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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25화 (125/183)

125화

“괜찮아?”

박율은 아이를 내려놓고는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움츠린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던 아이는 어느새 조용해진 상황에 살며시 실눈을 떴다.

“이제 눈떠도 돼.”

“히익...!”

아이는 눈앞의 박율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냈다.

“괜찮아.”

박율은 아이를 진정시키려 말을 하지만, 아이는 경계심을 풀 생각을 않았다.

오히려 떨어져 있던 철근을 들어 그에게 겨눌 정도였다.

“오빠...!”

“수화야!!!”

아이는 들려오는 동생의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동생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아채자 곧장 동생에게 달려갔다.

동생에게 달려간 아이는 숨도 쉬지 않고 동생의 몸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안 다쳤어!?”

“괜찮아... 오빠는...?”

“괜찮아.”

동생을 연신 살피던 아이는 그제야 숨이 놓인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돌려 죽은 이들을 보았다.

자신들을 위협하던 악마들은 이미 찌그러진 캔 마냥 바닥에 널브러진 채였고, 동생 역시 울먹이는 얼굴로 자신을 보는 게 보였다.

살아남은 이는 자신과 동생뿐이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낯선 남자와 고양이 하나.

아이는 친절하게 다가오는 박율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동생을 등 뒤에 숨겼다.

“내 뒤에 숨어...!”

“우리 구해준 사람들이야.”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그랬어!”

“경계 안 해도 돼.”

“오지마...!!!”

“뭐, 정의의 사도 그런 거라고 해야 하려나? 하여튼 나쁜 사람은 아니야.”

아이는 덜덜 떨리는 철쇠를 놓을 생각을 않았다.

박율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그때의 세계는, 아니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그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친절하게 다가오는 이는 모두 이면에 숨겨진 목적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동생을 등 뒤에 숨긴 채 도망칠 궁리를 하는 중이었다.

박율은 망치를 내려놓고는 양손을 높이 들어 헤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걱정 안 해도 돼.”

“오빠...”

“괜찮아. 내 뒤에만 있어!”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군. 버릇없긴.]

옆에서 데판은 어디 선비가 하는 말투로 혀를 끌끌 찼다.

“어우, 그새 꼰대 다 됐네.”

[뭐 꼰대?]

“진짜 그 놈의 인터넷 좀 그만해요. 군단장 위엄은 어디 엿 바꿔먹었나.”

[흠...]

“괜찮아. 너희를 해칠 생각은 없어.”

“아빠가 아무도 믿지 말라고 했어...!”

“그래 뭐,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은 없는데, 그래도 일단 목숨 살려준 정의의 사도, 의인 정도로 생각해주면 안 될까?”

“...”

“안 되나 보군.”

아이는 완강했다.

입을 꾹 다문 채 박율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슬금슬금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아이의 뒤로 퇴로가 보이질 않았다.

아이는 도망칠 구석을 찾지 못하자 동생을 완전히 뒤에 숨기고는 다가오면 때릴 기세로 철근을 높이 들었다.

“...아빠가 잘 가르치긴 했네.”

박율은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졌다.

아이는 박율이 멀어짐에도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쟤들이 경계를 안할까요?”

[어차피 악마들에 의해 신뢰가 와해된 세계 아닌가? 그럼 악마의 편이 아니란 걸 보여주면 되겠지.]

“그렇게 단순명료한 세계가 아니거든요. 사자의 힘을 가지고 악마 편에 선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걸로 부족해요. 무법자들도 넘쳐나는 세상이고... 다른 방법 없을까요?”

[흠... 인터넷에서 본 바론 아이들은 즐거운 걸 좋아한다는 군.]

“재밌는 거?”

박율은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이내 입을 잡아당기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를 보는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어때? 재밌지!”

“...”

점점 더 일그러진다.

표정만 봐선 경기라도 일으키겠다.

“...아니구나. 크흠.”

박율은 머쓱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더니 다시 데판을 보았다.

“다른 거는?”

[화려한 것도 좋아한다고 그러더군.]

“화려한 거?”

[...근데 그걸 왜 악마인 나한테 물어보는 거지?]

박율은 다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눈속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지를 떼었다 붙였다.

소지를 떼어서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른 손가락으로 붙이고, 다시 소지를 꺼내고.

“짜잔? 신기하지!”

여전히 반응도 없다.

그냥 미친놈을 보는 눈이다.

“...그럼 이건 어때.”

박율은 다시 손을 펼쳐 실가닥을 뽑아내 묘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실을 뱀처럼 만들어 기어다니게 하고, 인형을 만들어 장난을 쳤다.

그제야 아이들의 눈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어때? 이건 신기하지?”

이 시기에 이런 장난을 보는 건 힘들 터.

아이들은 딱 그 나이대에 맞는 순수한 얼굴을 한 채 박율의 묘기를 지켜보았다.

왠지 모르게 흐뭇하기도 하다.

아까부터 어른보다 더 힘든 모습을 하고 있던 아이들이 저런 해맑은 웃음을 보인다는 게.

그러다 느껴지는 섬짓한 기운.

뒤에서 악마들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박율은 싸울 준비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뒤에 놈들 좀 부탁해요. 난 애들 맡을게.”

박율은 뒤에서 느껴지는 마기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아이의 경계심을 푸는 데만 집중했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조용히 좀 해봐요. 애들 집중하잖아.”

[마음에 들지 않는군.]

“재밌지?”

[쳇.]

데판은 욕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달싹거리지만 이내 한숨을 팍 내뱉으며 발을 돌려 다가오는 악마들을 보았다.

숫자는 여섯.

[인간이다!]

[죽여!]

딱 봐도 떨거지들이었다.

그냥 조용히 돌려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데판은 꼬리를 높이 들어 위협의 자세를 취하고 악마들을 노려보았다.

[그 이상 접근하면 죽인다.]

살기 어린 말 한마디.

서늘하게 등줄기를 식히는 살기에 악마들은 흠칫 속도를 늦췄다.

하지만 같은 악마의 말이라 그런 것인지, 악마들은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덩치로 봐도 압도적으로 작아 보이고, 머릿수 역시 다가오는 악마 쪽이 우세했다.

악마들은 겁을 상실한 채 살기를 풀풀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쯧...]

데판은 우매한 악마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더니 이내 형을 바꾼다.

굳이 본신까지 꺼낼 필요는 없다.

힘의 1할 정도.

그 정도도 저놈들한테는 과분하다.

쿵.

[...!!!]

달려드는 악마들은 악마의 형을 되찾은 데판을 보며 놀란 얼굴로 자리에 멈춰섰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

쿵.

[그 이상 다가오면 죽인다고.]

[자...잠ㄲ...!!!]

주먹을 높이 들어 그대로 내려찍는다.

쾅!!!

내려 찍힌 주먹을 따라 악마들의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다시 주먹을 들어 올리면 그 자리엔 낭자한 핏물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진 악마들이 있다.

[귀찮게 말이야.]

악마들을 처리한 데판은 불쾌하다는 얼굴로 주먹에 묻은 피들을 털어내더니 이내 다시 고양이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

고양이로 돌아와 다시 박율에게로 가는데 자신을 보는 눈이 이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의 시선이 이상했다.

마치 괴물을 보는 표정이랄까.

“아...악마다!!!”

아.

“빠...빨리 내 뒤로 와!!!”

남자아이는 재빨리 동생을 다시 등 뒤로 숨기고는 이전보다 더 큰 공포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악마랑 같은 편이었어! 역시! 우릴 속이고 납치하려고...!!!”

“하이고...”

한창 묘기를 보이던 박율은 이마를 짚었다.

거의 다 됐는데.

이제 좀 경계를 풀고 이야기 좀 나누나 싶었더니 뒤에서 벌인 기행에 애들이 놀란 모양이다.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대놓고 죽이면 어떡해요? 애들 놀라게.”

[그건...크흠...]

데판은 머쓱한지 고개를 돌리곤 헛기침을 했다.

“겨우 경계심 좀 풀어놨더니, 말짱 도루묵이네.”

두 아이의 눈에 묻어나는 공포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 어린 나이에 저런 눈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슬프기도 했다.

박율은 어떻게든 아이들의 오해를 풀려하지만, 아이들은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저항할 뿐이었다.

“오해야. 이 고양이가 악마긴한데, 나쁜 악마는 아니야.”

“가까이 오지마...!!!”

“우리 사자들 중에도 악마 편이 있듯이 악마들 쪽에도 우리 편이 있거든? 근데 그게 이 고양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저기요, 가만히 있지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요!”

[크흠, 그래, 난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족속이 아니다. 더욱 위대한 존재지.]

“살려만주세요...!!!”

“바보야! 그런 말하면 안돼! 약하게 보이면 죽는다고!”

아이의 동생은 울먹이며 소리치자 아이는 동생을 일갈하며 공포에 떨고 있음에도 끝까지 눈빛을 유지했다.

빡!

순간 뒤통수가 얼얼하게 아파온다.

“악!”

『아유, 이 멍청이들.』

뒤에서 나타난 마르가리타는 대충 상황을 흘겨보곤 두 사람의 머리를 한 번 더 내려쳤다.

빡!

“악!”

[아프다!]

『맞아도 싸! 안 그래도 무서워하는 애들한테 뭐하는 짓이야.』

마르가리타는 혀를 끌끌 차더니 두 사람을 넘어 아이들에게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역시나 아이들은 한껏 긴장한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마르가리타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경계를 풀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많이 놀랐지?』

너무나도 상냥한 얼굴과 따스한 말투.

천천히 손을 뻗는다.

아직 아이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오지마!”

붕! 붕!

그녀는 자신을 위협하며 휘두르는 철근에도 아랑곳 않고 천천히 다가간다.

팍!

날아다니는 철근과 마르가리타의 손목이 부딪혔다.

부딪힌 손목에서 아주 작은 핏방울이 흘러내린다.

아이는 흠칫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상처에도 아랑곳 않고 부드럽게 아이에게 다가갔다.

『겁먹지 않아도 돼.』

그저 듣는 것만으로 힘이 풀릴 것만 같은 말투.

한 발자국.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경계를 하던 아이들은 그녀의 손길에 저도 모르게 경계를 풀어버린 듯 손을 멈추었다.

『괜찮아. 우린 나쁜 사람들 아니야.』

한 발자국.

다가간다.

아이는 흠칫 뒤로 물러서지만, 마르가리타는 그에 맞춰 자리에 멈추더니 다시 다가갔다.

『그거 위험한 거 같은데 우리 내려놓을까?』

손을 뻗는다.

그리고 천천히 아이의 손을 맞잡고 쥐고 있던 철근을 부드럽게 가져간다.

『옳지, 잘한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마침내 도착한 두 아이의 앞에서.

마르가리타는 따스한 손길을 다시 뻗는다.

“힉...!”

두 아이는 다가오는 손길에 어깨를 팍 움츠리며 공포에 떨지만, 그녀의 따스한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마르가리타는 아주 천천히, 아이들이 놀라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선율로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쉬이...』

부르르 떨던 두 아이의 호흡이 마르가리타의 품에서 안정되어 간다.

『많이 힘들었지?』

따스한 말투.

두 아이는 이제는 완전히 경계심을 푼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쉬운 일이었나?”

온갖 쇼를 다 벌인 것 같은데, 저렇게 쉽게 된다니.

에라이.

[...불쾌하군.]

왠지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다.

나도 충분히 저렇게 다정하게 대했던 거 같은데, 천사 보정이 심한 듯하구나 하고 박율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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