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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31화 (131/183)

131화

터진 악마의 핏방울과 살조각들이 공중에서 분해되듯 떨어졌다.

저렇게까지 달려들 정도면 대응을 할 법도 한데, 데판은 하품이나 찍찍 뱉으며 호기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서희는 잔뜩 놀란 얼굴로 박율을 보았다.

그는 던진 망치를 다시 소환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믿어요? 나 박율이라는 거?”

“...”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요.”

그렇게 말을 하곤 박율은 사라졌다.

[하지도 않았다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두터운 살가죽이 뜯기는 축축한 소리들과 뼈마디가 부서지는 둔탁한 소리들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사이사이로 들리는 악마들의 비명은 덤이었다.

데판의 꼬리에 감싸진 채 이동 중인 서희는 두 눈을 믿지 못하고 입을 떡 벌린 채 그를 멍하니 보았다.

차라리 환각을 보는 거라고 믿는 게 더 현실성이 있을 수준이었다.

『보지마.』

마르가리타는 참혹한 광경에 아이들의 눈을 가렸다.

[다시 움직이지. 인간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그게...”

박석훈 역시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당황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기로...”

그리고 겨우 손을 뻗어 방향을 가리켰다.

방향을 따라 데판과 마르가리타는 다시 움직였다.

『그새 더 강해진 거 같아.』

[누구 힘을 흡수했는데, 당연할 수 밖에.]

『너 죽은 이후로 더 말이야.』

[그렇다면 당연히 내 덕분이군.]

두 사람은 너무나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 옆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길거리 전광판이라도 되는 양 너무나 무관심했다.

“안 도와줘도 되는 거에요...?”

두 사람을 멍하니 지켜보던 박석훈이 물었다.

그의 질문에 데판과 마르가리타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혼자서도 잘하는데 왜.』

[괜히 쓸데없이 힘을 빼기는 싫다만.]

그러다 가끔 숨어있던 악마들이 몰래 그들을 덮치려고 하면 두 사람은 가볍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앞발을 흔들어 악마를 양단했다.

조무래기에 불과한 악마들이라는 건 서희와 박석훈 역시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손쉽게 해치울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달려드는 악마를 보지도 않고 터트리는 게 누가 보면 날파리라도 잡는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계속 안내해라.]

“아, 네...넵. 저쪽으로 꺾으면 됩니다.”

박석훈은 데판의 물음에 다시 방향을 안내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사방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타격음을 배경 삼아 유유히 걷던 마르가리타와 데판은 어느새 도착한 백화점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왜...그러세요...?”

두 사람의 갑작스런 행동에 박석훈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혹시 박율에게 문제가 생긴 것인가 싶어 먼 곳을 바라보면 박율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사방에서 터져가는 악마들이 보였다.

박율 문제는 아니었다.

『무언가 오고 있어.』

“네...?”

[아무래도 평범한 녀석은 아닌 모양이군.]

두 사람은 그리 말하면서도 전혀 심각성이 느껴지지 않는 톤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그새 악마들을 대부분 해치우고 나타난 박율은 잠시 숨을 고르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왜 안 가요?”

박율의 질문에 데판은 턱으로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아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린 박율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 자세를 잡았다.

딱히 문제가 있을 정도로 강한 녀석은 아니었지만, 괜히 놔두었다가 골치 아파질 수도 있을 마기가 다가오는 중이었다.

『온다.』

마르가리타의 말과 동시에 나타나는 커다란 덩치의 악마 하나.

폐허가 된 건물들 사이로 널브러진 악마들을 밟고 박율 일행을 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선빵필...”

[잠깐.]

박율이 망치를 높이 들고 달려드려는 순간, 데판이 그를 막아세웠다.

“...? 왜요?”

[내가 아는 녀석이다.]

데판은 잠시 꼬리로 붙잡고 있던 서희를 떨어뜨리곤 다가오는 마기를 향해 발을 뻗었다.

그리고 점점 부풀어 오르는 덩치.

기껏해야 팔뚝 크기의 고양이로 있던 데판은 순식간에 태양을 가릴 정도의 덩치가 되어 나타났다.

그를 본 서희와 박석훈의 표정이 굳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겉모습은 저래도 착해요. 겉바속촉 알죠? 그런 거에요.”

박율은 그런 두 사람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네가 왜 여기 있지?]

데판이 말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악마는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기분을 섬짓하게 만드는 살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발을 굴러 달려온다.

[다시 묻겠다. 왜 네가 여기 있는 것이냐.]

쿵! 쿵! 쿵!

달려오는 소리가 지반에 짙게 깔리고, 덩치의 악마가 높이 뛴다.

데판은 그 악마를 잠시간 바라보더니, 이내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쾅!!!

두 악마의 주먹이 맞부딪히며 굉음이 울려 퍼진다.

터지는 굉음을 따라 폭풍 같은 바람이 일었다.

박석훈과 서희는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을 정도였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데판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덩치의 악마는 잠시 뒤로 물러서더니 다시 이를 갈고 달려들었다.

두 악마의 싸움을 지켜보는 박율과 마르가리타는 여유롭게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아는 사이인가?”

『비슷한 마기가 느껴지긴 해.』

박율은 그녀의 말에 다시 두 악마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비슷한 마기였다.

아마 저 악마도 단탈리온의 영역에 있던 악마가 아닌가 싶었다.

“안 도와줘도 돼요...?”

박석훈은 이번에도 도와줄 생각도 없이 팔짱을 낀 채 데판을 보는 박율에게 물었다.

역시나 대답은 같았다.

“안 도와줘도 돼요. 알아서 잘 하는데, 뭐.”

무심한 대답.

박석훈의 눈에서는 아니겠지만, 박율의 눈에서는 성인이 어린 아이를 가지고 노는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당장에라도 죽일 수 있는 악마를 데판은 죽이지 않고 있었다.

[주군의 말씀을 잊었나?]

[...]

높이 도약하여 떨어지는 덩치의 악마.

데판은 한쪽 다리를 축으로 어깨를 비틀어 덩치의 악마에게 정권을 찔러넣었다.

[커억!!!]

팡 하며 울려퍼지는 소리와 악마는 저 멀리 바닥으로 떨어졌다.

[필요하지 않은 살생은 금한다는 주군의 말을 잊었냔 말이다. 부이트.]

데판의 말에도 악마는 역시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치 언어를 모르는 날짐승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름도 아나봐요.”

『이름까지 알 정도면...』

데판은 성큼성큼 악마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쥐었다.

떨리는 손에서 그의 분노를 짐착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

데판에게 잡혀 발버둥을 치는 꼴은 금수나 다름없었다.

[제2 군단장의 긍지와 위엄은 어디 갔느냔 말이다!!!]

터지는 일갈에 박율은 저도 모르게 감각을 곤두세웠다.

데판이 저렇게까지 분노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악마는 변하지 않았다.

먹이를 앞에 두고 발버둥을 치는 짐승의 모습이었다.

악마를 유심히 보던 데판의 표정이 사뭇 날카로워졌다.

[하아...]

알 수 없는 위화감에 고개를 떨어뜨린 데판은 분노에 찬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펑!!!

악마를 터트린다.

아주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데판은 잠시 두 눈을 감고 분노를 삭히더니 이내 발을 돌려 박율에게로 돌아왔다.

“...죽여도 돼요...?”

박율은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어차피 죽은 놈이다.]

“...에?”

[...이미 혼은 죽은 채로 인형이 되어 있더군.]

내뱉는 말 사이사이로 언뜻 비추는 살기와 분노.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다시 움직이지.]

“...”

[...어차피 이곳은 내가 있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다. 이상의 관심은 허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데판은 다시 고양이로 돌아간 뒤 모두를 지나쳐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박율을 비롯한 일행은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데판이 무언가를 말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충 그 상황은 유추할 수 있었다.

겨우 말을 꺼낸 것은 마르가리타였다.

『우리도 움직이자.』

그녀의 말과 함께 다시 일행은 움직였다.

그 뒤로는 너무나 조용했다.

처음 보는 데판의 극대노 앞에서 어떤 말을 꺼낼 수조차 없기도 했고, 박율과 두 사람의 활약으로 근처 악마들이 죄다 죽은 듯 더 이상 악마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 도착한 터미널 역 앞에서 박석훈은 마르가리타의 등에서 내렸다.

“잠시만요.”

그리고는 일행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더니 옆에 있던 개찰구에 가까운 벽으로 걸어갔다.

개찰구 너머로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길이 있었지만, 그건 허락받지 않은 이들을 걸러내기 위한 함정이었다.

똑똑.

“갈매기.”

“부엉이.”

차가운 벽 너머에서 아주 작게 구멍이 벌어졌다.

벌어진 구멍 너머에서 흘깃 보이는 눈동자가 박율 일행을 향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 섞여 있는데?”

“이번에 찾은 사람이에요.”

“검증은?”

“필요없어요.”

검증, 쉽게 말해 마인과 인간으로 위장한 악마들이 만연한 세계에서 인간들이 그들을 걸러내어 불상사를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그 대상이 악마 쪽이 아니라는 것만 증명하면 된다.

보통은 탐색계 사자들의 힘을 이용하지만, 이곳에 탐색계 사자가 없으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에 의한 증명이었다.

어차피 이곳엔 한국의 10대 영웅이던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게다가 박율까지 있으니 걱정은 없다.

박석훈은 턱으로 박율 일행을 가리켰다.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아무 문제 없어요.”

“아니, 저 사람 말고 고양이.”

목소리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상황에 앉아 쉬고 있던 데판을 향했다.

일전에 터트렸던 분노 이후 여전히 분노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탓에 그에게서 은은한 마기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아... 그게...”

박석훈은 갑작스런 지적에 당황한 듯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게서 마기가 흘러나오는 건 사실이니 말이다.

“이 사람 소환물이야.”

계속 박석훈이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못하자 박율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소환물?”

“죽어가는 고양이 마수를 그냥 보지 못하고 인형으로 만들었데.”

박율의 말에 포탈 근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멎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다.

동물의 모습을 한 마수들이 죽어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인형으로 만드는 경우 말이다.

대다수는 이전부터 동물을 키우던 이들이 택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는 잠시간 말이 없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알았어.”

그리고 암신호를 주고받던 박석훈은 이내 자리로 돌아왔다.

쿠구궁!

그리고 열리는 포탈.

벽에서 벌어지는 기다란 균열은 점차 벌어지더니 금세 커다란 문으로 변했다.

“갑시다.”

서희를 업은 박율이 먼저 포탈로 발을 들이며 말했다.

그를 따라 박석훈을 업은 마르가리타와 데판이 따라 들어왔다.

포탈을 타고 들어가자 보이는 새하얀 세상.

저 너머에 들어온 문과 똑같은 문이 하나 보였다.

『그런데 검증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문을 향해 걷던 와중 마르가리타가 물었다.

“완전폐쇄.”

『뭐?』

“검증이 안 된 이가 나타나면 바로 포탈을 제거하고 그곳을 무너뜨려요. 그래야 악마도 처치하고 도망도 치죠.”

그리고 저 너머로 새하얀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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