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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65화 (65/183)

65화

마치 잔바람에 민들레 씨앗들이 흩날리듯, 날카로운 첨단의 창은 박율이 만들어내는 바람을 따라 하늘을 날았다.

첨단은 바람이 만드는 길을 따라 홍해 바다를 가를 듯 창공을 꿰뚫는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엔 데판과 네파림이 있다.

네파림의 발끝에서부터 그의 몸을 탐식하는 검은 안개는 그의 존재를 야금야금 갉아먹지만.

허나 바람을 따라 창공을 꿰뚫는 창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리.

박율의 몸뚱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동시에 그 창은 데판과 네파람의 몸뚱이를 꿰뚫었다.

털썩.

팔 끝에서, 다리 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통이 그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율은 저항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의 의지는 데판의 기사도와 함께 허공을 꿰뚫은 이후였다.

“아아악!!!”

박율은 울부짖었다.

울부짖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

온몸에 불을 지르고 온몸을 칼로 난도질하는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그는 찢어지는 고통에 신음을 하는 와중에도 시선은 허공의 데판과 네파림을 향했다.

“...!!!”

박율은 떨리는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그들에게 닿지 않았다.

네파림의 머리를 꿰뚫어야 할 창은 그의 반신을 꿰뚫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는 아직 살아있었다.

반쯤 주검이 된 그는 마지막 발악을 준비하고 있었다.

데판 역시 그의 뒤에서 눈을 뜨고 있었지만, 그는 떨어졌다.

그의 왼쪽 심장이 먼저 바닥에 떨어지고, 이윽고 데판의 몸뚱이가 바닥을 굴렀다.

[이...이 개새끼들이 감히...!!!]

박율은 떨리는 팔로 땅을 짚었다.

하지만 그의 근육은 그 순간에도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네파림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등줄기에서 피어난 날개가 마기를 머금고 비대해지며 머리에 솟아난 뿔은 춤을 추듯 길게 뻗었다.

그의 본신(本身)이 이 마계에 현현하고 있었다.

최악의 사태였다.

이대로면 모두가 죽는다.

박율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고통 속에서 땅을 짚고 일어났다.

“유...율 씨...!!!”

“막아야...막아야 해요...”

박율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 네파림을 보았다.

점점 더 커지는 그의 몸은 태양을 가리고, 두 다리는 거대한 산을 짓밟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의 현현이 끝나기 전에 그를 끝낸다.

“한 번만 더...”

박율은 다시 모든 힘을 한 점으로 집중시켰다.

그의 전신에서 모든 힘을 끌어올려 한 점으로.

힘이 부족하다면 생명을 소모하며 그는 최후를 다짐했다.

[아서라.]

박율의 손에 모인 힘을 방출하기 직전, 들려온 목소리는 그의 손을 저지했다.

[죽고 싶어 환장했나보군.]

그의 동공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빛을 인식만 할뿐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다.

그의 앞으로 다가온 남자는 그의 머리에 살포시 손을 얹더니 그를 뒤로 눕혔다.

박율은 그의 손길에 그대로 털썩 뒤로 쓰러졌다.

손길에서 흘러나온 힘은 고통에 떨리는 그의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좀 쉬거라.]

남자는 웃음을 흘겼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누구 마음대로 내 영역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들리는 것이라곤 남자의 목소리와 그의 곁으로 달려온 세 사람의 목소리뿐이었다.

시야를 가린 세 사람의 머리 너머로 태양을 가린 네파림의 몸뚱이가 찌그러졌다.

그의 착각일 수 있지만, 네파림의 몸뚱이는 점점 작아졌다.

마치 종이를 꾸기듯 점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바람을 따라 박율은 눈을 감았다.

* * *

눈을 떴다.

서늘한 바람이 코 끝을 스쳤다.

여전히 그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고통은 사라졌다.

희미하게 벌어진 눈꺼풀 사이로 네파림이 보였다.

그는 찌그러진 캔마냥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허공의 무언가에게 먹혔다.

그를 잡아먹은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앞엔 익숙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다시 박율은 눈을 감았다.

[잘했구나.]

[...하늘을 나는 새가 되기 위해서였고, 땅을 지키는 나무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눈꺼풀에 커다란 납덩이를 올려놓은 듯 무거웠다.

오로지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들의 소리는 너무나 가벼웠다.

가벼웠기에 그들의 소리는 바람처럼 그를 간지럽혔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바람에 박율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 * *

“아아악!!!”

박율은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

박율의 눈은 사방으로 튀어다녔다.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보단 지금 그가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있다는 사실에 그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드디어 일어났나보군.]

흠칫, 그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고 데판이 들어왔다.

아니, 데판처럼 보이는 누군가였다.

“누구...?”

박율의 질문에 그는 박율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내가... 실언을 했나...?”

박율은 그의 반응에 슬쩍 입을 막았다.

[...주군께서 부르신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방을 나갔다.

박율은 그가 나가고도 그 자리에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굳어있더니 이내 사방을 살폈다.

“뭐여...?”

그러다 눈에 들어온 창밖은 그가 지금 단탈리온의 마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참상을 소개했다.

건물들은 죄다 부서졌고, 배경을 채우던 산들은 반쯤 사라진 상태였다.

그 모든 일들이 꿈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박율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윽...!”

발이 땅에 닿자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찌릿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울려 퍼졌다.

이 고통이 일전의 싸움이 환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듯했다.

“어우...”

온몸이 지끈거리고 시큰거렸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근육통으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그래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후...”

분명 데판을 닮은 누군가가 주군이 부른다고 말을 했다.

“데판인건가...?”

그렇다기엔 덩치가 너무 작았다.

데판이 태산이었다면 아까 그 남자는 동네 뒷산 느낌이랄까.

“뭐 가면 알겠지.”

생각한들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박율은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풀며 문밖으로 나섰다.

역시나 그가 있는 곳은 단탈리온의 성인 듯했다.

복도에 보이는 치렁치렁한 장식들이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박율은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끝에 가까이 다가가자 처음 성에 들어왔을 때 보이던 곳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 악마와 싸웠을 때 생겼던 흔적들은 전부 메꿔진 이후였다.

[일어났느냐.]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

박율은 소리를 쫓아 뒤를 돌았다.

책을 손에 쥔 단탈리온은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의 옆엔 데판을 닮은 작은 악마가 함께 있었다.

“그 뭐, 저 오랜만입니다?”

[나는 오랜만이 아니다만, 반갑구나.]

“아니, 마왕이라는 양반이 여태껏 뭐하고 있었어요? 마계가 전부 박살이 나는데.”

[뭐, 적당히 바쁜 일이 있어서 말이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그렇지, 자기 영역이...”

말을 내뱉던 박율은 단탈리온이 책을 높이 들자 말끝을 흐렸다.

“설마...?”

[으흠?]

박율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모든 게 그의 짜놓은 판이라면?

이 모든 일들은 알고 있기에, 킹콩을 보내 그를 초대하고 이런 사단을 벌이게 한 거라면?

평범한 이들에겐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게 단탈리온이라면 설명이 된다.

“미친...”

[예상대로 너무나 잘해주더군.]

“와...”

박율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시 입이 열렸다.

“미친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잘못되면... 그런 일은 없으려나...?”

[성공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만.]

“예?”

[이 책은 내게 미래를 설명해주지만, 모든 것을 알려주진 않는다네. 태양의 아들이 나타나 새들의 쉼터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하더군.]

박율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 식이야. 이 책은.]

박율은 잠시 욕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뻥긋대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이제 세 번째 시험할 시간인가요? 저도 바쁜 사람인지라.”

[시험은 끝났다네.]

“그럼...?”

[질문에 답을 해주지. 이미 다른 이들에게는 답을 주었으니, 그대의 차례라네.]

그의 말에 박율은 소리 없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세 번째 시험까지 했다간 누구 하나 쓰러져 뒤지겠다는 생각이 들던 때였으니까.

“오케이. 그럼 질문할게요.”

박율은 마음을 다잡으며 단탈리온을 보았다.

그 역시 박율을 보고 있었다.

“안드라스와 플라우로스의 위치가 궁금합니다.”

[흐음...]

박율의 질문에 단탈리온은 미소를 흘기며 책장을 넘겼다.

샤락.

몇 장의 책장을 넘기던 단탈리온은 이내 고개를 들었다.

[달빛이 보이는 정원.]

“달빛이 보이는 정원이라...”

그의 말에 박율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예언이 대부분 이런 두루뭉술한 대답이라지만, 이번 예언은 대강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그거 뿐이에요?”

단탈리온은 책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네.]

“그 말은...?”

[네가 향하는 그 길의 끝에 있다는 소리지.]

“안돼요. 그럼 늦어요...!”

[조급해하지 말거라. 준비가 되기 전까지 그 무엇도 가쁜 숨을 쉬지 않을 테니.]

단탈리온은 모든 것을 안다는 표정으로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

또각또각.

[그 길의 끝에서 낙엽과 생화의 무게를 재단해야 할 것이다.]

단탈리온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두어 발자국 걸어가던 그의 모습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먼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있었던 자리엔 데판을 닮은 악마가 서 있었다.

“...누구?”

[...장난질은 그만하는 게 좋을 거다.]

빡친 목소리였다.

한 번만 더 입을 열었다간 혀를 뽑겠다는 말투였다.

[주군께서 명하셨다. 네 그림자를 쫓아가라고. 마음에 들진 않다만, 주군의 명이니.]

말하는 싸가지하며 그를 쳐다보는 인상은 빼도박도 못할 정도로 데판이었다.

“설마 데...”

판까지 입을 열었다간 진짜 죽일듯한 기세였다.

[심장을 하나 잃었기에 힘을 회복하기 전까지 잠시 이런 모습을 하고있는 거다.]

그는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그럼 이빨 빠진 호...”

박율은 다시 입을 열려다가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다.

덩치는 작아졌지만, 그가 내뱉는 살기는 의심할 여지 없이 데판이었다.

“크흠... 그럼 다른 분들은 어딨죠?”

박율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데판은 한숨을 팍 내쉬더니 반대편을 가리켰다.

“근데 그렇게 가려고요? 심연 넘어가면 총살 당할텐데.”

데판은 그의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덩치는 더더욱 작아져 작은 고양이의 형태로 변했다.

“그정도면 되겠다.”

[닥치고, 움직여라.]

“까칠하시긴.”

박율은 그가 이끄는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그를 따라 쭉 걸어가자 보이는 커다란 광장.

중앙엔 그와 함께 마계에 왔던 세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각기 마수들을 하나씩 잡은 채 전투를 하고 있었다.

“...? 다들 뭐해요?”

박율이 물었다.

그의 소리에 세 사람은 흠칫 고개를 돌리더니 박율을 보았다.

“율 씨!!!”

먼저 소리를 지른 인물은 박석훈이었다.

그는 정면에서 달려드는 마수를 단숨에 잡아 땅이 내리꽂았다.

쾅!!!

“일어났어요?”

뒤이어 차영훈과 김진목 역시 달려들던 악마를 터트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뭐하는 거에요?”

“율 씨,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죠.”

“그러고요? 얼마나 할 게 없으면 마수랑 싸워요?”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뭐라도 하는 게 낫죠.”

”됐고.”

박율은 어깨를 펴고 세 사람을 보았다.

“이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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