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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90화 (90/183)

90화

단지 5분.

초로 환산해도 고작 300초 남짓한 시간은 너무나 짧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작에 불과한 그 시간은 때론 많은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즉 ‘고작’은 고작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세계수의 잎사귀.

그 고작이라는 작은 기적을 행차하게 만드는 성유물이었다.

쓰디쓴 잎사귀를 먹음으로써 복용자의 시간을 역행하게 만들어 주는 유물.

잎사귀가 더 크다면 더 많은 시간을 역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한 반동은 크기가 클수록 더욱 커진다.

마치 쏟아지는 폭포를 역류하듯, 휘황찬란한 비단결의 단면을 베어 가르듯 아득해진 박율의 시야는 점차 원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무너진 건물의 앞에 서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속에서 울렁거리는 느낌이 올라왔다.

“윽...!!! 우웩...!!!”

박율은 그대로 허리를 접고 바닥에 구토를 쏟아냈다.

온몸을 찌르는 격통 역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 데에 따른 제약으로 짧은 시간 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이 그의 머릿속을 뒹굴었다.

마치 그 시간들이 가지고 있던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을 빠져나가듯 이명이 들리고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충격이 감돌았다.

세계수의 잎사귀가 작은 덕이 그리 큰 반동은 오지 않았다만, 이 정도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고통에 신음할 시간은 없다.

박율은 땅바닥에 떨어진 나무 조각을 집어 그대로 손바닥에 내리꽂았다.

푹!

찌릿한 고통이 손바닥 전신이 퍼짐과 동시에 멀어지던 정신이 차츰 자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후...”

겨우 머리를 진정시킨 박율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막 폭탄이 터진 때로 돌아온 건지 건물은 무너지고 있었고, 하세원은 벽에 통로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늑대 가면의 남자가 지독하게도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늑대의 시선은 박율을 향했다.

이번엔 마음대로 하게 두지 않는다.

“다 됐어요!”

옆에서 하세원이 소리쳤다.

하얀 불꽃으로 만들어진 고리가 하세원의 다른 활로 만든 통로와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다들 도망쳐요. 얼른.”

박율은 곁에 있던 일행들에게 말했다.

“율 씨는요?”

“전 아직 할 일이 남아있어요.”

박율은 일행에 질문에 가볍게 답을 했다.

그리고 하세원을 시작으로 하나둘 통로를 통해 넘어가기 시작하며 박율은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어디 가요!?”

박석훈의 목소리였다.

저멀리 폭탄을 터트리고 돌아온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박율을 보았다.

“조금 있다 만나요.”

“네!?”

“할 일이 있어서 말이에요. 빨리 돌아가요.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지금 이 상황에...”

“괜찮아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뱉은 박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리고 박석훈의 말문을 막을 정도로 냉정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제 길을 찾아갔다.

박석훈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늑대는 박율을 보았다.

박율 역시 늑대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은 점차 가까워졌다.

“형.”

“...”

늑대는 대답 대신 날카로운 뼈다귀로 만들어진 칼을 들이밀었다.

그 칼은 역시나 박율의 손에 있는 항아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게 필요한 거지?”

“내놔.”

박율은 손에 쥐고 있던 항아리를 들어올린 채 하얀 불꽃을 피워 그대로 숨겼다.

늑대는 그런 그를 보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박율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왜 그러고 있는 거야?”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나도 형을 죽이고 싶지 않아.”

매정하고, 냉정하며 차가운 눈빛이 오갔다.

박율의 눈은 이전처럼 녹록치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두 사람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

“이젠 대답도 해줄 수 없는 거야?”

늑대는 그저 박율의 목에 첨예한 날을 겨눈 채 가만히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쩌다 백봉기라는 사람이 저런 얼굴을 하고 칼을 높이 든 걸까.

교차하는 두 시선 사이 흐르는 냉랭한 공기는 보는 것만으로 숨을 턱 틀어막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내놔.”

늑대는 말했다.

박율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형을 믿고 싶었어.”

“...”

“실수였다고. 그저 찰나의 잘못이었다고. 다시 눈을 뜨면 언제나 그랬듯 다 장난이었다고 장난치는 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넌...모를거야.”

“근데 이제 내가 알던 형은 없는 것 같아.”

“절박한 사람의 심정을... 너는...”

“...난 끝까지 형을 믿고 싶었어.”

박율은 늑대를 응시한 채 어깨를 비틀어 자신의 뒤로 망치를 휘둘렀다.

콰직!

그의 뒤로 날카로운 뼈를 들이미는 해골의 두개골이 박살났다.

산산조각난 해골의 조각들이 바닥에 흩날렸다.

마치 한겨울에 눈보라가 흩날리듯 해골의 흔적들이 바람결에 사라졌다.

그럼에도 박율의 시선은 늑대를 향하고 있었다.

해골의 손날이 가진 날카로움은 너무나 무뎠다.

단단하게 다져온 박율의 일련을 꿰뚫기엔 너무나.

그리고 그의 일련은 망치를 단단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늑대는 흠칫 박율을 보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너를 죽이고 싶지 않아.”

“나 역시 마찬가지야. 형.”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차가운 바람은 두 사람의 심장을 얼렸다.

벌어진 옷가지 사이로 새어든 바람은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너무나 시렸기에, 그 다음은 쓰라렸다.

눈물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쓰라림이었다.

늑대는 박율을 응시한 채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

푹!

박율의 손이 늑대를 향했다.

아니, 장검으로 변한 코어가 늑대의 손바닥을 관통했다.

“...!”

늑대의 뼛조각은 박율을 도와주러 오던 김진목의 심장을 꿰뚫기 직전 멈춰섰다.

늑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통에 침음을 한다거나, 인상을 짓는 것조차 없었다.

그저 박율을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고통을 모르는 밀랍 인형처럼, 그것도 아니면 그 정도 고통은 대수롭지 않다는 사람처럼 말이다.

“근데 이젠 너무 늦은 거 같아.”

“율아.”

“미안해. 형.”

박율은 달려들었다.

캉!!!

박율의 살의가 늑대에게 닿기 직전, 그의 앞으로 검은 핏물을 머금은 해골이 그의 공격을 막아섰다.

뼈다귀와 망치가 부딪히며 뼈다귀에 커다란 금이 생겼다.

박율은 그대로 허리를 비틀어 코어를 철퇴로 바꾸고는 해골을 내리찍었다.

새하얀 뼛조각이 사방에 날렸다.

그리고 그 뼛조각의 뒤로 늑대가 검을 내찔렀다.

챙!

다시 장검으로 변한 박율의 코어가 공격을 흘리고, 박율의 망치가 늑대를 향해 날아갔다.

망치는 늑대의 머리를 노리지 않았다.

늑대의 가면을 벗겼다.

툭.

망치에 맞은 늑대의 가면이 바닥에 떨어졌다.

“...”

“얼굴은 보고 싸워.”

궁금했다.

그의 살의는 진심인지.

정말 진의를 가지고 사람의 목숨을 유린하는 것인지.

그리고 박율의 목을 노리는 것인지.

가면이 사라진 백봉기의 표정은 너무나 메말라 있었다.

물 한 방울 없는 메마른 사막.

입술이 쩍쩍 갈라지고, 건조한 입에서 텁텁하고 쓴맛이 느껴지는 그러한 얼굴이었다.

그렇기에 박율은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유...율 씨...!”

한 발자국 떨어져 두 사람을 보던 김진목의 말이었다.

“빨리 도망쳐요.”

“이...이게 무슨...”

“얼른.”

김진목이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늑대의 날카로운 뼛조각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박율은 재빨리 망치를 뻗어 그의 목으로 향하는 뼛조각을 막았다.

백봉기는 그대로 뼛조각을 내려놓고는 다른 손을 휘둘렀다.

허공을 주파하는 손에서 새하얀 뼛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캉!!!

박율 역시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가볍게 공격을 막았다.

백봉기의 얼굴은 여전히도 냉정했다.

한때 아들이라 부르던, 한때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의 목을 노리면서도 냉정했다.

캉!!!

서로의 목을 탐하는 두 사람 사이 벌어진 공백.

어느새 그 공백은 서로를 보지 못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공백은 서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백봉기가 내뻗는 날에 망설임 따윈 없었다.

박율 역시 그에 부응했다.

캉!!!

차가운 쇳소리는 얼어붙은 두 사람 사이 공백을 지우지 못했다.

챙!!!

박율의 망치에 백봉기가 쥐고 있던 뼛조각이 날아갔다.

박율은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장검을 그의 목에 겨누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

“왜 그러고 있는 건데? 도대체 뭐가 그리 힘들어서 나한테까지 칼을 들이밀고 있는 거냐고.”

박율의 뒤에서 해골 하나가 기어 올라왔다.

그는 등 뒤에서 서늘하게 느껴지는 냉기에 망치를 길게 뻗어 해골의 안면을 박살냈다.

“그렇게까지 절박하면서 왜...” “넌 모를 거야.”

그리고 검은 자국으로 가득한 땅바닥에서 새하얀 해골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마치 먹이를 점령하는 개미들마냥 박율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박율에게 닿지 못했다.

그저 뼛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뿌려질 뿐이었다.

박율의 검은 달려드는 해골들을 베어 가르고, 망치는 늑대의 늑골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늑골의 앞에 생겨난 뼛조각은 그 공격을 막았다.

“나한테까지 아무 말도 안 한 건데...? 나한텐 말할 수 있잖아. 나한테는...”

박율의 검은 빠른 속도로 늑대의 허리춤을 벤다.

이번에도 역시 땅바닥에서 올라온 해골이 그의 검을 막았지만, 해골의 뼈는 박율의 검에 양단되었다.

그리고 차악!

검붉은 핏방울이 흩날렸다.

그리고 또 한 번.

그의 가슴에 기다란 상처가 벌어졌다.

허리에서, 가슴에서 흘러내린 피가 그의 옷을 적시고 있지만, 그는 아무런 얼굴도 하지 않았다.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저 다음 공격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인상을 짓게 만들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박율은 그의 공격이 날아들기 직전 발을 굴렀다.

캉!!!

미처 뻗지 못한 늑대의 검이 박율과 망치와 맞부딪혔다.

박율은 더욱 가까이 붙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한치 앞까지 가까워졌다.

“제발... 뭐라도 좀 말해보라고...”

검은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삭막한 흑이 그를 잠식하고 있었다.

심연 속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어둠이었다.

백봉기는 박율의 망치를 밀쳐내고 뼛조각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두 사람은 숨을 고르기라도 하듯 자리에 멈춰 서로를 응시했다.

“뭐가 문제였던건데...?”

“...넌 끝까지 없었어.”

오랜 기다림 끝에 늑대는 답했다.

“뭐...?”

캉!!!

이번엔 백봉기가 먼저 검을 휘둘렀다.

내려찍는 새하얀 뼈다귀는 무거웠다.

너무나 무거워 그저 막는 것만으로 팔이 저릿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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