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회장실을 빠져나와 건물 로비로 나온 박율이 마주한 이는 다름 아닌 신궁 하세원이었다.
“저기 죄송한데, 이분 어디 있는 지 아시나요...?”
그녀는 건물 로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박율을 찾지만, 건물 내에 그를 아는 인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그는 이미 죽은 몸이었으니까.
하세원의 질문을 받은 이는 하나같이 어색한 웃음으로 답변을 하고 그녀를 지나쳤다.
수십 번의 질문에도 답을 얻지 못한 하세원은 낙담한 채 어깨를 축 늘렸다.
박율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보다가 이내 발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어...!”
그녀는 박율을 마주하고 나서야 표정을 활짝 풀었다.
박율은 그녀의 반응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참 얼굴이 둥글둥글한 게 아주 빵떡을 닮았다.
박율은 저도 모르게 하세원에 볼을 잡아당기려다 다른 손으로 손을 막았다.
“안녕하세요!”
“어차피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오셨네요?”
“그때 명함을 주셔서...”
“잘 오셨어요. 저희 길드 율에.”
박율은 마치 제집을 소개라도 하는 듯 양손을 활짝 펼쳐 건물을 소개했다.
물론 이 건물에 그의 지분은 티끌만큼도 없지만 말이다.
“근데 계속 궁금했는데, 왜 저를...?”
하세원은 슬쩍 그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솔직히 그녀가 스카웃을 받을 정도로 그리 활약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악마에게 활 좀 몇 대 쏜 것뿐이다.
게다가 한 대도 맞추질 못했는데, 그녀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녀가 스카웃 될 이유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있는 저 남자는 그녀를 스카웃 했다는 것이었다.
사기가 아닐까하는 생각밖에 들진 않았지만, 그 날 악마를 죽이던 것을 생각하면 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박율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저는 현재보단 미래를 중요시하거든요.”
“네...?”
하세원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차차 알게 될 거에요.”
박율의 눈에 하세원은 그저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었다.
저 원석을 가공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보석으로 바뀔지 그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른다는 이점을 가진 값비싼 원석.
“가능성을 봤다는 거에요.”
“뭐... 좋게 봐주신다니...”
하세원은 여전히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계약이나 뭐 자세한 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줄 거에요. 제가 회장님께 말해놨거든요.”
“벌써요...?”
“올 줄 알았으니까.”
박율은 싱긋 미소로 답을 대신하곤 그녀를 지나쳐 문으로 향했다.
“아, 그리고 하루 뒤에 스페인으로 가야 하니까 준비하세요.”
“네...네!?”
“그만 이만.”
박율은 그 말을 끝으로 건물을 빠져나갔다.
어차피 그녀를 데려갈 생각이었다만, 이렇게 친히 찾아와주니 고마울 수 밖에.
그녀의 권능은 전이(轉移)
그녀가 남긴 두 개의 흔적을 하나의 통로로 만드는 권능이었다.
그녀의 재능과 결합한다면 더 없이 적절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어디 물건 하나 빼돌리기엔 적당하다 못해 완벽할 정도로 말이다.
박율은 아주 즐겁다는 얼굴을 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나머지 일들을 좀 하러 가볼까.”
* * *
“이리와.”
좁은 골목에서 이명석은 쓰레기봉투 사이 동굴 속에 있는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양이는 항상 그랬듯 그를 인지하고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얼른 먹어. 배고프지?”
이명석은 흐뭇한 얼굴을 하며 주머니에서 고양이 전용 캔을 꺼내 앞에 놔두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밥을 먹는 고양이를 보며 이명석은 한숨을 내뱉었다.
“미안해. 요즘 이상한 일들이 많아서 말이야.”
고양이의 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캔에 머리를 박은 채 꺼내질 않았다.
며칠 굶은 듯 숨도 쉬지 않고 식사에 집중했다.
“...머릿속으로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가끔 이상한 느낌이 속에서 올라오기도 하거든. 가끔 보면 내가 미친 거 같아.”
이명석은 한을 풀어내듯 그간 있었던 일들을 뱉어냈다.
스스로를 천사라 밝힌 남자와 마주한 이후로 그런 일들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이상한 목소리가 가끔 들려오는 건 여전했다.
이명석은 그 남자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
“저...”
순간, 그의 뒤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명석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주머니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내 재빨리 팔을 뒤로 뻗었다.
“힉...!!!”
전기충격기가 낯선 행인에게 닿기 직전 행인이 꽈당하고 넘어지는 바람에 전지충격기는 허공에서 지직하며 전기를 내뿜었다.
“어... 희선 씨...?”
그의 뒤엔 고깃집 알바생 이희선이 넘어져 있었다.
그녀는 이명석 손에 쥐어진 전기충격기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뭐하는 짓이에요...!?”
“죄...죄송합니다. 고의가 아니라...”
이명석은 연신 사과를 하며 전기충격기를 다시 주머니 안에 넣었다.
“어휴...”
놀란 얼굴을 하고 있던 이희선은 이내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괴물에 잡혀 죽을 뻔했었던 것도,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장본인이기도 했었으니까.
“...아니에요. 그럴 수 있어요. 괜찮아요?”
되려 이희선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괜찮다며 미소를 보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진짜 괜찮아요. 그런 일들을 당했는데,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죠...”
“요즘 너무 예민해서...”
“그나저나 오늘도 노랭이 밥 주는 거에요?”
“네, 저 아니면 챙겨줄 사람이 없잖아요. 어미도 없는 거 같은데... 몸도 허약해서 혼자 뭐 먹지도 못하더라고요.”
“그래요?”
이명석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잠깐의 소동에 놀랐는지 쓰레기 봉지로 만들어진 동굴 속으로 몸을 숨긴 채였다.
“괜찮아. 나와서 마저 먹어.”
이명석은 캔을 고양이에 더 가깝게 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고양이는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식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이.”
그때 또 다른 불청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저 멀리 골목의 끝이었다.
이명석과 이희선은 흠칫 고개를 돌렸다.
골목 끝에서부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껏 불쾌한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침을 탁 뱉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자 이명석을 대신해 이희선이 앞서 그의 길을 막았다.
“무슨 일이에요?”
“그쪽이 알건 없고.”
남자는 이희선을 밀치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바닥에 고양이와 이명석을 번갈아 보더니 퍽 하고 고양이를 걷어찼다.
“...!!! 뭐하는 짓이야!!!”
끼잉 하고 고양이가 멀리 날아가 울음을 토해내자 이명석은 고양이에게 달려가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그냥 꼴뵈기가 싫어서 말이지.”
남자는 귀를 후비며 답했다.
“오지마...!!!”
이명석은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고양이를 품 안에 숨겼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 않고 이명석을 향해 다가갔다.
퍽!
남자의 발이 또 한 번 이명석을 걷어찼다.
다행히 이번엔 고양이를 품속 깊이 안고 있던 덕에 고양이가 다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고양이를 당장에라도 죽이려는 듯 또 다시 이명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만 하세요!”
이희선이 뒤에서 남자를 말리려해도 남자는 꿈쩍도 않고 되려 그녀를 패대기쳤다.
보통 사람의 힘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만해...!”
이명석이 경고했다.
“그만 안하면 어쩔건데?‘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이명석은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그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럼 가만있지 말건가.“
남자는 또다시 이명석을 걷어찼다.
퍽!
끼잉!
걷어차인 이명석의 품에서 고양이가 떨어져나왔다.
”먕! 먕!“
작은 고양이는 나름 사납게 울음을 토해내지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해...!“
이명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새 남자는 고양이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당장에라도 고양이를 밟아죽일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만해!!!“
이명석이 소리쳤다.
동시에 그에게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남자는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군을 위해서.“
남자는 말했다.
동시에 그의 발이 가냘픈 고양이의 몸통을 향해 내리찍힌다.
이명석의 마기가 그의 목을 탐하려는 순간, 그리고 고양이가 죽음이라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콰직!
날아든 망치 하나가 남자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다리를 후려쳤다.
쾅!
망치에 얻어맞은 남자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이명석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기는 고양이를 감싸 안았다.
”그 어린 놈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죽일라고 혀?“
* * *
박율은 골목 끝에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등장했다.
그리고는 슬쩍 골목을 살폈다.
남자에게 맞아 넘어진 이희선과 작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는 이명석, 그리고 그들의 앞에 한 남자.
딱 봐도 내가 악당이오 하는 남자가 망치에 맞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허!“
[마인이군.]
박율의 뒤에서 도도한 발걸음으로 나타난 고양이 형태의 데판이었다.
”나오지 말라니까! 혼자 나와야 멋있다고.“
[염병.]
”칫.“
데판은 고개를 내저으며 그를 지나 가까운 벽에 뛰어올라 자리를 잡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처...천사님...! 도와주러 오셨군요!“
이명석이 소리쳤다.
박율은 흘깃 이명석을 보았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마기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설마 하는 생각이지만, 그가 마인이 되었던 이유가 저 고양이 때문은 아닌가 싶은 순간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이제 그는 자신을 천사라고 굳게 믿는 아군이 되었는데.
박율은 싱긋 미소를 지어주곤 다시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를 빠득 갈며 땅을 짚고 일어났다.
”너 뭐하는 새끼냐?“
”나? 천사.“
박율은 그 말을 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남자가 반격한 새도 주지 않고 그의 턱을 올려쳤다.
콰직!
겨우 일어난 남자는 박율의 공격에 또 다시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일어나지마. 귀찮으니까.“
”감히 나를 방해...“
”일어나지 말라니까.“
콰직!
또 다시 박율의 망치가 남자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남자의 몸은 일순간 공중에 떠오르더니 이내 바닥에 처박혔다.
”그냥 가만히 있어. 가만히. 그래야 안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