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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00화 (100/183)

100화

펑!!!

백년 묵은 구렁이의 짧은 단말마 이후 구렁이의 허리 부근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뱀의 피를 뒤집어 쓴 박율이 걸어나왔다.

“후...”

박율은 가볍게 손으로 피를 털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복부에서 터진 폭발로 몸이 너덜너덜해진 뱀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뱀을 사냥하는 유일한 방법.

마기가 더 이상 그녀를 보호할 수 없는 순간, 즉 마기와 그녀가 한 몸이 되어 뱀이 완전한 구렁이로 변하는 때를 노려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평범한 방법으로는 그녀를 죽일 수는 없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유일한 약점인 뱀의 후두부를 노려야 했다.

그것이 박율이 뱀의 입에 몸을 던진 이유였다.

자칫 잘못하면 몹시 위험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이...”

부들부들 떨리는 뱀의 눈이 박율을 향했다.

고통 속을 헤엄치는 와중에도 살기 어린 두 눈은 박율을 집어삼킬 듯 요동쳤다.

하지만 딱히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어보였다.

그녀의 반쯤 잘린 허리 아래에서부터 그녀의 몸이 돌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뱀이 아구를 벌린다.

죽기 전 마지막 발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래... 혼자는 못 죽지...”

뱀이 마기를 분출한다.

곁에 서 있는 것만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마기였다.

동시에 그 마기는 날카로운 비늘의 형태로 바뀌어 박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날아드는 마기 조각들.

박율은 재빨리 코어를 방패형태로 바꾸어 땅에 박아넣고는 몸을 맡겼다.

타다닥!

방패 너머로 날카로운 비늘 수십 개가 박히는 충격이 전해졌다.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는 하늘에 손으로 머리를 감싸듯, 비늘들은 셀 수도 없이 쏟아졌다.

그 사이로 뱀이 허리를 잘라냈다.

스스로 몸을 잘라냈다는 말은 죽음을 불사했다는 뜻이었다.

뱀은 피를 줄줄 흘리며 박율을 향해 기어갔다.

그리고 뱀이 박율의 정면까지 다가왔을 때, 그녀는 커다랗게 벌린 아구를 박율을 향해 던진다.

차악!

아구가 박율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날아든 검기에 뱀의 아래턱이 잘려나갔다.

“아아악!!!”

뱀이 소리를 지른다.

끊어진 허리에서부터 몸이 굳어오는 뱀이 바들바들 떨리는 고개를 돌렸다.

검기가 날아온 방향엔 이명석이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서 있었다.

“이 개새...”

콰직!

이번엔 박율이었다.

그의 망치가 뱀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쿵!

뱀의 흔적은 바닥에 떨어졌고, 그것은 완전히 돌처럼 굳었다.

자리에 남은 것은 잔류하는 마기뿐이었다.

“후...”

박율은 숨을 고르며 허리를 폈다.

스륵.

“...?”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마기가 박율에게로 흘러갔다.

온기를 잃은 뱀의 몸뚱이에서 검은 마기가 흩날리는 먼지처럼 박율의 몸에 정착했다.

박율은 왼손을 들었다.

그리고 마기를 꺼낸다.

왼팔에 깃든 마기는 마치 박율을 집어삼킬 듯 타올랐다.

지금까지와 사뭇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확실한 마기였다.

박율은 다시 주먹을 쥐었다.

악마를 사냥하며 마기를 흡수한 적은 있다만, 사람은 처음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마인이지만 말이다.

여하튼 마기를 가진 인간에게서도 힘을 흡수할 수 있다니.

혹여나하는 마음이었다.

[추출]

왼손의 유리는 바꾸어선 안 된다.

그랬다간 이 공간 자체가 깨질테니 말이다.

박율은 오른손의 권능을 바꿔 뱀에게서 추출을 시도했다.

역시나 여태껏 악마들에게서 해왔던 것마냥 악마의 정수가 하나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른 색의 구슬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이건...”

마기는 아니었다.

뱀 가면을 쓴 여자에게서 무언가를 빼낸 것 같았다.

[흡수]

박율은 생각할 것도 없이 추출한 두 구슬을 흡수했다.

그러자 함께 쌓여온 피로와 몸에 생긴 생채기들이 회복되었다.

뿐만 아니라 권능의 격이 상승한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느낌이 아니었다.

확실히 느껴지는 감각이 한층 또렸해졌다.

지금껏 악마들만 사냥해온 탓에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악마가 아닌 사람에게서도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악마들의 것을 흡수했던 것보다 강력한 기운인듯했다.

“괜찮으십니까!?”

저 멀리에서 이명석이 뛰어왔다.

그는 온몸을 뒤덮은 흑을 지우고는 한껏 놀란 얼굴로 박율을 살폈다.

독을 내뿜는 뱀의 입안을 들어갔다 나온 상태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네, 괜찮아요.”

박율은 오히려 싸우기 전보다 쌩쌩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또 다른 이들을 향했다.

“아직 나쁘지 않아...”

박율은 흘깃 손목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한 시간 이내 모든 것을 끝내야 하는 상황에서 대략 20분 정도가 흐른 상태였다.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긍정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부정적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결계 밖에 있을 이들을 믿는다.

그것 말고는 그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음은 고양이와 개구리였다.

저 멀리 결계의 끄트머리에서 차영훈과 김진목이 고양이와 개구리를 상대로 고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핏봐선 막상막하의 대결처럼 보였지만, 가세는 고양이와 개구리 쪽에 기운 상태였다.

차영훈과 김진목의 콤비가 나쁜편은 아니지만, 아니 굳이 말하면 좋은 편에 속하지만.

고양이와 개구리의 콤비에는 당할 바 아니었다.

악사회를 상대하는 입장에선 가히 최악의 조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서로의 결점을 서로의 장점으로 채워주는 조합이었으니까.

박율은 달려갈 자세를 잡았다.

한 방에 처리해야 했다.

혹시라도 그들에게 여유를 주게된다면 전투는 쓸데없이 길어진다.

한시가 바쁜 상황에 쓸데없는 전투는 소모일 뿐이었다.

“명석 씨.”

“네...네?”

“달려요.”

“네?”

“고양이 가면 쪽으로 달려들어요.”

박율은 밑도 끝도 없이 내뱉었다.

그의 말에 이명석은 흠칫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으나, 이내 그의 말을 따라 움직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몰라도 엉터리는 아니겠거니 하는 믿음이었다.

그는 온몸을 다시 흑으로 무장하고는 고양이를 향해 뛰었다.

개구리와 고양이 역시 인기척을 느꼈는 지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 뭐야?”

고양이는 가면 너머 인상을 팍 지었다.

한창 까마귀와 뱀을 상대해야 할 두 사람이 지금 비장한 얼굴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너머로 보이는 돌처럼 굳은 뱀의 사체와 흔적만 남은 까마귀.

개구리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쟤네들이 진 거야...?”

여러 번의 전투 끝에 박율 일행을 상대하는 것이 까다롭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뱀과 까마귀가 저렇게 처참하게 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딜 한눈을 팔아...!!!”

잠시 개구리가 달려오는 이명석을 보는 동안, 두 사람을 상대하면 김진목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통파가 개구리에게 닿기 직전 날아든 고양이의 실조각이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

“칫...”

김진목의 통파는 개구리에게 닿지 못하고 물러섰다.

너무 까다로운 상대였다.

개구리의 구슬이 면이라고 한다면 고양이의 실은 선으로 여백을 메꾸는 느낌이었다.

어디를 공격해도 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개구리의 시선이 김진목에게 분산된 사이, 이명석이 고양이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차악!

흑으로 된 검이 고양이의 몸을 갈랐다.

“...!”

하지만 고양이에겐 아무런 생채기도 남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실처럼 갈라져 공격을 무효화한 덕이었다.

이명석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짐짓 당황한 듯 연신 검을 휘두르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 사이로 차영훈이 봉을 던졌지만, 역시나 닿지 않았다.

“치사하게 뒤를 노려?”

고양이가 살기 어린 눈으로 이명석을 본다.

그녀에게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자 이명석은 고개를 돌려 박율을 찾았다.

“율 씨...!”

이명석은 넘실거리는 살기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고양이의 주위로 실가닥들이 뱀마냥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명석을 향해 입맛을 다셨다.

다다다!!!

이명석의 뒤로 거친 뜀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고양이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시선의 끝에서 나타난 박율이 양손에 무기를 짊어진 채 달려오는 중이었다.

고양이는 어림도 없다는 듯 손을 높이 들어 그에게 실가닥을 던졌다.

차악!  날아간 실가닥이 박율을 스쳤다.

하지만 그 어느것도 치명적이진 않았다.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그를 비껴나갔다.

저 녀석을 죽이려할 때면 매번 이랬다.

짜증나게 하는 데는 도가 튼 녀석이었다.

고양이를 이를 꽉 깨물며 계속해서 실가닥을 던졌다.

그 순간, 박율은 수십 개의 실가닥들 사이로 망치를 던졌다.

고양이는 흠칫 날아오는 망치를 피해 고개를 비틀었다.

그리고 동시에 박율이 땅바닥에서 발을 떼었다.

“전부 달려들어요!!!”

박율의 몸뚱이가 고양이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 박율은 소리쳤다.

그리고 그의 말에 다른 이들 역시 발을 떼었다.

고양이를 보조해주던 개구리는 갑작스런 상황에 손을 튕겨 고양이 근처로 방울들을 만들었다.

박율의 시선은 고양이를 향하는 듯 하지만 개구리를 향했다.

그의 앞에 생겨난 커다란 방울 하나.

박율은 방울에 발을 얹었다.

방울에 그의 발에 닿자 새하얀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방울은 형태를 잃으며 불꽃을 내뿜었다.

박율은 그 폭발을 추진력으로.

[신속]

고양이가 아닌 개구리를 향해 도약한다.

펑!!!

폭발이 터지며 고양이를 향해 달려들던 일행들이 다가서지 못하고 멈췄다.

“...?”

폭발이 끝났음에도 박율이 보이지 않았다.

함께 그들의 진로를 막던 구슬들이 전부 사라졌다.

“커...커헉...”

저 멀리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왔다.

일행들은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

저 멀리에 박율의 뒷모습과 함께 목을 움켜쥐고 있는 개구리가 보였다.

목을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털썩.

박율은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의 동공이 요동쳤다.

“야...뭐해...”

개구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발작에 가까운 떨림을 보여주었다.

“야...”

고양이의 목소리가 떨린다.

“장난치지마... 일어나...”

추욱.

잠시나마 버티던 개구리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와 함꼐 고양이의 눈빛 역시 검게 물들었다.

상황을 마주한 박율의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우...”

고양이를 잡으려면 그녀가 가진 실들을 전부 꺼내야했다.

하지만 개구리는 아니었다.

그에겐 확실한 방어기제가 없었다.

그렇기에 박율은 시선을 고양이에게로, 목숨은 개구리를 노렸다.

“너...”

고양이의 시선이 박율을 향해 올라갔다.

박율은 그녀의 눈빛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자세를 잡고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쓸데없는 대치는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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