린하고 있었다.

이미 그들이 서 있던 땅은 황무지가 되었고, 숲을 이루던 나무들은 쓰러져 시야를 가르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채였다.

게다가 하늘엔 두 개의 커다란 힘이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주먹 한 방에 땅이 도륙 나고, 내뱉는 기합에 나무들이 쓰러졌다.

조금 전까지 저 악마를 상대로 싸웠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근데 그냥 이렇게 가도 되는 거에요?”

박석훈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앞서가는 박율을 보았다.

“왜요. 가서 악마들이랑 싸우려고?”

“그게 아니라...”

다시금 박석훈의 시선은 뒤로 돌아갔다.

그의 시선은 일전까지 마계인들이 거주하던 민가를 향했다.

굳건하게 뼈대를 이루고 있던 건물들은 이미 형태를 잃어 폐허가 된 후였고, 미처 도망치지 못한 마계인들은 폐허가 된 건물에 숨어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요. 연민 가지지 말라고. 어차피 여긴 마계에요. 우리가 신경 쓸 이유는 없다고요.”

박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힘이 없다는 것의 공포를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그 억울함 역시.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앉았다.

그의 사람들을 지키는데도 시간은 부족했다.

다른 이들, 특히나 마계인들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박석훈은 그의 말에 한숨을 내뱉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그들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 무서워...]

[조금만... 조금만 버텨. 기사님이 지켜주실 거야.]

작은 아이를 품에 안아 쏟아지는 마기가 닿지 않기를 기도하는 여인부터

[다들 제 뒤로 오세요...!]

약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 힘이 없는 사내와

[꼭...살아...남아야...합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이들까지.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악마라 여기는 이들은 피해자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애써 그들을 보지 않은 채 달렸다.

그들과 관련이 없는 이들이기에, 마계에 거주하는 이들이기에 그들은 그들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침묵 속을 뛰어 그들이 마계로 들어왔던 그 숲 앞에 도착했을 때.

침묵을 깬 이는 박석훈이었다.

“...아직 두 사람은 안 왔나 봐요.”

“그게 아니면 먼저 돌아갔던가.”

박석훈은 뒤쪽으로 눈을 흘기며 망설이고 있었다.

박율은 그를 보더니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돌아갑시다.”

“...”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율 씨.”

“...”

박석훈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박율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위험해요. 우리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박율은 단호하게 숲 안으로 발을 옮겼다.

박석훈은 갈등하는 얼굴로 자리에 굳어 있었지만, 이내 하는 수 없이 그를 쫓았다.

박율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유 없는 죄책감이기도 했다.

힘이 있으면서 그들을 버려두고 떠난다는 죄책감.

그것이 그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그 고통을 외면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심연의 골짜기를 찾았을 때.

그곳엔 무엇도 있지 않았다.

“뭐야...? 어디 갔어?”

박율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심연의 골짜기를 찾지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마냥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떡해요...?”

인간계와 연결된 심연의 골짜기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

네 사람은 심연의 골짜기를 열 수 없다.

그리고 심연의 골짜기를 열어줄 수 있는 존재는 악마들이었고, 인간에게 호의를 베풀어 줄 악마는 오직 단탈리온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 마계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단탈리온이 전쟁에서 진다면?

돌아갈 수 없다.

“...석훈 씨.”

“네?”

“돌아갑시다.”

필사적으로 이 마계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 * *

“어떡해요!? 이제!?”

몰려드는 악마들의 군세 속에서 김진목은 톤파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의 뒤에서 등을 맞대고 있던 차영훈은 정면에서 달려드는 악마의 머리를 터르렸다.

“저도 몰라요!!!”

“율 씨는 어디 갔어요!?”

“그것도 몰라요!!!”

두 사람은 악마들을 향해 성유물을 휘둘렀다.

콰직!!!  쾅!!!

허공을 베어가르는 톤파는 악마를 두 동강냈고, 기다란 봉은 악마들을 짓이겼다.

“율 씨 쫓아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차영훈은 소리쳤다.

김진목은 측면에서 날아드는 악마의 허리를 베어가르곤 고개를 돌렸다.

“그렇긴한데...”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엔 폐허 속에서 공포에 떠는 마계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톤파는 그들을 향해 몸을 던지는 악마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이대로 두고 가기엔 조금 그래서요.”

김진목은 마계인들을 등지며 악마들을 향해 섰다.

“어쩔 수 없죠.”

차영훈 역시 그를 따라 무기를 들었다.

“딱봐도 악당이 누군진 알겠네요.”

두 사람은 마계인들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은 약자들이었고, 두 사람은 그들을 지킬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계인들이 그들과 별반 차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었다.

“조심...!”

차영훈은 허리를 굽히는 김진목의 위로 봉을 휘둘렀다.

쾅!!!

봉이 악마와 부딪히며 굉음을 터트렸다.

동시에 김진목은 차영훈을 부드럽게 옆으로 넘기고 톤파를 던졌다.

차악!

날아간 톤파가 달려들던 악마 몇 마리의 목을 베어가르고, 톤파는 다시 그의 손에 소환되었다.

“후...”

수없이 몰려드는 악마 떼에 두 사람은 쉴 틈 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끝이...없어...!”

김진목은 눈 앞의 악마를 반으로 갈르며 소리쳤다.

그리 강력한 악마들은 없었지만, 이전 악마와 싸웠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체력이 떨어지는 형편이었다.

“율 씨랑 석훈 씨는 먼저 갔을까요?”

“숲에서 만나자고 그랬으니까.”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몰라요.”

“도망치기엔 늦었어요. 이미.”

두 사람은 등을 맞댔다.

부스럭.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부서진 건물의 잔해 사이에서 한 아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는 공포에 떨리는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엄마...]

아이의 눈동자는 떨고 있었다.

아이가 마계에 거주하는 족속이라 한들 그 눈만큼은 무력감에 휩쌓여 어미를 찾는 새끼의 눈동자였다.

아이는 무너진 잔해에 깔려 신음하는 마계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뒤에서 숨어있던 마계인들은 움직이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지만, 아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미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영훈 씨...”

“...저도 보고 있어요.”

김진목은 황무지 사이로 걸어가는 아이와 허공에서 격전을 벌이는 두 악마를 번갈아 보았다.

아이는 주체할 수 없는 공포와 혼란에 그저 제 어미를 찾아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 사이로 들어가면 아이는 죽는다.

“어떡해요!?”

“씨...”

어떻게든 아이를 구하러 가고 싶었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악마들의 수세에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이는 눈물에 번들거리는 얼굴로 도움을 요청했다.

동시에 악마들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그리고 데판을 상대하던 네파림의 눈은 아이를 향했다.

씨익 미소 짓는 악마의 얼굴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네파림은 마기를 뭉쳐 아이를 향해 던졌다.

펑!!!

날아간 마기는 순식간에 달려온 데판의 몸에 막혀 터졌다.

네파림은 즐겁다는 듯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냐!!!]

[뭐하는 짓이긴.]

또 다시 네파림은 마기를 뭉친 공격을 날렸다.

이번에도 대상은 데판이 아닌 그의 뒤에 웅크린 아이였다.

[무고한 이들까지...!!!]

[그러게 왜 거기 있어?]

네파림은 계속해서 마기를 뭉친 공격을 날렸다.

펑!!!

펑!!!

펑!!!

수십 개의 폭탄이 연달아 터지듯 날아든 마기는 데판의 전신을 터트렸다.

[그만...!!! 정정당당하게 승부해라!!!]

[흠, 재밌는 생각이 났어.]

네파림의 손에 이번엔 날카로운 가시 같은 마기가 생겨났다.

[저 어린 놈을 죽이면 어떻게 될까?]

[뭐!?]

[저 하찮은 것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네 눈앞에서 저것을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호기심이 이는 군.]

[내가 네 마음대로 움직이게 둘 것 같은가?]

네파림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손 위에 만들어진 가시를 하늘 높이 들었다.

데판의 성격상 만약 저 악마가 그런 참상을 벌인다면, 그는 본신(本身)을 드러낼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최소한 못해도 이 마계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다.

더불어 단탈리온의 영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마계인들 역시.

그게 분노에 의해서든 슬픔에 의해서든.

네파림의 손에서 생겨난 가시는 더욱 크게, 그리고 더욱 날카롭게 뻗어갔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나의 능력은 유리.]

허공에서 피어난 검은 안개가 데판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의 몸을 야금야금 씹어먹듯 점점 영역을 늘려가는 검은 안개.

네파림의 능력은 유리.

대상을 세상과 분리시키는 능력이었다.

레파림의 손이 그를 향해 뻗는 순간 검은 안개로 뒤덮힌 데판의 몸은 결계에 갇혀 사라졌다.

저 능력으로 데판을 묶을 순 없다.

하지만 아주 잠깐 그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있다.

그말은.

[궁금하지 않은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네파림은 높이 들어올린 날카로운 가시를 내리꽂았다.

가시는 허공을 주파하며 아이를 향해 치닫았다.

그리고 가시가 아이의 목전까지 다가왔을 때.

“안...돼...!!!”

차영훈과 김진목은 악마들을 뚫으며 아이에게로 달려가려 하지만, 겹겹으로 쌓인 악마떼를 뚫고 갈 수 없었다.

대신 김진목은 날아드는 가시를 향해 톤파를 던졌다.

동시에 차영훈은 그 톤파에 권능을 불어넣는다.

톤파와 가시가 맞부딪히는 순간, 그리고 아이의 시선이 코 앞의 가시를 향해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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